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에코 호텔’ 운영의 선두주자 FAIRMONT

“발상을 바꾸세요. 럭셔리와 친환경은 하나랍니다”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8-12-04 15: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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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텔은 소비산업이다. 친환경은 소박한 것 혹은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호텔이 갖는 화려함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1990년부터 이 고정관념에 도전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호텔 체인이 있다. 바람과 태양의 힘으로 만들어진 전기를 사용하고, 에너지 절약형 설비만 사용하며, 손님들이 보고 버린 신문지를 모아 핸드백을 만들겠다는 회사. 북미지역을 주축으로 세계 19개국에 56개 호텔을 두고 있는 페어몬트다.
    ‘에코 호텔’ 운영의 선두주자 FAIRMONT

    페어몬트 워싱턴 호텔과 이 호텔에서 쓰는 전기를 생산하는 대서양 연안의 풍력발전시설.

    호텔은 묘한 공간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흔들리는 샹들리에와 반들거리는 대리석 바닥, 말끔하게 정리된 카펫으로 호화롭게 디자인된 공간이다. 그 정교하게 만들어진 복도의 어느 끝자락에, 평범한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로 눈치 챌 수 없는 작은 문이 있다. 흡사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 같은 그 문을 지나는 순간, 눈앞에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드라이크리닝 세탁기와 설거지 기계, 환기장치와 냉난방장치, 음식물 재료를 나르는 카트가 끊임없이 굉음을 만들어내는 곳, 바로 호텔이 깊숙이 감춰두고 있는 속살이다. 동화처럼 꾸며진 바깥의 손님들이 편하게 쉬고 놀고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수백명의 사람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바쁘게 뛰어다니는 ‘진짜 세계’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백악관으로부터 10여 분 남짓 떨어진 곳에 자리한 페어몬트(Fairmont) 워싱턴 호텔은 외양으로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호텔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속살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복도마다, 모퉁이마다 걸려 있는 게시물에는 ‘ECO’와 ‘GREEN’ 같은 문구가 가득하다. 휴게실에는 ‘이달의 환경지킴이’라는 종업원의 사진이 자랑스레 붙어 있고, 그 옆에는 직원들의 친환경 아이디어를 모으는 제안함이 다소곳이 걸려 있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시끌벅적한 호텔 주방의 풍경은 영화에서 본 그대로지만, 분위기는 영화보다 더 긴장감이 넘친다. 이곳에서 사용되는 설거지 기계는 가정에서 쓰는 것과는 모양부터 다르다. 컨베이어벨트가 깔린 대형 기계가 언뜻 자동세차장을 연상케 한다. 켜켜이 세워놓은 접시들이 줄지어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얼음을 만드는 기계도 낯설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투명한 얼음조각이 더미가 될 정도로 쌓이면 전용 삽으로 퍼 담아 옮긴다. 연회장이나 레스토랑은 물론 객실 각층으로 올리는 것이다. 한꺼번에 100인분 식사를 데울 수 있다는 오븐이나 회의실 탁자보다 커 보이는 그릴은 애교에 가깝다.



    그런데 이들 기계의 한구석에는 미 환경보호청(EPA)이 인증하는 ‘에너지스타(Energy Star)’ 마크가 붙어 있다. 설거지 기계는 지난해에, 얼음 기계는 지난주에 에너지절약형으로 교체했다는 게 세자르 이레이조 호텔 기술부장의 말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절약형 기계는 일반 기계보다 가격이 5~10% 비싼 대신 전기 소모량은 비슷한 비율만큼 적다.

    “길게 따지면 호텔에도 이득이지요. 아낀 전기 값이 기계 가격 차이를 넘어서는 시점은 기계마다 달라서 일괄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보통 몇 년이면 충분할 겁니다. 그렇지만 웬만한 호텔은 쉽게 엄두를 못 냅니다. 호텔업계는 워낙 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고가의 기계를 샀는데 다음달에 매각되는 수도 있거든요. 손익계산 차원이 아닌 정책적인 방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린 파트너십 프로그램

    한국에는 호텔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페어몬트는 북미 지역에서 잘 알려진 체인이다. 190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문을 연 이래 미국 주요 도시의 중심부에 자리한 럭셔리 호텔로서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특히 19세기부터 캐나다의 관광명소에 호텔 및 휴양지를 갖고 있던 캐내디언퍼시픽 철도 호텔부문에 1990년대 후반 인수되면서 사업 확장을 거듭했고, 현재는 북미는 물론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지역에까지 진출한 글로벌 체인으로 성장했다.

    외국 호텔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10여 년 전부터 ‘수건이나 침대 시트를 갈아야 할지 그냥 둬도 될지 알려달라’는 카드가 객실에 놓이기 시작한 것을 눈여겨봤을지도 모르겠다. 카드를 시트 위에 두면 갈아달라는 표시고 테이블에 두면 그냥 두라는 뜻으로 알겠다는 식이다. 아주 작은 변화, 그러나 결국에는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된 그 작은 생각 바꾸기가 처음 시작된 곳이 바로 페어몬트라고 이들은 자부한다.

    ‘에코 호텔’ 운영의 선두주자 FAIRMONT

    페어몬트 워싱턴 호텔 직원공간에 붙어 있는 갖가지 환경 관련 게시물.

    페어몬트 호텔체인이 ‘그린 파트너십(Green Partnership)’이라는 친환경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은 1990년이다. ‘지구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호텔 운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된 프로그램은 전세계적으로 불어오던 생태환경주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한 시도였다. 기본적으로 소비산업의 대표격인 호텔 분야에서, 특히 럭셔리 브랜드를 지향하는 체인이 ‘친환경’을 말한다는 건 사뭇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었다. 그럼에도 이후 17년간 꾸준히 지속돼온 프로그램은 페어몬트를 자타가 공인하는 호텔산업 환경경영의 선두 사례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페어몬트 호텔체인은 본사에 환경사업부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전세계 산하 호텔에서 운영되는 환경팀(Green Team)을 관리하고 독려하기 위한 부서다. 환경사업부는 계절마다 발행되는 소식지를 통해 여러 지역 호텔의 개선사례를 공유하고 이를 현지 사정에 맞게 적용하도록 한다. 대체에너지 사용, 자원 재활용, 에너지 소비 절감 등 각 부문에서 모인 아이디어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리를 잡았고, 이로 인해 페어몬트는 2000년대 들어 각국의 환경담당 정부기관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관련단체로부터 수차례 공로상을 받았다.

    페어몬트 워싱턴 호텔 홍보팀장 다이애나 벌저씨는 “환경에 대한 고민은 선택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전세계 19개국 56개 페어몬트 호텔에서 일하는 2만6000여 명의 모든 종업원이 호텔 운영과 경영을 친환경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는 것. 직원들의 친환경 마인드를 고취시키기 위해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들에게 지하철 패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의 조치들도 한몫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페어몬트가 프로그램 시작과 함께 제작한 직원교육용 가이드북은 세계 곳곳의 호텔들이 어떻게 친환경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지 그 목표와 세부절차를 꼼꼼히 다루고 있다. 이후 두 차례의 개정을 거친 가이드북은 다른 호텔체인으로 퍼져나갔고, 숙박업 이외의 관광분야에서도 벤치마킹을 위해 자료를 요청하거나 방문하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ECO’와 ‘GREEN’이 시대의 유행어가 된 덕분이었다.

    페어몬트의 환경 관련 노력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에너지 사용 부분이다. 호텔별로 수천개의 전구를 에너지 저소비형으로 교체해 연간 수십만 KW의 전기사용량과 탄소발생량을 줄여온 것은 기본에 속한다. 1999년부터 풍력 및 유수발전 등 대안전기로 전체 전기 소비의 50%를 조달하고 있는 앨버타의 샤토레이크 호텔, 독창적으로 고안해낸 폐열 회수장치로 난방을 감당하고 있는 밴쿠버의 워터프론트 호텔 등 에너지 소비의 패턴을 바꾸자는 것이 최근 페어몬트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방향이다.

    문화재를 친환경적으로?

    물론 간단한 일이 아니다. 고성(古城)을 호텔로 개조한 퀘벡의 샤토프랑트낙, 개장 100년을 넘긴 샌프란시스코, 1889년에 세워진 런던의 사보이, 1906년 세워진 스위스 몽트뢰팰러스 등 문화재에 필적하는 옛 건축물이 많기 때문. 아무래도 효율이 떨어지고 개조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는 게 호텔 측의 설명이다.

    기자가 방문한 보스턴의 페어몬트 코플리플라자 호텔은 보스턴 시내 중심부인 백베이 지역의 코플리 광장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공공도서관과 유서 깊은 트리니트 교회를 이웃하고 있는 이 호텔은 1920년에 세워졌다. 천장화와 황금빛 조명, 콘시어지 데스크 옆에서 나른하게 잠들어 있는 검은 마스코트견(犬) 캐티까지, 훑어본 느낌만으로도 친환경이나 에너지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이 호텔 수전 웬즈 홍보팀장의 설명이다.

    “어려움이 있지요. 그 시절에 에너지 효율을 생각하며 건물을 지었을 리도 없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효율이 떨어진 부분이 있습니다. 유서 깊은 인테리어나 구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를 보완해나가는 작업이 만만치 않지만, 고민하면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호텔 곳곳 수천장의 유리를 열손실이 낮은 제품으로 교체하는 것 같은 방식이지요.”

    1985년에 세워진 페어몬트 워싱턴의 경우 이러한 고민은 적은 편이다. 서두에서 설명한 각종 기계 교체로 객실 415개의 이 호텔은 2006년 한 해 동안 16만KW, 전체 전기소비량의 2%를 줄였다. 환기장치와 냉난방시설, 냉장시스템 등을 최근 2년 사이에 에너지 고효율 설비로 교체한 결과까지 포함하면 돈으로 따져도 연 17만달러 가까이 절약하게 된 셈이다. 수억 달러 단위가 오가는 대형 장치산업에 비교하면 작은 숫자지만 중형 호텔로서는 만만찮은 금액이다.

    이 같은 효과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각 페어몬트 호텔은 외부 전문기관으로부터 매년 에너지 절감현황에 관한 모니터링을 받고 있다. 앞서의 수치들도 모두 그 결과로 확인된 것이다. 올해부터는 전문기관으로부터 전체 호텔의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저감 노력, 개선결과 등을 유엔 기준에 맞춰 실사받는 ‘탄소 추적제도’도 실시하기로 했다.

    ‘에코 호텔’ 운영의 선두주자 FAIRMONT

    페어몬트 보스턴 코플리플라자 호텔 매장의 신문지로 만든 핸드백.

    이와 함께 페어몬트 워싱턴은 2007년 3월부터 전체 전기사용량의 10%를 풍력발전에서 조달하고 있다. 북동부 연안지역의 프로펠러 발전시설에서 생산된 전기를 펩코사(社)를 통해 매년 300만KW씩 사용하고 있는 것. 동부지역에서 자유의 여신상 조명, 미 에너지보호청 청사, 국무부 청사 등과 함께 대안발전 에너지를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대형건물이 되었다. “아직까지는 대안전기의 비용도 높고 정부 등으로부터 별다른 인센티브도 없지만 ‘이왕이면 대안에너지를 쓴다’는 방침에 따라 내려진 결정”이라는 게 호텔 측의 설명이다.

    고객에겐 의무 아닌 선택

    페어몬트 호텔 체인의 친환경 노력은 객실에서도 이뤄진다. 수건과 침대보 교체 카드는 시작에 불과하다. 물 소비량이 적은 샤워기와 변기, 에너지 절약형 전구로 설비를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서, 투숙객들이 쓰고 남은 샴푸와 보디로션을 모아 노숙자 단체 등에 보내기도 한다.

    페어몬트 호텔의 객실에는 쓰레기통이 두 개씩 놓여 있다. 하나는 일반 쓰레기용, 다른 하나는 재활용 쓰레기용이다. 호텔 뒤편에는 빈 병과 알루미늄 캔, 신문지 등 재활용품을 종류별로 모으는 집적장이 마련돼 있다. 재활용품 분리수거가 일상화된 한국에서는 낯익은 풍경이지만 아직 전국적인 관련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은 미국에서는 전례가 많지 않은 시도다.

    익숙지 않은 고객 입장에서는 불편하지는 않을까. 사람에 따라서는 뜨거운 물줄기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 샤워기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오랜만에 떠난 여행길에서까지 재활용품을 따로 버리는 귀찮음을 달가워할까. 하물며 럭셔리를 표방한 호텔에서. 페어몬트 보스턴의 웬즈 팀장의 설명이다.

    “전체적인 콘셉트는 의무나 강제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겁니다. 재활용품을 따로 버리지 않는다고 해서 벌금을 매기는 것은 아니니까요. 30분씩 샤워를 하고 싶은 분들은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고요. 다만 호텔은 고객에게 여행길에서도 환경을 배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개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환경과 럭셔리 호텔이라는 이미지를 함께 유지할 수 있는 거죠.

    오히려 대부분의 고객은 그런 기회를 매우 반가워합니다. 지구를 생각하는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자부심도 느낄 수 있으니까요. 특히 요 몇 년 사이에는 그런 분위기가 일종의 유행이 됐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호감을 갖는 걸 느낍니다. 불편하다는 고정관념 대신 ‘앞서 간다’고 생각한달까요.”

    시대의 취향이 바뀐다

    이러한 고객 취향의 최근 트렌드는 환경 개념이 마케팅 전략으로 확장되는 이유가 되고 있다. 페어몬트 워싱턴이 올해 문을 연 스위트룸 ‘렉서스 하이브리드’는 벽재와 천장 등 인테리어를 재활용 소재로 꾸미고 카펫이나 침구류도 대나무 섬유 등 친환경 소재로 제작하는 등 ‘환경’을 핵심 콘셉트로 삼았다. 심지어는 벽에 걸린 그림조차 폐자동차나 폐의류에서 나온 재료로 만들었을 정도. ‘Eco-Chic’로 명명된 이러한 분위기는 최근 미국 고급 소비자층이 친환경을 세련된(chic) 것으로 인식하는 기호 변화를 반영한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대도시에 자리한 페어몬트 호텔들이 운영하고 있는 ‘Eco-Meet’ 프로그램도 같은 취지다. 호텔에서 세미나나 컨벤션이 열릴 경우 모든 기자재나 식재료, 찻잔에 이르기까지 친환경 개념으로 준비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린터 출력물 사용을 최소화하되 굳이 써야 할 경우에는 재활용지를 쓴다든지, 1회용품을 없애고 음식물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 식단을 꾸리는 등의 방식이다.

    페어몬트 보스턴의 레스토랑 ‘오크룸’은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엿봤음직한 지난 세기 미국의 상류층 문화를 압축해놓은 풍경이다. 짙은 색 떡갈나무로 꾸민 실내장식과 테이블, 의자는 한눈에도 이 레스토랑의 고급화 콘셉트를 가늠케 한다. 메뉴판 하단에는 ‘호텔 정책에 따라 모든 메뉴는 지역에서 생산한 유기농 재료만을 사용했다’는 문구가 친절하게 적혀 있다. 전세계 모든 페어몬트 호텔에서 2007년 3월부터 전체 식단에서 인공트랜스지방산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여져 있다.

    지역에서 재배된 야채나 향신료, 근교에서 잡힌 생선 등을 제철에 공급받기 위해 이 호텔 주방 한쪽 벽에는 뉴잉글랜드 지역 전체의 지도가 붙어 있다. 버몬트산(産) 치즈처럼 유명한 식재료의 종류와 가장 맛이 있을 시기를 각 도시 지명 위에 적어놓아 요리사들이 숙지할 수 있도록 한 것. 그린팀 멤버이기도 한 호텔 수석주방장 로런트 폴린씨의 작품이다.

    ‘에코 호텔’ 운영의 선두주자 FAIRMONT

    페어몬트 워싱턴 호텔의 설거지 기계와 ‘에너지스타’ 인증마크.

    페어몬트 워싱턴의 경우 아예 호텔 중앙의 허브 가든에서 직접 향신료용 채소를 재배한다. 역시 주방장이 직접 관리하는 이 텃밭은 연회장과 본 건물을 연결하는 대형 화단의 한 켠을 장식하고 있다. 화단에서 야외 연회가 있는 날에는 요리사들이 텃밭에서 바젤 같은 채소를 따는 모습을 고객들이 직접 볼 수도 있다. 페어몬트 본사 홍보담당자인 홀랜드 로리씨의 설명이다.

    “여건이 허락하는 호텔에서는 인근 농장과 계약을 맺고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퇴비로 만드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사용한 식용유는 바이오디젤 연료를 제작하는 공장으로 보내고요. 보스턴 호텔만 해도 매달 14t의 음식물을 퇴비농장에 보냈습니다. 연회에서 사용한 양초도 버리지 않고 다시 공장으로 보내 원료로 사용하지요. 살충제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골프장이나 리조트별로 환경친화적인 관광코스를 개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페어몬트 호텔이 채택하고 있는 환경정책은 구매 분야에서도 이뤄진다. 호텔에서 사용하는 사무용지를 재활용 종이 제품으로 구입한다거나, 소모품의 경우 되도록이면 각 호텔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의 상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해 운송과정에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 대표적이다.

    페어몬트 보스턴의 기념품 매장은 이러한 방침이 구체적으로 반영된 사례다. 가게에는 산소배출량이 많아 온실효과 저감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대나무 소재의 스카프와 와인병으로 만든 컵, 오래된 레코드판을 이용해 제작한 그릇과 시계 등 환경단체 상점에서나 만날 수 있는 제품으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 압권은 폐신문지로 만든 핸드백. 현재는 뉴욕의 제작자가 납품하고 있지만 연말까지 보스턴 인근의 제작자를 섭외해 페어몬트 호텔 객실에서 나온 바로 그 폐신문으로 가방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1년 전부터 이 매장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콘스탄스 카먼씨는 호텔 내에서 소문난 환경 지킴이다. 직장을 옮기는 데 페어몬트의 친환경 노력이 중요한 고려대상이었다고 말할 만큼 열성적이다. 보스턴 코플리플라자 호텔 그린팀의 일원으로 늘 매장에 들여올 친환경 상품을 고민하고 있는 그녀의 생각은 듣기에도 남다르다.

    ‘에코 호텔’ 운영의 선두주자 FAIRMONT

    페어몬트 워싱턴 호텔의 친환경 스위트룸.

    “이미 주류가 됐다고 봐요”

    “환경에 대한 배려는 미국 사회의 주류(main stream)가 됐다고 봐요. 처음에는 이익이나 이미지를 위해서 시작됐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된 거죠. 그건 우리 호텔뿐 아니라 모든 숙박업계, 모든 산업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운 좋게도 호텔업계에서는 페어몬트가 가장 먼저, 가장 열심히 해오고 있을 뿐이지요.”

    페어몬트의 그린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꼼꼼히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사안을 하나로 묶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비용 절감이고 다른 하나는 고급화다. 에너지 절약형 설비나 조명기구의 설치는 굳이 환경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경비를 줄여야 하는 기업이라면 어디나 신경 쓸 법한 내용이다. 유기농 자연산 재료만을 사용한다는 레스토랑은 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건강 열풍 속에서 고급음식점을 지향하는 레스토랑이라면 어디서나 표방할 수 있는 개념이다.

    비즈니스와 당위가 만나는

    페어몬트의 ‘영리함’은 여기서 드러난다. 비용절감이나 고급화의 연장선상일 수도 있는 부분별 프로그램을 묶어 ‘친환경’이라는 이미지로 묶어내는 발상의 전환이다. 그러한 이미지가 자사의 브랜드를 더욱 더 차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1990년, 남들보다 훨씬 일찍 짚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한번 만들어진 이미지가 다시 그러한 흐름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는 순환구조가 지난 18년간 이어져온 것이다.

    외부단체와 연계사업을 벌이거나 각종 환경·야생동물보호단체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 역시 이 같은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호텔 안에서 환경에 신경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 전체가 이산화탄소 저감이나 희귀동물 보호 등 전지구적인 관련 사업에서 앞장선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페어몬트는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WWF)의 기후변화방지 프로그램, 세계유산동맹(WHA)의 ‘지속 가능한 관광’ 프로그램, 내셔널지오그래픽 파트너 프로그램 등에 상당한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생각은 지구적으로 행동은 지역에서(Think globally and act locally)’라는 전세계 환경운동 진영의 공동 캐치프레이즈를 이 회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페어몬트 워싱턴 호텔 벌저 팀장의 말이다.

    “우리의 환경 프로그램이 비용절감이나 이미지 구축 같은 비즈니스상의 필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요. 종업원들은 모두 이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열성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거니까요. 지구와 이웃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할까요. 시대의 흐름이 분명 호텔산업에도 그러한 자세를 요구하고 있고요.”

    그 순간 필자는 이른바 ‘저탄소 경제’ 패러다임의 한 자락을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미 이건 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환경문제에 신경 쓰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지나간 시절의 고정관념일 뿐이고, 이제는 ‘환경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돈을 지출하게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의무적 당위성과 사업적 필요성이 이미 별개의 것이 아닌 세상, 페어몬트가 보여준 21세기 경제 시스템의 명징한 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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