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오 낙선’ 충격 딛고 최고 전성기
- 미국 간 사이 측근들 권부 요직 꿰차
- 김해수, 정무비서관 발탁에 ‘보은 인사’ 논란
- 공성진 “이재오계 세력화 구상 중”
- 이재오는 차기 대권 킹메이커?
- 권력형 비리 의혹에 잇따라 거명 곤혹
- 진수희, “이재오계 따로 없다”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5월26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눈물을 닦으며 인천공항 출국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여권 혼란기에 大약진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18대 총선 낙선의 아픔을 씻기 위해 5월부터 미국에 머물고 있다. ‘보스’가 갑자기 정치무대에서 사라지자 “이재오계는 해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잠시 주춤하던 이재오 사단은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동시에 인적 교체를 단행하는 여권의 혼란기를 놓치지 않고 속속 요직을 꿰찼다.
7·3 전당대회에서 이재오계 핵심인 공성진 의원이 최고위원 자리에 오른 것이 서막이었다. 7월16일 당직 인선에서는 안경률 의원이 사무총장직을 차지했다. 안 총장은 2006년 이 전 최고위원이 원내대표로 있을 당시 원내 수석부대표로서 호흡을 맞춘 인연이 있으며 이재오계의 핵심 인물로 꼽혀왔다. 이 전 최고위원과 같은 민중당 출신인 차명진 의원은 대변인이 됐다. 차 대변인은 18대 총선 후 열린 당선자 워크숍에서 “이 자리에 없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안 총장, 차 대변인의 발탁은 당내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만큼 이재오계의 당권 장악력이 크다는 반증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최병국 윤리위원장, 정의화 인재영입위원장, 임해규 대외협력위원장, 현경병 정보위원장도 이 전 최고위원과 가깝다. 7·16 당직 인선에 앞서 국회부의장에 선출된 이윤성 의원, 5월에 당 중앙위의장에 선출된 이군현 의원 역시 이재오계의 일원으로 분류된다.
‘김해수 발탁’에 냉랭한 여론
당에서만 이재오계가 약진한 것이 아니다. 7월24일 청와대 비서관급 인사에서 ‘이재오맨’으로 꼽히는 두 사람이 발탁된 것은 자리의 중량감에 비추어 의외라는 평가가 나왔다. 4·9 총선에서 인천 계양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김해수 당협위원장은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됐다. 그의 발탁에 대해 여권 일각의 여론은 냉랭하다. 그렇게 강조해온 ‘소통 정치’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정무비서관 인선에서까지 ‘보은(報恩) 인사’ 논란이 나오게 했다는 것이다.
김 비서관도 차명진 대변인처럼 이 전 최고위원의 민중당 인맥이다. 또한 17대 국회 당시 이 전 최고위원이 국회의원 35명과 당협위원장 11명으로 조직했던 ‘국가발전전략연구회’(이하 발전연)에서 사무총장으로 활약했다.
역시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권성동 변호사도 같은 날 법무비서관으로 발령받았다. 그는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BBK 소방수의 일원으로도 활약했다. 최근 정부 산하기관이나 공기업의 요직에 들어간 대선 공신 중에도 이 전 최고위원 인맥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MB▼ 이재오는 수평관계?
한나라당 당직개편 전날인 7월15일 당내 의원모임 ‘함께 내일로’가 발족했다. 정가 일각에선 이 모임에 대해 ‘이재오계의 전위부대’ 성격이라고 본다. 이재오계의 조직적 세력화가 본격적으로 개시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미국으로 떠나기 하루전인 5월25일 그를 따르는 국회의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송별회에서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함께 내일로’ 모임을 주도한 열성 참여자들은 매주 화요일 아침에 모여 정치·경제·사회·국제관계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공부한다고 한다. 이 전 최고위원과 특히 가까운 인물이 많다고 한다.
당내 일각에선 “MB계의 실제 주인은 이명박 대통령인가, 이재오 전 최고위원인가”라는 얘기도 나온다. 다음은 MB계 한 핵심 인사의 말이다.
“지난해 대선 본선 당시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박근혜 전 대표 간의 갈등으로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위기 상황을 맞았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2선 후퇴가 시급한 시점이었지만 이 후보와 이상득 전 부의장은 이를 단행하지 못했다. 대선을 1, 2년 앞둔 시점에서 이명박은 국민적 지지를 갖고 있었고 이재오는 당내 조직을 얻고 있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치자 박근혜를 누르고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명박▼ 이재오는 이처럼 처음부터 상하관계, 주종관계라기보다는 서로 필요에 의해 세력 대 세력으로 결합한 수평관계의 성격이 있었다.”
그러나 ‘함께 내일로’의 한 멤버는 “비례대표 의원 5~6명도 열심히 나오는데, 그들은 이재오계가 아니다”며 “화요 조찬 공부모임 참석자들을 이재오 친위부대로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말했다.
이재오, ‘국제전화 정치’ 개시?
이처럼 권부 내에서 이재오계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이 전 최고위원도 국내 정치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각종 현안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이 전 최고위원과 통화한 의원들은 그가 최근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고 전한다. 이 전 최고위원이 2006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섰을 때 핵심 참모 역할을 했던 박창달 전 의원은 “국내 소식을 소상히 알고 있더라”며 “특히 정권창출 1등 공신으로서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온 데 대해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고 소개했다.
핵심 측근인 진수희 의원도 7월4일쯤 이 전 최고위원과 통화한 내용과 관련, “(이 전 최고위원이) 국내 상황에 대해 굉장히 걱정하고 있더라. 미국에서 걱정한들 아무 소용이 없으니 우리가 어떻게 잘 좀 해보라고 당부하더라”고 했다.
진 의원이 이 전 최고위원과 통화를 한 시점은 이른바 ‘언니 게이트’에 이 전 최고위원의 이름이 오르내릴 시점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에게 공천 로비 자금으로 30억원을 전달한 김종원 서울버스운송조합 이사장과 이 전 최고위원이 친분이 있다는 의혹 제기였다.
진 의원에 따르면, 이 전 최고위원은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미국까지 와 있는 사람을 음해하느냐. 계속 허위 의혹을 제기할 경우 강력 대응 하겠다”고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김 이사장을 대선 선대본부의 교통수석부위원장으로 추천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서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지난 3월12일 이 전 최고위원 홈페이지에 올려진 “김종원 이사장은 비례대표로 부적절하다”는 투서와 관련해서도 “전혀 아는 바 없다”고 일축했다.
이 전 최고위원과 그의 측근들이 정치적 보폭을 넓혀 나가자 그의 조기 귀국설이 대두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려움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친이’ 진영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는 그가 어떤 형태로든 정치에 복귀해 정국을 이끌어가려 할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그의 조기 귀국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는 현재 워싱턴의 존스 홉킨스 대학 국제관계대학원에서 한국학과 한국어 강의를 하고 있다. 당초엔 객원연구원이었지만 강의를 맡게 돼 객원교수로 신분도 바뀌었다. 일단 강좌를 개설한 만큼 비상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학기는 채워야 하므로 이른 시일 내 귀국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전 최고위원은 반드시 정치 일선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정국상황에 따라선 그의 ‘급거 귀국’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여권 주변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그에게 정무특보 직함을 주고 정국운영에 관한 조언을 받을 것’이라는 등의 관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재오사단의 양과 질
총선에서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에게 패배한 그에게 향후 정국을 주도해나갈 힘이 남아 있을까. 최근 각개약진에 성공한 ‘이재오 사람’들이 앞으로도 단일 정치세력을 형성해 나아갈 것인가. 나아가 ‘함께 내일로’가 이재오계의 첨병 역할을 할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선 현재 여권 내에 포진한 이재오사단 병력(兵力)의 양과 질을 살펴봐야 한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이 전 최고위원이 한창 위세를 떨칠 때인 총선 직전, 수도권의 거의 모든 선거구는 ‘친(親) 이재오’를 표방하며 공천 받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고 말했다. 서울·인천·경기의 선거구를 모두 합치면 111곳이다. 여기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도 부산·경남을 중심으로 일정한 세(勢)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가운데 공천을 받은 인물들이 총선 전 ‘55인 선상 반란’을 일으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지금도 한나라당의 수도권, 부산·경남선거구 조직에서 이 전 최고위원은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이상득계와 이재오계는 대립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그러나 대선이 끝난 뒤 이상득 전 부의장이 MB 직계를 실질적으로 다스리고,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소장파가 분가(分家)함으로써 범MB 진영에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위상은 축소되는 듯했다. 그는 총선 전 정두언 의원 측의 협조를 얻어 이상득 전 부의장에게 저항하는 것으로 마지막 기세를 떨쳤지만 결국 진압당하고 말았다.
이후 본인조차 금배지를 다는 데 실패하고 미국으로 떠나게 되자 그의 재기 여부는 극히 불투명해졌다. 여권의 권력구도는 이상득▼ 정두언계가 양분한 상태에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산실이었던 안국포럼 출신 초선 의원들이 캐스팅보트를 쥔 상황으로 고착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일로 기회가 찾아왔다. 이상득▼ 정두언계의 갈등이 폭발하면서 권력 내부의 역학구도가 다시 한 번 요동친 것이다. 6월 초 정두언 의원이 이상득 전 부의장, 박영준 전 청와대 비서관 등 4명을 ‘권력 사유화’의 장본인으로 몰아붙인 일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이상득▼ 정두언계 양측이 모두 상처를 입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이재오계에 기사회생의 길이 마련됐다. 공성진 의원은 이 전 최고위원, 나아가 범MB계의 지원을 등에 업고 최고위원 경선에 나가 승리했다. 이후 이상득계나 정두언계가 인사에서 특별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상황이 찾아오면서 이재오계에게 길이 열렸다. 특히 7·3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 전 최고위원이 미국에서 자파는 물론, 범MB계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공성진 후보 지원을 지시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공성진 후보와 최고위원 끝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던 친박근혜 계열의 김성조 후보는 이 전 최고위원의 전대 개입설을 제기해 논란의 불씨를 지피기도 했다.
“미국에서 작성한 각본대로…”
김성조 후보는 “이 전 최고위원이 국제전화를 통해 누굴 찍으라고 매일 전화 지시를 내린다는 얘기가 있다”며 “사실이라면 미국에서 작성한 각본대로 전당대회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김성조 후보의 이런 발언에 이재오계는 서운함을 느꼈다고 한다. 최고위원 경선에서 패한 김성조 의원은 나중에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았는데, 이 자리를 놓고 진수희 의원과 경합을 벌인 것도 이재오계의 견제 때문이었다는 소문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실제로 친MB의 대표로 나온 박희태 후보와 자파인 공성진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리모컨 정치를 했을까. 공성진 최고위원에게 물어봤다.
▼ 이재오계에서 최고위원·사무총장·대변인이 잇달아 배출됐습니다. 이재오계의 부활이란 시각이 있는데요.
“사실 이재오계의 부활도, MB계의 부활도 아니죠. 김성조 의원이 여의도연구소장이 됐다고 해서 친박 부활로 보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보다는 당이 화합으로 가는 과정으로 봐야 합니다. 친박 의원들이 복당을 하고, 대변인을 트로이카 체제로 둔 것만 봐도 그런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결국 범(汎) 친박과 범 친이가 함께 모여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지요.”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재오계인 차명진 의원이 대변인에 진출하는 데 대해 친박 진영이 반발하자 막판에 친박 윤상현 의원을 추가해 기존의 조윤선 대변인과 함께 ‘3인 대변인 체제’를 구축했다.
▼ 그렇지만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전화로 지원한 것이 사실이라면 계파 간 화합하고는 거리가 먼 이야기 아닌가요?
“이 전 최고위원이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날 송별회 때 120명이나 모였는데 그 많은 분이 미국에 계속 연락하고 국내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얘기도 나왔겠지요. 그러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거나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현역 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이 (전화 한 통화 했다고) 그렇게 표를 주지도 않아요. 김성조 의원이 조금 오버한 것 아닌가 싶어요. 김 의원이 내게 전화해 사과하더군요. 이 전 최고위원에게도 전화한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김 의원은 “공성진 의원과 통화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선기간에 있었던 발언들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뿐”이라고 했다. 또 “이 전 최고위원에게는 전당대회도 끝났으니 인사도 할 겸 전화를 걸었는데 연결이 되지 않아 통화는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공성진 “연말 지나 계기 생길 것”
김 의원은 ‘지금도 이 전 최고위원이 경선에 개입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느냐’고 묻자 “당시 국제전화로 범MB 진영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는 언론보도 내용을 인용한 것”이라며 “실체는 모른다”고 물러섰다. 전당대회 당시 지도부 경선에 깊숙이 간여했던 당 관계자는 “막바지에 고전하던 공성진 후보가 먼저 이 전 최고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지원을 해달라’고 SOS를 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또 “공성진 후보는 자신이 출마했는데도 범MB계의 지원이 미미하자 중도사퇴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며 “이 때문에 이 전 최고위원이 마지못해 몇 군데 전화를 건 것으로 안다”고 했다. 다시 공성진 최고위원에게 물었다.
▼ 향후 이재오계의 위상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요.
“이 전 최고위원은 현 정권을 만든 주역이지요. 따라서 정권의 성패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요. 정권이 잘되면 잘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지금은 여권에 정치력을 갖춘 사람이 많지 않아요. 이 전 최고위원을 필요로 하는 분위기가 올 수 있다는 얘기죠. 그런 것을 계기로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고 봐요.”
▼ 그런 상황이 조성된다면 이재오계가 독자 세력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군요.
“지도자들의 역할이 다 있는 것이죠. 박근혜·정몽준·강재섭도 그렇고 이재오도 마찬가지죠. 그런 역할을 하려면 세력이 없으면 안 되지요.”
▼ 때가 되면 공 최고위원이 이재오계의 결집을 위해서 총대를 멜 수도 있는 건가요?
“지금이야 다들 자기 자리 찾기에 바쁘죠. 훗날을 가정하면 그런 구상도 할 수 있겠지요. 올해 국정감사가 끝나고 연말이 지나면 어떤 계기가 생길 수도 있지 않겠어요?”
공성진 최고위원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전 최고위원과 이재오계의 실체를 이렇게 분명하게 인정하고 독자세력화를 공언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재오계로 꼽힌 인사 중 상당수가 하나같이 부담스러워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8월11일 심재철 의원이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 나타났다. 자신이 공동대표로 있는 ‘함께 내일로’가 17~18일 워크숍을 열며, 이 모임이 이재오 계열이라는 이 날짜 한 일간지의 보도를 부인하기 위해서였다. 심 의원은 “우리 모임은 이재오계 모임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한 당내 의견 공론화 모임”이라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또 “이명박 정권의 성공은 국가와 민족의 장래가 걸린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래야 한나라당도 살고 대한민국도 살기 때문에 의원들이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 모임의 출범이나 구성을 볼 때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는 전혀 상관없다”며 “굳이 계보라고 이름을 붙이겠다면 차라리 이명박계라고 붙여달라”고 했다.
1년 넘게 이 전 최고위원의 핵심 측근으로 언론에 보도되어온 진수희 의원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 ‘함께 내일로’가 발족한 것을 두고 이재오계와 연결시키는 시각이 많은데요.
“이재오계 모임은 아니죠. 회원이 40명이나 되는데, 이 전 최고위원과 같이 활동을 하지 않은 분들도 있어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을 위한 모임’ 정도가 될 거예요.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우리 의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이 정부가 어떻게 가면 좋을지를 토론하고 논의하자는 취지로 만든 것이죠.”
▼ 아무래도 이 전 최고위원과 친한 분이 많은데요.
“공교롭게 저와 공성진 최고위원 등 이 전 최고위원과 가까웠던 사람들을 포함해 8, 9명이 준비위 비슷한 것을 만들어 모임을 띄운 것이죠. 그런 걸 두고 자꾸 이재오계라고 하는데, 우리는 지금 미국에 계신 분을 어떻게 하면 돌아오시게 할까, 그런 얘기는 전혀 안 해요.”
“러시아는 안 됩니다”
▼ 지금 이재오계의 실체는 있는 건가요.
“이명박계와 이재오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죠. 굳이 표현한다면 한나라당 내 ‘주류’로 하면 될 것 같아요. 본인들이 열심히 이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성공시켜야 한다는, 그런 책임감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들을 주류로 표현할 수 있는 거죠. 여기에 무슨 이명박 직계가 있고, 이재오계가 있겠어요?
▼ 이 전 최고위원이 귀국한 뒤 특정 정치세력의 리더로 자리 잡게 되나요.
“정치는 생물이란 표현이 있을 정도로 급변하죠. 지금 우리가 한 달 뒤를 예측한다고 해서 예측대로 가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돌발 상황의 연속으로 정치가 가고 있지 않습니까? 어쨌거나 낙선하고 나가 계신 건데, 그게 몇 달이 될지, 1년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결국 본인의 뜻보다는 예를 들어 한나라당에서 꼭 필요하다는, 그런 상황이 와야 오시는 것 아닌가요? 아무도 오지 말라는데 본인 뜻으로만 오시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고…. 저희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진 의원은 “‘함께 내일로’를 ‘이재오 모임’으로 낙인찍으면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돕는다는 취지로 온 사람들이 난처해진다”며 “언론에서 자꾸 색깔 프레임을 깔고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총선 직후 러시아로 가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당선인 특사로 다녀온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권택기 의원이 “러시아로 가시면 ‘좌파 이미지’가 고착화된다”며 말렸다. 대신 권 의원은 자신이 수학한 바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을 권하면서 함께 출국해 교수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밀리지 말자’ 절박감 때문
그런 권 의원 시각도 진 의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함께 내일로’의 목표는 이재오계 부활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재오계가 전성기를 맞이하는 모습을 보이는 시점에서 친이재오 계열 인사들이 이처럼 신중한 이유는 무엇일까. 특정계파 독주에 대해 여론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을 의식해 몸을 낮춘다는 견해도 있다. 또한 친MB 진영에 여러 갈래의 세력이 있는 만큼 노골적으로 편 가르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친박 복당으로 모처럼 당이 화합의 토대를 마련한 시점이니만큼 계파 행동으로 비치는 모습은 가급적 자제해야 할 상황이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그럼에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모임을 구태여 발족시킨 것은 현시점에서 다른 계파, 특히 대거 복당한 친박에 밀리지 말자는 절박감의 발로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차기 여권의 대선 구도에서 적어도 킹 메이커로서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른 해석도 있다. 과거 이재오계로 분류됐던 사람들 중 일부가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 공성진 최고위원이 김옥희씨의 공천청탁 의혹 사건이나 유한열 한나라당 상임고문의 이권청탁 의혹 사건에 거명되는 것도 이재오계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 보좌관은 “이 전 최고위원이 차기 대권주자라도 되면 베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의리 하나로 끝까지 붙어 있을 의원은 없다. 그가 미국에 있는 동안 이재오계가 약진했지만 그가 돌아와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면 상황이 어떻게 될까. 폭넓은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치인은 거대 여권의 구심점이 되는 데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정치적 운명은 그를 낙선에까지 이르게 한 ‘반(反)이재오’ 여론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