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한형수(가명·남·24)씨는 올해 2학기 학자금 대출 금리가 7.8%로 올랐다는 얘기를 듣고 휴학을 결심했다. 이자율이 1학기 때보다 1.65%나 올랐기 때문이다. 한씨는 고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서울에 있어봐야 5만원 오른 자취방 월세와 각종 세금만 더 나갈 뿐이다.
“저뿐 아니라 학자금 대출이 부담이 돼 휴학한 친구가 여럿 있어요.”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대출을 받은 대학생 조정식(가명·남·29)씨는 한 달에 이자로만 12만원을 낸다.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명문대가 아니라서 과외교사 자리도 없고 편의점이나 서빙 알바 정도가 고작이에요. 그것도 주말에만 하기 때문에 한 달에 50만원 벌면 이자 갚고 휴대전화 요금 내면 얼마 남지도 않아요.”
교육 평등권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했다는 정부 학자금 대출이 오히려 학생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대출금 갚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다
교육과학기술부는 7월31일 2008년 2학기 정부보증 대학(원)생 학자금 대출금리를 연 7.80%로 확정 발표했다. 교과부는 “기준금리인 국고채 금리와 가산금리가 지난 학기에 비해 급등했지만 기준금리 결정 시기를 미루고 은행수수료와 유동화 비용을 최소화해 8%대 금리 결정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가까스로 8% 금리 책정은 면했다고 하지만, 이는 사상 최고 금리를 갱신한 것이어서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김종만(23)씨는 올해 여름방학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냈다. 2학기 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오후 5시부터 새벽 3시까지 10시간씩 팬케이크 전문점에서 일했다. 이렇게 일해서 받은 돈은 한 달에 110만원. 앞으로 한 달 더 일해 등록금 일부를 마련하고 나머지는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다. 그 역시 2008년 1학기에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다행히 무이자 대상자로 선정됐다. 무이자 대상자는 학자금 대출신청자 중 소득분위에 따른 가계소득과 재산 정도를 따져 선정된다. 김씨는 이자 없이 원금만 갚으면 되지만 또 대출을 받기는 부담스러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데 등록금 달라고 손을 벌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또 대출을 받자니 이자가 부담되고, 빚지고 사회에 나가고 싶지도 않아서 차라리 방학에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버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택시운전을 하는 아버지가 몇 해 전 투자를 잘못해 큰돈을 날린 데다, 최근엔 교통사고를 내 합의금으로 큰돈을 물어주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다고 한다.
김씨는 10시간 꼬박 일해야 하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건강도 나빠졌다. 병원비와 약값으로 30만원이나 썼다. 낮과 밤이 바뀌어 생활패턴도 엉망이 돼, 방학 때 하려던 자격증 공부는 손도 못 댔다.
“부동산학과라서 11월에 있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앞두고 공부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되더라고요. 새벽 3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공부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렇다고 주중에 알바를 하자니 받는 돈이 얼마 되지 않고요.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인 거죠.”
개강하면 전공만 여섯 과목을 들어야 한다는 김씨는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도 공부를 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아르바이트에 매달리다가 정작 공부를 제대로 못할까봐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 같아요. 취업하려면 학점이 좋아야 하니까….”
내년 2월에는 두 살 터울인 남동생이 군에서 제대해 복학할 예정이다. 내년에 학자금 대출금리가 얼마나 오를지 몰라 동생은 차라리 휴학하고 돈을 벌겠다고 한다.
“한 명이 대출을 받고 한 명은 돈 벌어 다니든지, 아니면 번갈아가면서 휴학을 해야겠죠. 그런데 휴학하면 할수록 재학기간이 길어져 나중에는 10% 이자율로 대출을 받아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상환할 길 없어 결국 파산신청
박나라(여·26)씨는 2006년 가을과 2007년 봄 학기, 올해 봄 학기까지 모두 세 차례 대출을 받았다. 총 대출금액은 1327만원. 첫 번째 대출금은 거치기간 6년에 상환기간 10년, 두 번째 세 번째 대출은 상환기간이 각각 5년, 15년이다. 결국 졸업하고 20년 넘게 한 달에 몇십만원씩 이자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그는 파산신청을 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보증을 서는 바람에 생긴 빚에 학자금 대출금까지 겹쳐 어쩔 도리가 없단다.
“갚을 가능성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 거죠. 이건 일종의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취업해서 갚는다고 해도 몇십년이 걸릴지 알 수가 없잖아요.”
파산신청을 하면 1년간 신용과 관련된 어떤 활동도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그의 어깨가 축 늘어져 보였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오른쪽부터 네 번째)가 7월 31일 신촌 민들레영토에서 대학생들과 등록금 문제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학기 중에도 당연히 알바는 해야 해요. 지방대라서 과외로 돈 벌기는 어렵고 주로 편의점, 고깃집에서 일했어요. 시급 4500원을 준다는 고깃집에서는 12시간 이상 일하기도 했어요.”
일주일에 3일 아르바이트를 해서 버는 돈은 월 50만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니 장학금은 생각도 못한다. 예전에는 성적우수 장학금도 꽤 받았지만 지금은 중상위권을 유지하기도 벅차다.
이번 학기엔 대출마저 받을 수 없게 돼 버렸다. 몇 차례 이자 납부 연체를 한 게 문제였다. 그래서 남은 선택은 또다시 휴학하는 것뿐이다.
“겸사겸사 휴학을 하려고 했어요. 아르바이트에 공부에, 집 같지도 않은 곳에서 살다 보니 몸이 많이 축났거든요.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집에서 지내면서 생활비도 아끼고 아르바이트해서 돈도 모으려고 해요.”
그는 현재 전주에서 식당을 하는 어머니를 돕고 있다.
제2금융권에 손 벌렸다가 낭패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조현아(가명·여·29)씨는 제2 금융권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가 큰 곤욕을 치른 경우다. 그는 학부 3학년부터 박사과정까지 총 5차례 대출 서비스를 이용했다. 세 차례는 정부 학자금 대출을 이용했지만 이자를 연체하는 바람에 더는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모 저축은행에서 300만원씩 두 차례 대출을 받았다.
이자를 갚아 나가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매달 이자만 10만원 이상 내야 하는데, 공대 대학원에 다니다 보니 과외를 할 만큼 시간 여유도 없었다. 3년간 힘겹게 낸 이자만 합쳐도 거의 원금에 가까운 액수라고 한다. 소득은 없고 낼 돈은 정해져 있으니 스트레스에 시달려 공부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하루만 입금을 늦게 해도 독촉하는 문자와 전화 때문에 심적인 부담이 너무 컸단다.
“정부 학자금 대출이 그나마 낫더군요. 지난 일이지만 급한 불 끄겠다고 제2금융권에 손내민 것을 정말 후회합니다. 시간도, 돈도 아깝고,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어요.”
조씨처럼 연체 때문에 대출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참여연대가 교육과학기술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얻은 자료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 연체건수가 2008년 2월 기준 2만6800건에 달한다. 2007년 2월 1만7200명, 같은 해 8월 2만2300명이던 것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자나 원금을 제때 갚지 못해 연체자가 되었다가 신용거래가 불가능한 금융채무불이행자가 된 대학생도 2007년 12월 기준 3413명에 달한다. 한번 연체하면 정부 학자금 대출을 받기는 사실상 어렵다. 학자금 대출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휴학을 하고 등록금을 벌거나 제2금융권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점을 노리고 ‘정부 학자금 대출’을 가장한 고금리 대출상품으로 학생들을 유인하는 대부업체도 등장했다. R사는 ‘학자금 대출의 대표 브랜드’라고 선전한 홈페이지에 정부 학자금 대출 안내 코너를 소개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월 1.5~ 4.8%의 저금리라고 소비자를 현혹하는 이 회사의 학자금 대출상품의 실제 금리는 연 30% 이상이다.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등록금 인상 관련 대선공약을 지키라며 학생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상환능력 고려한 외국 학자금 대출제도
우리나라의 학자금 대출제도는 재학 중인 학생에게 이자 등 상환부담을 지우는 데 비해 선진국의 경우 대학 졸업 이후 상환을 시작하도록 설계돼 있다. 무엇보다 소득연계형 등록금 후불제를 실시하는 나라가 여럿 눈에 띈다.
영국의 경우 학자금 대출자가 대학을 졸업한 뒤 연간 소득이 1만파운드(약 2000만원) 이상이 될 때부터 상환을 시작한다. 대출자의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고려한 조치다. 상환기간 역시 졸업 후 대출자의 소득과 총 융자액에 따라 달라진다. 이자율은 소매물가지수에 따라 인플레이션에 연동된다. 총상환액은 대출자의 전체 소득 중 1만파운드를 제외한 소득의 9%로 대출자가 봉급을 받을 때마다 분할 상환된다.
일본의 경우 이자가 면제되는 제1종 장학금과 장기 저리가 부과되는 제2종 장학금으로 나뉜다. 2종 장학금은 소속 대학에 상관없이 월별로 3만엔, 5만엔, 8만엔, 또는 10만엔을 대출받을 수 있다. 여기에 적용되는 대출이자는 연리 최대 3%이며, 현재 연리 0.6%가 적용되고 있다. 융자금 상환은 학생이 졸업한 후부터 시작되며, 상환기간은 최장 20년이다. 무이자인 1종 장학금과 달리 대출기간이 동일하더라도 월 대출액과 적용 금리에 따라 총상환액과 월 상환액이 달라진다.
네덜란드의 성과연계보조금은 특별한 사례에 속한다. 1996년에 도입된 이 제도는 학생이 일정 학업성취기준에 도달하면 지급받은 학자금 융자금이 상환의무가 없는 보조금으로 전환된다. 재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학생들이 정해진 기간 내에 졸업할 수 있도록 장려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우리나라는 대출 시점부터 일정 기간이 경과한 후에 갚아나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학자금 대출금리가 시중금리와 별반 다르지 않고, 졸업 후 취업률 또한 저조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용불량자나 연체자를 양산하는 꼴이다. 정부지원 예산이 줄면서 지원 대상이 축소되고, 심사가 강화되면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속출하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이진선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일본은 저렴한 고정금리에 무이자나 저리로 학자금 대출을 지원하고 있고, 영국과 호주도 소득이 생긴 뒤 차차 갚아나가도록 한다”며 “우리나라도 상환기간을 확대하고 원금을 균등 분할해서 갚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