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한시 삼백수<br>정민 평역, 김영사
모든 것을 소리 나는 대로, 또는 언중의 발음에 따라 바꾸다보면 원래 우리말이 갖고 있던 고유의 결들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삯월세’가 ‘사글세’로 바뀔 때 나는 그 아름다운 ‘삯월세’의 울림과 모양새가 그리워 불현듯 슬퍼졌으며, ‘돐잔치’가 ‘돌잔치’로 바뀔 때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돐’과 ‘돌’이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돐’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영원히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 자신도 모르는 글자가 나올 때마다 매번 자전을 찾아가며 헤매곤 하는 한자를 그래도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한문으로 만들어진 우리 문학과 기록들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역사 자료인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비롯해 한용운의 한시에 이르기까지, 한문으로 창조된 우리 문학의 보물창고는 방대하기 이를 데 없다.
‘대장경’이 한자로 표기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남의 나라 문화유산인가. 한문으로 집필된 시나 소설, 수필류는 물론 한글과 한문이 섞여 있는 시조에 이르기까지, 한문을 통째로 덜어내고 나면 우리 문학은, 우리 가락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국문학 전공자라서가 아니라,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한문은 소중하다고 믿는다. 한문은 남의 나라에서 겉꼴만 빌려온 문자 표기법이 아니라, 우리 정신의 보이지 않는 주춧돌이며 영혼의 모세혈관이다.
우리 정신의 주춧돌
그러나 아무리 이렇게 주장해도 아이들은 짜증을 낼 것이다. 이런 학생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 생겼다. 바로 한문으로 직조된 우리 문학이 오늘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얼마나 아름다운 울림을 주는지를 매번 깨닫게 해주는 정민 선생의 ‘우리 한시 삼백수’다.
예민한 사람들은 제목에서부터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한시가 어떻게 우리 거야?’ ‘한시는 중국 거 아니야?’ 하지만 이 땅에서 ‘글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 쓴 한시를 모두 합치면 조선시대만 해도 엄청난 분량이 될 것이다. 이 땅에서 태어난 문인들이 쓴 한시는 분명 한문으로 기록되었지만, 분명히 한국문학의 범주 안에 포함된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쓴 한시는 중국 사람들보다 우리에게 훨씬 잘 이해되고, 훨씬 깊은 울림을 줄 수밖에 없다. 문학은 세계적 보편성을 갖는 것이지만, 그 보편성 자체도 지역성 혹은 토착성이라는 최초의 토양 위에서 발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집에 보낼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다
흰 머리의 어버이가 근심할까 염려되어,
그늘진 산 쌓인 눈이 깊기가 천 길인데
올겨울은 봄날처럼 따뜻하다 적었네.
欲作家書說苦辛 恐敎愁殺白頭親
陰山積雪深千丈 却報今冬暖似春
-‘편지를 부치며’
집 떠나 지내면 가장 서러울 때가 아플 때와 배고플 때, 그리고 추울 때다. 뭔가 고차원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 육체를 옥죄어올 때, 인간은 뼛속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당장의 추위와 배고픔, 아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 하나만 있다면 그 설움이 위로될 것만 같다. 그래서 이 시의 주인공은 어버이께 편지를 보내려 한다. 어머니, 여긴 눈이 너무 많이 와요. 춥고 외롭습니다. 하지만 백발이 성성한 어버이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나보다 더 힘든 이는 자식을 먼 곳에 떠나보낸 어버이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편지를 쓴다. 어머니, 올겨울은 어찌 된 일인지 봄날처럼 따스하네요. 저는 이곳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잘 지냅니다. 응달져 더욱 추위가 매서운 산골에 푹푹 쌓인 눈을 바라보며, 자식은 자신의 추위와 설움보다 부모님의 근심, 걱정을 염려할 줄 안다. 사람은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이 철드는 최고의 방법은 부모와 떨어져 지내며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어보는 것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