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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수기

“야구장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아이가 없다”

장애 정신과 의사와 ‘사고뭉치’ 청소년들의 힐링 캠프

  • 류미 | 국립부곡병원 신경정신과 의사

“야구장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아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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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아이가 없다”

휄체어 타는 의사 류미 씨.

그래도 돈을 달라고 하는 건 나빴다, 라고 단죄할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듣기로 한 날. 나는 말하는 대신 듣는 쪽을 택한다. 학교를 못 가는 열흘 동안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어른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

‘등정’이라는 낙인이 찍힌 아이는 말할 권리가 없다. 혼날 의무만 있다. 한 번쯤은 말할 권리를 줘야 아이도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나는 푸르미르야구단 이야기를 넌지시 꺼내본다.

“친구들도 좋아하니까 여기 와서 야구하는 것은 어때?”

이 말을 꺼내자 호열이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처음에 나는 생각했다. ‘학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 여기 푸르미르야구단에 나오면 좋을 텐데. 와서 신나게 야구도 하고 어울리면 좋을 텐데.’

하지만 나의 생각이었다. 호열이는 대답이 없다. 나는 호열이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된다. 전자담배 연기로라도 폼을 내고 싶어 하는 호열이가 등교 정지 조처로 일주일 내내 친구들을 못 보다가 야구하겠다고 운동장에 떡하니 나타난다? 시쳇말로 쪽팔려서 못 한다. 당연히 내키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 제가 보고 싶어도 너무 기다리지는 마세요. 보시다시피 제가 좀 바쁘잖아요.”

아! 저 말은 안 나올 거라는 이야기구나. 후다닥 인사를 하고 교실을 빠져나가는 호열이. 그 후로 나는 호열이를 계속 기다렸지만 운동장에서 호열이를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야구하는 의사

하루는 명광이가 훈련에 지각을 했다. 유니폼은 입었는데 발에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감독님, 제가 다리가 아파서 훈련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쪽에서 쉬어. 안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나온 것은 참 잘했다. 다른 아이들이 훈련하는 모습 잘 봐. 보는 것도 훈련 중 하나니까.”

박승민 감독이 명광이의 어깨를 다독인다. 명광이가 고개를 푹 꺾고 벤치에 앉는다. 나는 명광이와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은 기회다 싶어 명광이 옆에 가서 앉는다.

“많이 다쳤니?”

“아니오. 그냥 조금 삐었어요.”

“빨리 나아야 야구도 할 텐데. 명광이는 야구 재미있어 하잖아.”

“네….”

고개를 푹 숙인 채 양손을 조물거릴 뿐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오늘은 명광이가 내 친구네. 나도 몸이 안 좋아서 운동을 못 하잖아. 나랑 좀 놀아주면 어때?”

“네….”

“명광이는 책 좋아하니?”

“별로 안 읽어요.”

“그러면 안 되는데. 내가 푸르미르야구단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려고 하거든.”

그제야 명광이가 관심을 보인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다는 게 신기한 것 같다.

“만화책은 봐요. 그림이 많은 책도 좀 보고요. 우리 책에도 그림을 많이 넣어주면 읽어볼게요.”

방금 ‘우리’라고 말했다! 아까와 달리 눈빛이 반짝이고 목소리도 커졌다.

“그림 넣는 것은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닌데 어쩌지. 대신 출판사에 명광이가 한 이야기를 전달해볼게.”

“네.”

나는 왜 명광이가 소심하다고만 생각했을까. 이야기를 나눠보니 자기 생각을 조곤조곤 잘 전달한다.

“명광이는 꿈이 뭐야?”

“의사가 되는 거요.”

“정말? 나도 의사잖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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