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 당대 문화의 키워드는 ‘에로, 그로, 난센스’다.
- 이름만큼 이상했던 문인 이상은 이러한 자극들로 이뤄진 당대의 문화를 ‘초콜릿 냄새’로 표현했다.
- 이상이 말한 ‘초콜릿 냄새’란 도시화의 냄새, 그리고 자본주의의 냄새다.
그로부터 17년 후, 코르테스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 우연히 카카오콩을 발견했다. 그는 원주민에게서 카카오콩으로 수프와 음료를 만드는 조리법을 배워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코르테스는 멕시코 원주민들이 카카오콩을 화폐로도 이용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스페인 궁정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코르테스의 기대와는 달리 카카오콩을 이용해 만든 초콜릿 음료는 스페인에서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곧 쓴맛을 줄이기 위해 설탕을 넣기 시작하면서 초콜릿 음료는 전 유럽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루이 14세의 왕비 마리 테레즈는 스페인 출신이라 초콜릿의 매력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녀는 초콜릿 음료를 늘 입에 달고 살았다. 어떤 이들은 마리 테레즈의 이가 모두 빠져버린 것이 매일 마신 초콜릿 음료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매우 값비싼 음료였기 때문에 귀족이나 즐길 수 있었다. 당시 귀족은 찬물을 한 컵 들이켠 후 하녀가 침대로 가져온 따뜻한 초콜릿 음료 한 잔을 마시고 하루를 시작했다.
초콜릿은 활동의 가솔린
카카오의 학명은 ‘테오브로마 카카오’인데, 이는 그리스어로 ‘신의 음료’라는 뜻이다. 이 학명은 스웨덴의 식물학자로 생물학적 분류 체계를 확립한 린네가 1753년 붙인 것이다. 린네가 왜 그런 거창한 이름을 붙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린네가 초콜릿 음료를 몹시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교회의 신부님을 흡족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이들은 초콜릿을 처음 일반에 소개한 여왕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카카오를 유럽에 전한 마야문명이나 아즈텍문명에서 카카오를 신성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적절한 명칭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초콜릿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30년대로 추정된다. 1931년 동아일보에는 ‘초코레트는 언제 생겼나’라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신문에는 초콜릿 광고도 실렸다. 1931년 11월 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광고에서는 ‘초코레트는 활동의 까소린’이라는 카피를 내세운다. 카피 옆에는 “모리나가 밀크 초코레트의 영양가는 란(卵)의 세 배, 미반(米飯)의 사 배, 우육(牛肉)의 칠 배 반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맛보다는 영양소가 풍부하다는 것이 광고의 주요 포인트였다. 함께 실려 있는 삽화 또한 그런 사실을 강조한다. 삽화에서 아이는 자동차에 기름 대신 초콜릿을 넣는다.
에로와 그로
1930년대 동아일보에 실린 초콜릿 광고. ‘초코레트는 활동의 까소린’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에로’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것은 1930년경으로 보인다. 신동아 1932년 2월호 ‘모던어 점고’란을 보면, ‘에로’는 몹시 유행하는 말로, 에로티시즘을 그냥 ‘에로’라고 부르며, ‘연애 본위’ ‘색정 본위’라는 의미라고 소개돼 있다. ‘에로’는 다양한 말과 합성돼 사용됐다. 밤 열한 시가량을 ‘에로 러시아워’라고 표현했고, 에로광경, 에로풍년, 에로획득, 에로서비스, 에로 발산업, 에로미(味), 에로도시화 등의 용어도 발견할 수 있다.
‘그로’의 의미는 1933년 1월호 신동아 ‘모던어 점고’란에 실렸다. 여기에 따르면 ‘그로’는 ‘기괴하다’는 뜻이지만, ‘너무 에로틱하기 그 정도를 넘친 것’도 ‘그로’라고 표현하며, ‘에로’와 ‘그로’가 늘 병행되는 것이 20세기 울트라모던이 좋아하는 바라고 설명한다. 당시 잡지에는 ‘에로 그로 100%’라는 타이틀로 기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유행이었고, 각국의 ‘에로’ 문화를 소개하는 기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별건곤은 ‘에로섹션’이라는 난을 만들어 연재하기도 했다.
이즈음 ‘에로’라는 말이 새롭게 유행하게 된 것은 192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카페’의 영향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카페 이전에는 기생이 나오는 요릿집이나 유곽, 거리에서 마주치는 신여성만이 에로틱한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요릿집의 기생은 신여성이 지닌 세련된 에로티시즘을 갖출 만큼 근대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화류계 여성과 신여성의 스타일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근대화된 에로티시즘을 선보였던 신여성의 경우에도 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신여성은 시각적 향락만을 제공할 뿐이었다. 또 신여성과 다양한 감각적 향락을 즐기기 위해서는 연애라는 길고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반면 카페는 신여성이 지닌 현대적 에로티시즘을 가까이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로서 각광을 받았다. 카페는 “현실미, 가벼운 우울, 살이 미소하며 엉덩이가 춤을 추는 날카로운 육감, 상대자를 탐색하는 야릇한 피로, 귀가 멍멍한 음향, 농후한 색채, 환각적 말초신경의 기괴한 발동” 등으로 가득 찬 ‘청춘의 놀이터’이자 모든 향락을 구비한 곳이었다. 카페의 여급 ‘웨이트리스’는 창기와는 달리 근대적 에로티시즘을 발산하고 있었다. 카페는 좌석설비, 여성의 치장, 포주의 경영 등 모든 면에서 근대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자유, 공개, 해방’의 분위기 속에서 ‘에로’에 대한 욕망을 합리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공간이 카페였다.
난센스에 담긴 두 개의 웃음
1920년대 말 경성고등공업학교 재학 당시의 이상.
‘난센스’는 막간극에 포함되었던 촌극의 한 장르를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막간의 유행가나 촌극이 인기를 끌게 되자 음반회사들은 앞다퉈 그것들을 음반에 담아 ‘난센스’나 ‘스켓취’ ‘만담’이라는 명칭을 붙여 팔기 시작했다. ‘난센스’라는 이름으로 음반에 수록된 것들은 3분 이내의 짧은 분량에 희극적인 인물이나 상황을 다루고 있으며, 대화의 형식이 기본 구조로 사용됐다.
‘난센스’ 음반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유행가와 마찬가지로 ‘난센스’ 음반의 내용을 따라 하는 아이가 늘었다. 당시의 ‘난센스’ 음반에 실린 것들 중에는 ‘겻말’ ‘엇말’이라 불렸던, 한자어나 숫자, 동음이의어 등을 활용한 언어유희로 이루어진 것이 꽤 많았다. ‘곁말’이나 ‘엇말’을 사용하는 아이들의 말버릇을 우려한 부모들이 ‘난센스’ 음반을 부수는 일이 많았을 정도다. ‘난센스’ 음반이 인기를 끌자 음반을 녹음한 만담가들은 전국을 돌며 공연에 나섰다. ‘만담대회’로 불렸던 그들의 공연은 극장, 학교, 창고, 관공서 옥상, 시장, 지역 유지네 집 등 곳곳에서 자주 열렸고, 공연을 보려 수많은 청중이 운집했다.
웃음에 대한 욕구
이렇게 ‘난센스’ 음반, 만담과 같은 희극 공연, 서양의 희극 영화 등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에로 그로’ 못지않게 웃음에 대한 욕구가 강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 위한 웃음의 종류는 다양했다. ‘아무 이론의 질서도 없이 그냥 그저 뒤범벅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어린 아기의 어리광 같은’ 웃음도 있었고, ‘해학성의 종횡무진함과 그 풍자성의 자유분방함’을 지닌 공격적인 웃음도 있었다.
또 카페 여급이 실어 보내는 ‘에로 그로 백퍼센트’의 웃음도 있었다. 주로 도회인이나 모던보이가 욕망했던 것이 ‘에로 그로’의 감각과 ‘에로 그로’가 버무려진 웃음이었다면, 근대적 문화로부터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따뜻한 해학적 웃음이나 근대적 풍경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차가운 웃음이었다.
이상의 문학 또한 ‘에로, 그로, 난센스’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상은 도시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에로 그로 난센스’의 축제를 바라보며 언어의 축제를 백지 위에 펼쳐놓는다. 그러나 그가 벌이는 언어의 축제는 ‘에로 그로 난센스’로 이루어진 타락한 축제를 비웃고, 축제의 급진성과 전복성을 회복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껍질만 남은 축제, 전복성을 상실한 축제를 비웃으며 ‘에로 그로 난센스’의 극단까지 나아간다.
초콜릿을 먹고 돼지같이 비만하는
그는 그러한 행위를 언어를 통해 실현해 보였다. 이를 위해 그는 가장 차갑고 공격적인 웃음으로 거리의 ‘에로 그로 난센스’를 비웃는다. 그의 글쓰기가 대부분 ‘웃음의 언어’로 이루어진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다. ‘웃음의 언어’만이 가장 급진적인 언어의 축제를 실현할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웃음은 현실과 사유뿐 아니라 언어 자체마저 농담의 대상으로 삼고 사디즘에까지 이르는 냉소적 웃음이다. 1931년 발표한 ‘興行物天使(흥행물천사)’라는 작품에는 흥행물이 발산하는 ‘에로 그로 난센스’를 ‘에로 그로 난센스’의 언어로 비웃고자 하는 그의 욕망이 드러난다.
잔내비와같이웃는여자의얼굴에는하롯밤사이에참아름답고빤드르르한赤褐色쵸콜레이트가無數히열매맺혀버렸기때문에여자는마구대고쵸콜레이트를放射하였다.쵸코레이트는黑檀의사아벨을 질질끌면서照明사이사이에擊劍을하기만하여도웃는다.웃는다.어느것이나모다웃는다.웃음이마침내엿과같이걸쭉걸쭉하게찐더거려서쵸콜레이트를다삼켜버리고强力剛氣에찬온갖標的은모다無用이되고웃음은散散히부서지고도웃는다.웃는다.파랗게웃는다.바늘의鐵橋와같이웃는다.여자는羅漢을밴(孕)것인줄다들알고여자도안다.羅漢은肥大하고여자의子宮은雲母와같이부풀고여자는돌과같이딱딱한쵸콜레이트가먹고싶었던것이다.여자가올라가는層階는한층한층이더욱새로운 焦熱氷結地獄이었기때문에여자는즐거운쵸콜레이트가먹고싶다고생각하지아니하는것은困難하기는하지만慈善家로서의여자는한몫보아준心算이지만그러면서도여자는못견디리만큼답답함을느꼈는데이다지도新鮮하지아니한慈善事業이또있을까요하고여자는밤새도록苦悶苦悶하였지만여자는全身이갖는若千個의濕氣를띤穿孔(例컨대눈其他)近處의먼지는떨어버릴수없는것이었다.
-’狂女의 告白’ 부분
이상의 일어 친필 원고 ‘수인(囚人)이 만든 갇힌 마당’이라는 시의 일부.
여자는쵸콜레이트로化粧하는것이다.
여자는트렁크속에흙탕투성이가된즈로오스와함께엎드러져운다.여자는트렁크를運搬한다.
여자의트렁크는蓄音機다.
蓄音機는喇叭과같이紅도깨비靑도깨비를불러들였다.
紅도깨비靑도깨비는펜긴이다.사루마다밖에입지않은펜긴은水腫이다.
여자는코끼리의눈과頭蓋骨크기만큼한水晶눈을縱橫으로굴리어秋波를濫發하였다.
여자는滿月을잘게잘게씹어서饗宴을베푼다.사람들은그것을먹고돼지같이肥滿하는쵸콜레이트 냄새를放散하는 것이다.
- ‘興行物天使’, 부분
이상의 작품답게 내용 파악은커녕 읽어 내려가기도 어려운 작품이다. 당시 초콜릿은 가장 ‘모던한 과자’로 소개되면서 ‘사랑을 낚는 미끼’로 쓰였다. 서구에서 수입된 빙수, 초콜릿, 커피, 맥주 등은 감각적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호품에 머물지 않고 계층적 지위를 구별 짓거나 연애에 성공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서구에서 수입된 새로운 유행에 비판적이었던 어떤 이는 현대 여성의 악취미로 ‘활동사진, 머리 지지기, 입술 칠하기’와 함께 ‘초콜릿’을 꼽았을 정도로 초콜릿은 첨단의 유행을 상징했다.
인용한 두 작품에서 ‘여자’는 초콜릿을 먹고 그 냄새를 발산하며, 그 ‘여자’에 매혹당한 사람들 또한 “돼지같이 비만하는 초콜릿 냄새”를 발산한다. 두 작품에서 에로틱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묘사된 ‘여자’의 이미지는 당대 카페의 여급이나 영화 속 여배우가 발산하는 ‘에로 그로’의 이미지와 겹쳐 있다. 1920년대 후반 처음 등장해 1930년대에 들어서 번성했던 카페는 에로틱한 실내 분위기를 갖추고 짙은 화장에 요염한 의상을 걸친 여급들을 고용함으로써 수많은 남자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실업가, 점원, 학생, 교사, 기자, 부랑자 등 거의 모든 계층의 남자가 카페에 몰려들었다. 서양 여배우를 비롯해 영화의 흥행을 바탕으로 스타로 떠올랐던 여배우 또한 카페 여급만큼의 에로를 발산했다. 실제로 많은 여배우가 경제적 궁핍을 견디다 못해 자진해서 카페의 여급으로 일했다.
초콜릿의 끈적끈적함
이상은 그러한 ‘여자’들이 발산하는 ‘에로 그로’와 그것에 매혹된 사람들이 느끼는 취기를 ‘초콜릿’이라는 끈적끈적한 물질적 이미지로 제시한다. 두 작품에서 ‘여자’와 그 ‘여자’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매혹된 것은 ‘초콜릿’이다. ‘여자’는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초콜릿으로 화장을 하고, ‘사람들’은 초콜릿 냄새에 이끌려 ‘여자’를 따른다. ‘여자’와 ‘사람들’이 매혹된 것은 결국 ‘초콜릿’이라는 표면적 장식, 내적 진실을 가리는 인공적인 냄새, 냄새에 의해 떠올려진 환상 속의 육체에 불과하다. 1930년대 초부터 ‘에로 그로 난센스’는 당대 문화의 키워드가 되었고, 이상은 그러한 자극들로 이루어진 당대의 문화를 ‘초콜릿 냄새’로 표현한다. ‘초콜릿 냄새’는 본격적인 도시화의 진행과 함께 수입된 첨단 서구 문명의 냄새이자, 당대의 모든 사람이 동경했던 유행을 대표하는 냄새다. 어쩌면 이상에게 그것은 근대의 냄새, 자본주의의 냄새와도 동의어였을 것이다.
‘흥행물천사’에서 ‘여자’는 “실컷 웃어도 또한 웃지 아니하여도 웃는”다. 사람들은 그 웃음에 매혹되지만, 그것은 이미 상업화된 웃음, 억지웃음일 뿐이다. 이상은 ‘여자’의 눈이 ‘곡예상(曲藝象)’, 즉 곡예 공연을 펼치는 코끼리의 눈과 같이 되었다고 말한다. 영화 간판이나 사진엽서 속의 여자 모델은 한결같이 웃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몸짓과 표정은 곡예 하는 코끼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철저하게 계산되고 상업화된 육체를 드러낼 뿐이다.
근대에 들어서 냄새도 웃음과 마찬가지로 상업화의 길을 걷게 된다. 향수와 방향제 등 냄새를 처리하는 대량생산 기성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냄새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으로 편입된다. 과거에는 냄새가 그것을 발산하는 물질의 내적인 가치를 드러내는 지표가 되었던 반면, 상업화된 냄새는 환상을 충족시키는 대행물의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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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제조업자들은 자신들이 파는 냄새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광고하지만, 이상은 그것이 ‘초콜릿’을 먹고 “돼지같이 비만하는” 육체를 갖게 되는 것일 뿐이라고 비웃는다. 근대에 들어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소외되었던 육체는, 상업적이고 인공적인 냄새로 인해 또다시 소외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