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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보다 ‘소신’ 택한 현대 경제학계의 양심

폴 크루그먼 美 프린스턴대 교수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명예’보다 ‘소신’ 택한 현대 경제학계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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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역이론을 통해 국제무역 전문가로 급부상한 크루그먼은 1982~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도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공화당 비판자인 크루그먼의 첫 공직 생활이 공화당의 거두인 레이건 정권에서 이뤄졌다는 점도 흥미롭다.

크루그먼은 1991년 38세의 나이로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는다. 미국 경제학회가 2년마다 독보적 업적을 남긴 40세 이하 경제학자에게 주는 이 상은 ‘예비노벨경제학상 후보가 받는 상’이라 불릴 정도다. 그 때문에 크루그먼 교수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아시아 외환위기 예측

1994년 경제학자 크루그먼의 명성을 높이는 사건이 또 일어났다. 그는 같은 해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11~12월호에 ‘아시아 기적의 신화(The Myth of Asian Miracles)’라는 논문을 기고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한국,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 소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승승장구하고 있음에도 아시아 신흥국가의 경제성장이 곧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잘 알려진 대로 경제성장의 3가지 요인은 노동, 자본, 기술이다. 크루그먼은 “아시아 국가의 경제성장은 기술 진보 없이 값싼 노동력과 정부 주도의 대규모 자본 투입으로만 이뤄졌기 때문에 성장 한계가 분명하며 조만간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일갈했다.



대다수 경제학자가 아시아 신흥국을 ‘제2의 일본’이라 칭송하고 있을 때 등장한 그의 부정적 전망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결국 3년 후인 1997년 아시아 전역에 외환위기의 폭풍이 몰아쳤고 한국은 건국 이후 최초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한국 외환위기 당시 20%에 육박하는 살인적 고금리 등 IMF의 혹독한 구제금융 조건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이 모두가 그가 창안해낸 신무역이론에 따른 분석의 결과였다.

독설가로 명성을 날리다

뛰어난 학문적 성과 못지않게 ‘독설’이 크루그먼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시점은 2000년 조지 부시 행정부 출범 때부터다. 그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부시 정권이 벌인 연이은 전쟁과 막대한 재정 지출은 물론 감세, 규제 완화 등 친(親)기업 정책이 미국 사회의 건전성을 해치고 소득 불평등을 확대한다고 부시 정권을 맹공격했다.

그는 대형 방위산업체, 네오콘 등 소수의 지지자에 둘러싸여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부시 행정부의 행태는 정권과 몇몇 재벌이 결탁한 ‘연고 자본주의(Crony Capitalism)’ 및 정실 인사의 폐해로 금융위기를 겪은 아시아나 남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부시 정권의 거의 모든 정책이 ‘재앙’이라고도 일갈했다.

특히 크루그먼은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 의장 또한 부시 대통령 못지않은 책임이 있다며 그린스펀을 ‘부시의 맹목적 추종자’ ‘역대 최악의 연준 의장’이라고 둘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린스펀이 저금리 정책이라는 손쉬운 수단으로 경기 부양에 ‘올인’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그는 2005년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를 메워주던 외국인 투자 자금의 상당 부분이 미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이것이 금융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고 예견했다.

크루그먼의 직설적 언사에 불편함을 느낀 일부 경제학자들은 “그가 학문의 순수성을 왜곡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부시 정권과 공화당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하는 그의 칼럼 또한 “명쾌하다”는 호평과 “균형감각을 잃었다”는 비난을 동시에 받는다.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가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동시에 가장 미움 받는 칼럼니스트”라고 말한 이유다.

하지만 아시아 외환위기 예견 때와 마찬가지로 부시 정권 및 그린스펀에 대한 그의 비판은 물론 금융위기 예측은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미국은 2014년 현재까지도 부시 정권의 잔재인 막대한 쌍둥이 적자에 신음하고 있으며 금융위기의 후폭풍에서 완전히 헤어나지도 못해 연방정부 폐쇄(셧다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맞은 바 있다. 재임 당시 ‘마에스트로’로 불리며 역대 연준 의장 중 가장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그린스펀 전 의장 역시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평가받으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인기 없는 연준 의장으로 전락한 상태다.

활발한 기고와 출간 등 크루그먼 교수의 저술 작업 또한 그의 명성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는 현재까지 ‘통화와 위기’ ‘경제학의 향연’ ‘대폭로’ ‘불황 경제학’ ‘미래를 말하다’ ‘자유주의자들의 양심’ 등 20여 권의 베스트셀러와 200여 편의 논문을 썼다. NYT는 물론 ‘포춘’ ‘슬레이트’ 등 각종 언론에도 750여 편의 글을 기고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자신의 모든 저술을 홈페이지에 올리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의 부인 로빈 웰스 또한 경제학자이며 크루그먼과 몇 권의 경제학 교재를 공동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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