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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떠나는 중국여행 ⑫·마지막회

‘부용진(芙蓉鎭)’금기(禁忌)의 기억,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부용진(芙蓉鎭)’금기(禁忌)의 기억,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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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진(芙蓉鎭)’금기(禁忌)의 기억,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

문화대혁명 40주년을 맞아 중국에선 마오쩌둥 상품이 인기다. 한 상점 판매대에 있던 마오쩌둥 그림.

최근 영국에 살고 있는 중국인 소설가 장룽(張戎)이 마오쩌둥 전기를 내놓았고, 부시 미국 대통령이 그 책을 언급하면서 유명해졌다. 그 책에서 장룽은 책과 공부를 좋아하던 마오의 어린 시절에 착안해 마오는 다른 사람에게는 육체노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육체노동을 매우 싫어한 이중인격자였다고 묘사한다.

사실 장룽의 마오 전기는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에 나오는 마오의 이미지와 대척점에서 마오를 묘사한다. 장룽에게 마오는 육체노동이 싫어서 프랑스 유학을 포기한 사람, 농민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 남의 공(功)을 가로채는 사람, 권력욕이 뛰어난 사람인 반면, 스노가 본 마오는 매우 겸손하고 부드러우며, 총명하고, 독서광이고, 중국 농민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장룽은 문화대혁명이라는 비극적 경험을 토대로, 마오가 얼마나 사악한 인물인지를 드러내려는 정치적 목표 아래 마오의 모든 것을 끌어다 해석한다. 만년(晩年)의 마오로 마오의 전 일생을 해석하는 것이다. 한편 스노에게는 혁명 시기의 마오만 있고 건국 이후의 마오는 없다. 둘 다 마오의 부분적인 모습이다. 그 극단적 이미지 속에서 마오는 춤을 춘다. 중국에서도 그렇고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진시황에 대한 평가가 그렇듯 마오에 대한 평가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마왕두이 귀부인의 수모

마오의 생가와 마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세워진 거대한 마오 동상을 돌아보고 마을 입구에 있는 식당에 들어섰다. 식당 메뉴가 한결같이 마오가 좋아하던 요리들이다. 마오가 가장 좋아했다는 요리는 삼겹살에 간장을 넣고 볶다가 찌는 훙사오러우(紅燒肉). 흔한 중국 요리다. 별 기대를 않고 그저 기념사진 찍는 심정으로 주문했는데, 맛이 일품이다. 시골 돼지라서 그럴까, 기름이 적당히 빠지고, 돼지고기 껍질과 비계, 살코기 맛이 제대로 어우러져 고소하다.

마오쩌둥 생가에서 다시 장사로 돌아와 한나라 때의 마왕두이 귀부인을 만났다. 후난 박물관은 오직 이 귀부인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다. 2000년 동안 잠들어 있다가 1973년에 우연히 발굴됐을 때 마치 한숨 낮잠이라도 잔 듯 생생하게 깨어난 여인, 방금 먹은 것 같은 생선뼈와 과자들, 여전한 피부색과 머리칼, 피를 주입하면 어느새 혈관을 타고 돌아 이내 얼굴에 화색이 돌 것 같은 저 여인이 2000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고대 중국의 문명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한나라 때 귀부인의 무덤이 이 정도라면, 진시황의 무덤은 대관절 어느 정도일까.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귀부인의 시대가 너무 찬란하고 아름다워 보여서일까. 154cm, 35kg의 가녀린 몸을 아홉 겹 비단으로 감싸고 있던 여인, 숱한 시종을 거느리고 악사를 불러 음악을 듣고, 도덕경을 읽고, 그림을 즐기면서 2000년 동안 평화롭게 지내던 귀부인을 잠에서 깨워 오장육부를 들어낸 뒤 하얀 천 하나로 몸 중앙만 덮은 채 눕혀놓아 숱한 사람의 시선을 받도록 한 지금 이 문명이 너무 난폭하고 야만스럽게 느껴지고, 저 귀부인이 한없이 안쓰러워 보인다. 당나라 때도 청나라 때도 그렇게 평화롭게 땅속에 있었는데 이제 땅 밖으로 나와 저렇게 누워 있는 것이 그녀에게는 수모인가, 희생인가.

후난 박물관에서 나와 내친김에 마오가 다녔던 후난 제일 사범학교를 둘러본 뒤, “마오 주석이 당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택시 기사의 작별인사를 받으며 장자제(張家界)행 밤 기차에 올랐다. 영화 ‘부용진(芙蓉鎭)’의 무대인 왕춘(王村)으로 가기 위해서다. 왕춘은 장자제를 거쳐 가는 것이 가장 수월하다. 장자제에서 차로 2시간 거리다. 왕춘 인근의 멍둥허(猛洞河)가 래프팅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장자제엔 래프팅과 왕춘 관광을 묶은 당일 코스 패키지가 많다.

국내 최초로 공개 상영된 ‘중공 영화’

영화 ‘부용진’(1986)은 마오쩌둥 시대에 관한 이야기다. 마오의 고향인 후난성에서 마오 시대를 비판적으로 반추하는 영화가 나온 것이다. 구화(古華)의 동명 소설을 셰진(謝晋) 감독이 영화로 만든 것으로, 중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마오쩌둥 시대가 어떠했는지, 문화대혁명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기억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각별하다. 중국과 수교가 단절된 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개 상영된 중화인민공화국 영화이다. 1989년 호암아트홀에서 이 영화가 상영됐을 때 ‘중공’ 영화가 대관절 어떤지를 보려는 호기심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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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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