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 부실 ‘사육사 사망’ 서울대공원장·동물원장 그대로
- 인부 7명 사망 ‘감독 부실’ 공무원이‘윤리경영’실장으로
- 뉴타운 갈등 해결한다며 재개발 비판자 임명
3월 열린 동아마라톤에서 대회 참가 시민을 격려하는 박원순 시장. 그의 인사는 서울시민과 소통하는 인사였을까.
서울시장은 ‘소통령’이라 불릴 만큼 여느 지자체장과는 그 위상이 다르다. 2011년 10월 26일 보궐선거에서 ‘시민후보’를 표방한 박원순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적어도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독선은 없으리라는 서울시민의 기대가 한몫했다. 시민들은 당연히 그에게 민주적 행정, 소통 행정을 기대했다. 민주적 행정, 소통 행정의 실현은 박 시장이 함께 일할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인사 문제에 달려 있었다.
시민 정서와 ‘불통’한 인사
박 시장은 취임 후 첫 간부회의에서 6개 인사 원칙을 강조했다. ‘공정’‘소통’ ‘책임’ ‘감동’ ‘공감’ ‘성장’ 인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박 시장은 과연 임기 동안 자신이 한 약속을 지켰을까.
박 시장 재임 기간인 지난 2년 동안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 가운데 서울대공원 사육사 사망사고와 7명의 인명을 앗아간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는 서울시의 관리 부실이 낳은 대표적인 인재(人災) 사고였다.
이미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지난해 11월 24일 발생한 호환(虎患)으로 사망한 서울대공원 심모 사육사는 원래 곤충전문가였다. 그해 1월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갑자기 호랑이사(舍)로 발령이 난 것이다. 물론 현 안영노 서울대공원장이 취임하기 이전의 일이다. 그러나 안 원장이 취임한 후인 지난해 8월 직원들과 ‘격려 간담회’를 할 때 심 사육사가 “호랑이 우리가 전반적으로 너무 낙후돼 탈주할 우려가 있다”며 조치를 취해줄 것을 건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고, 결국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안 원장은 인디밴드 출신의 문화전문가다. 서울시는 그가 ‘복합적 생태 문화공간으로 대공원을 혁신할 능력을 갖춘 문화기획력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임명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은 “그런 역할은 원장이 아닌 실무책임자급으로 임명해도 될 사안이었다. 원장이 동물사육에 대해 기본지식이 있었다면 심 사육사의 건의를 그렇게 외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반응이다. 안 원장이 문화기획을 통해 서울시민과 소통을 얼마나 잘하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서울대공원을 총괄하는 원장으로서 심 사육사를 비롯한 대공원 직원들과는 ‘불통’을 보였다는 점에서 박 시장의 인사에 아쉬움이 남는다.
더 큰 문제는 사고 후 서울시와 박 시장의 태도다. 분명한 인재 사고였는데도 서울대공원 관리 총책임자인 안 원장과 서울대공원 동물원을 책임지는 동물원장 두 사람 누구에게도 아직까지 인사조치를 하지 않은 상태다. 지난 3월 11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회의실에선 서울대공원과 모 건설회사가 ‘사람과 동물이 행복한 공간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식이 열렸다. 안 원장과 동물원장은 이 자리에 참석해 기념사진 촬영까지 했다.
선거캠프 출신 낙하산 인사
지난해 7월 발생한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 역시 안전 불감증이 부른 참사였다. 이 사고로 7명의 인부가 목숨을 잃었다. 사흘간 계속된 폭우로 공사현장과 연결된 한강 수위가 기준 이상으로 높아졌음에도 안이하게 판단해 공사를 강행한 것이 원인이었다. 더구나 시공사인 천호건설은 영업정지 상태였음에도 공사를 맡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공사의 책임기관은 서울상수도사업본부다. 그런데 사고의 최고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서울상수도사업본부 본부장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지난 연말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산업통상진흥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것도 ‘윤리경영’ 실장으로.
대형 사고가 나면 해당 부처 장관이나 최고 책임자가 직접적인 과실 관련 여부를 떠나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과 비교되는 인사조치였다. 심 사육사의 한 유족은 “적어도 동물원장은 책임을 지고 물러날 줄 알았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니 할 말을 잃었다”며 분노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장 등은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예정이며, 상수도사업본부장은 관리책임을 물어 4개월 동안 대기발령을 한 후 파견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또한 윤리경영실장은 재단의 감사 등을 담당하는 직위라고 알려왔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지난 3월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18곳 중 9곳의 기관장 및 본부장을 박 시장 당선에 기여한 보은인사로 채웠다”고 비판했다. 실제 분석해본 결과 오성규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은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당시 박 후보 선거대책본부 사무처장, 서재경 서울신용보증재단 이사장은 총괄본부장, 석치순 서울도시철도공사 기술본부장은 노동특별위원장이었다. 이숙진 서울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 박인배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정책자문단이었다. 이병호 농수산식품공사 사장, 임성규 서울시복지재단 대표이사도 당시 박 시장 공개지지 선언을 했다. 이들 외에도 선거캠프 출신 여럿이 서울시 투자기관의 상임이사, 비상임이사로 임명됐다.
낙하산 인사의 기준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또한 전문성과 능력이 있다면 측근이라고 해서 임명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박 시장도 취임 초부터 일관되게 “기관장 인사의 제1 기준은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능력 검증은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박 시장이 강조한 소통 능력은 제대로 보지 않은 모양이다. 박인배 세종문화회관 사장의 경우 취임 후 산하 9개 예술단 중 3곳의 단장이 사퇴했는가 하면, 노조와도 갈등을 빚는 등 ‘불통’ 경영을 지적받아왔다.
서울시는 2012년 ‘시민감사옴부즈맨’을 5명에서 7명으로 늘리며, 두 명을 공모를 통해 선발했다. 시민감사옴부즈맨은 시장과 시의회가 의뢰하는 사안이나 시가 발주하는 용역 입찰을 감사하는 일을 한다. 한마디로 시민의 처지에서 시장 업무와 정책을 감사하는 자리다. 그런데 새로 인선된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박 시장과 가까운 인물이다. 석락희 씨는 박 시장이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앞두고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동행한 4명 가운데 한 명이다. 박 시장이 만든 참여연대와 희망제작소에서도 활동했다. 함께 선발된 윤석연 씨 역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관을 지냈으며,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에서 활동하는 등 박 시장과는 시민운동을 하며 알고지내온 사이다.
갈등 해결한다더니 오히려 키워
그동안 시민감사옴부즈맨은 주로 감사원, 검찰 출신 공무원이 임명돼 왔다. 두 사람은 행정감사 경력이 없다. 물론 이런 경력이 있어야만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문 경력도 없는 데다, 박 시장과 가까운 인물이 서울시장을 감시하고 따지는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은 현재도 시민감사옴부즈맨으로 활동한다.
박 시장은 취임 후 뉴타운과 재개발·재건축 등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겠다며 ‘주거재생지원센터’를 만들었다. 그런데 박 시장이 임명한 이주원 주거재생지원센터장은 재개발에 비판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이 운영하던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하는 단체인 ‘나눔과 미래’ 사무국장 출신인 그는 주택보수업체까지 운영하면서 낡은 집을 개량하고 거리 단장을 통해 마을 원형을 살리며 공동체를 이루자는 두꺼비하우징 운동을 해왔다.
박 시장은 두꺼비하우징을 뉴타운 대안 모델로 삼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지역 여건에 따라 두꺼비하우징 정책을 펼치는 게 적합한 곳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 전체의 뉴타운과 재개발·재건축 문제를 다루는 책임자로 재개발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인물을 임명한 것은 합리적인 인사는 아니었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실제 성북구의 한 재개발구역 조합원들은 “사업시행인가까지 마친 상태에서 주거재생지원센터가 실태조사를 한다며 1년 넘게 시간을 끄는 바람에 사업비만 늘어나고 주민 갈등만 커진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서울시는 위와 같은 박 시장의 인사가 자신의 원칙에 맞는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6대 인사 원칙을 성실히 준수하고 있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