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체류 외국인 100만명 시대. 사람 사는 풍경도 크게 달라졌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한데 섞여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언어가 달릴지언정 외국인이 말을 걸어와도 두렵진 않다. 도시는 물론 시골에서도 거주 외국인을 만날 수 있다. 이국적인 풍경은 이제 이태원만의 것이 아니다.
2008년 8월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약 116만명. 전체 인구의 2%를 차지한다. 90일 미만의 단기체류자 27만명을 빼도 90만명이다. 여기에 미등록 불법체류자를 더하면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체류 성격별로는 장기체류 외국인 근로자가 50만명으로 가장 많다. 결혼이주자가 15만명으로 뒤를 잇는다. 이들 가운데 4만명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유학생은 4만여 명이다. 한국이 글로벌 도시로 거듭난 건 1990년대 이후부터. 외국인 수는 지난 10년 사이에 약 3배로 증가했고, 지금 추세라면 2020년 전체 인구의 5%, 2030년 6%에 달할 전망이다. 상하이 홍콩과 같은 글로벌 도시가 될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함께 외국생활을 한 이들은 모였다 하면 추억담에 밤을 새운다. 좌충우돌 창피하고 답답했던 일화는 시간이 흘러 자랑스러운 무용담으로 꽃을 피운다. 글로벌 시대라지만 외국생활이라는 게 그렇다. 전화 한 통이면 될 일도 외국인에겐 모래로 성을 쌓는 것만큼 힘들 수 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이리저리 ‘삽질’을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고, 사막에 혼자 떨어진 기분으로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다.
살짝 닮고, 상당히 다른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어떨까. 그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타공인 단일민족 국가가 아닌가. 실제 취재한 상당수 외국인은 택시 타기와 물건 값 바가지, 도우미의 부재 등 한국생활의 힘든 점을 토로했다. 한국인 친구를 사귀는 건 사치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8년 1월 서울시 글로벌센터가 문을 열었다. 외국인들의 생활 편의와 행정을 돕는 일을 한다. 작게는 휴대전화 개설부터 크게는 비자문제와 임금문제까지 상담서비스를 제공한다. 2~6월에는 각 구청 산하 글로벌빌리지센터가 잇달아 개소했다. 외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연남, 역삼, 서래, 이태원·한남, 이촌 등 5곳이다. 빌리지센터의 업무 내용은 서울시 글로벌센터와 같되 거주 외국인의 특성에 따라 성격을 조금씩 달리한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메카인 경기도 안산 원곡동에도 외국인 주민센터가 생겼다.
지난해 동사무소의 이름이 주민센터로 바뀌었다. 외국인 주민센터라는 이름에는 외국인을 이방인이 아닌 주민으로 보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제공 서비스도 생활 불편에서 비즈니스 상담까지 다양하다. 분야를 불문하고 불편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SOS를 칠 수 있는 곳이 외국인 주민센터라는 얘기다. 곧 외국인의 생활과 불편함은 센터에 고스란히 투영된다고 할 수 있다.
각 센터는 개성이 뚜렷했다. 같은 강남이라도 역삼센터는 비즈니스 컨설팅이, 프랑스인 마을에 있는 서래센터는 문화예술 관련 서비스제공이 주 업무를 이룬다. 연남센터는 중국인과 유학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한남·이태원과 이촌센터는 일본인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그리고 안산 원곡동 주민센터는 외국인 근로자와 결혼이주자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맞닥뜨리는 문제도 제각각이었다. 공통분모는 있겠지만 결혼이주자, 외국인 근로자, 외국기업 주재원이 겪는 문제가 같을 순 없다. 서울지역 글로벌빌리지센터 3곳(역삼, 서래, 연남)과 안산 원곡동 주민센터는 살짝 닮아 있으면서도 상당히 달랐다.
안산 원곡동 외국인센터
“107만원을 못바다습니다”
안산 원곡동 외국인센터 외국인통역 상담실. 눈시울이 붉은 20대 중반 여성이 상담실로 들어왔다. 해당 언어를 나타내는 국기들을 빙 둘러본 뒤 중국어와 한국어 서비스를 하는 강길선씨 앞에 앉았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