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인터뷰

재산분쟁 전문 박 철 판사가 들려주는 ‘따뜻한 법’ 이야기

“‘사랑’이라는 단어 지우고 판결하면 삶의 진실 놓칠 수 있어”

  • 이은영│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재산분쟁 전문 박 철 판사가 들려주는 ‘따뜻한 법’ 이야기

3/7
대한주택공사는 관료적인 업무처리 관행을 갖고 있습니다. 당시 딸이 주택공사에 찾아갔더니 까다로운 서류를 요구하면서 아버지 이름이 아닌 본인 이름으로 임대계약을 체결하면 당일 곧바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노인이 재산상 이득을 얻기 위해 소송을 걸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은 그 사건에서는 옳은 것이 아닙니다. 이 판결을 갖고 ‘아름다운 판결’이라고들 하던데 진짜 아름다운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은 그 판결에 적용된 ‘임대주택법’이에요.

(임대주택법은)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법입니다. 노인은 75세였어요.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분입니다. 10년 동안 부인의 병수발을 들었고 딸한테 마음 편하게 몸을 의탁할 만큼 넉넉하지 않았어요. 집을 구하러 다니는 것도, 이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임대주택법은 바로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정된 임대주택을 제공하려고 만든 따뜻한 법입니다. 저는 법의 취지와 목적에 따라 판단했을 뿐입니다.”

당시 박 판사가 법정에서 읽었던 판결문은 지금도 법원 주변에서 회자된다.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의 소장에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하기 때문에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옷이 안 맞으면 수선해줘야”



▼ 판결문이 시(詩) 같습니다.

“나름대로 멋을 부려본 겁니다. (판사는) 매일 책상에 앉아서 판결 쓰는 게 직업이다 보니 때로는 판결에 멋을 부려보고 싶어지곤 합니다. 그 판결을 쓸 무렵 퇴근 후 대전에 있는 도솔산에 올라 구상했어요. 산 위에서 가을 들판을 바라보니 그런 시적인 표현이 떠올랐어요. 사실 이 판결에서 제가 정성을 쏟은 것은 그 대목이 아닙니다. 가장 세심하고 사려 깊은 사람도 세상사를 모두 예상하고 대비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가장 사려 깊고 조심스럽게 만들어진 법도 세상사 모든 사안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의 지침을 제공하기는 어렵습니다.

법은 장래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건을 예상하고 미리 해결방안을 만들어두는 일종의 기성복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다양한 치수의 옷을 만들어두어도 예상을 넘어 팔이 더 길거나 짧은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지요. 미리 만들어둔 옷에 맞지 않다고 해서 ‘당신의 팔이 너무 길거나 짧은 것은 당신의 잘못이니 당신에게 줄 옷은 없다’고 말해선 안 됩니다. 다소 번거롭더라도 옷의 길이를 조금 늘이거나 줄여 수선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판사들은) 입법부가 만든 법률을 최종적으로 해석하고 집행하는 법원이 어느 정도 수선의 의무와 권한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회가 만든 법률을 제멋대로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률이 본래의 의미를 갖도록 보완하는 것이고 대한민국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체제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거죠.”

재산분쟁 전문 박 철 판사가 들려주는 ‘따뜻한 법’ 이야기

2008년 11월11일 ‘한 부모 가정 자녀를 걱정하는 진실 모임’ 회원들이 조성민의 친권회복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음주단속을 왜 하는지를 설명할 땐 법의 원칙을 강조하셨는데, 지금은 법적 논리에서 멀어진 것 같습니다. 부모상을 당한 상주가 장례식장 근처에서 잠깐 음주운전을 했다면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봐줘야 할까요?

“판사는 법 논리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거죠. 논리에 집착하면 정의가 더 멀어질 수 있어요. 법은 기계적이고 수학적인 논리로만 해석해선 안 됩니다. 논리라는 것이 인간의 사고를 올바른 쪽으로 이끌어가는 것이지만 이상한 논리도 만들어질 수 있는 거예요. 법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가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법은 전문화된 상식이어야 하는 거죠. 많은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법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원칙과 논리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학의 법률가들은 아카데미컬한 법의 이상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법관은 달라야 해요. 설득력을 요구해요. 어떤 결론이든지 편견 없이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저는 고등법원에 와서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를 취소당하고 생계수단인 개인택시운송사업면허까지 취소당하는 사건에서 온정을 주장하는 판사와 법대로 재판해야 한다는 판사의 대립적인 견해가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언론은 한발 더 나아가서 음주운전자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범이나 살인미수범 정도로 보면서 음주운전자에 대해 적의를 감추지 않기도 해요. 솔직히 판사로서 온정보다는 일관된 원칙을 따르는 것이 더 좋은지, 아니면 불쌍한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기 위해 원칙을 다소 희생시키는 것이 좋은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어요.”

친권 분쟁에서 중요한 건 자녀의 복리

최근 고(故) 최진실의 전 남편 조성민씨와 동생인 최진영씨 사이에 벌어진 친권 다툼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았다.

3/7
이은영│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목록 닫기

재산분쟁 전문 박 철 판사가 들려주는 ‘따뜻한 법’ 이야기

댓글 창 닫기

2021/05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