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호

‘선왕’이 일궈 물려준 국가 온 백성 잘살게 하는 게 보답

아버님 전 상서(前上書)

  • 동정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입력2014-04-23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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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높이 평가하는 건 주지의 사실. 그렇다고 정치철학까지 같은 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달라진 시대상에 맞춰 아버지와 다른 방식으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왕’이 일궈 물려준 국가 온 백성 잘살게 하는 게 보답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5월 30일 청와대에서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를 했다.

    “아버지 시대에 이룩한 성취를 국민께 돌려드리고 그 시대의 아픔과 상처는 제가 안고 가겠다. 이제 아버지를 놓아드렸으면 한다. 그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나갈 것이다.”

    대선이 한창이던 2012년 10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33주기 추도식 기념사에서 유족 인사 형태로 밝힌 내용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아버지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 대통령은 3월 독일 순방을 준비하면서 아버지에 대해 깊은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동포간담회 때 박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이던 아버지께서 경제개발을 위한 종잣돈을 빌리기 위해 독일을 방문했을 때, 파독 근로자 분들과 만나 애국가를 부르며 함께 눈물을 흘렸던 일화는 아직도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라며 이례적으로 아버지를 언급했다. 여러 언론에서 ‘1964년 아버지 박정희가 서독을 방문한 지 50년 만에 딸의 독일 방문’이라는 점에 비중을 두고 쓴 기사를 박 대통령은 꼼꼼히 읽으면서 아버지의 ‘눈물’을 회상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아버지를 먼저 언급하는 일이 거의 없다. 선거 때마다 상대 진영에서 박 전 대통령의 독재와 반민주 전력을 들어 공격했을 때, 혹은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답변하면서 언급하는 정도다.

    큰 골격은 일맥상통



    대통령이 된 후에도 아버지를 먼저 언급한 적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아버지에 대해 애잔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박 전 대통령 기일 때 공식 추도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에 앞서 비공개로 홀로 국립서울현충원 묘소를 다녀왔다.

    “아버지께서는 제 생각의 근간을 만들어준 분이다. 생전에 아버지하고 많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아버지의 역사관, 세계관, 안보관, 외교관이 녹아 있었다. 아버지는 나랏일을 하는 데 유용한 좋은 제도가 많이 들어왔지만 체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저는 이 말씀을 듣고 정책 하나하나에 혼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정책이 마련됐더라도 제대로 전달되는지 끝까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아버지는 국정운영을 할 때 정책이 현장에서 잘 실천되는지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박 대통령은 2011년 12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딸이 생각하기에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나”라는 질문에 이처럼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듬뿍 담긴 답변을 내놓았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이후 국정을 운영하면서 이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했다. 지난해 12월 9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누차 강조했듯이 정책은 계획이 10%이고 실천과 점검이 90%”라며 국정과제 추진 과정을 직접 점검했다. 박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끊임없이 탁상공론식 정책이 아닌 현장 의견을 청취한 살아 있는 정책을 추진하라고 강조하는 것도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철학이다.

    박 대통령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복지국가’도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박 대통령은 2012년 2월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해 “시대는 바뀌었지만 아버지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모두가 골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복지국가’다. 박 대통령이 대선 이전부터 지금까지 강조하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역시 아버지 시절 꿈꿨던 복지국가의 업그레이드 판이다. 박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웠고 대표적인 복지 정책으로 추진하는 기초연금은 아버지가 추진했던 의료보험제도의 뒤를 이은 면이 있다.

    박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아버지는 국민소득이 1000불도 안 되는 우리 경제 현실에서 너무 이른 것 아니냐는 경제학자 등 여러 사람의 반대가 많았지만 확고한 의지로 의료보험제도를 추진했다. 먹고 사는 것도 버거운 상황에서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 보자면 시기상조일 수 있었으나 좀 더 멀리 내다보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제도였다. 퍼스트레이디로 있는 동안 내가 공을 들이고 열과 성을 다한 일이었으므로 내게도 큰 보람이었다”고 썼다.

    아버지 극복 선언

    박 대통령은 대선 때 공약으로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제도를 내세웠다. 지난해 예산 한계 때문에 지급 범위가 좁아졌지만 박 대통령은 여전히 모든 노인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대선 당시 보편적 복지에 각을 세워온 새누리당 내에서는 소득과 상관없이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는 안에 대해 반대 의견도 있었으나 박 대통령의 의지는 강했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 시대에 우리나라 산업화를 일구는 데 일선에서 힘썼던 노인들의 노후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런 박 대통령의 인식에 대해 한 참모는 이렇게 분석했다.

    “미혼인 박 대통령은 국가와 결혼했다는 말을 자주 한다. 국민이 그 말을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박 대통령의 힘이다. 박 대통령은 ‘국민’을 왕권 시대 때 ‘백성’의 개념으로 보는 면이 있다. 그 때문에 권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모든 백성을 잘살게 하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선왕’ 아버지가 일궈서 물려준 국가이기 때문에 애정이 더 깊은 면도 있다. 못사는 백성에게 나라가 더 잘 해줘야 한다는 복지국가의 개념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2012년 7월 출마선언문이 나온 후 한 핵심 참모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출마선언의 핵심은 아버지를 극복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극복 의지가 3년 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으로 이어졌다는 게 주변 평가다.

    박 대통령은 2012년 7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국정운영의 기조를 국가에서 국민으로 바꿔야 합니다. 과거에는 국가의 발전이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의 성장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잇는 고리가 끊어졌습니다. 개인의 창의력이 중요한 지식기반사회에서는 국민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자신의 잠재력과 끼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어야만 국가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대의 요구는 바뀌었는데 정부가 지향하는 정책과 패러다임은 과거 방식 그대로입니다. 이제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개인의 삶과 행복 중심으로 확 바꿔야 합니다”고 말했다.

    국가주의적 국정운영의 기조는 아버지 시대를 언급하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가 아버지 시대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이 출마선언문은 시작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국가 중심에서 국민 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국정운영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힌 것이다. 올해 2월 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역시 아버지 시절의 경제 패러다임을 뛰어넘겠다는 강한 의지로 이어진다.

    박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라는 이름을 직접 만들어냈다. 한 참모는 “이름 속에 대통령의 구상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말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떠오르게 하지만 ‘개발’이 아닌 ‘혁신’으로 경제의 축이 바뀌었다는 것을 강조한 제목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개발’이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개념이라면 ‘혁신’은 우리가 가진 것을 바꾸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야 하는 시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개혁’ 대신 ‘혁신’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제도와 기구를 새롭게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 잘못된 관습까지 바꾸겠다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비정상의 정상화’와 궤를 같이한다”고 말했다.

    “내가 만들고 내가 평가받겠다”

    박 대통령의 발표문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나라 경제가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중공업’ 중심에서 ‘IT를 기반으로 한 창조경제’ 중심으로, ‘수출’ 중심에서 ‘내수와 수출 균형정책’으로 전환하는 것 역시 아버지가 일군 산업화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기획재정부에서 올린 계획 중 절반 이상을 쳐내면서 수를 줄이고 ‘5년’ 계획을 ‘3년’으로 단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3년을 고집한 건 ‘내가 만들고 내가 평가받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다. 임기가 사실상 없었던 아버지는 ‘5개년’ 계획을 해도 책임질 수 있지만 지금은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 본인의 임기를 넘어선다. 내 임기에 이것만큼은 반드시 지키고 퇴임하겠다는 것으로 이는 각 부처 장관들에게도 무조건 지키라고 하는 강한 압박”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3월 21일 직접 7시간의 끝장토론을 주재할 만큼 규제개혁에 드라이브를 강하게 건다. 박 대통령이 규제개혁의 사실상 첫 수술대로 추진한 것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다. 박 대통령은 3월 12일 청와대에서 제5차 무역투자진흥회의 및 지역발전위원회 연석회의를 주재하면서 올해 6월 이후 전국 1656개 그린벨트 해제 지역에 고층 아파트, 대형마트, 일반음식점, 공장 등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선왕’이 일궈 물려준 국가 온 백성 잘살게 하는 게 보답

    박근혜 대통령이 2월 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청와대 춘추관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린벨트는 아버지가 대도시가 지나치게 팽창해 인구가 몰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1971년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추진한 정책이다. 산림녹화에 대한 의지도 담겨 있다. 아버지의 정책이라도 기한이 만료되면 폐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이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이끈 새마을운동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박 대통령이 상당히 공을 들이는 정책이다. 우선 추진하는 건 새마을운동의 세계화다. 박 대통령은 공적개발원조(ODA)에 공을 들인다. 이 역시 우리나라가 보릿고개를 넘던 아버지 시절 도와준 전 세계 각국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취임 이후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에 ODA를 늘리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ODA의 핵심이 바로 새마을운동 전파다. 단순히 돈을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립, 자조적 국민운동인 새마을운동을 전파해 그들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의 회동 때 “한국은 아프리카에 모범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저의 집무실에는 박정희 대통령께서 집필하신 서적이 있습니다. 한국을 오늘날과 같이 변화시킨 그분의 비전에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박 전 대통령을 극찬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좋은 기후와 비옥한 토지, 근면한 국민성을 가진 우간다가 새마을운동을 통해 체계적인 농촌 개발을 이뤄낸다면 동아프리카의 곡창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입니다”고 새마을운동 전파를 약속했다.

    제2의 새마을운동

    박 대통령은 라스무센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이사회 의장과의 접견에서도 “개도국의 친환경 경제사회발전전략 수립을 도와주는 GGGI가 농촌개발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농촌개발전략이자 친환경 개발전략인 새마을운동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스무센 의장도 “GGGI 차원에서 새마을운동을 개도국에 전파하는 작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화답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013 전국 새마을지도자 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제가 만난 많은 개도국 정상은 한결같이 새마을운동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실제로 농촌 현장에서 새마을운동을 통해 큰 성과를 거둔 나라도 많습니다. 저는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까지 노력했던 소중한 경험과 노하우를 어려운 처지의 국가들과 공유하는 것이 글로벌 시대에 새마을운동의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새마을운동을 국민대통합 운동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도 박 대통령의 구상 중 하나다. 2012년 대선 때 내세운 국민대통합을 이루는 것을 아버지 시대 아픔을 겪은 이들에 대한 보답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시절 앞장섰던 ‘새마음운동’과도 궤를 같이한다. 박 대통령은 “과거의 새마을운동이 근면, 자조, 협동의 자립운동을 통해 절대빈곤의 탈출구를 열었다면, 제2의 새마을운동은 나눔, 봉사, 배려의 실천 덕목을 더해서 국민통합을 이끄는 공동체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마을운동 정신은 ‘내’가 아닌 ‘우리’가 잘사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대한민국 공동체 정신의 복원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3월 10일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는 대한민국 국격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한 대국민운동인 ‘작은 실천, 큰 보람 운동’을 시작했다. 한광옥 대통합위원장은 “그동안 압축 고도성장을 하면서 이면에서 사회적 갈등을 빚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대국민운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캠페인엔 7개 종교단체를 포함해 8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각 시도, 부처가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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