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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연산군, 그 허상과 실상

진정한 의미의 ‘연산군을 위한 변명’

  • 신동준 21세기정치연구소 소장 xindj@hanmail.net

연산군, 그 허상과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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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의 패륜행보에 대한 기술이 ‘고려사’에 나오는 충혜왕 및 우왕 등과 꼭 닮아 있고, 심지어 연산군보다 한 살 많은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정적(政敵)들의 악의적인 기술과 흡사한 점 등을 밝혀낸 것은 전적으로 그의 공이다. 필자가 경기도 일대에 널리 분포했던 금표(禁標)와 관련해 갑자사화에 연루된 권신들의 소유지였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과 관련해 변씨가 구체적인 사료를 들어 이를 뒷받침한 것은 탁월한 학술적 성과에 해당한다. 독일에서 연마한 탄탄한 ‘사상사학’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독살’보다 ‘병사’ 가능성에 무게

그의 연산군에 대한 분석은 기본적으로 연산군의 치세를 크게 전기와 후기로 양분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무오사화가 일어나는 재위 8년까지의 전기와 갑자사화 이후 폐위되는 12년까지의 후기가 그것이다. 그는 연산군의 전기 행보를 두고 국방에 힘을 기울이고, 권세가들의 군왕에 대한 능멸을 차단하며 힘없는 백성을 위해 애쓰고, 예술을 사랑하는 명군의 행보로 파악했다. 후기에 들어와 문득 폭군으로 오해될 만한 면모를 보이다가 끝내 폐위된 것과 관련해서는 왕권과 신권의 첨예한 갈등에서 그 원인을 찾으면서 양전(量田·논밭 측량)과 노비추쇄(奴婢推刷·도망한 노비를 붙잡아 원래 주인에게 돌려보내던 일) 시도 등을 논거로 들었다. ‘연산군일기’의 기록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잔치를 너무 적게 열며 검소한 모습을 보인 데서 군신 간의 갈등이 증폭되었다고 분석한 것은 탁견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연산군의 후기 행보와 관련한 ‘연산군일기’의 악의적인 기록에 대해 이같이 개탄하고 있다.

“연산군은 도덕군자였음에도 ‘연산군일기’는 재위 9년 이후의 기록에서 그를 색광(色狂)으로 묘사해놓았다. 그가 알면 관 속에서도 돌아누울 일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몇 가지 사소한 점에서 필자와 관점을 달리하고 있다. 연산군이 말년에 궁의 담장을 높이 쌓고 관원들을 자주 부르지 않은 것을 두고 저자는 은둔의 행보로 파악했으나 필자는 이를 왕권강화 차원의 행보로 해석했다. 필자가 처음으로 제기한 연산군의 ‘독살 가능성’에 대해 저자는 월산대군이 35세, 성종이 38세에 죽은 점을 근거로 열악한 유배생활로 인한 ‘병사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었다.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인의 평균 수명이 남자의 경우 불과 40세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이런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진실규명 차원에서 연산군의 유골에 대한 DNA 분석을 제의한 것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런데 저자는 연산군이 말년에 병사 5만명을 훈련시킨 것을 두고 5만의 군사는 오히려 너무 적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으나 이는 지나친 감이 있다. 저자는 각주에서 자신이 독일에서 펴낸 ‘1950년대 한반도에서 일어난 미국의 예비전’을 논거로 들었으나 청일전쟁 당시 인구 4000만의 일본이 총력을 기울여 동원한 군사가 10만명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연산군의 詩 위작 가능성

필자는 ‘연산군일기’에 수록된 130여 수의 자작시 중 일부 시에 대해 변작(變作) 가능성을 제기한 데 반해 변씨는 아예 위작(僞作)의 가능성을 들고 나왔다. 연산군이 재위 11년 4월3일에 지은 시를 두고 “신동준도 연산군이 스스로 잔인함을 인정한 것으로 번역했다”고 지적했으나 이는 잘못이다. 필자도 ‘잔박(殘薄)’을 ‘관후(寬厚)’로 바꾸어야만 앞뒤 구절이 모순이 없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반정세력은 연산군을 왜곡하기 위해 군왕이 지은 시마저 멋대로 조작하는 무모함을 서슴지 않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저자가, 연산군의 시에 대한 필자의 ‘변작 가능성’ 제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위작 가능성’까지 제기한 것은 사료선택에서 필자보다 훨씬 앞서 나간 결과로 볼 수 있다. 동일한 논지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연산군을 ‘명군’으로 평가하는 데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 데 반해 저자가 연산군을 과감히 ‘당대의 명군’으로 평가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연산군에 대한 총체적 평가에서 필자가 결과에 보다 무게를 둔 데 반해 저자는 동기를 더 중시한 데 따른 차이로 짐작된다. 저자는 연산군을 ‘당대의 명군’으로 평가하는 이유를 이같이 밝히고 있다.

“성리학자들은 자신들의 말에 순종하는 용렬한 군주를 성군으로 칭송했으니 연산군이 폭군의 이름을 얻은 것은 오히려 대왕다웠음을 알리는 것이다.”

조선조를 쇠망으로 이끈 성리학의 통폐를 통찰한 탁견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연산군을 ‘대왕’에 준하는 인물로 호평한 것은 이나바가 ‘택민주의(澤民主義)’를 언급하며 광해군을 칭송한 것에 비유할 만하다. 저서의 이번 역저는 진정한 의미의 ‘연산군을 위한 변명’에 해당한다. 필자는 저자의 출현으로 독수고성(獨守孤城)의 신세를 면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만부부당지용(萬夫不當之勇·수많은 장부로도 능히 당할 수 없는 용기)의 원군을 얻은 셈이다.

신동아 200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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