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호

교보증권 매각 무산 속사정

‘투자금액 이상은 뽑아야 판다’ 배짱?

  • 윤영호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yyoungho@donga.com

    입력2008-09-04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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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득원가는 2481억원인데, 장부가는 고작 2218억원. 또 증자 등으로 쏟아 부은 자금만 해도 1000억원이 족히 넘는다. 여기에 기회비용까지 감안해 가격을 높게 부를 수밖에 없으니 흥정이 제대로 될 리 있을까.
    교보증권 매각 무산 속사정
    “장기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대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자 타 증권회사 인수를 검토해왔으나 인수 조건, 시장상황 등을 고려해 검토를 중단하기로 했다.”

    유진투자증권의 7월23일자 공시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타 증권회사란 교보증권이다. “교보증권을 인수하기 위해 이 회사의 대주주인 교보생명 측과 접촉해왔으나 매매 가격을 둘러싼 견해차를 끝내 좁히지 못해 인수 추진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유진 측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중반부터 추진된 것으로 알려진 교보증권 매각도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교보생명 측의 설명은 약간 다르다. 교보증권을 매각하기 위해 유진 측과 접촉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실무적인 차원이었을 뿐 가격 네고 단계까진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국내외 회사 몇 군데와 접촉은 있었지만 콜옵션 또는 풋백옵션 등의 조건을 달기를 원해 그 이상 협상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보증권 매각 무산 속사정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 출신의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생명보험업에 집중하겠다”

    어쨌든 양측의 협상 결렬로 교보증권은 당분간 독자 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를 위해 교보증권은 7월25, 26일 이틀간 충남 천안 교보생명 연수원에서 임직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의대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해준 대표는 ▲조직 안정화 및 이익 극대화 ▲미래 투자은행으로서의 기반 구축 ▲제1호 증권사로서의 전통과 명예 회복 등을 다짐했다.



    교보증권은 1949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대한증권의 후신. 1994년 교보생명이 인수하면서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올 3월 말 현재(교보증권은 3월 말 결산 법인이다) 자본금 1800억원, 총자산 1조7716억원의 중형급 증권사다. 지난 회계연도(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영업수익은 7139억원이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익은 각각 491억원, 487억원이다.

    이번 매각 추진 과정을 지켜본 시장 관계자들은 한마디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교보 측이 교보증권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때 금융전문그룹 후보로 가장 먼저 거론되던 기업이 교보였음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는 얘기다. 금융전문그룹으로 가려면 당연히 교보증권을 보유해야 한다.

    이 경우 예상되는 이점은 상당하다. 가령 교보생명 자산을 자산운용사가 운용하고, 교보증권 창구에서 교보생명 보험상품을 파는 교차판매도 생각해볼 수 있다. 또 카드회사까지 보유한다면 카드회사 고객을 상대로 보험상품이나 펀드상품을 팔 수 있다. 우리금융지주나 신한금융지주가 은행을 포함해 증권, 카드, 자산운용업 등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는 것도 이런 이점 때문이다.

    물론 모회사인 교보생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교보증권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도 “생명보험에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초 교보자보 지분 74.7%를 프랑스 보험그룹 악사에 넘길 때는 ‘천수답 사업론’을 들고 나왔다. 경제 상황과 시황에 따라 경영 성과가 달라지는 손해보험업은 자신의 경영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3000억원?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최근 신 회장의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 내용 때문이다. 신 회장은 7월24일 보도된 인터뷰에서 “한국의 산업은행, 우리금융지주 등 금융 공기업 민영화에 관심이 많다”면서 “교보생명은 중장기적으로 은행권 진출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업 진출을 고려하면서 이미 가지고 있는 증권사를 매각한다는 것은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교보생명의 재무 상황을 봐도 교보증권 매각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교보생명은 외환위기 후폭풍으로 2000년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긴 했지만 이후 매년 3000억원대의 안정적인 이익을 창출해왔다. 지난 회계연도(2007년 4월~올 3월)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당기순이익(4335억원)을 기록했다. 올 3월 말 현재 자기자본은 2조4450억원.

    이에 따라 대표적인 재무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보험회사가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도 매년 꾸준히 향상돼 올 3월 말 현재 글로벌 수준(200%)을 넘은 223%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수익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자기자본이익률(ROE)도 지난해 23%를 기록했다.

    두 번째 의문은 교보생명이 교보증권 매각 가격을 왜 그처럼 높게 책정했는지 하는 점이다. 시장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교보생명이 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매각 추정가는 6500억~7000억원. 교보생명이 갖고 있는 교보증권 지분 51.63%(1858만5473주)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주당 3만5000원 수준이다. 8월8일 교보증권 종가가 1만3500원임을 감안하면 교보생명은 경영권 및 증권사 라이선스 프리미엄으로 주당 2만원 이상을 요구한 셈이다.

    금융회사의 기업가치 평가 기준으로 사용되는 주당순자산비율(PBR)로 비교하더라도 교보 측이 제시한 가격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보증권의 지난해 말 기준 순자산은 4107억원. 업계 평균인 주가순자산비율(PBR) 1.58배를 적용하면 교보증권의 기업가치는 6500억원 수준이 나온다. 따라서 매각 대상인 교보생명 보유 지분 51.63%에 해당하는 가치는 3356억원 수준이다. 유진 측이 희망한 가격도 이 정도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가지 의문을 풀기 전에 여기서 잠시 교보생명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지급여력비율을 높여라!

    “내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있어 교보증권 규모를 대형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교보생명으로선 ▲글로벌 대형 증권사와 합작 ▲교보증권 매각 ▲교보생명이 직접 교보증권 증자에 참여하는 방법 등을 고려할 수 있다. 현재로선 매각이 무산된 만큼 좀 더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결정할 것이다.”

    교보증권 안팎에선 매각이나 합작 추진이 현실성 있는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신창재 회장 입장에선 두 가지 옵션 모두 교보생명 지급여력비율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지급여력비율을 최대한 높이면 상장을 앞둔 교보생명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되면 신 회장의 상장 차익도 더 커진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동안 교보생명이 교보증권에 쏟아 부은 금액. 교보증권 내부에선 “1994년 교보증권을 인수할 때 높은 금액을 지급한 데다 인수 이후에도 증자 등을 통해 교보증권에 쏟아 부은 돈이 많은데, 기회비용까지 감안해 이 금액을 전액 회수하려고 하기 때문에 교보증권 매각 금액을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교보생명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교보증권 취득 원가는 2481억원. 그러나 올 3월 말 현재 교보증권 장부가는 2218억원. 여기에 인수 직후 3년 동안 각각 105억원, 97억원, 67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1994년, 1996년, 1998년 세 차례에 걸쳐 총 1300억원을 증자했고, 1999년에도 300억원의 공모 증자를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교보생명이 ‘함몰비용(sunk cost)의 오류’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개념은 이미 써버려 회수가 불가능한 금액이나 노력 등을 일컫는 함몰비용을 무시하는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쓰이는 용어다. 쉽게 말해 고스톱 판에서 돈을 조금 잃은 후 본전 생각에 ‘열고’를 외치다가 더 큰돈을 잃게 된 경우에 딱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기업을 사고파는 것은 고스톱 판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창립 50주년을 맞은 올해를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교보생명에서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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