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타적 인간의 출현’ : 최정규 지음, 뿌리와이파리, 344쪽, 1만2800원
이런 상황을 경제학에선 ‘죄수의 딜레마’라고 한다. 두 명의 용의자가 체포돼 각각 경찰의 심문을 받고 있다. 만약 두 사람이 모두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하면 이들은 기소되어 5년형이 선고될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끝까지 범죄 사실을 부인하면 경찰은 두 사람을 이 사건의 범인으로 기소할 수 없다. 이들이 이전에 저지른 사소한 범죄 사실을 들춰내 기소한다 해도 형량은 1년에 불과하다. 만약 한 사람이 자백을 하고 다른 사람은 끝까지 범죄 사실을 부인하면, 자백한 사람은 풀려나고 부인한 사람은 범죄 사실을 기초로 5년형에 위증혐의까지 덧씌워 2년형이 추가 될수 있다. 이 경우 두 용의자는 어떻게 행동할까?
이때 용의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유리할지 생각해보자. 두 사람이 일제히 혐의사실을 부인하고 1년 정도 형을 받는 것이 가장 유리한 선택이지만 문제는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혐의 사실을 부인했는데 상대가 자백하면 나는 위증죄까지 포함해 7년형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부인할 거라는 예측 아래 자백하는 것이 내게 유리하다. 결국 이런 계산을 한 두 용의자가 모두 자백하고 똑같이 5년형을 받는다. 이처럼 실제로 가장 유리한 선택(양쪽 모두 부인)을 두고도 양쪽 모두 자백해 형을 사는 최악의 선택(‘내시의 균형’이라고 하는 것)을 하는 것이 ‘죄수의 딜레마’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는 고담 시민들을 대상으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벌인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죄수들이 탄 배에서 기폭장치를 든 간수는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때 험상궂은 표정의 한 죄수가 다가오더니 “그동안 당신이 용기가 없어서 못한 일을 내가 대신 하겠다”며 기폭장치를 집어 든다. 작동 버튼을 누른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장치를 물속으로 던져버린다. 이제 이 배의 탑승자들은 다른 배를 먼저 폭파하고 살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 시각 일반 시민들이 탄 배에서는 “저쪽 배에 탄 사람들은 범죄자들”이라며 “당연히 우리가 먼저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웅성거림 속에 한 남자가 앞장서지만 그도 결국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어느덧 시곗바늘은 자정을 넘기고 양쪽 배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악당 조커의 예측은 빗나간 것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죄수의 딜레마’
‘이타적 인간의 출현’을 쓴 경북대 경제학과 최정규 교수는, 경제이론에서 ‘죄수의 딜레마’로 표현되는 상황에 처하면 항상 상대방을 배신하는 게 맞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흰개미들이 보금자리를 노리는 적들을 막기 위해 자신의 창자를 파열시켜 끈끈한 내용물을 뿌리거나, 박쥐들이 사냥에 실패한 동료에게 자신이 섭취한 피를 토해 먹이는 것처럼, 인간도 일상적으로 이타적이고 협조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고, 길거리에서 헌혈을 하며, 익명으로 엄청난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남보다 일찍 출근해 사무실 정리를 도맡아 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이런 행동의 원인을 가장 쉽게 설명해주는 것이 ‘혈연선택이론’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헌신적인 이유를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선택 결과로 보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다음에 등장하는 것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for-tat)’로 설명되는 ‘반복-호혜성’ 가설이다. 이 가설은 게임이 일회성이 아니고 경기자들은 게임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호혜성에 기초한 이 전략은 무임승차를 했다가 다음에 닥칠 보복이 두려워서 협조하는 것이므로 이타적인 행위는 아니며 조건부 협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가설로도 인간의 이타적 행위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뭔가 2%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