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호

독일 BASF

‘실천’ 넘어 ‘나눔’으로 진화한 친환경 경영

  • 이설│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입력2009-01-07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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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 건너 불 보듯 할 시기는 지났다. 환경규제 말이다. 환경경영은 21세기를 선도할 경영 패러다임이 됐고, 글로벌 기업은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세계적인 독일의 화학회사 바스프(BASF)도 그중 하나.
    • 환경과 사람을 지키겠다는 공약을 우직하게 실천해왔다. 바스프의 본거지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에서 ‘환경 파괴 주범’인 화학기업이 ‘존경하는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난 배경을 살펴봤다.
    독일 BASF

    바스프의 본거지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의 야경. 파이프라인과 공장 불빛이 거대한 은빛 성을 연상케 한다.

    화학에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화학에 특별한 인상을 갖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이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에게 화학은 학창시절 잠시 인연을 맺은 교과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전공자나 업계 종사자가 아닌 한 대부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화학처럼 일상적인 학문도 없다. 입고 먹고 마시는 모든 것에 화학이 깃들어 있다. 당신이 사는 집에 쓰인 원자재, 거실 바닥에 깔린 카펫, 카펫 위의 인조 우드 테이블, 테이블 위의 플라스틱 컵, 컵 속에 담긴 탄산음료의 탄산. 이 모두가 화학이 낳은 작품들이다.

    바스프(BASF)는 독일의 글로벌 화학기업이다. 플라스틱, 농화학, 정밀화학, 석유, 천연가스 등 화학과 관련한 모든 것을 생산한다. 만드는 제품이 3만종이 넘는다. 1864년 설립됐으며 한국지사도 두고 있다.

    바스프는 ‘화학 왕국’ 외에 다른 면모로도 주목받고 있다. 선구자적 환경 경영이 바로 그것이다. 바스프는 2000년 이후 여러 차례 미국 ‘포춘’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화학기업’에 선정됐다. 다우존스가 선정하는 지속가능성 지수에서도 매년 상위권에 오른다. 독일은 유럽연합은 물론 세계에서도 환경 선진국으로 꼽힌다. 바스프 최고경영자 위르겐 함브레이트 회장은 “유럽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독일밖에 없는 것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독일 금융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동차로 2,3시간 거리에 있는 루트비히스하펜. ‘바스프’의 고향이자 본거지다. 반경 7km 내에 바스프 본사와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건물 200여 동(棟)이 들어서 있다. 도시 절반 정도가 공장인 셈이다. 벤츠, 아우디 등 자동차기업이 몰려 있는 슈투트가르트와 함께 독일의 대표적인 기업도시로 꼽힌다. 인연을 맺진 못했지만, 현대의 기업도시 울산이 자매도시를 제안했었다고 한다.



    독일 BASF

    1864년부터 바스프와 함께한 루트비히스하펜은 독일의 대표적 산업도시. 바스프는 ‘페어분트 시스템’ ‘지속가능성 도구’‘탄소대조표’ 등으로 친환경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루트비히스하펜에 도착하자마자 흠뻑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상하다. 공장부지, 그것도 화학공장 부지지만 어디에도 수상한 기운은 없다. 공장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과거 방문한 국내 기업 공장 두어 군데는 모두 잿빛 풍경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무채색 공장과 집채만한 기계만 바삐 움직이는 우주정거장 같았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귓등을 때리는 기계음과 크레인만 가득한 정비소 같았다.

    루트비히스하펜은 달랐다. 코를 킁킁거려봐도 석유나 염료 등 ‘화학적’인 냄새는 맡을 수 없었다. 단정한 도로와 볕이 드는 식당과 나무와 낙엽이 있는 풍경은 여느 한적한 중소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밤에는 은빛이 신비롭게 반짝이는 거대한 연구도시로 모습을 바꿨다. 일반적인 공장과 사뭇 다른 경쾌한 표정의 비결은 뭘까.

    24시간 모니터링

    “중앙감시통제소 직원들이 24시간 공장 주변을 관찰합니다. 감시카메라를 통해 모니터링 포인트의 연기 움직임을 살피지요. 굴뚝 주변의 연기를 보면 공기 중 이상 여부를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풍향에 미세한 변화가 보이면 바로 점검에 들어갑니다. 철저한 감독으로 미세먼지, 공해, 유발 연기, 폐수 등 오염물질의 누출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지요.”

    바스프 홍보 책임자 가레트 리씨의 말이다. 오염물질의 누출이 없으니 퀴퀴한 냄새도 음지 분위기도 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바스프에는 지속가능성센터(Sustainability Center)가 있다. 기후보호와 온실가스 감축 프로젝트만 수행하는 곳이다. 제품 생산부터 오염물질의 사후관리까지 경영 전반에 친환경 개념을 입히는 역할을 한다. 정부기관이 아닌 글로벌 기업이 기후만 따로 관리하는 조직을 만든 것은 바스프가 처음이다. 2008년에는 기후보호책임자(Climate Protection Officer·CPO)라는 직위를 신설해 눈길을 끌었다.

    바스프의 친환경 경영 원칙은 그룹의 6대 가치에도 잘 드러난다. 1.환경보호(Environmental Protection) 2.직원 건강과 안전(Employee Health and Safety) 3.공정안전(Process Safety) 4.유통안전(Distribution Safety) 5.제품 책임의식(Product Stewardship) 6.지역주민 인식과 비상 대응(Community Awareness and Emergency Response) 등이다.

    바스프의 경영철학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틀 안에 있다. 1987년 공개된 뒤 1992년 브라질 리우 정상회의에서 전파된 이 개념은 더는 새롭지 않다. 하지만 개념과 실천은 별개다. 지속가능 발전개념이 경영에서 활용된 역사는 길지 않다.

    환경 경영은 1990년대 초 도입됐으나 다소 주춤했던 게 사실이다. 미국과 일부 개발도상국들은 노골적으로 환경 경영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는 ‘환경 경영은 경제적 이익에 반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은 반대다. 친환경이야말로 회사를 먹여 살릴 비전이라는 컨센서스가 형성됐다.

    독일 BASF

    루트비히스하펜 시내를 라인강이 가로지른다. 라인강은 원료를 옮기는 수로로 활용된다.

    화학기업은 특히 이런 변화에 예민하다. 사회는 화학기업에 일종의 환경 부채의식을 지운다. 화학기업은 다른 업종보다 공정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등 유해물질을 많이 배출한다. 그래서 흔히 화학기업을 환경파괴의 주범이라 말한다. 몸에 해로운 담배를 만든다며 담배회사를 건강파괴의 주범으로 내모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이런 기업들은 직원복지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직원들이 화학회사, 담배회사에서 일한다는 자괴감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근 이 ‘관리대상’은 직원에서 외부로 확대됐다. 이는 친환경 경영과 관련이 있다.

    “바스프의 주주들은 환경, 인권, 복지와 같은 가치에 관심이 많습니다. 투자자의 관심 포인트를 경시하면 기업은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없지요. 그래서 바스프는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책임을 함께 고려하는 것입니다.

    로하스족 소비자도 중요한 원인입니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이들은 환경코드를 고려해 소비합니다. 그 제품이 얼마나 친환경적인지 그 기업의 환경관(觀)은 어떤지를 꼼꼼히 따져 선택하는 것이지요. 특히 이들은 고학력 고소득자인 경우가 많아 구매력이 높고 트렌드와 여론을 선도합니다.”

    바스프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홍보 대변인 바슐라 폰 스테판씨의 말은 바스프가 적극적으로 환경 경영에 뛰어든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바스프는 20년 전부터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왔으며 2001년에는 좀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환경 경영을 위해 이사급이 포함된 평의회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지속가능성센터에서 화학자 등 전문가 23명이 친환경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에너지 통합과 페어분트 시스템

    바스프는 6가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리스폰서블 케어(responsible care)’라는 개념을 두고 있다. 바스프 영업 부서에서 근무하는 최녹영 박사는 “리스폰서블 케어란 환경친화적인 경영을 하겠다는 공약으로 ‘책임 배려’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실천하는 대표 도구로는 ‘페어분트 시스템(verbund system)’ ‘지속가능성 도구(sustainability tool)’ ‘협력업체 평가(assesment of suppliers)’ ‘지역 주민과의 협의회’ ‘탄소 대조표(carbon balance)’ 등이 있다.

    페어분트 시스템이란 한마디로 공장의 폐에너지를 재활용하는 기술.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바스프가 가장 자랑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다음은 바스프 방문자센터에서 일하는 짱쉐치씨의 설명이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전력은 엄청납니다. 전기뿐 아니라 천연가스와 석유 소비량도 어마어마하고요. 바스프가 진출한 50여 개 나라의 각 기지에는 수많은 공장이 있습니다. 이곳 루트비히스하펜에도 공장 200여 개가 있고요.

    각 공장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량은 일정치 않습니다. 그래서 공급된 에너지가 넘치기도 하고 모자라기도 하지요. 페어분트는 한 공장의 남는 에너지를 다른 공장의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시스템입니다. 각 공장을 파이프로 촘촘히 연결해 결과적으로 연료 사용을 줄여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지요.”

    남는 에너지를 재분배한다는 개념은 특별하지 않다. 이렇게 쉬운 원리를 경쟁사가 모를 리 없다. 화학기업뿐 아니라 공장을 운용하는 대부분 기업이 그럴 것이다. 바스프의 페어분트시스템이 유독 유명세를 탈 이유가 있을까. 지속가능성센터에서 근무하는 크뢰머 박사의 말이다.

    “물론 다른 기업도 페어분트와 비슷한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바스프가 제일 ‘잘’ 실천하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바스프는 공장을 지을 때부터 차근히 에너지통합을 준비해왔습니다. 통합이라는 말은 쉽지만 그것을 빈틈없이 고안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수천개의 공장을 효율적인 구도로 배치해서 파이프를 연결해 남는 열을 거의 버리지 않고 착착 옮겨야 합니다. 치밀한 고민과 계획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이렇게 생산된 에너지는 바스프 공장 전체 필요 에너지의 75%를 충당하며, 루트비히스하펜에서만 한 해 1800여 억원의 경비를 절감했다. 그뿐만 아니다. 1990년 이후 온실가스량은 37% 정도 줄었지만 같은 기간 생산은 75%나 늘었다. 페어분트로 화석연료를 줄여 환경보호와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페어분트 시스템과 함께 바스프의 환경 경영을 대표하는 개념으로는 탄소대조표가 있다. 쉽게 말해 탄소량을 회계장부처럼 정리한 것이다. 원재료 구매, 제품 생산, 제품 사용, 폐기의 각 과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량을 제3의 연구기관에 의뢰해 도표화한 내용을 담는다. 다음은 최녹영 박사의 설명이다.

    독일 BASF

    바스프의 경영 철학은 ‘지속 가능한 친환경’으로 요약된다. 친환경은 사람, 자연, 라이프스타일을 모두 포함한다.

    봉사에서 경쟁력으로

    “여기 그래프를 보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보입니다. 플러스는 탄소 배출량을, 마이너스는 감축량을 뜻하지요. 탄소대조표를 보면 하나의 제품이 배출하는 탄소량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실제 탄소량을 측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신력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산출한 내용이라 실제와 거의 같습니다. 이 대조표에는 바스프의 제품 생산과정에 배출하는 탄소량이 나타나므로, 각 제품이 얼마나 친환경적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겁니다.”

    친환경은 여러 방법으로 실천할 수 있다. 크게 제품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만드는 방법과 제품 생산 과정에서 환경을 고려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페어분트 시스템이 에너지 통합으로 이산화탄소량을 줄이는 후자의 방법이라면, 지금 설명하는 지속가능성 도구는 전자와 후자 모두에 해당한다. 크뢰머 박사의 말이다.

    “지속가능성 도구는 하나의 제품을 환경과 경제적 효용의 2가지 측면에서 분석하는 도구입니다. 친환경적이면서 경제적 효용도 좋은 방법을 도출하기 위한 도구이지요. 예컨대 헤어스프레이는 몇 가지 화학 원료를 조합해 만듭니다. 원료 각각의 친환경 정도와 경제적 비용은 모두 다릅니다. 각 원료의 생산, 사용 중, 사용 후 등 제품 생산에 필요한 비용, 그리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해서 산출합니다. 즉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수익을 산출하는 것이지요.

    1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축적한 데이터베이스를 근거로 시뮬레이션 계산을 합니다. 분석 결과 ‘환경과 효용 간 지수’가 도출됩니다. 가장 친환경적이면서 효용이 높은 지점을 구성하는 원료와 방법으로 제품을 만드는 것이지요.”

    지속가능성 도구는 제품의 품질은 물론 제품 공정의 친환경성까지 고려하는 분석틀인 셈이다. 바스프에서 만드는 제품은 수만개. 모든 제품이 이 과정을 거칠까. 바슐라씨는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분석 도구를 한번 활용하는 데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갑니다. 그래서 전략적 결정이 필요할 때만 도구를 적용합니다. 즉 A안과 B안의 친환경성과 효용이 비슷할 때 정확한 선택을 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돌려 선택의 실수를 줄이는 것이지요.”

    20년 전, 아니 10년 전만 해도 환경 경영은 ‘봉사’의 개념으로 통했다. 이제 환경 경영은 선점해야 할 경쟁력이 됐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약속은 기업 주식 가치를 높이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통한다. 일찍이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 기업들이 비용 절감과 브랜드 가치 상승 효과를 누리고 있다. 반도체 제조기업인 에스티 마이크로일렉트릭스와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가 대표적이다.

    바스프는 오랜 기간 환경 경영 노하우를 축적했다. 그리고 이 노하우를 협력사와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 대부분은 안전과 환경에 대한 내부 규정이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 규정을 만들고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바스프는 많은 회사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이른바 제조를 하는 하도급업체들이다. 바스프는 협력업체가 바스프와 같은 수준의 안전·환경 의식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다. 크뢰머 박사의 말이다.

    “바스프는 협력사에 우리의 규정을 지키도록 요구합니다. 협력업체를 감독한 뒤 평가에 따라 규정을 지켜달라고 권고하는 식입니다. 모든 협력업체를 감독하는데, 아시아의 한 협력업체를 방문한 이야기를 해보지요.

    그 회사는 바스프와 좋은 관계에 있었으나 감독 결과 잠재적 위험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위험한 물질을 담은 기계의 뚜껑은 제대로 닫혀 있지 않았고 직원들은 마스크조차 쓰고 있지 않았거든요. 이런 경우 권고와 협력과정을 거쳐 규정을 지켜달라고 요구합니다. 개선해야만 계속 협력관계를 맺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하는 성격입니다.”

    즉, 협력사에 ‘환경 컨설팅’을 제공하는 것이다. 수많은 협력사에 환경지침의 중요성을 설득하는 과정은 사실 번거로운 일이다.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경우 새로운 협력사를 찾는 일도 마찬가지다. 환경 경영은 친환경 제품 개발, 그린 마케팅, 친환경 공급망 관리, 환경성과 평가, 환경 회계 등 경영의 모든 부분에 걸쳐 있다. 크뢰머 박사는 “협력사가 바스프의 일부라는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 또 그들이 실수할 때 발생할 비용을 고려하면 환경 컨설팅은 의미 있는 투자다”라고 말했다.

    윈-윈 하는 지역 상생 경영

    라인강이 가로지르는 루트비히스하펜은 바스프와 함께 성장했다. 1864년 조그마한 화학공장으로 시작해 지금은 라인강 양 쪽으로 세(勢)를 확장했다. 바스프 직원 25% 정도가 이곳에 거주한다. 3,4대에 걸쳐 바스프에 근무하는 근로자 가족도 많다. 바스프의 경영 노하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지역사회와의 상생 경영이다.

    바스프 방문센터에서 일행을 안내하던 짱쉐치씨가 설치된 모형 전화를 집어 든다. “바스프에는 인근 주민을 위한 핫라인 전화가 있습니다. 바스프가 법을 어기거나 공기 중이나 라인강에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전화하도록 한 시스템입니다. 이상 종류별로 번호를 따로 마련해 담당부서와 바로 연결됩니다.”

    주민에게 감시 역할을 맡겨 기업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바스프 가치에도 포함됐듯 바스프는 노동자와 그 가족을 보호하는 것을 환경 경영의 기본이라 생각한다. 직원의 건강과 복지부터 챙겨야 다른 노력도 유의미하다는 판단에서다. “상생 경영 가운데 ‘환경안전협의회’는 바스프의 자랑”이라며 리씨가 설명했다.

    “바스프는 15년 전부터 다양한 분야의 주민으로 구성된 환경안전협의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구원, 의사, 교사 등 여러 직종의 주민이 참여합니다. 1988년 이 협의회는 연례 환경보고서를 만들어 이산화탄소 등 유해물질 배출량을 투명하게 공개했습니다. 협의회를 통해 기업을 투명하게 하는 동시에 지역 주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지요.”

    바스프 여수공장도 한국 화학기업으로선 유일하게 환경안전협의회를 운영한다. 한국은 아직 화학기업이 환경문제를 주민들과 의논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바스프는 지역을 대표하는 각 분야 인사 10여 명을 초청해 정기적으로 환경과 안전에 대해 토론한다. 문을 닫기보다는 여는 편이 서로에게 이롭다는 판단에서다.

    환경 규제는 위기 아닌 기회

    환경관련 규제는 점점 깐깐해지고 있다. 현재 화학업계의 뜨거운 감자는 지난 12월1일 사전등록을 마친 신화학 물질관리제도(REACH·리치)다. 그간 환경 규제는 저탄소에 집중됐었다. 화학물질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리치는 환경 규제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한 증표로 해석할 수 있다.

    리치는 환경을 보호하는 동시에 화학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유럽연합이 만든 신화학물질 관리 제도다. 제품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인체 위해성에 대한 평가에 따라 등록, 신고, 허가, 제한으로 분류된다. 연간 1t 이상 제조해 수입하는 화학물질은 무조건 등록해야 한다. 취지야 좋지만 화학회사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기준 미달인 화학물질이 포함된 제품은 유럽연합 국가로의 수출에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바스프가 리치 기준에 따라 등록해야 할 화학물질은 약 2500종. 그러나 바스프는 “리치는 바스프 제품이 안전하며 환경에 해를 주지 않는다는 확신을 줄 기회”라고 말한다. 첫 단계로 바스프는 2015년까지 자체적으로 자사가 만드는 화학물질의 위해성 평가를 실시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바스프는 다른 기업에 리치와 관련한 컨설팅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크뢰머 박사의 말이다.

    “새로 시작하는 모든 시스템이 그렇듯 리치를 앞둔 기업들도 불안한 마음일 겁니다. 리치는 특히 그 내용이 복잡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규제에 자체적으로 대응하거나 컨설팅 비용을 마련하기 힘든 중소기업에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녹색 분칠(green wash)’이라는 용어가 있다. 환경 경영을 잘하는 것처럼 속여 소비자를 현혹하는 기업을 뜻한다. 환경경영이 시작된 지 20년. 친환경 기업으로 알려진 글로벌 기업도 꽤 많아졌다.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허실에 불과한 기업도 많다. 상당수가 녹색 분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환경은 21세기를 대표하는 시대적 좌표다. 어느 분야라도 친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시대를 통과하는 바스프에 화학회사라는 특성은 위기이기도 하지만 기회의 성격이 더 짙다. 화학산업뿐 아니라 다른 산업의 친환경 지수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기 때문이다.

    바스프는 완제품도 활발히 생산하지만 제품의 소재를 더 많이 생산한다. 예컨대 신소재로 만든 엔진이 있다. 알루미늄과 성능은 똑같지만 무게는 2배나 가볍다. 그 엔진을 단 자동차의 탄소배출량도 그만큼 줄어든다. 바스프가 만든 특수 단열재 네오폴도 마찬가지. 네오폴을 쓰면 연료 소모량을 기존의 8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다. 집 한 채는 미약한 수준이지만 수십만 채의 집에 네오폴을 사용하면 어마어마한 양의 탄소량이 줄어든다.

    우리나라 기업도 사고의 전환을 해야 한다. 환경 규제를 위기나 비용이 아닌 활용할 기회로 보는 발상이 필요하다. 환경 관련 글로벌 스탠더드는 점점 문턱이 높아지고, 유기농 농산물과 환경친화적 화장품을 찾고 기업 이미지를 가려 소비하는 한국의 로하스족도 눈에 띄게 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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