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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 마지막회

송광사 들머리 숲길

불국토 앞 수양공간 온기에 몸과 마음은 깃털이 되고

  •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송광사 들머리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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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눌의 지팡이와 고향수

고향수는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1210)이 사용하던 지팡이를 꽂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내용은 보조국사가 유명을 달리했을 때, 잘 자라던 이 향나무도 말라 죽었다는 점이다. 보조국사가 남겼다는 “너와 나는 생사를 같이하니, 내가 떠나면 너도 그러하리라. 다음날 너의 잎이 푸르게 되면 나 또한 그런 줄 알리라(爾我同生死 我謝爾亦然, 會看爾靑葉 方知我亦爾)”라는 이야기 때문인지 몰라도 송광사 대중 스님들은 이 고사목을 끔찍하게 아낀다.

송광사를 찾는 방문객 대부분이 능허교와 우화각의 아름다움에 취해 이 고사목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친다. 나 역시 송광사를 몇 차례 드나들면서도 이 고사목의 존재를 몰랐다. 나무와 숲에 초점을 맞춰 절집을 순례한 덕분에 최근에야 이 고향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고, 명산대찰의 절집마다 전해 내려오는 지팡이 설화의 의미를 새삼스레 깨치게 됐다. 나무를 숭배한 우리 조상들의 자연관을 불교가 배척하기보다 포용한 사례였음을.

송광사의 고향수는 1751년에 간행된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도 기록돼 있고, 왕실에 보고하고자 1886년에 간행된 ‘송광사 지도’에도 ‘불생불멸(不生不滅)’이란 글자 곁에 새겨진 고향수를 찾을 수 있다. 고향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노산 이은상과 송광사 인암 주지 스님의 시조 대결은 사뭇 흥미롭다. 먼저 노산 이은상이 운을 뗐다.

어디메 계시나요 언제 오시나요



말세 창생을 뉘 있어 건지리까

기다려 애타는 마음 임도 하마 아시리



노산의 시조에 화답한 인암스님의 시조는 다음과 같다.

살아서 푸른 잎도 떨어지는 가을인데

마른 나무 앞에 산 잎 찾는 이 마음

아신 듯 모르시오니 못내 야속합니다

고향수가 푸른 잎을 싹틔우며 새롭게 생명을 시작하면, 조계종을 창시한 보조국사 지눌스님도 환생할 것이란 믿음 때문일까. 지난 수백 년 사이에 몇 번의 화재로 절집은 결딴났지만, 6.7m 높이의 말라비틀어진 이 향나무는 오늘도 변함없이 제자리에서 송광사를 지켜보고 있다. 도대체 한국인에게 나무란 어떤 존재란 말인가.

조계종의 발상지인 송광사는 신라 말기 혜린(慧璘)스님에 의해 조계산 자락(처음에는 송광산이라 불렀다)에 창건된 이후, 고려시대에 보조국사 지눌스님에 의해 대찰로 자리 잡게 됐다. 특히 보조국사의 법맥을 이어받은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국가나 임금의 사표(師表)가 되는 국사를 열여섯 분이나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혔다. 임진왜란과 여수·순천10·19 사건, 6·25 전쟁을 거치면서 사찰의 중심부가 여러 번 불탔지만, 1980년대에 대웅전을 비롯해 30여 동의 전각과 건물을 새로 짓고 중수해 오늘과 같은 승보종찰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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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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