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원재훈 시인의 작가 열전

‘그림자’ 씻고 열정에서 포용으로…전경린

“이 세상을 내 뱃속으로 지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그림자’ 씻고 열정에서 포용으로…전경린

2/9
‘그림자’ 씻고 열정에서 포용으로…전경린
음악실에는 바흐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소 짓는 표정이 떠오른다. 그 뒤에 그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그녀의 열정적인 문장들은 그 그림자의 문장이기도 했다. 불타는 검은 그림자의 음영에 사람들은 빠져들었고, 공감하면서 자신의 생을 되짚었다. 그녀가 이번에 새 책을 냈다. 그 책을 편집한 ‘열림원’ 편집장은 평소 차분한 음성과는 달리 밝고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경린 선생의 작품세계가 많이 변했어요. 아마 선생이 할 말이 많을 거예요.”

그녀의 새 장편소설 ‘엄마의 집’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의 집’이라…엄마와 집은 동의어가 아니던가? 그녀에게는 이제 여대생이 된 딸이 있다. 여기까지 원고를 쓰고 있는데 전경린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자하고 인터뷰를 할 때와는 달라서 말이지요.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 걱정이 돼요.”

나는 하하 웃었다. 이런 일이 간혹 아니, 자주 있었다. ‘신동아’에 쓰는 ‘작가 열전’은 내가 아는 사람 중심으로 편하게 쓴 글이다. 그래서인지 친구, 후배, 혹은 선배 작가들이 인터뷰를 한 다음날 전화를 해서 걱정스러워하기도 했다. 만취한 상태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는데 활자화하기 난처한 내용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는 적지 않았고, 적었더라도 쓰지 말 것이라고 느낌표를 찍어놓는 버릇이 있다. 그런 말씀을 드려도 어떤 어른은 직접 일산 작업실까지 찾아오셔서 원고를 보신 후에야 수고했다며 마음을 놓으셨다. 작가의 비밀은 이미 작품에 다 드러나 있다. 그걸 일부러 쓸 필요는 없다.



나는 쓰지 말아야 할 것과 써야 할 것의 경계선을 안다. 전경린 역시 너무 오랜만에 만나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내 노트에 ‘이건 쓰지 말자’라고 표시해두었다고 안심시켰다. 그러자 인터뷰 자리에서 하지 못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동안 딸아이와 같이 보았던 헤이리 마을의 무지개가 내 작업실의 벽면에 벽화처럼 그려졌다.

“출판사에 ‘엄마의 집’ 원고를 넘기고 딸과 같이 40일간 인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영혼의 씻김

그녀는 40일간의 인도 여행 중 한 달 정도를 리시케시에서 보냈다. 요가와 명상의 도시로 유명한 리시케시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비틀스가 초월명상의 창시자인 마하리시 메헤시 요기를 따라 이 도시에서 명상과 요가를 배운 후 현대 서구인들에게도 성지가 되었다. 비틀스의 영적인 스승이던 마하리시가 세상을 떠난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강가(갠지스 강)의 상류에 위치한 리시케시에서 그녀는 3시간은 요가를 하고, 1시간은 명상을 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이 모든 일정은 딸과 ‘딱 붙어서’ 지낸 시간들이었다. 딸과 함께 요가철학에 대한 공부를 하고 요가로 몸을 단련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같이 지내는 동안 딸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딸은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든 해바라기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을 향상시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니 20년을 키우면서도 느끼지 못한 엄마로서의 자긍심이 찾아왔다. 내면의 충만감으로 가득한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러한 마음으로 보아서일까. 그곳에서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고 했다.

“사원에서는 하루 종일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순례자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죠. 사원을 참배한 순례자들이 강가에서 세례를 하듯이 목욕하는 풍경 알죠? 저는 차마 그 순례자들과 함께 강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물결이 발끝에 찰랑거리는 강가에 서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만 보았어요. 그때였어요.”

2/9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연재

원재훈 시인의 작가 열전

더보기
목록 닫기

‘그림자’ 씻고 열정에서 포용으로…전경린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