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라이트 신뢰도 10위에서 23위로 추락
- 정통보수, 자유주의연대 출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내정자 강력 비토
-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권문(權門)세력, 뉴라이트는 신흥사대부?
- 뉴라이트재단은 싱크탱크, 뉴라이트전국연합은 행동대장?
- MB정권 1등 공신인데 국회 진출은 6명뿐. “토사구팽” 불만도
- “뉴라이트의 MB 비판은 자기를 봐달라고 떼쓰는 것일 뿐”
- 운동권의 ‘헌신성’ ‘과학적 사고’가 뉴라이트 성공 밑거름
6월 중순,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EAI)이 공동 실시한 ‘2008 파워조직 25곳 영향력-신뢰도 평가’ 조사 결과 뉴라이트의 신뢰도는 지난해 10위에서 23위로 곤두박질쳤다. 영향력 역시 지난해 21위에서 23위로 소폭 하락했다. 이에 대해 임헌조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은 “촛불정국, 인사파동 등으로 MB에 대한 지지율이 폭락했기 때문”이라고 그 의미를 축소했다. MB에 대한 실망감이 뉴라이트에도 반영된,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뉴라이트의 동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는 내부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목표했던 정권교체에 성공한 후 방향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각에선 뉴라이트 주도층의 권력지향 경쟁이 마치 5년 전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친노(親盧)좌파의 모습과 똑같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대한민국 보수진영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뉴라이트, 그들의 어제와 오늘을 진단한다.
▼Ⅰ 탄생과 성장 : ‘이념시장 최고 히트 상품’
1997년과 2002년의 연이은 대선 패배, 거기에 더해 2004년 총선 완패는 보수진영을 무기력 상태에 빠뜨렸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는 국가보안법 폐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등 좌편향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층들은 이따금 시청앞이나 서울역 광장에 모여 반정부 시위를 벌였지만 ‘길거리 우파’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진보세력은 이들을 ‘꼴통보수’라며 비하했고, 보수언론조차 이들의 주장에 큰 무게를 실어주지 않았다.
이때 동아일보가 우파의 새 비전을 제시하는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2004년 11월 한 달 동안 실린 ‘뉴라이트, 침묵에서 행동으로’라는 연재기사였다. 한기홍 뉴라이트재단 상임이사에 따르면, ‘뉴라이트’란 명칭은 이동관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장(현 청와대 대변인)이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최홍재씨와 함께 술자리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원래 자유주의 운동이란 말을 사용했다. 그런데 국민에게 쉽게 와 닿지 않는 것 같아 ‘뉴라이트’를 쓰기 시작했는데 전부 따라 하더라. 조선일보만 해도 처음엔 다른 용어를 쓰더니 한 달쯤 지나면서 따라왔다.”
뉴라이트는 ‘2000년대 정치·이념시장의 최고 히트 상품’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보수, 진보를 불문하고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깊은 당시 상황에서 새로운 우파의 등장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여기에는 2004년 총선 후에도 계속된 노무현 정부의 실정(失政)도 한몫했다. 뉴라이트는 선진화라는 설득력 있는 목표와, 이를 실현할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2004년 11월23일 자유주의연대 출범을 신호탄으로 교과서포럼, 뉴라이트싱크넷,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의료와사회 포럼, 시민들과 함께하는 변호사모임, 한국기독교개혁운동,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등이 잇따라 출범했다. 2005년 11월엔 ‘우파가 만든 최초의 자생적 시민단체’로 평가받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창립됐다. 2006년 6월엔 뉴라이트재단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선진화국민회의, 한반도선진화재단 등 통칭 ‘선진화’ 세력이 보수혁신 운동에 가세했다. 이른바 ‘보수의 대반격’이었다.
뉴라이트의 이념적 뿌리는 1980년대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혹은 신보수주의에 맥이 닿아 있다. 자유주의는 개인주의, 제한적인 정부, 자유시장 등의 가치를 중시한다. 보수주의는 사회적 질서와 권위를 강조하면서 시장기능을 옹호하고, 지나친 평등지향을 배제한다. 또, 재산권을 다른 시민권보다 우위에 둔다. 한마디로 이러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결합이 뉴라이트의 요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좌파 척결’
서구의 신보수주의가 보수세력에서 시작된 것에 비해 한국의 뉴라이트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했던 386세력의 주도로 태동된 것이 다른 점이다. 이들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함께 ‘친북좌파 척결’을 주요 이슈로 내걸었다. 처음부터 이념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낸 셈이다.
현재 여러 단체가 ‘뉴라이트’로 통칭되지만, 주장과 성향은 조금씩 다르다. 크게 3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 뉴라이트재단(이하 재단으로 약칭) 계열과 뉴라이트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으로 약칭), 그리고 선진화 세력이 그들이다.
최초로 뉴라이트 이념을 들고 나온 자유주의연대는 과거지향적인 이념 대립을 탈피해 자유주의적 개혁을 주창했다. 극좌, 극우를 모두 배격하면서 ‘균형감 있는 중도우파’를 추구한 이들은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미래 건설에 초점을 둔 개혁을 지향했다.
자유주의연대에는 신지호, 홍진표, 최홍재 등 ‘전향 386 3인방’을 중심으로 류근일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재교 인하대 교수, 이대영 중앙대 교수, 차기환 변호사, 이지수 명지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후 만들어진 교과서포럼(박효종 서울대 교수), 뉴라이트싱크넷(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북한민주화네트워크(한기홍),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조전혁 인하대 교수), 의료와 사회포럼(우봉식) 등과 함께 ‘뉴라이트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자유주의연대는 지난 6월11일 뉴라이트재단과 통합, 현재 재단 중심으로 재편된 상태다. 2006년 6월 설립된 뉴라이트재단(이사장 안병직)의 핵심 멤버는 이영훈 서울대 교수, 이대근 성균관대 교수 등 이른바 학계의 ‘안병직 사단’과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전향 주사파 김영환씨, 유세희 한양대 명예교수 등이다.
전국연합은 김진홍 목사를 중심으로 보수기독교 및 학계 인사들이 모여 2005년 11월 출범했다. 핵심인물은 제성호 현 인권대사, 권용목 전 현대그룹 노조협의회 의장, 박한성 서울시의사회 회장, 두영택 전 한국교총 중등교사회 회장, 정정택 전 예비역 소장, 장산 대각사 주지, 박상하 전 대한체육회 부회장 등.
‘전향한 386’이 주도
안병직(가운데) 교수와 신지호(왼쪽에서 네 번째)씨에 의해 주도된 뉴라이트재단은 뉴라이트의 ‘싱크탱크’로 불린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은 박세일 서울대 교수를 이사장으로 한 중도보수 성향의 싱크탱크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현 한나라당 국회의원)와 이석연 헌법포럼 공동대표 등이 이사로, 김용준 전 헌재소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조순 전 서울시장 등이 고문으로 참여했다. 기획위원회, 정책위원회, 선진화아카데미 등 산하 연구기관에 쟁쟁한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재단과 전국연합은 ‘(보수로) 돌아온 좌파’들에 의해 주도됐기 때문에 초기엔 정통보수층으로부터 ‘색깔’을 의심받기도 했다. 신지호 의원은 과거 노동운동을 하다가 1992년 월간 ‘길’지에 ‘당신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라는 제목의 사상전향서를 발표한 후 일본으로 유학, 게이오 대학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진표씨도 전민련,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등에서 활동하다 1997년 ‘시대정신’을 창간하며 우파로 변신했다.
최홍재씨는 1991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거쳐 1997년까지 전국연합 자주통일위원회에서 일했다. 한기홍씨 역시 386운동권 출신이다. 뉴라이트재단을 이끄는 안병직 교수는 1980년대 식민지반봉건사회론으로 진보이념을 주도했었다.
한편 전국연합을 이끄는 김진홍 목사는 재야 빈민운동가 출신이고, 이동호 전 조직위원장은 전대협 연대사업국장 출신, 한오섭 전 기획실장은 전 민중민주주의학생투쟁 중앙위원, 임헌조 사무처장은 민주노동당 멤버였던 전력이 있다.
보수단체인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대표는 “일부 보수층에서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김진홍 목사 등이 뉴라이트를 한다고 하니까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도 편협한 보수다. 대부분 우익은 김진홍 목사를 좌익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 Ⅱ. 분화 와 갈등 :뉴라이트재단과 뉴라이트전국연합
뉴라이트재단(자유주의연대)과 뉴라이트전국연합은 기본적인 사상과 이념은 같다고 하지만 정통우파를 바라보는 시각과 운동론, 조직론에서 큰 입장 차를 보였고, 이 때문에 창립 이래 갈등을 빚기도 했다.
연대 측은 초기에 정통우파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한국에는 합리적 보수세력이 없다”고 한 신지호 전 대표의 당시 인터뷰 발언이 단적인 예다. 이런 주장은 ‘빨갱이냐, 수구꼴통이냐’는 이분법적 구도를 깨뜨리며 국민에게 뉴라이트의 당위성을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효과는 있었는지 몰라도 정통보수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렀다. 이들은 자신들을 ‘정통보수’ ‘정통우파’로 규정하고, 자유주의연대를 ‘위장좌파’라고 반격했다.
이에 대해 뉴라이트재단 쪽은 ‘오해’라고 강조한다. 재단 측 한 관계자는 “올드라이트를 한 범주로 묶기는 어렵다. 과거 정권에서 부패한 사람도 있지만, 순수보수가 대부분”이라고 해명했다.
“정통보수 쪽에서 우리에 대해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보수 전체의 연대는 필요하고, 또 단체마다 독자성도 필요하다고 본다. 때에 따라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의 차이일 뿐이지 ‘당신네는 필요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유주의연대에 대한 정통우파의 서운한 감정은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계속됐다. 지난 6월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이던 홍진표씨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으로 내정되자 강하게 비토를 하고 나선 것이다. 정통보수단체들은 진보시민단체들보다 더 강하게 거부감을 표출했고, 결국 그의 임명은 철회됐다. 최인식 사무총장은 “MB가 인사를 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시민단체를 상대할 시민사회비서관에 그런 인물을 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전국연합 측은 연대와는 달리 정통우파와 손잡는 데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는 정통우파와 함께 ‘한국시민사회단체연합’ ‘2007국민연대’를 꾸렸는가 하면, 촛불정국 때에는 이들과 연대해 6월10일 ‘법질서 수호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촉구 국민대회’를 열기도 했다. 8월5일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서는 374개 ‘애국시민연대’를 조직해 2만명을 동원했다.
‘부흥회 방식’의 조직화
정통우파는 같은 뉴라이트이지만 자유주의연대에는 배타적이고 뉴라이트전국연합에는 우호적이다.
“뉴라이트 이념이 확산되면서 김진홍, 서경석, 신지호 3명이 만나 ‘뉴라이트 네트워크’를 만들기로 합의한 적이 있다. 그런데 서로의 입장이 상충하면서 삐걱거렸다. 신지호씨는 지식인 중심의 운동이념에 천착한 반면 김 목사는 전국적인 대중운동을 중시했다. 정권교체가 무엇보다 시급하고 절실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정권교체를 통해 선진화를 이루는 일은 몇 사람만으로는 안 된다. 세력을 넓히기 위해 정통보수와도 손을 잡고, 한나라당과도 힘을 결집하고, 대중운동을 확산시켜야 한다. 그런데 저쪽은 대중운동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재단 측 한 관계자는 “어떤 운동이든 이론적 스탠스가 중요하다. 특히 운동 초기엔 이념적으로 확고한 사람들이 모여야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검증 안 된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숫자 불리기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김진홍 목사는 전국을 돌며 부흥회 방식으로 조직을 만들었다. 그게 얼마나 튼튼한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전국연합은 대중조직화를 추구한 결과 2년여 만에 회원을 17만명으로 늘렸다. 전국 시·군·구에 200여 개 조직을 건설했고 종교, 교사, 기업인, 문화체육, 노동, 의사, 학부모, 대학생 등 17개 부문조직도 만들었다. 민주노총,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등 진보단체들에 각각 대항하는 사상 초유의 전방위적인 보수조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정통보수 관계자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의 회원 숫자는 허수”라고 주장한다.
“공천이나 받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뿐 실제 동원력이 없다. 과거는 물론 최근 촛불반대시위 때도 뉴라이트전국연합은 깃발만 나왔을 뿐 실제 동원된 사람들은 정통보수단체 회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창립 초기부터 불거진 갈등으로 인해 현재 재단(자유주의연대)과 전국연합은 서로 ‘전혀 무관한 단체’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두 단체는 안으로는 서로 갈등하면서도 밖으로는 진보진영과 싸우면서 꾸준히 외연을 확장해왔다. 그 과정에서뉴라이트운동에 뛰어든‘전향한 운동권’들의 헌신성과 과학적 사고가 큰 힘을 발휘했다. 지난해 대선 때에는 이재오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이론에 강한 자유주의연대·뉴라이트재단과 대중조직에 강한 뉴라이트전국연합의 특징을 살려 역할을 교통정리해주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 Ⅲ 대선 올인의 대가가 정체성 혼란?
일각에선 뉴라이트가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운동’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MB의 20년지기’인 김진홍 목사가 이끄는 전국연합은 창립 때부터 ‘MB 2중대’라는 비판을 들었다. 김 목사는 지난 3월 기자간담회에서 “뉴라이트 태동기부터 이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개혁보수 세력이 집권하는 데 기여하자는 그림을 그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제성호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공동대표는 “김 목사 개인은 MB에게 기울어져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 대통령 당선을 위해 운동을 한 게 아니다. 한나라당과 전략적으로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고, 한나라당에서 MB가 후보가 됐으니까 그를 지지한 것이다. 박근혜가 후보였다면 그를 지지했을 것이다. 친박(親朴) 성향의 장재환씨가 공동대표였다는 것만으로도 ‘MB 2중대’라는 주장은 틀렸다는 게 입증된다”고 해명했다.
전국연합은 서울 광화문에 40여 평 사무실을 운영하며 상근자도 제법 된다. 그동안 직접 주최한 행사도 많고, 보수단체들과의 연대집회 때 내는 분담금도 적지 않았다. 당연히 대선 때 MB로부터 자금이 나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MB가 돈을 잘 주는 사람도 아니고, 그랬다가는 당연히 문제가 됐을 것이다. MB가 직접 개입한 일은 없다. 김 목사가 앵벌이를 하다시피 자금을 모아왔고, 지역행사는 그 지역 대표가 자금을 책임지는 식으로 운영했다.”(임헌근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
어찌 됐건 지난 대선에서 ‘합리적 대안세력’이라는 뉴라이트의 이미지는 차떼기, 수구부패 등 한나라당의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시키며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뉴라이트도 상처를 입은 게 사실이다.
재단 측 한기홍 상임이사는 “뉴라이트가 지나치게 정치적이 돼버렸다. 전략적으로는 정권교체 자체가 최대 목표가 아니었음에도 2007년은 당선운동에 매몰된 경향이 있었다. 한마디로 선거운동만 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국민이 이명박 세력과 우리가 같은 세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독자성이 훼손된 것이 지금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연합 측 임헌조 사무처장도 “지난해 11월까지의 뉴라이트 운동은 정권교체운동, 유권자운동일 뿐이었다”고 고백했다.
여의도 입성, 고작 6명
선거에서 이기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자 뉴라이트 인사들은 여의도, 또는 청와대와 정부부처에 입성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명박식 개혁’이 기존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당직자들이나 정통보수의 가치관보다는 뉴라이트의 지향점에 더 부합한다고 믿었던 것도 이 같은 기대에 한몫했다. 이를 반영하듯 4·9총선에서는 40명이 넘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가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다.
전국연합은 올해 신년사 논평에서 새 정부가 ‘수구보수’로의 회귀가 아닌 ‘개혁보수’ 중심으로 나갈 것을 촉구했다. 이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물갈이를 통해 정치권에 진입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읽혔다. 김진홍 목사를 비롯한 지도부는 회원들의 정계진출을 노골적으로 권장하기도 했고, 당연히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이에 대한 뉴라이트 관계자의 표현이 재미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당직자들이 국민의 마음을 모르는 권문세족이라면 뉴라이트는 새롭게 정치에 뛰어들려는 신진사대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이 권력에 나아가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포부를 실현하려는 것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임헌조 사무처장은 “외국에선 검증받은 NGO 활동가가 정치권으로 가는 게 자연스럽다. 반대로 정치권에서 쌓은 노하우와 식견을 NGO 활동을 하며 풀어놓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서 양쪽 모두 내용이 풍부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 정치권에 가면 이상하게 보는 풍조가 있다. 그러다 보니 한나라당이 ‘그 밥에 그 나물인 정당’ ‘웰빙정당’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은 당연히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먼저, 8명만이 공천을 통과했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뛰었던 뉴라이트전국연합에서는 공천에 통과한 사람이 김성회 뉴라이트 경기안보연합 상임대표(경기 화성갑), 장제원 뉴라이트 부산연합 공동대표(부산 사상), 권용범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대구 달서을), 정재량 뉴라이트학부모연합 공동대표(비례대표) 등 4명. 이 중 권용범 공동대표는 선거에서 이해봉(친박연대)에게 밀려 낙선했고, 정재량 공동대표는 후순위에 머물러 여의도 입성에 실패했다. 최윤철 공동대표, 이동호 전 조직위원장, 김정만 조직위원장, 도희윤 탈북자특별위원장 등 관련 분야에서 실무경험이 풍부한 인사들조차 공천 바늘귀를 통과하지 못했다.
“계파 간 나눠 먹기” “토사구팽” 불만
김진홍 목사가 주도한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뉴라이트의 대중화에 큰 성과를 거뒀다.
선진화국민회의 등 선진화 세력과 정통보수 진영은 본선 진출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유일한 예외가 한반도선진화재단 부이사장인 나성린 한양대 교수였다.
이렇게 되자 뉴라이트 내부에서 ‘토사구팽’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홍진표 당시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은 공천심사 직후 “공천과정을 관찰해본 결과 계파 나눠 먹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고 반발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측은 공식적으로 말을 아꼈다. 임헌조 사무처장은 “생각처럼 많이 되지는 않았지만 충격이나 배신감은 없다. 정치는 현실이다. 공천장 한 장을 얻기 위해 십수년을 한나라당에 목숨 건 사람이 많다. 우리가 2,3년 뉴라이트 운동했으니 몇 자리 내놔라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만약 그렇게 했으면 우리가 정말 국회 들어가려고 운동한 것밖에 안 된다”고 했다.
“공천자가 적은 것보다도 지도부가 정치권에 들어가는 게 더 큰 문제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여러 차례 제안이 왔지만 거절하고 참여연대를 지켰다는 점 때문이다. 운동을 정계 진출의 도구로 삼으려 하면 안 된다. 김진홍 목사가 정치권에 들어갔다면 뉴라이트전국연합이 흔들렸을 것이다. 뉴라이트 운동은 개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순수성과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신지호는 지난해 우리더러 ‘정치권 진출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라고 비난해놓고 정작 자기는 정계에 진출했다. 그 결과 자유주의연대가 뉴라이트재단에 통합돼버린 것 아닌가.”
한편, 정부 요직에 진출한 인사들로는 전국연합 계열에서 김성이 전 보건복지부장관, 제성호 인권대사, 이석연 법제처장, 박영모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 행정관, 조춘구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 등이 있고, 선진화 세력 쪽에서는 김대모 노사정위원장, 이창용 금융위 부원장, 정인철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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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인사들의 정·관계 진출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노무현 정부 당시 진보단체들이 정권의 인재풀이 되면서 코드인사 논란이 불거진 것을 상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 통계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시절 참여연대의 전·현직 임원 416명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청와대와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냈다고 한다. 뉴라이트 단체들도 그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묻지마 지지’의 후유증
이명박 정부의 초반 국정 혼란은 뉴라이트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수진영이 그동안 내세웠던 무기는 ‘진보정권=무능한 정권’이라는 등식이었다. 그런데 지금 MB정부는 6개월 만에 ‘무능한 정권’으로 낙인찍힐 위기에 처했다. 국민에게 ‘보수정권이 더 무능하더라’라는 인식이 박히면 자칫 ‘보수의 공멸’을 불러올 수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최인식 국민행동본부 사무총장은 “정통보수는 한나라당이나 MB 자체를 지지한 게 아니다. 정권 교체를 위해 그들을 선택한 것일 뿐이다. ‘묻지마 지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한계가 지금 나타나는 것”이라며 뼈아픈 고백을 했다. 뉴라이트재단 관계자는 “현 정권은 이명박, 박근혜, 뉴라이트를 포함한 보수세력 3자가 결합한 일종의 공동정권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혼자 잘나서 된 줄 알고 다른 세력을 배척하고 있다. 그것이 위기를 부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라이트 내에서는 MB정부에 대해 이보다 더 심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뉴라이트 계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가 내놓은 시국선언문이 단적인 예다.
“MB정부의 위기는 정치와 실생활, 경제와 선거 민주주의의 문제점 등 모든 결함을 결합해놓은 백화점식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설익은 정책제안, 청와대와 내각의 부실인사, 미국산 수입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국정 전반이 위기로 치닫고 있다.(중략) 이명박 정부는 자유주의에 기초한 이념적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국정쇄신, 인적쇄신을 단행하여 작금의 난국을 수습하라.”
뉴라이트 진영은 NGO 활동 강화, ‘싱크탱크’ 기능 강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가겠다는 구상이다. 사진은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심포지엄.
▼ Ⅳ. 제2의 도약 준비 중?
MB정부의 실정(失政)은 뉴라이트들로 하여금 앞으로 정권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던져주었다. 정부에 대해 감시와 견제, 고언(苦言)을 하면서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데엔 다들 동의한다. 그러나 비판과 지지 중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둘 것인지에 대해선 단체마다 입장 차가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전희경 정책실장은 “보수단체라고 해서 무조건 이명박 정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지향점을 떠나 시민단체 본연의 의무와 책임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연합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앞으로 NGO로서 충실할 것이다. 지금도 MB가 잘못하면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러나 MB가 난타를 당한다면 도와주어야지 욕하면 안 된다. 도와줄 건 도와주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뉴라이트 단체들은 현재 저마다 제2의 로드맵을 준비하거나 운영 중에 있다. 자유주의연대와 통합한 뉴라이트재단은 ‘대한민국 선진화 싱크탱크’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선진화위원회와 북한위원회를 신설해 이명박 정부의 제반 정책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북한 민주화를 유도하기 위한 중장기적 대북과제를 제시할 계획이다.
“모든 것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우선 뉴라이트라는 개념 자체부터 다시 고민할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뉴라이트 운동이 각광받고 성과도 있지만 이젠 과거의 영광일 뿐이다. 이제부터 신보수운동의 성과에 대해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앞으로 10년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모색할 생각이다.”(한기홍 뉴라이트재단 상임이사)
전국연합 역시 브레인 조직으로 ‘바른정책포럼’과 ‘뉴라이트 싱크탱크’를 만들어 그동안 취약했던 정책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우파 지도자 양성을 위한 ‘목민정치학교’를 강화하는 한편 올해 초에는 방송통신정책센터, 규제개혁센터, 뉴라이트아동보호센터, 국회의정감시센터, 북한인권특별위원회 등 5개 분야로 조직을 재편하고 연구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은 정책연구 및 개발 등 기존 싱크탱크의 전문성을 높이는 한편, 청년 교육분야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빈곤퇴치, 부의 재분배, 사회통합 부분에서 적극적인 정책제언을 할 계획이다. 이용환 사무총장은 “MB정부 출범 후 할 일이 더 많아졌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선진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재개발 문제 등 국민경제 살리기와 사회양극화 해소 등에서 다양한 문제 제기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