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불편한 진실 & 신나는 과학 이야기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입력2006-11-14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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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한 진실 & 신나는 과학 이야기

    불편하지만 흥미로운 책, ‘시크릿 하우스’와 ‘불편한 진실’

    책을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빠른 사람에게는 늘 마음의 짐이 있다. 누가 지워준 짐도 아닌데 자청해 등짐을 지고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끙끙대는 꼴이다. 그래서 달력에 빨간 날이 연달아 나오면 어떤 책부터 읽을까 머리 굴리기에 바쁘다. 기자라는 직업상 보통 때는 쓰기 위해 읽지만, 때로는 온전히 읽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긴 추석 연휴, 때는 왔다.

    사놓은 지 두 달이 되도록 차일피일 미루던 책을 집었다.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시크릿 하우스’(생각의 나무)다. ‘시크릿 하우스’라는 제목보다 ‘평범한 하루 24시간 숨겨진 특별한 과학 이야기’라는 표지설명이 더 와 닿는다. 흐음, 그건 모처럼 하루 종일 집 안에서 뒹굴고 있기 때문이리라. 침대시트와 바닥에 붙은 머리카락, 벽과 장의 좁은 틈에 뭉쳐 있는 먼지, 화장실 변기의 얼룩까지 평소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유독 한가로운 휴일이면 확대경을 달아놓은 듯 잘도 눈에 띈다. 치우자니 한이 없을 것 같다. 에라, 그냥 책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런데 이 책 내용이 만만치 않다.

    아침 7시, 사람들은 자명종의 충격파에 놀라 하루를 시작한다. ‘찰싹, 툭, 쿵!’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바닥에 남자의 발이 떨어지는 순간의 충격으로 마루판자와 맞닿은 벽의 맨 아래층 벽돌이 0.000025cm 정도 움츠러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사람은 곧바로 건물 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자비’로 샤워를 하게 된다. 전압은 1m당 180v. 글쎄, 0.000025cm만큼이나 감이 안 온다.

    포름알데히드로 입 안을 깨끗이?

    그 다음부터 일어나는 일들은 더욱 충격적이다. 인간의 피부조각, 각질가루를 먹고 사는 집먼지진드기의 존재다.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한다 해도 거의 100%의 가정에 집먼지진드기가 있으며 보통 더블침대에는 200만마리쯤 서식한다. 이들을 퇴치할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냥 편안히 동거하는 편이 낫겠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향하는 곳이 화장실. 급한 용무를 해결하고 이를 닦는다. 이때 반드시 쓰는 치약의 성분은 30~45%가 그냥 수돗물이다. 나머지는 분필가루 성분인 석회. 이것이 치아의 법랑질을 갉아 누런 치석을 벗겨내면서 사실은 멀쩡한 이도 다치게 할 수 있다. 또 잠시나마 이가 하얗게 보이도록 해주는 이산화티타늄도 있다. 흰색 페인트 속에 들어있는 물질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그리고 치약을 말랑말랑하고 질척한 상태로 만들어주는 글리세린글리콜과 콘드루스 크리푸스, 파라핀유가 첨가된다. 이쯤하면 치약은 세탁기에 쓰이는 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세제맛을 없애기 위해 박하향이 첨가된다. 이제 끝? 아니다. 방부제인 포름알데히드가 치약에 침투하는 세균을 말끔히 제거한다. 포름알데히드라면 ‘새집증후군’의 주범인 발암물질 아닌가. 아무리 소량이라 해도 그런 독성물질을 하루 세 차례 입에 넣는 것이 괜찮을까. 저자는 “여러 연구에 따르면 그냥 물만 묻혀 꼼꼼하게 칫솔질을 해도 치약을 쓰는 것만큼의 효과가 난다”고 슬쩍 일러준다.

    이번엔 변기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앞으로는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시라.’ 변기의 물이 뱅글뱅글 돌다가 내려갈 때 윗부분에 잠시 거품과 포말이 막처럼 생겨나는데 이때 50억~100억개의 미세한 물방울이 마치 안개처럼 공중에 분사된다. 막 인간의 소화기를 빠져나온 배설물 속의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물방울에 둘러싸여 쉽게 집 안으로 퍼져 바닥과 서랍장, 세면대, 칫솔, 화장실 벽에 들러붙는다. 책을 읽다가 볼일을 본 다음 변기뿐만 아니라 바닥과 벽까지 비누질을 해서 박박 문질러 닦았다. 과민반응일까.

    데이비드 보더니스는 인간이 24시간을 보내는 집을 무대로 일상 속에 숨겨진 과학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과학의 눈으로 밝혀낸 진실은 유쾌하지 않은 내용이 대부분이다. 순간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쓴 ‘불편한 진실’(좋은생각)이란 책이 떠올랐다. 지구 온난화 문제를 다룬 이 책의 번역자가 ‘시크릿 하우스’도 번역했다. 우연일까. 누군가는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해줘야만 한다.

    차라리 눈감고 싶어라

    자, 다시 ‘시크릿 하우스’로 돌아가자. 우리 입을 즐겁게 해주는 먹을거리의 진실은 충격적이다. 아침식사가 시작된다. 토스트 위에 발라먹는 마가린의 제조과정을 알고 나면 속이 메스꺼워진다. 마가린의 주원료는 콩과 생선에서 짜낸 지방, 신선함과는 거리가 먼 2등급 우유다. 이때 기름과 물을 골고루 섞기 위해 비누와 성분이 흡사한 유화제를 넣는다. 쉰 우유와 동물성 지방으로 이루어진 회색 덩어리에 비누와 전분 섞은 것에 콜타르가 원료인 초강력 색소와 향료, 그리고 비타민이 동원된다.

    외출 전 거울 앞에서 꼼꼼히 화장하는 여성들은 다음 대목에 주의하시라. 1924년 뉴욕시 보건국이 립스틱 판매를 금지했는데 사용자인 여성의 건강을 염려해서라기보다 립스틱을 바른 여성들에게 키스하는 남성들이 중독될까봐 우려해서였다고 한다. 원래 립스틱은 말려 빻은 곤충 시체로 색을 내고 밀랍을 넣어 딱딱하게 한 뒤 올리브유로 윤기를 낸 기름덩어리여서 바른 뒤 몇 시간이 지나면 입술에서 악취가 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20세기 과학이 만든 립스틱의 성분은 무엇일까. 부드럽게 펼쳐 발라지도록 하는 쇼트닝과 비누 성분, 입술을 붉게 물들이는 산(酸)과 착색을 돕는 피마자유, 단단한 스틱 형태로 만드는 데 필요한 석유왁스, 향수와 색소, 그리고 무지개처럼 반짝거리는 효과를 위해 암모니아에 적신 생선비늘이 첨가된다. 이것 참, 여배우들의 섹시한 입술을 볼 때마다 생선비늘이 떠오르면 곤란하지 않은가.

    오후 4시20분, 간식거리로 등장하는 감자칩의 부피 중 80%가 공기라는 것은 애교로 넘길 수 있다. 감자칩의 맛은 성분 자체보다 바삭바삭 우드득 씹히는 느낌에 있다. 이 느낌을 살리려면 감자의 녹말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흐느적거리는 것을 막아줄 지방이 필요하다. 칩 무게의 40~60%가 응고 지방이다. 그래도 ‘감자칩’일까.

    먹을거리에 관한 한 가장 경악할 내용은 아이스크림과 케이크의 진실일 것이다. 공기가 든 지방혼합물을 차갑게 얼린 것은 싸구려 마가린에 불과하지만, 소나 돼지의 내장 등을 끓여 만든 접착제를 혼합하면 이 촉촉한 물질은 혀와 입천장 사이에 닿자마자 물처럼 흘러내리는 관능적인 음식이 된다. 이 대목에서는 세계적인 아이스크림 기업 배스킨라빈스의 후계자에서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존 로빈스가 떠오른다.

    “나는 아이스크림 속에서 태어났다. 내 아버지 어브 라빈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아이스크림 회사인 배스킨라빈스를 창립해 오랫동안 경영해왔다. 우리집은 아이스크림콘 모양의 수장을 가지고 있었고, 아이스크림의 이름을 따서 고양이 이름을 지어주곤 했다.”(‘음식혁명’, 시공사 펴냄)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던 삼촌이 50대 초반에 심장마비로 죽자 라빈스는 모든 부(富)를 포기하고 환경운동가가 되어 아이스크림과 같이 건강을 해치는 먹을거리를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2002년 ‘음식혁명’을 읽은 이들은 한동안 유제품과 육류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개중에는 채식주의자가 된 이들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혀는 달콤함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아이스크림과 함께 디저트의 여왕인 케이크 앞에서 대부분 무기력하다.

    보더니스는 케이크를 물에 띄운 돼지비계라고 혹평했다. 진짜 음식이라기보다 평범한 물을 저가의 지방과 잘 섞은 뒤 원재료비의 수백%에 달하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으로 위장시킨 물질이라는 것이다.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케이크의 마술에는 GMS(글리세롤 모노스테아레이트)라는 화학물질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 마지막으로 싸구려 재료의 불쾌감은 강력한 초콜릿 향으로 감추면 된다.

    있는 그대로 까발리다

    일상을 과학으로 까발리다보니 환경론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된 것은 사실이나 ‘시크릿 하우스’는 어떤 주장을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단 저자가 ‘E=MC2’를 쓴 이야기꾼이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비누의 성분을 설명할 때 합성소다를 개발해 19세기 유럽 중화학산업의 기틀을 마련하고도 프랑스 혁명 때문에 자살로 생을 마친 불운한 과학자 니콜라스 르블랑 이야기를 슬쩍 집어넣는 식으로 이론과 수식을 두려워하는 보통사람들에게 과학을 신나는 이야깃거리로 만든다. 그래서 지구 온난화라는 엄청난 주제를 들고 나온 고어의 ‘불편한 진실’보다, 평범한 하루를 통해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는 보더니스의 ‘시크릿 하우스’가 더 쉽게 손에 잡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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