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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새로운 헌법 필요한가

지식인들의 개헌 논의 4년의 기록

  • 이국운 한동대 교수·헌법학 lkwoon66@naver.com

새로운 헌법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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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불가피론 대세

이 책에서 가장 관조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비판적인 김홍우의 글(‘한국 헌법론 소고’)은 유진오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역대 (헌)법학자들을 전자로 규정하면서, 이런 관성을 벗고 하루바삐 후자의 입장을 관철시킬 경우에만 의미 있는 헌법 개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되풀이해 강조하고 있다. ‘폴리티아니스트’의 입장에서 개헌은 ‘살아 있는 헌법에 고비마다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책에 글을 실은 모든 발제자가 ‘폴리티아니스트’로서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다른 지식인들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헌)법학자들의 글은 대부분 전문적인 논의를 자제한 흔적이 역력하고, 일부 비(非)법학자들의 글은 추상적 이론과 구체적 현실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양자 사이의 소통 역시 생각만큼 원활했던 것 같지는 않다.

크게 보아 1987년 개정헌법의 틀을 지키는 기조 위에서 권력구조를 손보는 ‘작은 개헌론’과 탈냉전, 세계화, 분권화, 정보화를 담아낼 ‘큰 개헌론’이 맞선 것은 분명하지만, 구체적인 각론으로 들어가면 컨센서스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보다는 주장과 반박에 그친 부분이 훨씬 많다. 계속적인 논의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독자의 입장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것은 이 책에 담긴 4년 동안의 대화가 같은 기간 시중에서 벌어진 정치적 의식 변화를 상당부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제4부에 정리된 아홉 번의 토론 기록은 이 책의 정수(精髓)라고 할 수 있다. 이 토론 기록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초반에는 ‘개헌신중론’을 ‘개헌불가피론’이 설득하고, 중반 이후에는 ‘작은 개헌론’을 ‘큰 개헌론’이 설득하는 것이 대화모임의 전체적인 흐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헌법재판제도, 경제헌법, 지방자치 등의 영역으로 논의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개헌불가피론은 대세로까지 여겨졌던 것이다.



대화모임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 ‘개헌불가피론’은 사실 같은 기간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이 함께 경험한 내용이기도 하다. 특히 연이은 대통령 정치의 실패와 현실 정치권의 무능력은 권력구조나 정치엘리트들을 바라보는 지식인들의 시각을 바꾸고 있다.

토론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꾸준히 대화에 참여한 지식인들 중 일부는 5·16 군사쿠데타 이후 오랜 기간 무원칙한 타협논리로 폄하되어온 의원내각제의 제도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복권시키고 있다. 대통령직선제를 민주화와 동일한 것으로 전제했던 1987년 헌법의 맥락을 상기할 때, 이것은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낄만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지난 5월, 4년간의 산중문답의 결과를 시중에 드러냈던 제1회 여해 포럼 ‘사이·너머’는 이런 변화를 확인시켜준 바 있다. 당시 포럼에서는 ‘의원내각제 개헌론’이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론’과 호각을 이루며 치열하게 토론됐던 것이다.

백화제방의 개헌 논의 대두

그렇다면 개헌불필요론→개헌불가피론→작은 개헌론→큰 개헌론으로 이어졌던 대화모임의 흐름은 이제 공식적으로 전개될 ‘정치적/정략적 개헌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이 책에 담긴 권력구조 변경논쟁이나 헌법재판소제도, 경제헌법 조항에 관한 개헌 논의를 넘어서서 시중에는 이미 다양한 개헌 논의가 촉발될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그 목록은 국적조항의 구체화, 영토 조항과 평화통일 조항의 관계정립, 국제법과 국내법의 효력체계화, 사회적 기본권의 확대, 정보민주주의의 도입, 직접민주주의의 강화,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 및 사법민주화의 제도화를 포함한다. 여기에 연방주의를 포함한 지방자치제도의 혁신, 수도 및 국기의 명기,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 등이 더해지면 대한민국은 가히 백화제방의 개헌 논의에 휩싸일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국회를 중심으로 본격화될 공식적인 개헌 논의는 백화제방의 논쟁을 주도적으로 벌이기보다는 기왕의 토론에 기초하여 의제의 범위와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년 만의 공식적인 개헌 논의가 이처럼 제한적 방식으로 진행될 때, 이미 명분과 논리를 가다듬고 있는 한국사회의 제 정파와 세력은 어떻게 반응할까? 그리고 그때 시중을 떠나 다시 산중에 모일 대화문화아카데미의 지식인들은 헌법을 위해 또 어떤 새로운 대화를 시작할 것인가?

신동아 200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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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 교수·헌법학 lkwoon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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