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정운 교수의 ‘재미학’ 강의 ⑤

재미의 문화사-관점을 바꾸면 인생이 즐겁다

“왜 내 밑에는 나 같은 놈 하나 없나”

  •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entebrust@naver.com

재미의 문화사-관점을 바꾸면 인생이 즐겁다

2/4
그러나 2002년 월드컵 때는 여자들도 즐겼다. 오직 승부를 겨루는 남자들의 권력놀이처럼 보였던 축구에 정서가 존재함을 여자들이 봤기 때문이다. 기쁨과 슬픔, 아쉬움과 환호와 같은 갖가지 정서를 집단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축구는 TV연속극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남자들의 놀이가 이처럼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동반한 경우는 없었다.

온 국민이 2002월드컵에 환호한 건 카메라 렌즈(관점)가 증가한 덕분

재미의 문화사-관점을 바꾸면 인생이 즐겁다

과거에 비해 스포츠 중계 카메라 대수가 늘어났다.

2002년 월드컵이 재미있었던 것은 바로 이 유럽식 카메라 편집방법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군대와 축구를 그토록 열광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축구를 보여주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전에 남자들이 좋아하던 축구는 단지 누가 골을 넣고, 어느 팀이 이기는지만 중요했다. 그런데 2002년 월드컵은 달랐다. 공의 움직임에 따라 기뻐하고, 아쉬워하고, 열광하는 선수들과 관중의 모습이 그 커다란 전광판에 클로즈업되어 나타났다. 축구에도 감정이 있었던 것이다. TV연속극에만 있을 것 같은 그 섬세한 감정과 정서 표현이 축구에도 존재함을 2002년 월드컵에서 여자들은 비로소 경험한 것이다.

축구를 보는 공간적 관점의 변화, 즉 다양한 각도에 있는 카메라 렌즈는 축구의 내용 자체를 변화시킨다. 선수들의 움직임은 축구를 바라보는 카메라적 관점에 적응하게 된다. 그들도 끊임없이 전광판에 비치는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동장 전체를 바라보는 광각렌즈적 관점에 따라 운동장 전체를 움직이며 경기하게 된다. 속도 또한 카메라적 관점의 변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길게 혼자 몰고 가는 맥없는 드리블은 기피하게 된다. 대신 빠른 패스로 연결되는 속도감 있는 동작을 연출한다. 때로는 클로즈업된 렌즈에 맞춰주는 섬세하고 현란한 동작을 보이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다. 선수들의 얼굴 자체도 변한다. 그 큰 전광판에 땀구멍까지 나타나는 클로즈업과 슬로비디오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의 축구선수 얼굴과 오늘날 축구선수의 얼굴을 비교해보라. 요즘 박지성 선수 얼굴 예뻐지는 것을 보라. 이 모든 변화의 원인은 간단하다. 축구를 보여주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축구가 헤매는 이유 는 간단하다. 축구를 보여주는 방식이 월드컵 이전 방식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축구중계에 동원되는 카메라의 숫자가 형편없이 줄었다. 그러니 혼자 한참을 몰고 가는 동네 조기축구식 플레이가 나오는 것이다. 빨리 움직여봐야 자신의 얼굴은커녕, 등에 붙어 있는 번호조차 보기 힘든 까닭이다. 축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단순해지면 축구의 내용도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한국축구의 발전방안은 아주 단순해진다. K리그 축구중계를 분데스리가 수준으로 올리면 된다. 다양한 관점에서 축구를 바라보면 축구의 내용은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진짜인지 아닌지 한번 해봐라. 난 내 생각이 옳다고 자신한다.

일방적 의사소통(관점)으로 자존감은 훼손된다.

살다 보면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는 더 그렇다. 그런데 아무리 상처가 깊은 일이라도 원인과 이유가 분명하면 잠을 잘 잔다. 반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이유가 분명치 않으면 밤새 잠 못 자고 고민한다. 원인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일을 합리적 인과관계로 해석하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심리학자가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심하게 재미없는 영화를 보게 했다. 한 그룹에게는 밖에 나가서 ‘이 영화가 너무 재미있다’고 10명에게 이야기하고 오면 100달러씩 주겠다고 했다. 다른 그룹에게는 밖에 나가서 10명에게 ‘이 영화가 너무 재미있다’고 이야기하면 1달러씩 주겠다고 했다. 영화를 본 후, 사람들은 모두 밖에 나가서 10명에게 “너무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고 말하고 돌아왔다. 약속한 대로 100달러와 1달러를 받았다. 심리학자가 이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영화가 정말 그렇게 재미없던가요?” 그러자 두 그룹 중 한 그룹에서 “영화가 정말로 재미있었다”는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어느 그룹일까?

1달러를 받은 그룹이었다. 100달러를 받은 사람들은 “아니, 사람 죽이는 거짓말도 아닌데, 무슨 100달러씩이나 주나? 10명 아니라 100명도 하겠다. 언제든지 다시 불러만 주세요”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1달러 받은 사람은 “내가 고작 1달러 받으려고 거짓말했단 말인가? 한 명도 아니고 열 명에게나, 이건 말도 안 돼” 하며 열 받아 했다. 이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영화를 재미있다고 생각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상태를 무척 괴로워한다. 특히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은 더더욱 힘들어한다. 고작 1달러를 받으려고 영화가 재미있다고 거짓말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큰 상처를 받아, 차라리 영화가 재미있다고 믿어버렸다. 그것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주느니 차라리 인식체계를 바꿔버린다.

배가 고플 때는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본 욕구가 채워지면 사람들은 자기 존중감, 그러니까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려는 마음이 생긴다. 이 자존감은 항상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확인된다. 내 자존심은 타인에게 비친 객관화된 나의 모습을 통해 유지된다. 이 같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자존감을 유지하는 방식을 가리켜 헤겔은 ‘인정투쟁’이라 불렀다. 미드의 사회심리학에서는 주격 나(I)와 목적격 나(Me)의 역학관계로 설명하기도 한다.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자신이 상대방의 일방적인 훈계와 계몽의 대상이 되면 이 자존감은 여지없이 망가진다. 이에 대한 불만은 아주 묘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심할 경우 세상을 뒤집어버리기도 한다. 재미없는 영화를 재미있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처럼.

자존감은 인간만의 존재확인 방식이다. 권력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돈으로는 더더욱 아니다. 돈과 권력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었다면 ‘삼성사태’가 일어났을까? 자존감은 자신이 진지한 의사소통의 상대로 여겨질 때만 지켜진다. 일방적 의사소통은 자존감을 망가뜨리고, 다양한 방식의 ‘인정투쟁’으로 이어지게 돼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세상이 뒤집히기도 한다. 그래서 의사소통의 문제가 중요하다.

2/4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entebrust@naver.com
연재

김정운 교수의 ‘재미학’ 강의

더보기
목록 닫기

재미의 문화사-관점을 바꾸면 인생이 즐겁다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