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호

무리한 후순위 대출 경영권 개입 논란

골프장에 물린 저축은행

  • 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입력2014-04-23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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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토리아골프장 vs 세람저축은행
    • 1순위 채권자 경매 신청에 법정관리 신청
    • 금감원 “문제 확인되면 조사하겠다”
    무리한 후순위 대출 경영권 개입 논란
    3월 27일 오전 11시, 경기 여주의 빅토리아골프장 클럽하우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카운터를 둘러싼 채 출입문을 잠가버리자 밖에 있던 골프장 대표 및 직원들이 고성을 지르며 클럽하우스 출입문을 강제로 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들이 클럽하우스에 진입하자 서로 뒤엉키며 육탄전이 벌어졌다. 예약한 손님들은 멀찍이서 이 상황을 바라보며 당혹스러워했다. 이는 지난해 부도 처리된 골프장의 운영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다툼이었다.

    한때 골프장은 저축은행의 좋은 투자처였다. 골프가 대중화하면서 골프장 수익이 늘어난 것은 물론 많은 현금을 확보하기 때문에 저축은행의 안정적인 ‘캐시 카우’ 구실을 했다. 골프장에 대출해주면 부킹이 쉽다는 점도 이점이었다.

    ‘현금알’ 낳는 거위는 옛말

    이 때문에 많은 중소 저축은행이 공동판매회사(신디케이트)를 설립해 골프장에 대출을 해줬다. 그러다보니 담보가 충분하지 않은 부실 골프장에도 대출해주는 경우가 있었다. 한 메이저 저축은행은 2010년 ‘가압류, 압류, 근저당설정권 등 선순위가 있어 대출받기 쉽지 않은 골프장에 담보별 평가금액의 60~80%까지 대출해준다’는 공고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골프장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골프장에 투자하는 저축은행이 줄고 있다. 골프장이 기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한 채 부도가 나면 후순위 대출을 갚기 어렵기 때문에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도 투자를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2009년 빅토리아골프장은 1순위 국민은행의 대출이 140여억 원 있는 상황에서 세람저축은행에서 추가로 70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 세람저축은행은 1983년 설립돼 경기 이천 지역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자산 6000억 원 규모의 저축은행이다. 현재 세람저축은행의 빅토리아골프장 대출 금액은 총 110억 원이다.

    후순위채권은 금리가 높지만 담보가 경매로 넘어갈 경우 담보가치가 낮게 평가되면 돈을 돌려받기 어려워진다. 9홀 퍼블릭으로 운영되는 빅토리아골프장 당시 자산가치는 300억여 원 수준. 만약 부도난 후 경매가 한 차례 이상 유찰돼 입찰가가 30% 이상 떨어지면 후순위 원금을 보장받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때 세람저축은행은 빅토리아골프장과 ‘사업운영권 양도양수계약서’를 썼다. 이 계약은 “빅토리아골프장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골프장 사업운영권에 대한 권리를 세람저축은행이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즉 골프장 운영권을 대출 담보로 삼은 것이다.

    왜 세람저축은행 측은 부동산 등 정상적인 담보가 아닌 골프장 운영권을 담보로 대출해준 것일까. 골프장을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당시만 해도 골프장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세람저축은행은 1순위 대출이 있다는 위험부담을 안고 대규모 대출을 해줬다. 그러면서도 불안했기 때문에 사업운영권에 대한 양도양수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말했다. 즉 충분하지 않은 담보에 무리하게 대출을 해주다보니 이러한 이례적인 계약을 했다는 것.

    금산분리법 위배했나

    이에 대해 세람저축은행 측은 “저축은행이 골프장에 투자할 때 관행적으로 사업권을 담보로 잡기도 한다. 부도나면 재산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우리가 골프장 주식을 처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별문제 없는 계약”이라고 주장했다. 계약을 체결했던 빅토리아골프장의 전 회장도 “B, S 등 다른 메이저 저축은행 역시 다른 골프장에 대출해주면서 유사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안다. 주권 양도를 서류로만 받아놓는 것이지 세람저축은행에 권한은 없다. 담보가 모자라 맺은 형식적인 계약이다. 어차피 금산분리법 때문에 저축은행은 사업을 운영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2013년 4월 빅토리아골프장이 부도가 나면서 발생했다. 1순위 채권자인 국민은행은 법원에 임의경매를 신청했다. 만약 낙찰가가 크게 떨어지면 2순위 세람저축은행 측은 원금을 잃을 수도 있게 된 것. 세람저축은행은 경매를 막기 위해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경매 가치평가를 다시 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한 관계자는 “2009년보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됐고 골프장 관리가 잘 안 됐기 때문에 100억 원 이상 자산가치가 떨어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골프장 직원들은 세람저축은행이 대출 당시 맺은 경영권 양도양수권을 근거로, 경영에 개입한다고 주장했다. 한 직원은 “세람저축은행 측이 양도양수계약서를 근거로 ‘우리 통장에 돈을 넣어라’고 주장한다”고 말했고 다른 직원도 “세람저축은행 측이 기존 직원을 무단으로 해고하고 대리인을 세워 골프장 운영에 관여한다”고 덧붙였다.

    세람저축은행 측은 올 3월 “성산레저 임직원과 협력사는 빅토리아 골프클럽 내 부지에 출입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고를 골프장 곳곳에 붙이기도 했다. 성산레저는 빅토리아골프장을 운영하는 회사 이름이다. 이를 두고 골프장 직원들은 실질적으로 세람저축은행 측이 현 운영진을 내쫓고 현재 경영수입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골프장은 부도가 난 상태이지만 여전히 영업을 하면서 주말에 평균 10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기 때문.

    만약 직원들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저축은행이 영업장 운영에 개입한 것으로 금산분리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다. 세람저축은행 측은 “경영 수입을 받은 적이 없고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 법정관리 신청 등은 채권을 보전받기 위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골프장 측은 세람저축은행 직원 등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끊이지 않는 부실 대출 시비

    전문가들은 2009년을 기점으로 골프장의 투자 가치가 떨어졌다고 분석한다. 수도권을 조금만 벗어나면 상시 부킹이 가능한 퍼블릭 골프장이 늘어났고, 경기 침체와 스크린골프의 대중화로 필드에 나가는 사람이 줄면서 회원권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골프장 회원권 평균 가격은 1억174만 원으로 2012년보다 1000만원가량 하락했다. 상당수 골프사업장이 입회보증금을 당장 골프장 운전자금으로 활용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는 “지난해 기준 전국 골프장 174곳 가운데 84곳은 자본잠식 상태”라고 발표했다.

    영세한 골프장들이 경영난 타개를 위해 고안한 것이 ‘골프장 선불카드’다. 일정 금액의 선불카드를 사면 할인 혜택을 주는 것이다. 한 경기도 소재 골프장의 경우 1200만 원짜리 카드를 구입하면 두 사람이 주중 총 8만 원에 골프를 칠 수 있다고 광고한다. 하지만 선불카드를 구입한 후 골프장이 부도나면 회비를 돌려받지 못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토마토저축은행 등 부실 저축은행이 무더기 영업정지를 받으면서 저축은행에 대한 불신이 확대됐다. 특히 토마토저축은행의 경우 2004년부터 2011년 9월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 직전까지 부실한 담보나 무담보로 2300억 원대의 대출을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금융감독원은 3차에 걸친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 저축은행을 퇴출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골프장에 대한 저축은행 부실대출은 끊이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규모가 크지 않은 저축은행이 원칙을 지키지 않고 골프장 투자를 무리하게 했다면, 이는 문제가 있다. 문제점이 확인된다면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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