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호

대우건설 인수 지원 자금 회계처리 논란

4조1000억원 ‘신용위험’ 숨기기 성공?

  • 윤영호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yyoungho@donga.com

    입력2008-09-04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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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호아시아나그룹 유동성 위기설은 ‘대우건설 풋백옵션’ 해소에 필요한 자금이 무려 4조1000억원이나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롯됐다. 그럼에도 일반 투자자가 금호아시아나 계열사 재무제표를 아무리 열심히 뒤져도 이런 ‘신용 위험’을 발견할 수 없다. 도대체 어떤 마술을 부린 것일까.
    대우건설 인수 지원 자금 회계처리 논란

    금호아시아나 그룹 전략경영본부 오남수 사장이 7월31일 실적 발표회에서 대우건설 풋백옵션 해소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활엽수는 참나무다. 우리나라 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그런데 막상 식물도감에는 참나무가 나오지 않는다. 참나무과 참나무속의 갈참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을 통틀어 참나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신용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이 차입금이다. 차입금은 신용분석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도 재무제표에는 차입금이라는 항목이 따로 없다. 단기차입금, 유동성 장기차입금, 장기차입금, 사채 등만 확인할 수 있다.

    참나무는 참으로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수종이다. 산불로 새까맣게 그을린 산야에서 제일 먼저 새로운 가지를 밀어올리는 것이 참나무다. 차입금의 생명력도 그에 못지않다. 절대 다수의 금융혁신이 차입금을 둘러싸고 일어난다.”(윤영환 굿모닝신한증권 크레딧 애널리스트)

    다소 길게 인용했지만 차입금의 진화에 대해 이만큼 정곡을 꿰뚫은 설명도 달리 없을 것이다. 윤 애널리스트는 “금융혁신으로 차입금의 구성과 성격이 날로 복잡해지고 있어 간혹 이름만으로는 차입금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심지어 재무제표를 떠나 주석사항으로 이사 간 차입금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차입금의 구조 설계가 워낙 복잡해서 어지간해서는 실체 파악이 쉽지 않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기업 인수·합병(M&A) 때 재무적 투자자(FI)들로부터 동원한 자금이 이슈가 될 수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유동성 위기설의 진원지 가운데 하나인 ‘대우건설 풋백옵션(put back option·매도선택권)’ 문제도 그런 이슈 가운데 하나다.



    대우건설 주가 마지노선 3만4000원

    대우건설 풋백옵션이란 대우건설 인수 과정에서 자금을 지원한 금융기관에 부여한 매도선택권을 말한다. 금호아시아나는 2006년 말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총 인수대금 6조4056억원 가운데 3조5299억원을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18개 재무적 투자자(FI)로부터 지원받았다. 나머지 2조8757억원은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등 금호아시아나 계열 5개사가 부담했다.

    문제는 최소수익률 보장 차원에서 FI들에게 부여한 풋백옵션에 의해 금호아시아나는 내년 12월15일 이후 대우건설 주가가 행사가격인 약 3만4000원(배당금·감자대금 제외시)을 밑돌 경우 이 가격으로 되사줘야 한다는 점. 이때 금호아시아나 측이 부담해야 할 자금이 4조1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시장의 유동성 위기설도 여기에서 출발했다. 8월8일 현재 대우건설 종가는 1만2850원으로 행사가격을 크게 밑돌고 있다. 물론 풋백옵션 행사 기간이 1년 이상 남아 있어 섣불리 예측하긴 힘들다. 그러나 대우건설 주가가 행사가격을 밑돌아 FI들이 풋백옵션을 행사할 경우 금호아시아나가 이 자금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가 시장에 퍼지면서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졌던 것.

    금호아시아나 측은 이에 대해 FI들이 풋백옵션을 행사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그룹 전체 자산 감축 등의 방법을 통해 총 4조5740억원의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박삼구 회장도 8월1일 한 특강에서 “외환위기 당시 부채비율이 400∼500%에 달할 정도로 어려울 때에도 공적자금 등 외부지원 한 푼 받지 않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살아남았다”며 “올해 그룹 순이익이 1조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되는 등 자금 흐름이 원활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시장 일각에선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아 금호아시아나 측 기대대로 위기설이 잠잠해질지는 미지수라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다소 과장됐다는 반응이 우세한 편이다. 금호아시아나 측과 거래가 많은 한 은행 임원도 “금호아시아나 측에 마이너스 대출 한도가 설정돼 있지만 금호아시아나는 아직 마이너스 대출을 한 푼도 쓰지 않을 정도로 유동성에 큰 문제가 없다”고 귀띔했다.

    회계 전문가들은 다른 차원의 이슈에 주목한다. 바로 FI들의 대우건설 인수 지원자금에 대한 회계처리 문제다. FI들의 경우 옵션을 부여받은 금액을 대출금으로 인식해야 하는지, 아니면 투자 유가증권으로 처리해야 하는지 논란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물론 FI들은 금융감독원의 해석에 따라 이를 투자 유가증권으로 계상했다.

    장기차입금 vs 투자 유가증권

    이는 금호아시아나 입장에선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FI들이 이를 대출금으로 처리해야 한다면 금호아시아나 계열사들은 여기에 대응해 이 금액을 차입금으로 계상해야 한다. 이 경우 금호아시아나 계열사들은 부채비율 상승을 감수해야 한다. 한 중견 공인회계사는 “부채비율이 높아지면 경쟁 입찰 등에서 점수가 깎일 수도 있는 등 사업상 불리한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외부감사 법인인 안진회계법인 관계자는 “FI들의 M&A 지원 자금을 둘러싸고 회계법인마다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논란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금감원이 교통정리를 해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회계법인 전성기 전무는 “금감원 유권해석이 나오기 전에 물밑 조율작업을 거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회계 전문가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은 2005년 두산그룹의 M&A 때와는 다른 해석이 나왔기 때문. 두산그룹은 당시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면서 군인공제회로부터 2000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군인공제회는 이 금액에 대해 2년 후 연복리 11%를 적용해 계산된 행사가격으로 두산에 되팔 수 있는 풋옵션을 제공받았다. 그러나 두산 계열사들은 이를 장기차입금으로 계상했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두산과 금호아시아나의 계약 조건이 상이해 회계 처리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금감원 윤석남 회계제도실장은 “금호아시아나의 경우 대우건설 주가가 풋백옵션 행사가격 이상으로 올라가면 FI들이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반면 두산의 FI인 군인공제회는 이런 기회가 없다”고 설명했다.

    과도한 풋백옵션 규제?

    두산과 군인공제회는 계약을 통해 두산 측의 콜옵션도 보장해주었다. 이에 따라 두산은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이후 이 회사 주가가 오르자 군인공제회에 한 주당 12%의 수익을 보장하는 가격인 2만4300원에 콜옵션을 행사했다. 당시 주가는 2만9900원 수준이어서 군인공제회 측에서는 콜옵션을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는 후문.

    그럼에도 대우건설 인수자금 회계 처리를 둘러싼 논란이 완전히 가라앉는 것은 아니다. 한 중견 공인회계사는 “FI들의 지원 금액은 물론 순수한 의미의 대출금은 아니라고 해도 원금은 말할 것도 없고 일정 수준 이상의 이자까지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완전한 투자 유가증권으로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금융공학의 발전으로 차입금 성격을 갖는 ‘미운 오리’가 ‘백조’로 변신했다는 것.

    더욱이 금호아시아나 유동성 위기설은 FI들의 풋백옵션 행사 가능성 때문에 불거졌다. 그럴수록 대우건설 풋백옵션 보장 금액의 차입금 성격이 더 부각된다. 그럼에도 금호아시아나 계열사 재무제표에는 이런 ‘신용 위험’이 반영돼 있지 않다. 다만 감사보고서 주석 사항에 우발채무로 설명돼 있을 뿐이다. 경우에 따라 차입금 성격을 갖는 엄청난 금액이 재무제표에서 주석으로 숨어버렸다고 할 만하다.

    더 큰 문제는 금호아시아나 측의 풋백옵션 계약으로 금호아시아나 계열사들의 기존 채권자들이 어느 정도 지위 하락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선 이들의 채권이 후순위로 밀려나는 문제까지 생길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엔 금호아시아나 계열사 기존 채권자들과 FI들의 법적 분쟁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금융위원회가 금호아시아나 유동성 문제를 계기로 대기업들이 풋백옵션을 과도하게 이용해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을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창용 금융위 부위원장은 7월31일 기자간담회에서 “풋백옵션을 아예 못 쓰게 하면 ‘창의적 인수·합병’을 저해할 수 있어 무조건 규제할 수는 없지만 과도한 풋백옵션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소를 잃었다고 해서 외양간 고치는 일은 그만둘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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