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컵을 양동이만큼 크게 보라. 골프에서는 무엇보다 자신감이 중요하다.
첫째, 내기 중 돈을 잃어도 전혀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다. 필드에서 1만원은 사회에서 100만원이라는 기분이 들어 죽기 살기로 내기를 했더랬다. 그러나 20년쯤 되니 승부보다는 상대방과 기분 좋게 즐기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받아들이게 됐다.
둘째, 캐디 피(fee)는 내가 먼저 낸다. 밖에서는 몇십만원짜리 회식비를 내도 사람들이 좀체 고마운 내색을 안 한다. 하지만 캐디피를 내면 사람들이 몹시 고마워하니 몇만원을 가장 가치 있게 쓸 수 있는 것은 캐디피뿐이라는 걸 깨닫는 데 20년이 걸렸다. 내게 이 말을 한 분은 구력 20년 이후부터는 9홀 돌고 나면 조용히 캐디피를 미리 낸다고 귀띔해줬다.
셋째, 도망간 공은 찾지 않는다. 공이 OB가 나거나 해저드에 빠졌을 때 예전에는 캐디 보고 찾아오라고 하거나 직접 찾아다녔다. 구력 20년이 되고 나선 마음을 비웠다. OB 난 공 찾아다니다 잘못하면 발목 다친다. 그리고 도망간 공과 집 나간 여자는 대개 찾아오면 또 나간다는 것이 이분의 주장이다.
넷째, 라운드가 끝나고 멋진 세리머니를 한다. 라운드 전에는 정중한 인사와 덕담을 하지만 18홀을 돌고 나면 자세가 무너지기 쉽다. 18홀 마지막 퍼팅이 끝난 후 동반자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덕담을 건네는 일이 그날 골프의 품격을 결정한다.
다섯째, 아내가 미스 샷을 해도 담담해진다. 과거엔 부부동반 라운드를 할 때, 아내의 샷을 유심히 지켜보고 미스 샷이 나면 즉석 레슨을 했다. 20년이 걸려서야 학습효과는 없고 부부싸움만 하게 된다는 걸 깨닫고 완전히 포기했다.
여섯째, 라운드 후 서명은 품위 있게 한다. 골프채를 확인한 후에 캐디가 내미는 확인 카드에 정확하고 또렷하게 서명한다. 서명을 대신 하라거나 대충 흘려 쓰는 것은 품위 있는 골퍼의 태도가 아니다. 그래서 젊은 아가씨가 사인해달라고 달려드는 경우는 멋있게 서명을 해주기로 했다. 유명인은 아니지만 골프장에서만 가능한 일 아닌가.
누구는 골프는 인생과 닮았다고도 하고 구도(求道)의 장이라고도 한다. 요즘 나는 날 골프장으로 이끌어주신 분을 모시고 가끔 ‘사은(師恩) 라운드’를 한다. 골프를 통해 내 인생을 이끌어주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긍정적 몰입의 매력, 골프
골프는 매니지먼트 게임이다. 골프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우선, ‘긍정적 몰입’에 있다. 한마디로 골프에는 좋아서 미치게 만드는 요소가 있고 좋아서 미치다 보면 심신이 충전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는 인간이 몰입하기 쉬운 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도전 목표가 있을 것, 둘째 경쟁적 요소가 있을 것, 셋째 피드백이 빠를 것, 넷째 적절한 난이도가 있을 것. 골프를 치는 분이라면 골프에 이 모든 것이 포함돼 있다는 걸 금방 시인하리라 믿는다.
골프장에 갈 때 나는 오늘 몇 타를 쳤으면 좋겠다는 도전목표를 설정하고 홀마다 목표를 세운다. 또 동반자와 선의의 경쟁을 한다.
피드백은 18홀이 다 끝난 다음에 숫자로도 나오지만, 사실은 샷을 하는 순간 굿 샷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그야말로 번개와 같은 피드백이 가능한 게 골프다.
난이도 이야기를 더 이상 이야기해서 무엇하랴! 뜻대로 안 되는 게 골프이고, 영원히 만점이 없는 게 골프다. 그러니까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사람, 행복을 추구하고 싶은 이가 늘수록 골프인구도 증가하게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