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호

“환자는 초짜 유령의사의 ‘마루타’였다”(2년차 월급의사)

강남 성형공화국의 불편한 진실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14-04-16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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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 120건 수술” 자랑, 알고 보니 ‘대리의사’가 집도
    • 일반 의원의 20배 수면마취제 투여…수술 중 다른 환자 상담
    • 불법 브로커 활개, 수술비 10배 뻥튀기하기도
    • “스타 C씨, 자살 전날 밤 프로포폴 맞고 있었다”
    “환자는 초짜 유령의사의 ‘마루타’였다”(2년차 월급의사)
    최근 몇 달 새 서울 강남과 부산 등지에서 성형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여러 건 발생했다. 한 여고생은 뇌사했다. 일련의 사태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대한성형외과의사회(이하 의사회)는 4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일부 병원의 비윤리적인 운영행태와 의료사고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죄합니다. 썩은 싹을 과감히 도려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나갈 것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의사회 임원들 사이에서는 일부 성형외과의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의사회가 성형외과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 차상면 의사회 부회장은 “최근 G성형외과에서 발생한 여고생 의료사고를 계기로 의사회에서 자체적으로 진상 조사를 벌인 결과, 일부 병원의 운영방식과 의료행위의 심각성이 충격적인 수준이었다”며 “이를 수사 당국에 고발해 성형시장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를 뿌리 뽑고 성형외과의사들의 자정 노력을 촉구하고자 의사회가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G성형외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고생 뇌사사건의 진상

    G성형외과는 ‘성형 1번지’ 강남에서도 ‘빅5’ 중 하나로 꼽히는 대형병원이다. 2004년 유모 병원장이 서울 서초동에 개원한 후 강남 여러 곳과 부산에 G성형외과가 생겨났다. 지난해 12월 9일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신축한 지상 15층, 지하 6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는 본점이 개원했다.



    문제의 의료사고가 발생한 것도 바로 이날이다. 졸업을 앞둔 여고생 정모(19) 양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지 3주 만이던 이날 오후 이곳에서 쌍꺼풀을 만들고 코를 높이는 수술을 받다가 뇌사에 빠졌다. 정양의 수술을 맡은 조 원장이 당초 예상한 수술 소요시간은 모두 3시간이었지만 정양은 6시간 가까이 수술대에 누워 있다 인근 종합병원으로 옮겨졌다.

    여러 관계자의 진술을 토대로 살펴본 사건의 정황은 이렇다. 정양은 이날 오후 4시 40분경 조 원장을 만나 눈과 코 수술에 관한 설명을 들은 후 건물 지상 3층에 있는 수술실에서 오후 5시경부터 쌍꺼풀수술을 받았다. 조 원장은 정양에게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을 투여해 잠을 재운 후 오후 6시 20분경 수술을 마쳤고, 다른 환자 2명을 상담하러 다녀와 오후 7시경부터 남은 코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오후 9시경 조 원장은 5분 전까지 작동하던 산소포화도측정기가 꺼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때부터 약 20분간 다른 기계로 교체하고 마취과 의사를 불러 응급조치를 취하자 오후 9시 20분경 정양의 산소포화도가 다시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그때도 정양은 수면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조 원장은 정양을 바로 종합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유 병원장에게 말했고, 유 병원장은 다른 의사를 시켜 오후 9시 40분부터 약 20분간 수술이 덜 끝난 정양의 코밑 절개 부위를 마저 봉합한다. 그 사이 마취과 의사는 정양에게 전신마취제를 투여했다. 수술이 끝난 후 정양을 깨우려는 노력이 40분간 계속됐지만 정양은 결국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오후 10시 45분경 119구급차에 실려 나갔다. 정양이 입원한 종합병원에서는 정양의 뇌사상태를 정밀검사한 후 ‘산소 부족에 따른 뇌손상’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하나같이 정양의 수술과정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수면마취 상태가 수술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도록 프로포폴을 다량 투여한 점, 수술 도중 집도의가 다른 환자를 상담하려고 자리를 비운 점, 산소포화도가 정상으로 돌아온 즉시 환자를 종합병원으로 보내지 않은 점, 의식이 없는 환자를 전신마취한 점은 같은 의료인으로서 납득하기 힘든 비상식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30년차 성형외과 전문의인 홍종욱 세민성형외과 원장은 “여고생이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한 걸 보면 마취 사고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프로포폴은 성형외과에서 “마취도 잘되고 깨어날 때의 느낌도 개운한 수면마취제”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를 오·남용하면 수면 도중 무호흡 상태에 빠지기 쉬워 눈 수술을 할 경우 5분 내외로 재울 양을 투여하는 게 일반적이다.

    “중국에서도 프로포폴 유행”

    프로포폴은 불투명한 흰색을 띠어 이른바 ‘우유주사’로 불린다. 단기간에 수차례 과량(過量)을 맞으면 의존성이 강해져 계속 맞고 싶고, 잠을 못 이루고, 우울증에 빠져 자살 충동을 느끼는 등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정부 당국은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사인(死因)이 프로포폴 과다 투여로 판명난 후 2011년 2월 프로포폴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의료행위 외에 쓸 수 없게 특별관리한다. 이전부터 프로포폴의 탁월한 수면 효과를 이용해 평소 스트레스가 많고 잠이 부족한 연예인과 유흥업소 종사자를 상대로 ‘프로포폴 장사’를 해왔던 일부 성형외과는 검찰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하지만 지금도 프로포폴이 고액에 거래된다는 풍문이 심심찮게 들린다. 한 성형외과 원장은 “프로포폴 한 병당 공급 가격은 1만 원 내외”라며 “마약류가 되기 전에는 그게 20만~50만 원에 거래됐는데 지금은 걸리면 큰일 나니까 부르는 게 값이라더라”고 전했다.

    마약류의 특성상 프로포폴도 한번 중독되면 끊기가 쉽지 않고 후유증도 심하다. 프로포폴 불법 투약 경험이 있는 L씨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예전에 내가 다니던 성형외과에서 영양제처럼 생각하고 프로포폴을 맞는 연예인을 여럿 봤다”며 “스타 C씨는 자살하기 전날 밤에도 그곳에서 프로포폴을 맞고 있었고, 자살한 스타 P씨도 그 성형외과의 단골고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프로포폴에 빠져 극심한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었고 시도 때도 없이 자살 충동을 느꼈다. 한번은 집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수면제뿐 아니라 보이는 약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가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강남의 C성형외과는 처음 몇 번은 프로포폴 주사를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한 대씩 놔주다가 ‘중독’ 수준이 되면 구입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프로포폴 장사’를 했다. 미용성형을 하는 피부과와 산부인과 중에도 프로포폴을 팔아 재미를 본 곳이 많다. 프로포폴 장사를 하던 성형외과 의사들이 최근 중국 시장으로 눈을 돌려 “프로포폴이 중국에서 유행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 중국 소식통의 전언은 이렇다.

    “중국에서 한국이 성형수술을 가장 잘한다고 소문나 성형외과 의사들이 중국 출장을 많이 간다. 병원에 한국인 성형외과 의사를 둬야 장사가 될 정도다. 국내 성형 시장이 최근 의료사고로 위축되다보니 대놓고 돈벌이를 하러 간 한국 의사들이 프로포폴을 유행시킨 측면이 있다.”

    그는 “중국에서는 프로포폴을 많이 맞아도 불법이 아니라서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 문제가 생겨 한류(韓流) 이미지까지 나빠질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마취의 힘

    프로포폴의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다른 수면마취제를 쓰는 성형외과가 늘고 있다. 홍 원장은 10년 전부터 프로포폴 대신 미다졸람이라는 수면제를 사용해왔다. 여기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프로포폴을 수면마취제로 썼는데 환자가 갑자기 숨을 안 쉬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바로 깨우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하다. 그때부터 내가 직접 수면마취를 시킬 땐 미다졸람을 쓴다. 양을 조금 쓰니까 환자가 금방 깨고, 세 번 연속으로 투여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국내 성형외과에서 수면마취제를 쓰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 국소마취제를 수술 부위에 주입할 때 환자가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려고 사용한 것이 수면마취제다. 코나 눈을 수술할 때는 환자를 5~10분 재울 양을 투여하는데, 수면마취를 안 해도 무방하다는 게 전문의 소견이다. 홍 원장은 “환자가 깨어났을 때 불편함을 느끼면 투여량을 절반씩 줄이며 세 차례까지 수면마취를 더 시도하기도 하지만 연속으로 30분 이상은 재우지 않는다”고 했다.

    환자를 30분 넘게 재워 수술할 때는 무호흡 등 응급상황에 대비해 직접 수면마취를 하기보다 마취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수술에 오래 집중하다 보면 환자의 산소포화도를 수시로 체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양악수술이나 얼굴윤곽술을 할 때도 마취과 전문의에게 맡겨야 한다.

    쌍꺼풀을 만들거나 코를 높이는 수술을 할 때는 전신마취를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되지만 3시간 넘게 소요되는 큰 수술은 전신마취가 불가피하다. 수면마취는 간단해서 의사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전신마취는 반드시 전문의의 손길이 필요한 영역이다. 홍 원장은 “전신마취는 환자의 혈압, 맥박, 심박동수까지 다 고려해 수술받기 좋은 최상의 마취 상태를 만들어주는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라며 “전신마취를 할 때 마취과 의사의 역량이 나온다”고 했다.

    실력 있는 마취전문의는 대부분 여러 성형외과와 연계해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수술비 총액의 10~15%를 보수로 받는다. 예전엔 마취전문의가 인기가 없었지만 요즘은 공급이 달려 몸값이 비싼 데다 독자적으로 마취통증의원도 낼 수 있어 의료계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로 꼽힌다. 한 성형외과 원장은 “대형병원에서도 프리랜서 마취전문의가 실력이 좋은 건 알지만 수술건수가 많으니 월급의사를 쓰는 것”이라며 “경험이 많지 않은 마취의사를 월급의사로 데려다놓고 매일 10시간 넘게 돌리니 큰 사고가 어찌 안 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대형병원의 비밀

    “환자는 초짜 유령의사의 ‘마루타’였다”(2년차 월급의사)

    한 수술실에서 두 환자가 수술하는 구조인 대형병원 내부설계도면.

    일부 대형병원에서는 마취의사는 마취주사만 놓고, 그의 부족한 일손을 간호조무사들이 돌아가며 대신한다. 대형병원에서 월급의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겨울 성수기에는 일이 힘들어 직원이 많이 나간다. 그럴 땐 간호조무사 학원생을 수술실에 들여보내 의사를 보조하거나 환자 상태를 체크하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벌어진다”고 귀띔했다. 그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겨울 성수기에는 환자의 눈 모양이나 눈꺼풀 두께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눈 수술은 매몰법으로 한다. 절개법은 칼로 째야 하니 시간을 아끼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예전에 개원했다 병원 운영이 안돼서 월급의사로 들어온 이비인후과 전공의가 있었는데 병원장이 코 수술이 들어오면 무조건 그에게 하게 했다. 코 수술 경험이 거의 없어서 그 의사가 수술하면 환자로부터 컴플레인이 많이 들어왔다. 자기가 상담한 환자를 그 의사에게 맡겼다가 수술이 잘못되면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니 한 월급의사가 병원장에게 항의했다. 병원장은 ‘경험이 없으니 수술을 자꾸 줘서 가르쳐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더라. 환자가 그 의사의 손기술 연습용 마루타인가. 결국 그 의사는 1년이 지나 재계약을 안 하고 나갔다.”

    이 병원에서는 환자와 일면식이 없는 이른바 ‘유령의사’가 남의 환자를 대리 수술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 병원장과 월급의사가 함께 작성한 근로계약서에 그 비밀이 담겨 있다. 기자가 입수한 근로계약서에 따르면 ‘을(월급의사)’은 ‘갑(병원장)’으로부터 지시받은 어떠한 일이든 최선을 다해야 하며 이를 소홀히 하면 여러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제5조 ‘임금’ 조항에는 ‘갑(병원장)’이 유령의사의 대리수술을 공식적으로 허용했음을 알 수 있는 내용도 담겨 있다. 유령의사가 대리수술을 할 경우 환자가 집도의로 아는 의사와 유령의사에게 돌아가는 성과급의 비율까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월급의사는 기본급 외에도 수술 총액이 일정액을 초과할 경우 초과액에서 보형물 원가와 해외 에이전트 수수료, 전신마취비를 뺀 ‘유효 월매출액’의 2~5%를 성과급으로 받는다.

    차상면 의사회 부회장은 “대형병원의 한 스타 의사가 하루에 120건을 수술한다고 자랑해 그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 뒤에 유령의사가 있었다. 일부 대형병원에서는 각종 광고를 통해 스타 의사를 만들어 상담은 스타 의사가 맡고 수술은 유령의사가 대리 집도하게 하는 비윤리적인 불법 행위를 통해 환자를 기망해왔다. 외국인도 유령의사의 존재를 알고 있을 정도”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우려했다.

    “환자는 초짜 유령의사의 ‘마루타’였다”(2년차 월급의사)

    홍종욱 세민성형외과 원장이 산소포화도측정기를 살펴 본다.

    ‘의료행위 범위 설정’에 관한 조항에는 ‘월급의사는 모든 진료 시, 상담실장 혹은 상담 코디네이터가 고객에게 권한 수술이나 시술명을 임의로 변경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있다. 진료는 의사의 고유권한임에도 환자를 상담해 수술 범위를 정하는 실질적인 진료 권한을 병원장이 의료법을 무시하고 비의료인에게 넘겨준 셈이다. 한 전직 월급의사는 “상담실장이 환자를 상담한다는 명목으로 환자의 생김새가 아닌 주머니 사정에 맞춰 수술 견적을 내고, 수술명은 물론 수술방법까지 정해 차트에 써오면 나는 앵무새처럼 그 내용대로 수술해야 했다. 소신껏 진료해 환자가 수술 예약을 취소하면 이후에는 환자 배당을 끊어 시키는 대로 하도록 길들였다. 아침 9시 반에 출근해서 자정 넘어 퇴근할 때까지 상담과 수술이 끊임없이 이어져 식사를 거르는 날이 많았다. 수술공장에 취직한 막노동꾼이나 다름없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자가 입수한 병원 내부 사이트 자료에는 더욱 충격적인 내용이 공지돼 있다. 병원장은 이 사이트에 “원장단(이 병원은 월급의사에게 원장이라는 직함을 쓴다) 한 분의 일정이 순조롭게 끝나는 것보다 전반적인 스케줄링의 원활한 진행이 더 중요하다. 모든 수술장에 ‘OP(Opera-tion) 타이머’가 붙어 있다. 비상식적인 수술시간이 발생할 경우 직접 체크하겠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매몰식 쌍꺼풀 수술 30분, 콧대+코끝 수술 2시간, 유방확대수술 2시간’ 등 15항목의 “‘상식적인’ 수술예정시간”을 공지했다. 또 월급의사 개개인의 수술 성사율을 상담일지 기준으로 조사해 월별로 집계한 내용도 공지돼 있다.

    “수술공장의 막노동꾼”

    김선웅 의사회 법제이사는 “일부 대형병원에서는 환자를 정해진 수술시간과 매뉴얼에 따라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수술하고, 근로기준법을 무시한 근로조건과 과도한 근로를 강요해 환자의 생명과 안전은 안중에도 없이 수술 성과를 높이는 데 혈안이 돼 있다”며 “의료법에 따라 의사 1인은 1개 병원만 개원할 수 있음에도 월급의사의 의사면허를 빌려 병원을 문어발식으로 늘려가는 불법행위가 반복된다”고 꼬집었다. 대형병원 월급의사의 근로계약서에도 ‘명의신탁’ 조항이 명시돼 있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경영상 이유로 월급의사 명의를 새로운 병원의 개설 혹은 현재 운영 중인 병원의 경영주 명의로 사용하는 경우 상호 합의하에 명의신탁을 진행할 수 있다. 또 명의신탁 비용은 물론 명의신탁한 월급의사에게 부과되는 각종 소득세를 병원장이 부담하도록 했으며 소득세 부담은 계약해지 후에도 유효하다. 의료법상 명의신탁은 불법행위로 해당 의사의 면허 정지 처분도 가능한 중범죄다.

    김선웅 이사는 일부 대형병원에서 월급의사의 명의를 빌려 의료기관을 늘리는 이유로 병원 수익 증대와 각종 행정처벌 면피, 불만 환자 회피, 프로포폴 유용 등을 들었다. 그의 부연설명에 따르면 대형병원 월급의사 1명이 일반 성형외과가 20년간 사용할 프로포폴의 양을 1년 만에 쓸 정도로 수면마취제를 과량 투여한다. 일반 성형외과에서 쌍꺼풀 수술 시 5~7cc를 주사할 때 대형병원에서는 한번에 100cc를 사용하기도 했다. 김 이사는 “대형병원에서 수면마취제를 대량 사용하는 목적은 유령의사의 존재와, 수술 중인 의사에게 다른 환자를 상담하게 하고 한 수술실에서 여러 명을 수술하도록 만든 비윤리적 행태를 감추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성형 브로커와 수수료

    국내 성형시장의 규모는 연간 5조 원 규모로 세계 성형시장의 25%를 차지한다고 알려졌다. 과거엔 성형기술을 배우러 일본 유학을 갔지만 지금은 도리어 일본은 물론 세계 각지 의사들이 한국의 성형기술을 배우러 오는 실정이다. 중국, 대만, 일본 등지에서 성형관광을 오는 외국인 환자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이들 대부분은 먼저 ‘성형 메카’로 알려진 강남을 찾는다.

    현재 강남구에는 성형외과 600~700곳이 밀집해 있다. 이 가운데 성형외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곳은 300여 곳. 나머지는 비전공의가 성형외과 진료를 하는 곳이다. 병원마다 환자 유치 경쟁이 뜨겁다. 대형병원은 월 10억~15억 원을 광고비로 쓰고, 50~100명으로 구성된 온라인지원팀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온라인상에서 호객행위를 한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도 성형광고판으로 활용된다.

    “이번에 내리실 역은 압구정역입니다. ○○성형외과는 ○번 출구입니다.” 지하철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안내 멘트가 성형외과 홍보방송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동차 객실 안에도, 역사 안 외벽과 출구 계단에도 성형외과를 선전하는 광고 패널로 도배돼 있다. 출구를 빠져나오자 성형외과 간판이 건물마다 걸려 있다. 한 빌딩에 대여섯 곳의 성형외과가 모여 있는가 하면 건물을 통째로 쓰는 대형 성형외과도 있다. 신사역과 강남역 주변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인 성형관광객은 이곳저곳 성형외과에 들러 상담을 받지만 마지막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곳은 중국어 간판을 달고 빌딩을 통째로 성형외과로 운영하는 대형병원이다. 이들을 데리고 오는 건 여행사나 국가가 인정하는 의료관광 에이전시 직원인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한국에서 ‘성형 브로커’로 뛰며 용돈을 버는 조선족이나 중국인 유학생이다. ‘성형 브로커’가 성형외과를 고르는 기준은 단 하나. 성형외과에서 제공하는 수수료 금액이다.

    국내 의료관광법에서 권장하는 성형수술 유치에 따른 수수료는 수술비의 15%지만 성형외과 의사들이 말하는 실제 수수료는 수술비의 30~40% 선이다. 한 성형외과 원장은 “성형 브로커들이 한국을 찾은 외국인에게 성형외과를 소개해주고 수술비를 크게 불러 거액의 거마비를 챙기는 걸 막기 위해 정부가 승인한 의료관광 에이전시만 활동하도록 의료관광법을 만들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성형 브로커가 활개를 친다. 중국인들 사이에 한국 성형수술 가격이 알려져 있어 요즘은 브로커가 수술비의 30~40%를 병원에서 수수료로 받아가는데 최근에도 어떤 간 큰 브로커가 수술비를 10배로 뻥튀기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외국인 성형관광객에게 신뢰감을 주고, 브로커 수수료 때문에 소득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 성형외과의 불법행위를 근절하려면 공항에서 출국할 때 부가가치세를 환급해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 당국 “한 수술실 두 침대, 시설기준 위배”

    취재과정에서 만난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한국 성형시장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놨다. “의료사고를 막기 위해선 비전공의의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보험료를 크게 올려야 한다” “대중교통 광고방송이나 성형 전후 사진을 공개한 벽보 광고를 금지해야 한다” “성형외과 간판에 전공의가 운영하는지, 비전공의가 운영하는지를 쉽게 알게 해 환자의 혼선을 막아야 한다” “마취전문의 수를 늘리고 프로포폴을 오·남용하는 병원과 해당 의사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 “성형외과 의사는 물론 직원들을 대상으로 정부 차원에서 정기적인 윤리교육을 해야 한다” 등이다.

    의사회 측은 G성형외과의 건축물 사용 승인이 지난해 12월 4일 수요일에 났음에도 강남구에서 그다음 주 월요일인 12월 9일 병원 허가를 내준 점을 두고 “의료시설 실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는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근거는 이렇다.

    “병원 허가를 위한 구비서류 준비와 제출, 의료시설 규격에 맞는 인테리어와 안전장비 구비, 담당 공무원 실사까지 사흘 만에 다 끝난 셈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건물이 지상 15층에 지하 6층이며 지하3층까지 수술실이 있다. 직원들 얘기를 들어보니 12월 6일 금요일에는 병원 안에 아무것도 없었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짐을 옮기고 정리하느라 내부가 엉망이었고, 심지어 무영등이 안 달린 수술실도 있었다. 더구나 한 수술실에 침대 두 개를 넣어 환자 두 명이 동시에 수술 받을 수 있는 구조가 과연 의료시설로서 적합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병원 실사를 담당했다는 강남구보건소 담당 공무원은 “12월 6일 실사를 나갔을 때는 갖춰진 게 없었고 9일 오전에 갔을 때는 병원 개원에 문제가 없는 상황이어서 곧바로 병원 허가를 내줬다. 침대 2개가 있는 수술실을 위법하다고 강제할 조항이 의료시설기준에 나와 있지 않다”고 답했다. 하지만 다른 지자체의 담당 공무원은 “한 층짜리 건물을 실사하는 데도 1시간이 걸리는데 총 21층짜리 건물을 오전에 다 실사하고 허가까지 내줬다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보건복지부 담당 공무원은 “병원 허가를 받기 위해 많은 서류를 준비하고 안전시설과 장비를 갖추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텐데, 이를 서류에 맞게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인 실사와 병원 허가가 오전 몇 시간 안에 이뤄진 점은 다분히 의혹을 제기할 만한 상황인 것 같다”며 “의료시설 규격기준에 한 수술실에 침대 두 개를 놓아선 안 된다고 명시돼 있진 않지만 두 환자가 함께 수술받을 경우 상호 감염의 위험이 있으므로 의료시설로 적합지 않다”고 답했다. 정부 당국의 엄격한 관리감독과 의료법의 구멍을 막을 현실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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