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 2회에 걸쳐 주식시장의 기술적 분석이론의 허구를 통박한 시골의사는 이번 호에서 ‘경기순환론’에 메스를 가했다. 그는 쥐글라, 키친, 쿠즈네츠, 콘트라티예프, 슘페터에 이르기까지 150여 년간 등장한 경기순환론을 모두 비판한 후, 이런 경기순환론을 추종한 투자는 금물이라고 경고한다. 또한 주식시장의 매매행위가 정치판의 ‘밴드 왜건’ 현상과 다를 바 없다며 시장에 모여드는 군중 심리를 적절히 파악할 것을 주문한다.
그런 측면에서 경제학자 대부분이 주식순환 이론을 쓰레기 취급을 하면서 경기순환 이론은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현실은 놀라울 수밖에 없다. 혹 학계는 자기 주변에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나 언어를 해자(성벽 주변에 판 연못)처럼 둘러치고 스스로의 권위만 획득하려는 게 아닐까. 배제에 의해 상대적 우월성이 결정되는 것처럼, 자신의 ‘이론’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보편적 주장이 가능한 것들을 일부러 배척하는 경향이 학계에 잠재하는 건 또 아닐까.
어쨌든 학계나 주식투자가나 부인할 수 없는 명제는 ‘경기는 순환한다’는 사실이다. 증권시장의 경험칙상 주가도 경기순환과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며 시차를 두고 순환한다. 그래서 현재 주가가 주가순환의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알려면 경기순환 이론에 대한 지식부터 쌓아야 한다. 경기순환 이론을 알면 주가순환의 단계가 보인다.
과연 경기순환 이론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그 이론은 얼마나 유용할까. 우선 경기가 일정한 사이클을 가지고 순환하게 만드는 요인부터 살펴보자. 경기순환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계절적 순환 요인이다. 봄에는 신학기가 시작되고,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있으며, 여름에는 농작물과 여름상품이 출하된다. 어느해 여름이 지나치게 더우면 에어컨 판매가 유독 많이 늘고, 전력회사의 금고는 돈으로 넘쳐난다.
하지만 겨울이 유난히 추우면 경기는 위축되고, 대신 술 판매회사들의 실적이 좋아질 것이다. 또 어느해 태풍이 불고 가뭄이 들어 작황이 나빠지면 2007년 연말처럼 곡물가가 급등할 것이고, 이는 자동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야기하는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때에 따라선 태양의 흑점이나 별자리의 변화로 경기를 예측하려는 황당한 시도도 전혀 근거 없는 망발은 아니다. 이들이 날씨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인정되는 한 그렇다.
기업의 본능적 담합과 게임이론
정부와 독점금지법위반 소송을 벌인 빌 게이츠 MS사 회장.
그뿐 아니다. 시장에서 상품 가격을 결정하는 큰 축인 생산량의 과잉 또는 과소, 즉 재고가 얼마만큼 쌓일지조차 예측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경쟁사회다. 게임이론에선 균형전략을 구사하는 기업들의 여러 선택과 ‘목초지의 비극’을 초래하는 욕망, 그것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힘이 제각각 그 경쟁에 참여하고 상호간에 작용한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사회가 절대적으로 추구하는 한 가지 지향점을 말하라면 완전경쟁, 다시 말해 ‘유효경쟁’ 상태다. 독점과 과점은 바로 이런 자본주의의 절대적 지향점을 가로막는 독버섯이다.
만약 특정 기업이 독점을 하면 자본주의의 모순은 심화된다. 독점에 의해 수요와 공급의 자연스러운 균형은 깨지고, 그런 상황에서 자본 획득은 그 자체가 시장의 구조적 모순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점 혹은 과점은 자본주의의 적(敵)이다. 미국에서는 경쟁 기업이 없는 경우에도 한 기업이 단일 분야를 독점하면 기업을 분할하거나 기술이전을 명령하는 법체계까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유효경쟁은 반드시 생산물의 과다 또는 과소 생산을 유발한다. 게임에 나서는 기업들의 전략은 오직 하나, 재고량을 줄이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담합하지 못하는 한 재고량은 항상 들쑥날쑥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기업은 본능적으로 서로 담합하려 한다. 그래야 생산량 과잉 현상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OPEC(석유수출국기구)가 담합하지 않는다면 유가는 지금의 절반이면 충분하고, 2008년 우리의 기름값은 L당 최소 몇백원은 쌀 것이다. 하지만 앞서 게임이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업의 행태는 전략적이다. 게임이론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를 들어 A국과 B국, 두 강대국이 있다고 가정할 때, 이 둘 사이에 공해상의 섬을 두고 분쟁이 일어나서 A국이 먼저 섬에 대해 공격을 감행하면 A는 섬의 가치인 1만큼의 이득을 얻고, B는 1만큼의 손실을 입는다. 하지만 B가 이에 대해 보복공격을 할 경우에는 전면전으로 확대돼 두 나라가 같이 10의 손실을 입게 된다. 합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둘 중 하나가 선제공격을 했을 때 공격을 당한 쪽이 반격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어느 쪽이건 상대가 반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공격을 감행한다. 둘은 서로 상대가 반격할 것인지 아닐지를 탐색하면서 만약 상대가 공격할 경우 반드시 반격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아야만 한다. 그래서 결국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균형이다. 기업의 경우에도 우리나라 정유회사처럼 네 개의 과점기업이 있다고 가정하면, 이들 중 누군가가 먼저 가격을 내리고 나머지 기업들이 그와 동일한 수준으로 가격을 내린다면 전원이 지는 게임이 된다. 더구나 반격으로 먼저 값을 내린 회사보다 더 큰 폭으로 가격을 내린다면, 또 다른 회사도 반격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경우는 점유율 확대를 위해 선제적으로 가격을 내리는 것은 어리석은 게임이 된다. 이것이 독과점의 폐해다.
4~5년 주기의 쥐글라 사이클
이런 과점 구조가 구축되면 시장의 구조는 왜곡된다. 정유사들은 가격을 담합하고 점유율 경쟁을 하지 않으므로 주유소에 공급할 양 이상의 과잉 생산을 할 필요가 없고, 시장의 수급에 따라 생산량을 탄력적으로 줄이고 늘리면 된다. 잉여가 발생할 소지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 유효경쟁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업들 간에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없고 서로 믿을 수 없는 다수 경쟁이 되면, 누가 어떤 전략을 취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때론 많이 생산하고, 때론 적게 생산한다. 그래서 호황기에는 생산량을 늘리고 설비를 증설한다. 결국에는 증설한 설비로 인해 재고가 쌓이고 다 같이 어려움을 겪을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이것이 ‘목초지의 비극’이다. 그래서 경기는 늘 재고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이런 설비와 재고의 증감 관계로 경기순환을 판단하려는 시도가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주목한 사람이 19세기 중반의 프랑스인 경제학자 쥐글라(Juglar)다. 그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경기파동을 관찰했고 그 순환엔 대개 6~10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경기를 순환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변수 중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설비투자’라고 보았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금리, 인플레, 차입금 등을 분석해 순환모델을 만들었다. 그 때문에 ‘쥐글라 파동’은 ‘설비투자 사이클(equipment investment cycle)’이라고 불렸다. 실제 그가 이 순환이론을 발표한 1860년대의 설비투자는 규칙적으로 6~10년의 사이클을 나타냈다.
재고량에 주목한 ‘키친 사이클’
기업은 부담이 되는 줄 알면서도 경쟁심 때문에 재고를 가지려 애를 쓴다.
1920년대에는 ‘키친순환(Kitchin cycle)’ 이론이 풍미했다. 이 이론은 영국 통계학자 조지프 키친이 영국과 미국의 생산자 물가와 금리, 수표, 채권 발행규모 등을 조사해 발표한 순환 사이클이다. 설비보다는 재고량의 증감 관점에서 만들어진 이론으로, 설비투자에 관한 지표만으로 분석된 사이클인 쥐글라 파동보다 사이클이 훨씬 짧았다. 키친 사이클은 주기가 40개월 정도. 키친이 재고에 주목한 이유는 설비투자는 경기가 불황이고 재고가 쌓이면 중단되고 반대로 호황기엔 증가하지만, 재고는 경기에 관계없이 신산업의 탄생이나 새로운 기술의 발견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설비투자와 재고를 일치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재고량에 포커스를 맞추어 바라봤더니 경기순환, 즉 경기의 호황과 침체는 곧 재고량의 증감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더라는 것. 이후 케인스와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이론경제학자로 꼽히는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 1883~1950) 같은 학자들이 이에 주목했고, 오늘날 재고량을 기업 실적과 연관짓는 풍토가 생긴 것도 키친순환 이론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살펴보면 기업들은 그것이 부담이 되는 줄 알면서도 늘 일정량의 재고를 가지려 애를 쓴다. 왜 그럴까? 앞서 ‘목초지의 비극’에서 설명한 기업의 경쟁심 때문이다. 판매 기회가 왔을 때 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심리가 근본 이유이고, 일정 규모의 생산이 비용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된다. 이를테면 한 곳의 공장에서 1만대 단위로 생산하는 것과 필요에 따라 수 천대씩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비용차이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1000대를 만들든 1만대를 만들든 어차피 종업원 급여는 동일하게 지급되기 때문이다. 재고를 가져서 입는 손실보다 재고가 없어 팔지 못하는 기회 손실이 더 크다는 뜻이다.
기업 경영 실무에서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하다. 재고관리를 어떻게 하는지는 기업의 통찰과 안목, 그리고 경영 노하우와도 관련이 깊다. 기업 매수 협상 때 재고관리 형태, 적정 재고 유지·관리 등이 기업 분석의 주요 자료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 재무제표에서조차 재고는 자산으로 처리된다. 하지만 그 성격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는다. 의류회사가 가진 철 지난 옷 재고는 부실자산으로 인정돼 기업매수에 있어 차감 사유가 되지만, 정유회사가 비축한 원유 재고나, 철강회사의 재고는 기업 가치를 높이는 자산으로 계산된다.
장기 순환이론의 등장
건설투자의 사이클을 중심으로 분석한 ‘쿠즈네츠 순환(Kuznets cycle)’은 경기변동의 장기 순환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이는 경제성장률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건설투자가 증가하면 유동성이 팽창하며 고용이 증가해 호황으로 연결되는 반면 건설투자가 줄어들면 유동성감소, 고용감소, 경기침체로 이어진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 월가에서는 주택 판매율, 건축 착공률, 총 시공액 등을 주시하며 그에 따라 주가 전망을 달리하기도 한다. 이 사이클은 선진국의 경우 약 15년, 우리나라와 같은 신흥국은 약 10년 주기를 보인다. 건설 부문, 특히 주택이나 항만과 같은 토목분야는 한번 호황세가 일어나면 과잉으로 치닫고, 그것이 다시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적정하게 균형을 찾기까지 거의 10~15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도 이제는 부동산 사이클이 10년 주기에서 15년 주기로 바뀌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 점에서 우리나라는 더 이상 가파른 상승 국면을 구경하기 어려운 선진국형 경제구조로 전환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적 투자 전문가 마크 파버가 자신의 베스트셀러 ‘내일의 금맥’에서 거의 절반을 할애해 설명함으로써 유명해진 ‘콘트라티예프 사이클(Kondratiev cycle)’은 실제로는 큰 효용성이 없는 이론으로 보는 게 옳다. 이 사이클은 러시아의 콘트라티예프(Kondratiev. N.D)가 “자본주의사회는 40~60년을 주기로 하는 장기 사이클이 존재한다”고 말함으로써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장기 사이클의 침체기에 중요한 발명이나 혁신적인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다음 사이클이 발생하고, 이로써 자본주의는 새로운 산업과 기술의 혁명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1차파동(사이클)은 1780년부터 1817년에 이르는 기간의 상승으로 시작됐는데 1851년까지 하강기가 이어졌다. 2차파동은 1844년부터 1875년까지 상승기, 1875년부터 1896년까지 침체기였으며, 3차파동은 1890년부터 1930년까지가 상승기, 1930년부터 1954년까지가 침체기였다. 이처럼 그의 이론은 너무 광범위하고 작위적인 냄새가 풀풀 났지만 슘페터란 위대한 경제학자의 손에 들어가면서 이론으로 정착됐다.
‘경기순환론’의 한계
그는 1차파동의 장기상승을 기술혁신에 따른 혁명적 신산업의 등장이 이끌었다고 분석한다. 산업혁명 이후 제조업 본위의 대기업 등장, 또 이들의 활발한 기업활동이 일으킨 인플레이션과 호황이 장기상승의 동력이 됐다는 것. 2차파동 장기상승의 에너지원은 철강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철도산업, 증기선의 등장 등이 이끈 대규모 물류이동과 교역이며, 3차파동의 경우는 헨리 포드의 대량생산 시스템에 의한 자동차, 전력, 화학공업의 급성장이 견인했다. 반면 침체기인 대공황기,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시기는 이들 산업에 경쟁자가 등장하며 유발된 과잉설비와 그로 인한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의 결과물이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2008년 경제전망과 경제지표. 과연 지금은 투자적기인가?
굳이 대입하자면 약간의 시차가 있더라도 침체기인 1990년대 말 각국의 외환위기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금융위기를 침체기의 ‘마지막 어둠’으로 봐야 할 것이다.하지만, 1980년대 이후는 눈부신 정보통신의 발달로 세계 경제가 먹고살았으니 과연 이 시기를 침체기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물론 이른 시간 안에 핵융합이나 수소에너지가 석유자원을 완벽하게 대체할 정도로 개발된다면 콘트라티예프의 사이클 흐름을 긍정할 수 있다. 석유자원을 넘어설 만한 획기적 에너지 개발은 그 자체로 대사건이고 경기흐름을 바꿀 수 있다. 또 그런 극적 상승기가 곧 도래한다면 1980~2000년 기간을 상대적 침체기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래서 콘트라티예프 사이클에 매료된 사람들은 마치 메시아를 기다리는 듯한 심정으로 새로운 기술이 발현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시작될 경기의 대상승을 갈망하는 것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담합이 없다면 유가는 지금의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경기순환에 관한 이론과 역사, 통계를 망라해 ‘경기순환론’을 저술한 슘페터조차 이 허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이 세 가지 순환을 합해 장기파동은 단기적인 재고 순환(키친 사이클)-설비투자 순환(쥐글라 사이클)-콘트라티예프 사이클로 구성된다고 했다. 그런데 슘페터의 이른바 ‘3순환 이론’은 사실, 엘리어트 주가 파동(대순환-중간순환-소순환으로 구분)과 그 형태나 주장이 매우 닮아 있다.
3순환 이론과 엘리어트 파동은 이론적 근거에 있어 전자는 여러 가지 변수를 짜 맞춰 학문적으로 그럴싸하게 보이게 한 것이고, 후자는 단순히 주식시장의 가격 변화만을 분석해 도출된 사이클이라는 점이 다를 뿐, 사실상 논리구조는 같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 슘페터의 3순환 이론을 근거로 지금을 경기확장기라고 말할 사람도 없을뿐더러(설령 있다고 해도 그것은 동전 던지기에 불과하다) 또 엘리어트의 파동을 그려서 향후 주가를 예측할 수 있는 이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경기순환론’의 혼돈 속에서 미첼(Mitchell)의 ‘사이클 속의 사이클(cycle of cycle)’은 그나마 한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그는 장기파동이 여러 개의 소순환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결과이며, 사실상 경기순환은 산업국면(industrial phase), 투기국면(speculation cycle)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여기에서 그가 분석한 국면적 특질은 훨씬 현실에 맞닿아 있다. 그는 “산업국면, 즉 설비투자와 그에 따른 재고의 관계로 상승하는 경기는 상승과 침체가 확연하게 나타나지만, 투기에 의해 상승한 사이클은 그 조정 폭이 작아 두어 번의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면서 거품을 불려나가다 결국은 급격한 침체로 간다”고 주창했다.
경기와 증시의 밴드 왜건 효과
이처럼 우리가 입에 달고 다니는 경기상승과 침체, 확장과 수축, 호황과 불황 같은 이야기들은 순환론의 근거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분석결과가 각각 달라진다. 경기란 날씨로부터 농사 작황, 천재지변, 신기술의 발명, 각 기업의 문제, 전쟁과 같은 거시적 변수와 기업의 설비투자, 재고, 잉여자산의 증감과 같은 미시적인 변수가 각각 씨줄과 날줄로 얽히고설켜 돌아간다. 따라서 이들 중 어느 요소를 들어 단순히 경기의 팽창과 수축을 예측하거나 침체의 바닥을 예측하고 나아가 그 시점을 알려고 하는 행위는 무의미하다.
여기까지 살펴본 결과만을 본다면 경기순환을 말하는 경제학자도 사변과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고 증권시장에서 차트를 보고 주가를 예측하려는 사람들(신동아 7, 8월호 참조)도 돈키호테나 다름없으니, 경제에 있어 예측이란 사실상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침체가 나타나면 침체가 더 이어질 것으로, 호황이 나타나면 그것이 더 길어질 것으로, 그냥 그렇게 관성적인 판단만 할 뿐 실은 경기 예측에 대해선 잘 길든 마약탐지견 수준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증시 예측도 다르지 않다. 지난 호에 살펴보았듯 1900년 수학자 루이스 바슐리에가 ‘증권시장은 절대적으로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랜덤 워크 이론)’고 주장했을 때 이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후 70년이 지나 폴 새뮤얼슨이 같은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자 그때서야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은 증시의 투자자가 비이성적이고, 정보가 비밀리에 흘러 다니기 때문에 그 패턴과 주가를 예측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완전히 그 반대의 이유, 즉 투자자들이 너무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정보가 실시간에 반영되기 때문에 예측에 실패한다.
예를 들어보자. 증시에 상장된 한 기업의 실적이 증가할 것이라는 정보가 흘러나오면 누군가는 그 주식을 매수한다. 곧이어 사람들은 그 의견에 합리적으로 동의해 동반매수에 나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정보가 현실이 되면 주식 가격은 떨어진다. 그 다음 주가는 또 다른 어떤 정보가 흘러나와야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때 어떤 뉴스가 흘러나올지는 완전히 우연일 뿐이고, 주가는 예측할 수 없는 셈이 된다.
결국 누군가가 특정 정보를 판단하고 그것을 의사결정에 반영하면 또 다른 사람들이 뒤따르고 그것을 믿기 때문에 추세가 생기는 셈인데, 이는 정치에서 말하는 ‘밴드 왜건’ 효과와 완전히 같은 것이다. 정치적인 판단을 두고 사람들은 여론조사를 한다. 조사결과가 나오면 다수의견에 서고 싶은 사람이 늘어나면서 그 의견은 어느새 합리적 의견으로 포장된다. 마치 와글와글 군중이 모여 있는 학교 운동회장 뒤에 왜건 한 대가 와 음악을 틀면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들고, 몰려든 사람들을 보고 또 다른 사람들이 몰려드는 밴드 왜건 현상이 주식시장에서도 벌어지는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경기순환에 대한 의견 역시 누군가가 왜건을 몰고 와 틀어대는 음악, 이를테면 반도체 경기 사이클과 같은 자료가 나오면, 이를 보고 몰려든 사람이 점차 늘어나면서 그것이 추세가 되고, 그 추세는 어느 순간 현실이 되며 결국 다른 왜건이 나타나 음악을 틀어댈 때까지 지속된다. 사람들은 다음에 온 왜건에 군중이 모이면 그때 다른 자리로 옮긴다. 그래서 우리는 경기순환론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멀리서 군중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그들이 몰려다니는 곳이 현실이 되는지, 아직 더 몰려들 사람이 있는지만 관찰하면 되는 것이다.
믿음에 따라 움직일 뿐
독일 경제학자 페터 보핑거는 독일의 중앙은행과 다른 예측가들의 환율 예측 자료를 오랫동안 수집해 비교해보았더니, 전문가들은 모두 환율이 오르면 더 오를 것에 베팅하고, 내리면 더 내리는 쪽으로 전망하면서 그 이유를 찾는 데만 급급했다는 우울한 자료를 발표했다. 주가보다 훨씬 예측이 쉬워 보이는(거시경제 요소를 따르므로) 환율마저 이런 지경에, 주가예측 분석 자료를 믿거나 경기순환 자료를 믿고 투자한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경제학은 이런 현상을 가리켜 ‘어리석은 군중행동’이라고 부른다.
행동재무학(behaviorial finance)은 바로 이런 현상을 다룬다. 스위스 경제학자인 토르스텐 핸스는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다섯 명으로 짜인 투자팀을 여럿 구성하고 이들이 각각 컴퓨터 앞에 앉아 가상의 주식을 두고 거래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팀에는 새로운 정보를 상징하는 주사위를 던지는 요원이 하나씩 끼어 있었다. 던져진 주사위 결과에 따라 그 주식에 호재와 악재를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세계적 투기자본가 조지 소로스. 그는 사람들의 투자심리를 역이용했다.
하지만 이제 독자는 이런 이야기에 놀라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존재임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수학자 바슐리에가 가정한 것처럼 완전히 합리적이지도 그렇다고 비이성적이지도 않다. 정보가 자신에게 전달됐을 때, 최소한 그것을 자신보다 늦게 아는 누군가가 존재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래서 그들은 은밀한 정보일수록 좀 더 과신하고(모르는 사람의 수가 더 많다고 믿고), 그것이 주가를 조금이라도 올리면 그 결과 다른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것을 보고 자신은 더 길게 보유하거나 추가매수를 한다. 결국 모든 투자자(일부 부도덕한 작전 세력이나 내부자 거래를 제외하고)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피드백을 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가격 상승을 믿기 때문에 매수하고, 하락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매도하는 것이지 다른 요인들은 결국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행동재무학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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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인간의 약점을 간파하고 ‘추락하는 천사’를 잡는 영민한 사람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인물군이 바로 세계적 투기자본가 조지 소로스 같은 부류다. 그는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과도한 탈출을 감행하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시장을 향해 달려 나갈 때 과감하게 반대로 행동함으로써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이런 기회 역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역발상이라는 전략이 소개됨으로써, 또 그것에 가담하는 사람이 몰리면서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역발상 투자자들의 기회를 역이용하는 또 다른 틈새전략이 등장한 것도 한 이유다. 소수의 전략인 틈새시장이 다수로 메워지고 새로운 틈새는 또다시 다른 것으로 메워지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틈새의 가치를 잃은 것이다. 틈새 투자의 대명사인 소로스도 영국에서는 큰 이익을 냈지만 결국 러시아 환투기에서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고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