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토의 90% 정도가 토지 등록이 안 되어 있는 점이 그것이다. 토지 등록은 국가가 정확한 측량으로 땅의 경계를 명확히 하여 개인의 토지소유권을 법적으로 확정해 주는 일이다. 196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자메이카에선 사유지가 많이 늘어났으나 토지측량기술과 토지관리제도의 낙후 등으로 땅값에 비해 등록비용이 비싼 편(필지당 3000달러)이어서 지주들이 등록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 나라에는 한국의 등기부등본, 토지대장 같은 것이 별로 없다. 별일이 아닌 것 같지만 자메이카 정부는 이 문제로 경제발전에 큰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고 인식했다.
자메이카의 고민 해결
우선 토지를 담보로 한 은행 대출이 불가능하고 심지어 매매도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자메이카 농림장관의 설명에 따르면 커피·사탕수수 농업이 국가의 주력산업인 상황에서 토지 미등록 문제로 인해 농업자본 축적, 투자 촉진, 부동산 거래 활성화, 국가 경제발전이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자메이카 정부는 마침내 대한지적공사에 토지등록사업의 대행을 맡기기로 했다. 지적공사의 입장에서는 지적측량사업의 첫 번째 중남미 수출인 셈이었다. 지난해 11월3일 자메이카 총리공관 회의실에서 이성열(李星烈·59) 대한지적공사 사장은 브루스 골딩 자메이카 총리와 ‘토지등록 및 전산화 사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지적공사는 2010~11년 현지법인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엘리자베스 주를 대상으로 1단계 시범사업(500만달러, 2년)을 시행한다. 이어 자메이카 전 국토를 대상으로 2단계 사업(1억달러, 6년)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양해각서 체결 때 브루스 골딩 총리는 이성열 사장 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왔다. “오는 4월 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하고 시정연설을 하는데 이때 시범사업의 결과로 자메이카 농민 100명정도가 타이틀(title·한국의 등기권리증에 해당)을 받았다는 내용을 연설문에 꼭 넣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사장 측은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했다. 지적공사 관계자는 “우리의 기술력으로 자메이카의 고민이 해결되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했다.
잘못을 ‘지적’하는 곳?
2월4일 서울 여의도 대한지적공사 사무실에서 이성열 사장을 인터뷰했다. 경남 마산 출신인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미시간대 정책대학원 경제·행정학 석사를 졸업했으며 1976년 17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해 행정자치부 인사국장, 전북 행정부지사, 차관급인 소청심사위원장 및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을 지냈다. 2007년 9월 그는 노무현 정부에 의해 지적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전(前) 정권의 공기업 사장 상당수가 물러났으나 그는 유임되었는데 이와 관련해 부처에서는 “공보관을 오래해서 친화력이 있고 개혁성이나 경영성과가 뚜렷하다”는 평가가 있었다고 한다.
공기업 사장은 명함에 개인적인 연락처는 써두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이 사장이 건넨 명함에는 휴대전화 번호가 찍혀있었다. 이 사장은 “OOO 기자 하고 대학 과 선후배 관계 맞죠?”라고 물어왔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자 그는 “제가 공보관을 두 번해서 기자들은 좀 많이 아는 편”이라고 했다. 그에게 “지적공사의 고민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는 “국민이 지적공사를 잘 모른다는 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