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를테면 CEO가 입고 있는 슈트의 맞음새, 셔츠와 타이의 조합, 구두와 양말의 상태가 그 회사의 기업이미지 광고보다 더 많은 정보와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중요한 자리에서 남자의 옷차림은 타인들이 그를 보는 시선에 큰 영향을 준다. 비록 스마트한 능력과 성실함에 있어 전 지구적 영역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동시에 아주 독특한(?) 옷차림으로도 유명한 대한민국 남자의 스타일에는 어떤 처방이 필요한가. 한국에서 스타일이 빼어난 남자란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동물과도 같은 것일까?
대한민국 남자는 슈트를 모른다

사진제공:좌-인트렌드, 중, 우-란스미어
우리 아버지들은 아들에게 제대로 된 슈트를 감식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고, 사회적 교육 시스템은 남자에게 옷 입기 따위는 사소한 일이라고 믿도록 부추겼다. 비즈니스맨 대부분은 매일 슈트를 입지만, 자기 체형에 맞지 않아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항공모함처럼 큰 사이즈의 슈트를 걸치고 있기 일쑤다. 군만두처럼 굽이굽이 주름진 구두, 혹은 번쩍번쩍 불광을 용맹스럽게 낸 구두는 옵션이다. 많은 전문가의 노력으로 최근 들어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룩’이었던 슈트에 흰 양말 신기는 또 어떤가.

슈트의 디테일과 분위기를 보여주는 란스미어 매장.
이제 TV와 잡지, 그리고 서점과 도서관을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었던 슈트의 법칙들을 이해하고, 저 혼잡한 브랜드와 매장에서 자신을 위한 슈트를 찾는 법, 또 그렇게 찾은 슈트를 제대로 입는 법, 잠시 지나가는 유행과 정통 스타일의 차이를 구분하는 심미안에 대한 서른 가지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슈트는 수(數)보다 질(質)이 중요하다
1_ 슈트는 영국의 상류사회 귀족들이 입던 군복에서 진화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래서 영국 귀족들이 중시하는 전통과 명예가 슈트에 담겨 있으며, 세월이 흘러도 그런 전통은 변하지 않는다.
2_ 군복이란 그것을 입는 개인이 마음대로 취사선택하는 자율 복장이 아니다. 군복과 함께 입는 셔츠와 타이, 구두 등 모든 디테일이 엄격하게 규정돼 있는 법이다. 그래서 군복으로부터 진화한 슈트 역시 그것과 함께 입는 셔츠와 타이, 혹은 구두 종류까지 세밀하게 정해진 법칙들이 존재한다.
3_ 그러므로 슈트를 잘 입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그런 법칙들을 준수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맞도록 유연하게 디테일을 조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본이 없이는 응용이 불가능한 것처럼, 슈트는 법칙이 우선이다.
4_ 영국인이 만들어낸 전통을 가장 유니크하게 업그레이드시킨 곳은 나폴리다. 예로부터 손재주 좋은 사람이 많기로 유명했던 나폴리는 휴양지로도 유명했기에, 유럽의 많은 귀족은 나폴리에서 삶을 즐겼다. 그런 맥락에서 귀족 문화의 일환인 맞춤 슈트의 전통이 나폴리에서 꽃을 피웠던 건 당연한 일이다. 영국의 새빌로와 함께 이탈리아의 나폴리는 정통 클래식 슈트를 대표하는 성지(聖地)다.
5_ 세계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남성들이 있는 국가는 (사소한 이견은 논외로 하고) 영국, 이탈리아, 그리고 유럽 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한 일본이다. 그 반대의 세 나라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힌트: 세 나라 모두 ‘국’자로 끝난다).
6_ 슈트의 역사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슈트란 매일 아침 세탁된 순서에 따라 습관적으로 고르는 유니폼이 돼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전세계 남자들의 공식적인 복장이 청바지에 티셔츠가 아닌 이유는, 오직 슈트만이 당신의 명예와 존재감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당신이 누구인지를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표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