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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본 한중일 문화인류학 ‘마지막회’

효과적인 식사도구 숟가락 한국인만 사용하는 이유는?

  •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부교수·민속학 duruju@aks.ac.kr

효과적인 식사도구 숟가락 한국인만 사용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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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학성은 “어떻게 생긴 물건이기에 가지의 이파리 모양인 숟가락이, 저 밥 속에 구멍을 뚫었을까” 하고 시를 지어 읊조렸다. 이에 왕민호가 대응하여 “많고 적은 영웅의 손이, 마치 한나라의 장량(張良)처럼 임금에게 젓가락을 빌린다고 바빴으랴” 한다. 이에 연암이 “기장밥은 젓가락으로 먹지 않고 남과 함께 먹을 때는 손을 국물에 적시지 않는 법인데도 불구하고, 중국에 들어와서 숟가락을 구경하지 못하겠으니, 옛 사람들이 기장밥 자실 때 손으로 뭉쳐서 잡수셨던가요” 하였다. 왕민호가 “숟가락이 있긴 하지만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기장밥이고 쌀밥이고 젓가락을 쓰는 것이 관습으로 굳었답니다. 아침에 배우면 습관이 된다는 말도 옛말이라 지금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하고 답했다. 즉 예전에는 숟가락을 사용했는데 당시에는 그렇지 않다는 답이다.

나는 연암 선생이 ‘열하일기(熱河日記)’의 ‘혹정필담(鵠汀筆談)’에 적어둔 이 이야기를 단순한 에피소드로 넘기지 않는다. 송나라 때 주희가 정리한 책으로 알려진 ‘가례(家禮)’에도 조상의 제사에는 반드시 밥 옆에 ‘시저(匙·#55173;)’를 놓도록 그림으로 표시해두었다. 여기에서 ‘시저’는 바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리킨다. 그런데 연암 선생의 말처럼 중국 땅에 들어온 이후에 밥상에서 숟가락을 보지 못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사오쯔(勺子)’를 주세요?

1993년 처음으로 베이징에 간 나는 볶음밥을 한 그릇 시켰다. 큰 대접에 수북이 담긴 볶음밥의 향기는 그야말로 감미로웠다. 그런데 이 볶음밥과 함께 제공된 도구는 나무젓가락뿐이었다. 잠시 어떻게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숟가락의 중국어인 ‘사오쯔(勺子)’를 떠올렸다. 웨이트리스에게 갖다달라고 부탁을 했다. 손잡이는 짧고 입이 움푹 파인 ‘사오쯔’가 나왔다. 이것으로 볶음밥을 꾹꾹 눌러 둥글둥글하게 뭉쳤다. 그렇게 몇 번을 먹고 난 후 입속에서 무엇인가 단단한 게 씹히는 감촉에 놀랐다. 돌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중국인 친구가 젓가락으로 먹어야 그런 불순물도 골라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사오쯔’는 밥을 먹는 데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다. 중국의 ‘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을 찾아보면, ‘사오(勺)’는 어떤 것을 떠낼 때 사용하는 기구로 자루가 있으며, 고대에는 주로 술 단지에서 술을 떠낼 때 사용했다고 돼 있다. 그러니 이 ‘사오쯔’를 한국어로 옮기면 국자가 된다. 앞의 연암 선생이 밥을 먹으려고 시도했던 ‘사오쯔’ 역시 작은 국자였다.



효과적인 식사도구 숟가락 한국인만 사용하는 이유는?

1. 중국 명대 상아 젓가락. 2. 조선 후기 수저. 3. 한정식 유기 수저.

진(秦)나라 이전까지만 해도 ‘사오쯔’는 ‘비(匕)’라는 한자로 쓰였다. 중국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이 고대형 ‘비’가 수없이 발굴됐다. 당시의 ‘비’는 주로 동물 뼈를 재료로 만들었다. 그런데 발굴된 ‘비’의 형태를 보면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편평하고 긴 막대기형으로 끝부분이 특별히 얇게 제작됐다. 프라이팬에 지지는 음식을 뒤집을 때 사용하는 도구와 닮았다. 다른 하나는 주걱과 비슷하다. 앞의 것에 비해 입과 자루가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다.

이런 도구는 무엇에 사용됐을까? 신석기 시대 황하유역에서 재배됐던 주요 농작물은 좁쌀(粟)이었다. 조는 낟알곡식으로 이것을 갈돌에 갈아서 가루를 낸 후 토기에 넣고 물에 반죽해 익혀 먹었다. 이렇게 익힌 음식은 죽과 떡의 중간 상태였다. 만약 뜨거운 상태라면 맨손으로 먹기는 쉽지 않다. 당시엔 오늘날의 스푼처럼 정교하게 만드는 기술도 없었다. 그래서 발명된 도구가 바로 중국 화북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편평한 형태의 ‘비’였다. 이에 비해 쌀을 주식으로 먹던 지금의 창장(長江) 이남에 살던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주걱 모양으로 생긴 도구로 밥을 먹었다. 좁쌀에 비해 좀더 차진 멥쌀을 쪄서 먹는 데는 주걱과 닮은 도구가 효과적이었다.

이들과 달리 가운데가 약간 파인 도구도 발견됐다. 이것은 춘추·전국시대인 동주(東周) 때 유적지에서 발견된 것으로 모두 청동기로 만들어졌다. 특히 청동기로 만든 솥인 정(鼎)이 있는 곳에선 이 청동비(靑銅匕)가 반드시 나왔다. 그 크기도 작은 것은 10cm 이내, 큰 것은 57cm에 이르렀다. 이것은 무엇에 사용된 것일까?

당시의 각종 의례를 적은 책인 ‘의례(儀禮)’에는 반비(飯匕)·도비(挑匕)·생비(牲匕)·소비(疏匕)의 네 가지 이름이 붙은 비(匕)란 도구가 나온다. 한자로 미루어 반비는 밥을 먹을 때 사용한 숟가락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나머지는 무슨 용도였는지 알기 어렵다. 중국의 음식고고학자 왕런샹(王仁湘)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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