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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과의 대화 ⑫

희망가 부르는 부자 농민 이연원 나준순 김영환 박애경

“소비자 먼저 생각해야 농업이 산다”

  •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kch@cfe.org

희망가 부르는 부자 농민 이연원 나준순 김영환 박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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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카길社’ 지향

▼ 나준순 저는 5℃ 이온쌀을 생산하는 (주)PN라이스를 운영합니다. 쌀의 종자 보급, 계약재배, 건조, 저장, 가공, 유통 등 쌀의 생산에서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관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김정호 그야말로 한국의 카길(Cargill)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5℃ 이온쌀이란 정확히 어떤 쌀입니까?

▼ 나준순 5℃에서 보관하는 쌀, 그리고 이온수로 씻은 쌀을 말합니다. 쌀도 오래되면 산화돼서 밥맛이 떨어지잖아요. 그런데 5℃에서 보관하면 오랫동안 햅쌀 같은 맛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 보관해도 청결하도록 이온수로 씻어내지요. 우리 쌀은 일반적인 쌀에 비해서 세균이 87%나 적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지금은 당당한 특허 상품이 됐습니다. 또 농림수산식품부 고품질 쌀 브랜드 정책 중 하나로 채택됐습니다.

▼ 김정호 원래 쌀 농사를 지으셨나요?



▼ 나준순 아닙니다. 저는 원래 수산대를 졸업하고 10년간 마도로스 생활을 했습니다. 달러도 많이 벌고 참 재미가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하시던 정미소를 물려받았는데, 대형유통업체가 등장하면서 사업이 힘들어졌습니다. 대형유통업체는 첨단시설이 갖춰진 대형업체와만 거래를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곱 단계의 마진을 다 흡수하는 대형 RPC(미곡종합처리장)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종자 보급부터 계약재배, 건조, 저장, 가공, 유통까지 쌀 재배 산업 전반에 관여하는 일로 범위가 커졌습니다.

희망가 부르는 부자 농민 이연원 나준순 김영환 박애경

도전정신과 창의력으로 성공한 부자 농민들이 7월19일 충남 금산 한국벤처농업대학에서 저마다의 성공담을 털어놓고 있다. 왼쪽부터 나준순·이연원·김정호(필자)·김영환·박애경씨.

▼ 김정호 마도로스에서 쌀 사업이라…. 전혀 관계없는 일로 전환하셨네요?

▼ 나준순 그래 보이긴 해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5℃ 이온쌀은 마도로스 때의 경험에서 나온 겁니다. 보통 배가 출항하면 1년을 꼬박 바다에 있기 때문에 출항시 엄청난 양의 식량을 가지고 떠납니다. 그리고 그 식량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식품마다 적합한 온도에 맞춰 저장을 합니다. 그래서 쌀 보관에도 온도 개념을 적용하게 된 거지요.

첫해 250만원어치 수확

▼ 김정호 김영환 대표는 어떠세요?

▼ 김영환 저는 가을향기 농장을 운영하고 있고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유기농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준순 사장님처럼 사업이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비자들이 아껴주고 찾아주십니다.

▼ 김정호 원래 농사를 지으셨나요?

▼ 김영환 12년 전에 인천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양평으로 내려가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첫해 힘들게 농사를 지어 쌀 아홉 가마니와 콩 두 가마 반, 그리고 약간의 고추를 수확했는데 금액으로 환산해보니 250만원 정도가 되더군요. 당시 장사하시는 분이 콩 한 가마니에 16만원 주겠다고 팔라고 하는데 집사람과 초등학교 다니던 아이들까지 달라붙어 농사지은 콩을 그 가격에는 억울해서 도저히 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콩을 팔지도 못하고 그냥 두었는데 얼마 후 마을 분들이 메주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판다고 하면서 메주를 만들더군요. 그래서 우리도 메주를 만들어 팔았는데, 가격을 보니 그냥 콩으로 파는 것보다 메주를 만들어 파는 것이 이익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메주도 다 팔지 못하고 장을 담그고 말았습니다.

▼ 김정호 그걸 집에서 다 드시지는 않았을 텐데요. 어떻게 파셨어요?

▼ 김영환 농사짓는 것도 힘들고 만드는 것도 힘들지만 파는 건 더 힘들더라고요. 그때 제 나이가 40이고 집사람이 38세였는데 집사람 데리고 장에 쭈그리고 앉아 메주를 팔려고 생각하니 어찌나 아뜩하던지요. 결국은 생각지도 않게 된장을 만들었지만 장사 수완이 없어서 팔지도 못하고 굶어 죽게 생겼다고 하소연을 했더니 처음엔 형제들과 친척들이 많이 팔아줬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반응이 아주 좋은 겁니다. 곧 입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어요. ‘다음에도 사 먹고 싶다’ 는 반응이 나와서 어찌나 고맙던지요. 그렇게 작게 시작한 사업이 지금의 가을향기 농장까지 왔습니다.

▼ 김정호 처음에 고생을 많이 하셨네요. 박애경 대표는 귀농을 후회하지는 않았나요?

▼ 박애경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지요. 농사라는 게 부지런함과 근면함이 몸에 밴 분들이 하셔야 되는 일인데, 우린 그러질 못했거든요. 그래도 흙 냄새, 풀 냄새 맡고 사는 생활이 참 좋습니다. 건강에도 좋고요. 무엇보다 고마운 건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거지요. 언젠가 저희 아이들에게 우리가 부유할까 가난할까 물었더니 그런 것은 잘 모르지만 지금 행복하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농사를 시작하기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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