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논란 속 ‘독자 행보’ 실체는?

평양 오가며 고위인사 접촉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입력2006-11-14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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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7일, 남북은 ‘그를’ 전혀 다르게 대접했다
    • 지우다우와 아리랑총회사 뒤에 김윤규?
    • 민주평통 미주지역 자문회의 이후 발걸음 바빠져
    • 김윤규 팬클럽, ‘제2의 창단식’ 준비 중
    • 평화자동차-롯데관광-김윤규 삼각편대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논란 속 ‘독자 행보’ 실체는?
    김윤규(金潤圭·62) 전 현대아산 부회장에게 9월7일은 앞으로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살아가야 할지 가늠할 수 있었던 날로 기억될 것 같다. 그는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에서 ‘현대건설 사장 시절, 분식회계 대출 사건’으로 징역 2년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북한은 김윤규씨의 아들이 대표로 재직했던 사단법인 ‘지우다우’에 개성의 음식점, 호텔, 면세점 등의 운영권을 맡기는 합의서에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문이 그렇게 났는가?”

    결혼기념일을 기억하지 못해 아내에게 혼쭐났던 남편들은 날짜의 중요성에 대해 절감할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9월7일을 한때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대북사업에 헌신한 김윤규씨를 위해 ‘꼭 기억해야 할 날’로 찍어놨을는지 모른다.

    남한 당국자들도 이날이 갖는 민감한 의미를 눈치채고 있는 듯 보였다. 통일부 남북협력팀 관계자에게 “9월7일 지우다우가 북측의 아리랑총회사와 개성의 음식점, 호텔 등의 운영계약을 맺은 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관계자는 “소문이 그렇게 났냐?”며 “날짜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야릇한 답변을 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의 아리랑총회사가 지우다우와 운영계약을 맺고 싶다는 의견을 먼저 타진했다. 운영을 부탁한 곳은 개성공단 접경지역에 있는 음식점 봉동관과 장차 개성에 지을 호텔과 면세점 등이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일단 계약 주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우다우는 통일부 산하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없기 때문.



    통일부가 난색을 표명하자 지우다우는 영리법인을 내세워 계약을 성사시키려 하고 있다. 지우다우 관계자는 “올 3월 만든 영리법인 ‘바두바투’를 통해 개성공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비록 영리법인을 내세운다 해도 사업자의 대북사업 경력 등 승인요건을 따져봐야 한다”며 “호텔을 짓는 데만 수백억원이 소요되는데, 그런 자금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문제점은 봉동관과 호텔, 면세점의 위치가 현대아산이 토지이용권을 가진 지역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현대아산의 승인 없이는 남측의 어떤 기업과도 계약을 맺을 수 없다. 현재 봉동관은 개성공단 밖에 있어 당장 현대아산의 관할권 안에 들어 있진 않지만, 장차 개성공단을 2000만평으로 확대 개발할 경우, 현대의 관할권으로 들어온다.

    이에 대해 한국토지공사 개성사업체 분양팀 관계자는 “토지운영에 대해서는 토지공사나 현대아산과 상의해야 하지만, 시설의 운영권을 맡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꼭 상의해야 하는 사안인지 분명치 않다”고 말했다. 북측에서 임의로 남측 기업과 운영계약을 맺어도 현대아산이 항의할 수 있는 사안인지 확실치 않다는 얘기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아리랑총회사와 지우다우가 벌이는 계획에 대해 “처음 들어본 얘기”라며 “땅 주인이 현대인데 북한이 마음대로 계약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짐작해보건대 적어도 북측이 현대아산에 이를 알리지 않은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

    아리랑총회사라는 곳의 정체도 의문투성이다. 개성공단에서 진행하는 모든 사업은 남측의 현대아산, 토지공사와 북측의 조선아태평화위원회를 통해야 한다. 토지공사나 남북경협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리랑총회사는 북에서 유통업을 담당하는 공기업으로 대남(對南) 사업 파트너는 아니다. 남한의 어느 기업과도 사업을 논의할 상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논란 속 ‘독자 행보’ 실체는?

    김윤규 부의장은 지난 5월 평통 미주지역 자문회의 개최를 계기로 활동을 재개했다.

    ‘서울부의장 주최 오찬’

    오랫동안 남북을 오가며 사업해온 경협 전문가는 “아리랑총회사는 남한에 지우다우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지우다우를 파트너로 찍었다는 것은 누군가가 이들 뒤에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8월말 조선아태평화위원회의 초청장을 받고 방북한 김윤규씨가 연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지우다우는 “사실이 아니다”며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지우다우의 홈페이지에는 7월6일 그간 언론에 보도됐던 지우다우 관련 기사가 게재됐다. 여기엔 2003년 김윤규씨의 아들 김진오씨가 지우다우 대표로 활동했던 것을 다룬 기사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갑작스럽게 올린 것이라고 추측할 만하다.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부의장을 맡고 있는 김윤규씨는 지난해 10월 현대그룹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칩거했다.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언론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다시 활동을 재개한 것은 지난 5월부터다. 그는 서울지역 부의장 자격으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미주지역 자문위원을 초청한 행사에 참석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와 강연했던 이 행사에서 그는 ‘김윤규 서울부의장 및 협의회장단 주최 오찬’이라고 쓰인 커다란 현수막을 내걸고 오찬행사를 주도했다.

    이어 그는 6월27일 전북 부안군의 통일시대 시민교실을 방문, 1시간30분 동안 ‘남북경제협력의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강연했다. 8월2일엔 강원도 정선군과 평창군의 수해현장을 돌아보며 수재의연품을 전달했다. 8월말엔 조선아태평화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나흘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9월14일엔 서울평화통일포럼이 주최한 심포지엄에 참석, 환영사를 낭독했다. 9월22일엔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연사로 참가한 민주평통 서울지역회의 워크숍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남북의 지도층을 두루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가 활동을 재개한 5월부터 북한은 개성관광의 주체를 현대아산에서 롯데관광으로 교체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북측은 이 같은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7월엔 개성공단 방문객들이 개성시내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김씨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과 갈등을 빚고 퇴출된 데에 대한 항의 표시인 셈이다.

    김윤규씨에 대한 북측의 배려는 이뿐만이 아니다. 통일부가 최근 한나라당 진영 의원에게 제출한 김윤규씨의 방북 보고서엔 “의전 차량(벤츠)과 서재골 초대소 등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려로 준비됐다”며 “이종혁 (아태)부위원장이 순안공항 마중부터 배웅까지 3박4일 내내 일정을 함께했다”고 밝혔다. 김윤규씨가 다녀간 뒤 북한을 방문한 북한 전문가는 “북측의 대접이 극진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현대아산 재직 시절, 북한을 위해 활동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규씨가 활발하게 움직이자 주춤하던 개성관광 이슈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북한이 개성관광 사업의 주체를 바꿔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는 데는 김씨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경협사업에 밝은 한 인사는 “개성관광에 관심이 많은 평화자동차가 롯데관광과 김윤규씨를 끌어들여 이를 추진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평화자동차는 먼저 롯데관광을 끌어들여 개성관광을 추진하려고 했다. 지난해 8월 롯데관광 김기병 회장이 개성공단을 방문했을 때 북측이 김 회장에게 개성관광 사업을 맡아 줄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주선한 주체가 평화자동차라는 것. 평화자동차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한 관계자는 “현대아산의 반발이 거세고, 정부가 이를 불허하는 쪽으로 정리하자 다시 김윤규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평화자동차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고, 롯데관광 관계자도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으니…”

    김씨가 활동을 재개한 것과 관련,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김사모’로 알려진 김윤규 팬클럽도 ‘제2의 창단식’을 선언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사모는 그가 현대아산 부회장 시절,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만든 모임으로 김씨는 김사모가 주최한 행사에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김사모 명의로 발송된 e메일엔 “김윤규 회장님의 새로운 대업(大業)을 위해 힘을 모아드리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겠다”며 “2003년 창단식 수준 이상의 행사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 씌어 있다.

    김사모에서 언급한 ‘새로운 대업’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김사모 관계자는 “김윤규 회장이 현대그룹에서 나와 이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며 “통일과 민족을 위해 일하고 싶은 열망을 펼쳐보겠다는 의미로만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북측도 지난 8월 북한을 방문한 그에게 “이제 기다릴 만큼 기다렸으니 그동안 북측과 쌓아온 신뢰와 귀하의 경륜을 살려 실질적인 남북경제협력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달라”고 했다. 그의 활동을 이곳저곳에서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씨와 친분이 있는 재계 관계자는 “김윤규씨의 성격상, 일을 벌이면 크게 할 것”이라며 “다만 사회적 분위기와 남북간의 관계에 따라 변수가 많아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북한으로부터 얻은 신뢰를 기반으로 그가 펼칠 수 있는 일은 많아 보인다. 그는 언론에 줄곧 “현대그룹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북한이 원할 경우엔 그것이 현대에 해가 되더라도 그는 한 번쯤 현실 가능성을 두고 고민할 것이다. 북한은 적어도 그가 기분이 우울하던 때 ‘파티’를 열어 격려해준 친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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