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호

‘금융권 실세’ 황영기 KB국민지주 회장 내정자

우리은행장 시절 ‘독단 경영’으로 8000억원대 투자 손실

  • 윤영호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yyoungho@donga.com

    입력2008-09-04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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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은행장 시절 선진 투자은행 ‘봉’ 노릇”
    • “외형 경쟁 주도, 우리은행 수익성 갉아먹었다”
    • 전광우 금융위원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과 악연 내막
    • 강정원 국민은행장과 한때 라이벌 관계
    • ‘삼성 2인자’ 후계 경쟁에서 밀려 우리금융 회장 쟁취?
    • ‘국제신사’인가, ‘정치적 줄타기’ 귀재인가
    ‘금융권 실세’ 황영기 KB국민지주 회장 내정자

    2005년 9월29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 삼일교 준공식에 참석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왼쪽 사진 왼쪽)과 황영기 우리은행장. 삼일교는 우리은행이 건설해 서울시에 기증했다.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건물에는 황영기 회장 내정자를 반대하는 국민은행 노조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오른쪽).

    지난해 3월30일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5층 강당.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주총 진행을 마감한 후 쓸쓸히 본점 건물을 떠났다. 당시 언론은 “그가 3년 임기 동안 탁월한 실적을 올렸음에도 연임하지 못한 것은 대주주인 정부에 밉보인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황 회장에게 다분히 호의적인 내용이었다.

    비슷한 시기, 기업은행 강권석 행장은 국책은행장으로선 이례적으로 연임에 성공했다(강 행장은 지난해 11월 말 지병으로 타계했다). 반면 황 전 회장은 연임을 위해 우리금융지주 회장 공모에 응했으나 주변의 예상을 깨고 최종 후보 3인에도 들지 못했다. 최종 면접을 볼 기회조차 박탈당했던 셈이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올 6월 초, 한 외국계 은행 대표는 헤드헌터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9월 새로 출범하는 KB국민지주 회장 후보를 추천해달라”는 내용이었기 때문.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당연히 KB국민지주 회장도 겸할 줄 알았던 그로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강 행장을 이길 만한 사람으로 추천해달라”는 요청은 그를 더욱 놀라게 했다.

    그는 고민 끝에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을 추천했다. 그의 추천대로 황 전 회장은 7월 초 국민은행 지주회사 회장 후보 추천위원회와 이사회를 거쳐 KB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됐다. 우리금융에서 밀려난 지 1년3개월여 만에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물론 ‘내정자’란 꼬리표를 떼기 위해선 몇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주사 전환을 반대하는 주주들이 15%를 넘으면 지주사 추진이 물 건너갈 수도 있다. 지주사 전환 반대 주주들은 8월26일부터 9월4일까지 주식매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지주사로 전환하더라도 은행의 건전성과 자본력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15%를 상한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주식매수 청구권 행사 가격은 6만3293원. 투자자 입장에선 지주사 전환 이후 주가가 장기적으로 이 수준을 넘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매수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다. 황영기 지주사 회장 내정자를 비롯해 강정원 행장 등이 7월 이후 해외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투자설명회(IR)를 개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은행 노조의 ‘낙하산 인사’ 주장도 그에겐 부담이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국민은행 지주회사 회장 후보 추천위 위원들은 “엄정한 심사를 거쳐 회장으로 선임했기 때문에 ‘낙하산 인사’ 논란은 난센스”라고 일축한다. 국민은행 내부에서도 “사외이사가 중심이 된 후보추천위가 강정원 행장을 회장으로 선임하지 않은 것만 봐도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짐작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전광우 금융위원장과 황영기 회장 내정자의 관계를 잘 아는 사람들도 ‘낙하산 인사’ 논란은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이다. 금융 공기업도 아닌 KB국민지주 회장 인사는 정부가 관여할 수 없기도 하지만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황 회장 내정자는 전 위원장의 ‘지지’를 얻어내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 두 사람 사이가 칼바람이 불 정도로 냉랭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도덕성, 경영 능력 낙제”

    두 사람이 이처럼 틀어진 것은 황 회장 내정자 책임이 크다는 평가. 황 회장 내정자가 우리금융지주 1기 경영진(전 위원장은 우리금융지주 부회장 역임)을 무시하는 언행을 보였기 때문이다. 황 회장 내정자는 우리금융 회장으로 취임한 직후 1기 경영진을 향해 “도대체 해놓은 게 뭐야”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어찌됐든 국민은행 노조는 8월5일 황영기 회장 내정자를 선임한 이사회 결의 무효 확인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내는 등 반대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참여연대는 “황 회장 내정자는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에 실패하는 등 도덕성, 신뢰성, 경영능력 모두 의심이 간다”고 비판한다.

    황 회장 내정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는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게 삼성 비자금 연루 의혹. 황영기 행장 시절 우리은행은 전 삼성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의 차명 계좌를 개설해줬다. 이로 인해 황 회장 내정자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주의적 경고’를 받았다. 그는 또 삼성생명 전무이사 시절 삼성자동차 등 계열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로 1999년 12월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문책 경고를 받았다.

    그가 현 정권 초기 금융위원장과 산업은행 총재 후보로 거론됐지만 끝내 낙점을 받지 못한 것도 삼성 비자금 연루 의혹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올 2월 박해춘 당시 우리은행장과 함께 중국을 방문한 것도 다분히 이를 의식한 ‘이벤트’였다는 분석. 그는 당시 우리은행 신원 보증을 받아 삼성 특검 측에 출금 해제를 요청했고, 삼성 특검은 이를 승인해줬다.

    당시 우리은행 안팎에선 전·현직 행장의 동행 출장 자체도 이례적인 데다 황 전 행장의 도움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뒷말이 무성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삼성 특검이 출금을 해제해줄 정도면 삼성 특검이 그에게 이미 무혐의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는 점을 현 정권 핵심인사들과 일반 국민에게 인식시키는 게 목적 아니었겠느냐”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황 회장 내정자와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투자 손실. 금융업 담당 애널리스트 등 금융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 현재 부채담보부증권(CDO) 10억9000만 달러, 신용부도스와프(CDS) 5억달러 등 총 16억달러를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파생상품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CDO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CDO로, 2007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투자 규모는 4억9100만달러다. 또 다른 CDO는 보잉, 화이자 등 글로벌 기업 채권 및 미국 중소형 은행들의 후순위채, 건설채, 중소기업 대출 등을 기반으로 발행한 합성 CDO로, 5억9900만달러를 투자했다.

    CDO, 합성CDO, CDS란

    CDO = 자산유동화란 대출채권, 매출채권 등 일반적으로 유동성이 없는 자산을 유가증권, 기타 채무증서로 전환해 자본시장에서 현금화하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과정은 특정 목적에 적합한 새로운 금융구조를 조성하는 등의 구조화금융을 수반하게 되는데, 이 결과로 만들어지는 금융상품을 구조증권이라고 한다. 이러한 구조증권에는 자산담보부증권(ABS)의 일종인 채권담보부증권(CBO), 대출담보부증권(CLO) 등이 있으며, 이 두 가지를 통칭해 CDO라고 한다. CBO와 CLO는 각각 채권과 대출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하는 증권이다.

    합성CDO = 일반 CDO는 기초자산을 특별목적기구(SPV)에 매각하는 데 따르는 경비 등 유동화 비용이 많이 소요되고 신용등급이 낮은 자산의 경우엔 유동화가 어려운 단점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90년 후반부터 합성CDO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는 기초자산을 SPV에 매각하지 않고 신용파생상품을 이용해 기초자산에 내재된 신용 리스크만 이전하는 구조로 설계된다.

    CDS(신용부도스와프) = 보장 매입자가 일정한 수수료를 지급하는 대가로 기초자산의 채무 불이행과 같은 신용사건이 발생할 경우 보장매도자로부터 손실액을 지급받는 계약을 말한다. 신용파생상품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다.


    물론 16억달러의 파생상품 투자 가운데 일부는 황 회장 내정자의 후임인 박해춘 행장(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시절에 이뤄졌다. 금융권에서는 박해춘 행장 시절에 CDO 투자의 경우 3할이 이뤄졌고, CDS의 경우 7할이 투자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실세’ 황영기 KB국민지주 회장 내정자

    2005년 3월22일 두산중공업의 8000억원 차입자금 약정 체결식에 참석한 황영기 당시 우리은행장(맨 오른쪽).

    이에 대해 박해춘 전 행장은 “이미 황영기 행장 시절에 투자 결정이 이뤄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해 7월에도 파생상품 투자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는 사실과 다르다. 물론 박 전 행장에 대해서는 국제금융 전문가로 평가를 받는 전임 행장이 시작한 일이어서 이를 믿고 계속 투자했을 것이라는 동정론이 없는 게 아니다. 처음 일을 벌여놓은 황 전 행장의 책임이 그만큼 무겁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로 인해 우리은행이 입은 손실 금액. 우리은행은 이에 대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07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4547억원을 손실 처리했다. 여기에 올 1분기와 2분기에 털어낸 금액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 총 손실금액은 8200억원. 금융권에서는 앞으로 1000억원 정도의 추가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결국 현 상황에서 파생상품 투자로 인한 손실 추정액은 총 9000억원 안팎으로, 지난해 우리은행 당기순익 1조7774억원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잘 알려진 대로 우리은행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 구조조정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상태다. 형식적으론 20001년 우리금융지주가 출범하면서 우리은행은 우리금융지주의 100% 자회사가 됐다. 그러나 예금보험공사(예보)가 여전히 우리금융지주의 지분 72.97%를 갖고 있는 상태. 그런 점에서 보면 9000억원의 72.97%에 해당하는 금액인 6567억원의 혈세가 날아간 셈이다.

    예보는 올 4월18일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예금보험위원회를 열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홍대희 당시 우리은행 부행장 등 일부 임원에 대해 중징계를 요구했다. 징계 수위는 이런 무분별한 투자에 대한 재발 방지 차원에서 당초보다 높아졌다. 징계를 받은 홍대희 부행장은 이후 HMC투자증권 부사장으로 옮겼다.

    예보는 그러나 정작 황 회장 내정자는 징계 대상에서 제외했다. 예금보험위원회에선 아예 논의 대상으로 삼지 않아 빈축을 샀다. 강형문 예금보험위원은 이에 대해 “예보에서 미리 황 전 행장이 우리은행을 떠났기 때문에 징계를 요구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힌 데다 안건에도 없었기 때문에 위원회에선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선 이에 대해 ‘대리 징계’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황영기 회장 내정자를 대신해 홍대희 부행장이 징계를 받았다는 것. 금융권 관계자는 “예보의 입장은 홍대희 부행장도 사전에 우리은행을 떠났다면 징계할 수 없다는 황당한 논리”라면서 “황 회장 내정자가 금융위원장 후보로도 거론되는 등 이명박 정부의 금융권 실세로 알려졌기 때문에 금융위 산하기관인 예보가 미리 몸을 사린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행장이 1조원대 투자 모를 수 있나”

    KB국민지주 회장 후보 추천위원회 면접에서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투자 손실 문제가 거론됐다. 그러나 당시 황 회장 내정자는 “우리은행 내부 규정으로 정한 등급 이상의 평가를 해외 신용평가기관에서 받았기 때문에 담당 부행장이 알아서 투자했다”고 해명했다는 후문이다. 황 회장 내정자에겐 다행스럽게도 다수의 추천위원이 ‘이해’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는 이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황 회장 내정자의 해명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많다. “1조원 규모의 CDO 투자를 행장이 몰랐다는 것은 난센스”라는 것. 더욱이 2006년 말 자산(신탁자산 제외) 규모에서 신한은행을 제칠 때 결정적으로 기여한 게 바로 CDO 등 IB(투자은행) 자산이었다는 점도 황 전 행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우리은행 내부에선 “황 행장이 내부 반대를 물리치고 CDO 투자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우리은행 내부에선 또 황 전 행장이 올해 들어 당시 박해춘 행장에게 전화를 걸어 홍대희 부행장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금융권에선 이를 두고 “황 회장 내정자가 자신의 책임을 자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홍대희 전 부행장은 “고생한 임원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 차원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반박했다.

    또 홍대희 전 부행장이 예보의 징계 결정을 앞두고 이에 반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도 우리은행 안팎에선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홍 전 부행장은 “왜 나만 문제 삼느냐, 계속 이런 식이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주변에 얘기하고 다녔다고 한다. 황영기 전 행장도 책임이 있는데, 자신만 ‘독박’을 쓰게 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황 회장 내정자에게 호의적인 인사들이 제기하는 ‘동정론’은 세 가지 정도다. ▲ 세계적인 투자은행(IB)들이 낸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손실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고 ▲ 홍대희 당시 부행장이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의혹이 있는 데다 ▲ 금융이란 원래 수업료를 내가면서 배우는 것이라는 해명이다.

    ‘금융권 실세’ 황영기 KB국민지주 회장 내정자
    그러나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 역시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한 금융 전문가는 “세계적인 IB의 CEO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 손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현직을 떠났지만 황 회장 내정자는 반대로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부실 보고’ 의문은 박해춘 행장 시절 홍대희 부행장의 행태에서 비롯됐다. 당시 홍 부행장은 박 행장에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투자 상황에 대해 ‘종합보고’를 하면서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황영기 행장 시절에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던 것.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파생상품 투자 경험이 있는 황 전 행장이 홍 부행장에게 휘둘렸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수업료 지불론’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금융업 담당 한 애널리스트는 “금융을 배우기 위해선 수업료를 내야 한다는 얘기는 맞지만 우리은행의 경우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과거 한 번도 투자해본 경험이 없는 파생상품을, 그것도 불과 1~2년 사이에 급격히 불린 것만으로도 CEO는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

    전략적인 차원에서 은행이 CDO 같은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금융 전문가도 많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CDO는 수익률이 높긴 하지만 위험 역시 높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국민은행 사외이사인 조담 교수(전남대 경영학과)는 “강정원 행장은 CDO 투자를 요청받았지만 이런 이유로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계의 은행을 규제하고 있는 바젤Ⅰ, 바젤Ⅱ라 불리는 은행의 자기자본 규제 관점에서 봐도 우리은행의 CDO 투자는 이해하기 힘들다. 바젤Ⅰ, 바젤Ⅱ란 대출 비즈니스를 함부로 확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것. 이 규제가 시행된 후 은행은 대출을 늘리기 위해선 일정 비율만큼 자기자본을 늘릴 의무를 지게 됐다. 바꿔 말하면 은행은 한정된 자기자본을 활용해 최적의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짜서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선진 투자은행 ‘봉’ 노릇

    ‘금융권 실세’ 황영기 KB국민지주 회장 내정자

    황영기 회장 내정자와 함께 KB국민그룹을 이끌 강정원 국민은행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올 4월16일 이명박 대통령의 미 경제계 주요 인사 초청 오찬 간담회 참석 전 멤버들과 인사하고 있다. 맨 왼쪽에 박해춘 당시 우리은행장이 보인다.

    ‘규제’가 있으면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대책’도 있는 법. 더욱이 1980년대 이후 금융공학이 발달하면서 이는 땅 짚고 헤엄치기 수준에 불과했다. 주택 담보대출을 패키지로 만들어 증권화해 팔아버리는 게 그것이다. 은행 입장에선 위험을 함께 팔아버렸기 때문에 자기자본을 늘릴 필요가 없는 데다 유동성도 확보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는 셈.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은행이 CDO를 매입한 것은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다. 한 금융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

    “미국에서 주택담보 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은행들이 자신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만든 상품이 바로 CDO다. 문제는 CDO를 매입할 당시 우리은행도 주택담보 대출 등을 통해 급속히 자산을 불려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은행 스스로 자신이 가진 대출자산의 위험을 줄여야 할 마당에 선진 은행이 그런 목적으로 만든 상품을 사주고 있었다. 더구나 2006년 가을 무렵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징후가 보이자 선진 투자은행들은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CDO를 마치 ‘폭탄 돌리듯’ 다른 곳으로 팔아넘기기 시작했다. 그들로서는 우리은행이 한마디로 ‘봉’이었던 셈이다.”

    금융권에선 ‘황영기 지주 회장 - 강정원 국민은행장’ 체제의 앞날에 대한 우려도 많다. 두 사람을 잘 아는 금융권 인사들은 “두 사람은 ‘악연’도 있는 데다 스타일도 정반대”라면서 “영업 중심의 공격적인 성향의 황 회장 내정자와 리스크 관리를 중시하는 보수적인 성향의 강 행장 간에 의견 충돌이 생기면 파열음이 예상외로 커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라이벌 관계였다. 두 사람이 1980년대 중반 영국 BTC은행 한국지점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펼친 첫 번째 대결에선 강 행장이 ‘완승’을 거뒀다. BTC은행 한국지점에서 강 행장의 입지가 굳어지면서 황 회장 내정자가 BTC를 떠난 것. 황 회장 내정자는 곧바로 삼성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회장 비서실 국제금융담당 이사, 삼성전자 자금팀장, 삼성생명 전무, 삼성증권 사장 등 엘리트 금융인 코스를 거쳤다.

    두 사람은 2004년 황 회장 내정자가 우리금융지주 회장 공모에 응했을 때 관계를 회복했다는 후문이다. 황 회장 내정자 주변 인사들은 “황 회장 내정자가 당시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 추천위원으로 참여한 강정원 행장을 만나 ‘지지’를 부탁했고, 강 행장은 흔쾌히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화해’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기억했다.

    물론 황영기 회장 내정자에 대한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셋증권 이창욱 애널리스트는 “황 회장 내정자의 성향이 시장친화적인 데다 비(非)은행 쪽에 전문성을 갖고 있어 이 부문 강화가 절실한 KB국민지주 회장으로는 적임”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공격적인 스타일이어서 KB국민지주 발전에 필요한 인수·합병에도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의 공격적인 영업 방식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우리은행장 시절 금융권의 ‘외형 경쟁’에 불을 붙였다. 2006년 초, 당시 황 행장은 전국 영업본부장들에게 단검이 들어 있는 지휘봉을 선물하면서 이들을 독려했다. ‘지면 죽는다’는 검투사 정신으로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검투사 정신’으로 외형 경쟁 주도

    이런 ‘채찍질’은 상당한 효력을 발휘했다. 우리금융이 황영기 행장 시절 ‘수치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뤘기 때문. 2003년 말 연결 기준 103조원(은행계정 기준)이던 우리은행 자산은 2006년 말 166조4000억원을 달성했다. 웬만한 은행 한 곳을 인수한 것과 비슷한 성장이었다. 우리은행은 이에 따라 구 조흥은행과 합병한 신한은행을 제치고 은행권 2위 자리를 재탈환했다.

    순이익도 성장세를 보였다. 우리금융의 순이익은 연결 기준으로 2004년 1조2610억원, 2005년 1조8335억원, 2006년 2조1892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연거푸 경신했다. 외견상 자산 건전성도 안정적이었다. 이에 따라 주가도 상승했다. 우리금융 주가는 황 행장 취임 무렵인 2004년 3월30일 8850원에서 2007년 3월30일 2만2750원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내부에선 “황 행장 시절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게 더 큰 성과”라는 얘기도 나온다. 경쟁은행인 국민은행 한 간부는 “열패감에 빠져 있던 우리은행에 단신으로 들어가 집단 대출 등 공격적인 영업을 통해 조직문화를 바꿔놓은 점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내부 구성원들의 역량을 키워 자행 출신의 이종휘 현 우리은행장이 탄생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그의 공로라고 할 만하다는 것.

    그가 이처럼 자산 경쟁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것은 그의 ‘철학’과도 관련이 있다. 그의 주변 인사들은 “황영기 회장 내정자는 금융기관은 기본적으로 자산 규모에 의해 승부가 결정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가 처음으로 이런 소신을 드러낸 때는 삼성증권 사장 시절이었다는 게 삼성 관계자들의 기억이다. 삼성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2001년 6월 삼성증권 사장에 취임하면서 ‘약정고 경쟁 중지’를 선언했다. 약정고 경쟁은 과당매매를 유발해 고객의 자산에도 손실을 끼치는 등 폐해가 많았음에도 수십년간 계속된 증권업계의 관행이었다. 그는 이런 문제점을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하면서 ‘앞으로 2년 동안 삼성증권의 약정고는 보고하지 않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건희 회장도 흔쾌히 수락했다. 황 회장 내정자의 이런 행동은 약정고는 자산이 아니라는 점에서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은행의 외형 성장으로 인한 대가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 금융권 일각에선 “지나친 공격 경영으로 무리수를 연발했고, 그 후유증이 앞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있다. “우리은행 내부에선 쉬쉬하고 있으나 부실 자산이 함께 늘어나 앞으로 우리은행 수익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수익력 하락으로 ‘속 빈 강정’

    우선 자산 경쟁으로 예대비율이 높아졌다. 우리은행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황영기 행장 취임 첫해인 2004년 94.84%에 이르던 예대비율은 2005년엔 97.16%로 큰 차이가 없었으나 2006년 105.51%를 기록했다. 예대비율은 원화대출금 평균잔액을 원화예수금 및 양도성예금증서의 평균잔액으로 나눈 값. 이 비율이 100% 이상이라는 것은 대출 재원을 예금 외에 은행채 발행 등으로 충당했다는 얘기다. 당연히 조달 비용이 올라가 수익성은 떨어진다.

    이런 사실은 우리은행 순이자마진율 추이에서도 잘 나타난다. 순이자마진율이란 자산을 운용해 낸 수익에서 조달 비용을 차감해 운용자산 총액으로 나눈 수치로, 금융기관의 수익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우리은행 순이자마진율은 2004년 2.99를 기록한 이후 2005년 2.97, 2006년 2.61 등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는 2.43을 기록했다.

    또 다른 수익력 지표인 총자산순이익률(ROA·신탁계정 총자산 포함)도 2004년 1.89에서 계속 하락, 2006년엔 1.14를 기록했다. 반면 국민은행은 같은 기간 0.30에서 1.29로 높아졌다. 한 금융 전문가의 설명이다.

    “은행에서 대출 자산을 늘리는 것은 쉽다. 고객 입장에선 은행 간 서비스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 상황에 은행이 금리 디스카운트를 해주면 대출은 급속도로 늘어나게 돼 있다. 결국 조달금리는 높아지는데 대출금리는 낮아지면서 수익력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은행 가치 중에서 그래도 내세울 만한 게 순이자마진율이었는데, 이마저 멍들게 됐다.”

    이런 부작용이 예상되는데도 황 행장이 외형 경쟁을 밀어붙인 것에 대해 그의 연임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금융권에선 2006년 9월 말 신한은행과의 자산 격차가 1조6000억원 정도로 좁혀지자 황 행장이 “고지가 보인다”면서 신한은행을 따라잡으라는 특명을 내린 것은 유명한 얘기. 결국 2006년 한 해에 무려 39조2121억원의 외형을 늘린 끝에 신한은행을 3위로 밀어낼 수 있었다. 일각에선 ‘모래성’이라고 혹평했지만.

    황영기 회장 내정자에 대한 취재 과정에서 느낀 것은 ‘인간 황영기’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는 점이었다. 그의 주변 인사들은 그가 ‘증권·보험·은행 등 금융업의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 금융시장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는 국제금융 전문가’ ‘박학다식하고 세련된 매너를 갖고 있는 국제신사’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그를 한 번만 만나면 금방 호감을 갖게 된다는 것.

    ‘국제신사’ vs ‘줄타기 귀재’

    주변 인사들이 치켜세우는 것 중 하나는 그의 영어 실력. 그는 삼성그룹에서 이건희 회장의 통역을 도맡다시피 했다. 삼성 관계자는 “그럴 때는 1주일 전부터 사무실에 틀어박혀 준비를 했다”고 설명했다. 가령 이건희 회장이 만나는 사람이 화학회사 사장이라면 화학에 대해 기초부터 최근 트렌드까지 완벽하게 공부하는 등 철저한 대비를 했다는 것.

    이런 철저함은 업무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그는 HP 전자계산기를 갖고 다니면서 옵션 가격을 직접 계산하는 꼼꼼함을 보였다고 한다. 그의 부하 직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전직 삼성 간부는 “옵션 가격 같은 것도 소수점 이하 두 자릿수까지 정확히 계산해 보고하도록 요구할 정도로 철저했다”고 전했다.

    그가 삼성그룹 국제금융 담당 임원으로 근무할 때는 국내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투자은행 관계자들을 확실히 장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심지어 해외 투자은행 한국 대표가 직접 자신의 사무실까지 들어오면 부하 직원들을 심하게 질책했을 정도였다는 것. 이들의 ‘군기’를 확실히 잡아야 충분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전략적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앞의 삼성 전직 간부의 증언.

    “일본 노무라증권이 1980년대 후반부터 10여년 동안 삼성과 거래를 못한 것도 그의 결정 때문이었다. 노무라증권이 주간사가 돼 삼성 계열사 채권을 발행하기로 했는데, 시장 상황이 갑자기 안 좋아지자 노무라가 발을 뺐던 게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그는 ‘신의가 없는 회사와는 거래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1990년대 후반에야 겨우 화해가 이뤄졌다.”

    승부욕을 빼놓고는 그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주변에선 그를 ‘지는 것을 절대 못 참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가 2004년 삼성을 떠나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이런 성격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가정교사’ 소리를 듣던 그가 갑자기 우리금융지주로 옮기자 재계에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한 삼성 관계자의 분석.

    “지금은 해체됐지만 그는 당시 이학수 전략기획실장 후임이 되기 위해 김인주 전 사장 등과 경쟁을 벌였다. 그는 삼성의 미래를 위해 금융을 공격적으로 더 키워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겪은 그룹 입장에서는 ‘공격’보다는 ‘안정’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어쨌든 그로선 김인주 전 사장에게 점점 더 힘이 실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 정치적으로 줄타기의 귀재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가 2006년 말 우리은행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전격 선언하자 주변에선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의 평소 소신과는 맞지 않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 당연히 일각에선 그가 연임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 코드’에 맞추기를 한다는 뒷말이 나왔다. 그러나 우리은행을 떠난 이후엔 이명박 캠프에 몸담았다.

    敵을 만드는 독선적 스타일

    그는 우리은행장 재임 시절에 이미 ‘한나라당 줄서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 그는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인 듯 “2006년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영입 제의를 받긴 했지만 선친이 반대해 정치에는 뜻이 없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다.

    그는 이팔성 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스타일을 발휘했다. 황영기 행장은 취임 이후 당시 이팔성 우리증권 사장을 대상으로 ‘표적 감사’를 한 후 부하 직원을 보내 사표를 강요하는 수모를 주었다. 이팔성 사장은 곡절끝에 우리증권 고문으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마음의 앙금은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2005년 6월 이팔성 사장이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로 발탁된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이팔성 대표가 당시 유력한 대통령후보였던 이명박 서울시장의 측근으로 부각되고 있었기 때문. 우리은행의 ‘갑작스러운’ 서울시향 후원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황 회장 내정자에게는 적(敵)도 많다. 물론 그의 지인들은 그가 호불호가 심한 데다 저돌적인 추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옹호한다. 또 공격적인 스타일인 데다 남보다 한발 앞서 판단할 정도로 두뇌 회전이 빠르기 때문에 견제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 여기에 자신의 생각을 정하면 그대로 실행하는 스타일이어서 주변과 부딪칠 소지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독선적인 데다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 쓸데없이 적을 만든다는 얘기도 있다. 그의 밑에서 일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그는 자신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없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고, 실제로 그런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기 못지 않게 똑똑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그는 모르는 것 같다”고 혹평한다.

    우리금융 지배구조 논란

    멀기만 한 회장·행장 간 견제와 균형


    CDO = 자산유동화란 대출채권, 매출채권 등 일반적으로 유동성이 없는 자산을 유가증권, 기타 채무증서로 전환해
    ‘금융권 실세’ 황영기 KB국민지주 회장 내정자

    현 우리금융지주 이팔성회장.

    우리은행의 전신은 1999년 1월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한빛은행이다. 그러나 한빛은행은 부실덩어리를 합해놓은 것에 불과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이듬해 12월 한빛은행을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한 다음 자본금을 완전 감자했다. 예보는 그 직후 2조7644억원을 출자해 이 은행을 완전 ‘국유화’했고, 2001년 3월 우리금융지주가 출범하면서 자회사로 편입됐다.

    우리금융의 지배구조는 ‘회장·은행장 분리’ → ‘회장·은행장 겸직’ → ‘재분리’ 과정을 거쳤다. 1기 경영진(윤병철 회장 - 이덕훈 행장)은 회장과 행장이 갈등을 빚으면서 지주회사의 조정 기능에 문제가 발생했다. 2003년엔 카드사 합병 문제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지주회사가 이덕훈 행장 등을 중징계하자 이들이 강력 반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금융권에선 1기 경영진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한다. 한 외국계 은행 한국 대표의 말이다.

    “회장과 행장이 싸우는 모습만 부각됐을 뿐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우리은행은 우량은행을 합병한 국민은행과는 차원이 달랐다. 1기 경영진은 부실덩어리 은행을 맡아 부실자산을 털어내고 완전히 새로운 클린 은행으로 만들어놓았다. 이 바탕 위에서 황영기 회장의 공격 경영이 가능했던 것이다.”

    어쨌든 회장 - 행장 갈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2기 경영진은 황영기 지주사 회장이 행장을 겸했다. 그러나 이 역시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되면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지주사 회장이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 견제할 수단이 없게 된 것. 사외이사가 있긴 하지만 실무를 모르는 이들로선 브레이크를 걸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에 따라 3기 경영진은 회장 - 행장을 분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았다. 필요한 경우 회장이 행장을 적절히 견제해야 하는데 박병원 회장(현 대통령경제수석) - 박해춘 행장 체제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박 회장은 나중에 책임 추궁을 당할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로 일관해 그의 주변에선 ‘그가 변했다’는 소리가 나왔다.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새로 들어선 이팔성 회장 - 이종휘 행장 체제는 나중에 어떤 평가를 듣게 될지 궁금하다.


    ‘신동아’는 위에서 제기된 문제와 관련 황영기 회장 내정자 본인의 해명을 듣기 위해 그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 등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국민은행 해외 IR 때문에 바쁘다”는 반응만 돌아왔다. 이에 따라 다시 우리은행 관계자를 통해 질문지를 보내고 재접촉을 시도했으나 역시 반응이 없었다. 이는 박해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마찬가지였다.

    금융권에선 ‘인간 황영기’의 진짜 모습이 어떤 것이든 그가 KB국민지주 회장을 맡아 경영을 잘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금융은 한 나라 경제에서 저수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저수지는 골짜기에서 내려온 물을 받아 저장했다가 논밭에 대준다. 명실 공히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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