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투자증권의 7월23일자 공시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타 증권회사란 교보증권이다. “교보증권을 인수하기 위해 이 회사의 대주주인 교보생명 측과 접촉해왔으나 매매 가격을 둘러싼 견해차를 끝내 좁히지 못해 인수 추진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유진 측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중반부터 추진된 것으로 알려진 교보증권 매각도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교보생명 측의 설명은 약간 다르다. 교보증권을 매각하기 위해 유진 측과 접촉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실무적인 차원이었을 뿐 가격 네고 단계까진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국내외 회사 몇 군데와 접촉은 있었지만 콜옵션 또는 풋백옵션 등의 조건을 달기를 원해 그 이상 협상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 출신의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어쨌든 양측의 협상 결렬로 교보증권은 당분간 독자 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를 위해 교보증권은 7월25, 26일 이틀간 충남 천안 교보생명 연수원에서 임직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의대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해준 대표는 ▲조직 안정화 및 이익 극대화 ▲미래 투자은행으로서의 기반 구축 ▲제1호 증권사로서의 전통과 명예 회복 등을 다짐했다.
교보증권은 1949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대한증권의 후신. 1994년 교보생명이 인수하면서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올 3월 말 현재(교보증권은 3월 말 결산 법인이다) 자본금 1800억원, 총자산 1조7716억원의 중형급 증권사다. 지난 회계연도(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영업수익은 7139억원이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익은 각각 491억원, 487억원이다.
이번 매각 추진 과정을 지켜본 시장 관계자들은 한마디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교보 측이 교보증권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때 금융전문그룹 후보로 가장 먼저 거론되던 기업이 교보였음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는 얘기다. 금융전문그룹으로 가려면 당연히 교보증권을 보유해야 한다.
이 경우 예상되는 이점은 상당하다. 가령 교보생명 자산을 자산운용사가 운용하고, 교보증권 창구에서 교보생명 보험상품을 파는 교차판매도 생각해볼 수 있다. 또 카드회사까지 보유한다면 카드회사 고객을 상대로 보험상품이나 펀드상품을 팔 수 있다. 우리금융지주나 신한금융지주가 은행을 포함해 증권, 카드, 자산운용업 등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는 것도 이런 이점 때문이다.
물론 모회사인 교보생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교보증권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도 “생명보험에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초 교보자보 지분 74.7%를 프랑스 보험그룹 악사에 넘길 때는 ‘천수답 사업론’을 들고 나왔다. 경제 상황과 시황에 따라 경영 성과가 달라지는 손해보험업은 자신의 경영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3000억원?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최근 신 회장의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 내용 때문이다. 신 회장은 7월24일 보도된 인터뷰에서 “한국의 산업은행, 우리금융지주 등 금융 공기업 민영화에 관심이 많다”면서 “교보생명은 중장기적으로 은행권 진출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업 진출을 고려하면서 이미 가지고 있는 증권사를 매각한다는 것은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