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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이 쓰는 이 사람의 삶

누비 명장(名]匠) 김해자

한 땀씩 석 달을 매달리는 고행, ‘믿을 수 없는 예술’은 다시 기도가 되고…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누비 명장(名]匠) 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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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비는 일은 육체노동이면서 정신노동이다. 바늘을 쥔 각도에 따라 겉땀이 비뚤어지기도, 뒤땀이 길어지기도 한다. 단순하기 때문에 더 어렵다. 마음세계를 다스리는 수행자가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 기계로도 엄두를 못 낼 치밀함으로 탄생한 누비, 사람들은 어느새 비명을 지른고 만다.
누비 명장(名]匠) 김해자
누비가 어려운 기술인가. 그렇지 않다. 그저 바늘에 실을 꿰어 헝겊을 잠자코 누벼 나가기만 하면 된다. 일정한 간격으로 고르고 정연하게 헝겊을 홈질하는 일, 그게 ‘누비’다. 홈질은 바느질의 가장 초보단계이니 누비를 따로 기술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비는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바느질이 아니다. 끈기가 없으면 두 시간도 못 돼 후다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되는 일이 누비다.

매운 솜씨로 하는 일이 아니고 찬찬한 기질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누비는 차라리 단순하기 때문에 어렵다. 벽을 향해 진종일 화두를 들고 앉아 있는 일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듯이 헝겊을 잠자코 누비는 일도 면벽처럼 고요하다. 고요와 단순이 누비의 관건인데, 그 고요와 단순을 아무나 견뎌낼 수 없기에 누비가 어려운 것이다.

누비 작업에 드는 시간은 물론 사람의 능력에 따라 다르다. 천의 두께, 골의 간격, 땀의 크기에 따라 다르고 경력에 따라 다르니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다. 그러나 초보자가 서툰 솜씨로, 1cm 너비로 누벼서 명주 저고리 하나를 만든다면 거기 드는 시간은 하루 10시간 작업을 기준으로 꼬박 한 달이 걸린다. 0.3cm로 누빌 때는 10시간씩 작업해서 석 달이 걸린다. 직조와 염색과 마름질을 빼고 바느질에만 꼬박 300시간이나 900시간을 들여 저고리 하나를 지어내는 일, 그게 누비다.

이렇게 비생산적인 노동이 또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천에 솜을 두고 누벼 옷을 만들어 입었다.

물론 일차적으로야 섬유 사이에 열을 붙잡아두기 위한 보온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비를 실용적인 목적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따뜻하게 입기 위해서 900시간씩 옷을 만들고 앉았다고? 무형문화재 107호 누비명장 김해자(金海子·53) 선생은 누비옷을 입는 일은 몸에 신장(神帳) 하나씩을 지니는 것이라고 말한다.



“옛사람들은 현대인보다 눈이 밝았어요. 누비는 동안 누비는 사람의 정성이 올 속에 스며들어가 입는 사람을 지켜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 민족은 종교성이 아주 강해요. 옷을 누비는 것은 말하자면 입을 사람을 위한 기도였을 거예요. 몇 달씩 밤을 새워 누빈 옷을 자식들에게 입히면 그 자식들을 천지신명이 지켜준다고 믿었어요. 그러니까 몇 달씩 똑바로 앉아 옷을 누빌 수 있는 힘이 나왔던 거지요.”

경주에 가서 김해자 선생을 만났다. 거기서 하룻밤을 자고 두 끼를 얻어먹었다. 그의 얘기를 듣고 그가 특별히 법제(法製)한 온갖 차를 마시고 그가 바느질한 옷을 만져보고 입어보았다. 음식도 태도도 차도 옷도 여염의 것과는 달랐다. 깔끔하고 맑았다. 고요해서 향기롭고 단순해서 겸허했다. 나와 이야기하는 내내 그는 행여 자신이 특별한 사람으로 비칠까봐 경계했다.

고요와 단순의 결정체

종교적인 냄새가 풍길까봐 조심했고 맑은 기운이 지나쳐 결벽으로 비칠까봐 주의했다. 흰 무명으로 지은 웃옷을 입고 앉아 그는 청자 수반에 백련 한 송이를 올려놓고 뜨거운 물을 부어 보였다. 눈앞에서 커다랗게 벙글며 신비한 향을 품어내는 백련 앞에서 나는 속으로 신음했다. 아름답다!

그는 누비뿐 아니라 차에도 달인이었다. 쑥의 잎과 뿌리, 으름꽃, 구기자, 찔레꽃에서 고유의 향을 뽑아내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 그걸 차로 만들 줄 안다. 음식에도 일가견이 있다. 각종 김치 젓갈 장아찌 부각 자반을 제철 놓치지 않고 담가서 갈무리할 줄 안다. 염색도 직접 한다. 홍화 쪽은 물론이고 양파 소목 오배자 옻나무 엄나무 라일락에 애기똥풀까지 자연 속에서 제 빛깔을 발하는 식물은 모조리 그에게 염색을 위한 연구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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