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호

‘사찰’ 배후 청와대 비선 못 찾고 스폰서 의혹 수사로 변질

채동욱 혼외자 사건 검찰수사 딜레마

  • 장관석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jks@donga.com

    입력2014-04-23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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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관계자들 ‘공직 감찰’ 명목으로 처벌 면할 듯
    • 보도 3개월 전 청와대 2개 라인이 혼외자 정보 수집
    • 채 전 총장 친구 이모 씨 횡령사건 뒤늦게 불거진 이유
    • 임씨 “진실 없어진 사건, 채 총장이 알아서 대응할 것”
    ‘사찰’ 배후 청와대 비선 못 찾고 스폰서 의혹 수사로 변질

    지난해 9월 30일 퇴임식을 하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떠나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내연녀, 혼외자, 청와대, 국가정보원, 불법 조회, 가정부 협박, 미국 유학자금….

    채동욱(55)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과 불법 정보유출 사건을 놓고 지난해 9월부터 신문지면을 수놓은 키워드다. 계절이 바뀌고 다시 봄이 왔지만, 채 전 총장 혼외자 의혹 사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 사건은 권력기관장인 검찰총장이 혼외자를 10년이 넘도록 숨겨왔다는 ‘자극적 의혹’과 동시에 국가기관이 입맛에 맞지 않는 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사적으로 작동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더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혼외자 관련 정보를 알아내려 국정원, 청와대 행정관, 민정수석실 파견 경찰관, 서초구청, 서울강남교육청,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이 동원됐다.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다.

    첩보영화 수준

    혼외자로 지목된 채모 군 출생연도는 2002년. 채군이 혼외자가 맞다면 채 전 총장이 어떻게 10년 넘게 혼외자의 존재를 숨겨왔는지도 호기심을 유발하는 부분이다. 삼성물산 출신이자 채 전 총장의 고등학교 친구 이모(55) 씨와 내연녀로 지목된 임모(55) 씨 사이의 금전 관계가 의혹을 사면서 삼성이 사건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채 전 총장은 퇴임 이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부 지인과는 연락을 계속했지만 최근에는 이마저 두절됐다고 한다. 임씨는 극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검찰과 병원을 오간다. 채군은 어머니와 떨어진 채 미국에서 지낸다.

    검찰이 정보 유출 과정, 임씨의 변호사법 위반 및 혼외자 의혹 등에 대한 수사 결론을 발표할 시기에 이르렀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검찰은 정보 조회에 관여한 청와대 관계자들을 형사처벌하기는 어렵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지은 한편, 임씨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는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와 채군 관련 개인정보를 누가 어떻게 조회했는지를 수사하는 곳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조기룡)다. 피고발인은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기자들과 이들에게 불법적으로 정보를 제공했다는 의심을 받는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검찰은 피고발인을 먼저 소환하거나 강제수사를 벌이는 대신 객관적인 증거 수집에 나서는 전략을 폈다. 뚜렷한 증거 없이 청와대를 겨냥할 수 없는 노릇이고 자칫 벌집만 쑤시다가 수사를 그르칠 수 있는 만큼 객관적 근거가 되는 공공전산망 로그 기록을 찾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지난해 6월 11일과 25일에 청와대 내에서 최소 2개 라인을 통해 채 전 총장의 관련 정보를 수집한 혐의가 드러났다.

    총무비서관실 조회 지시는 누가?

    검찰에 따르면 6월 11일 조회는 청와대 총무비서관실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검찰이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공식 수사 결과 발표(14일)를 앞두고, 원 전 원장에 대한 불구속 기소 방침을 발표한 날이다. 검찰은 6월 11일 총무비서관실 조오영 전 행정관이 서울 서초구청 조이제 국장에게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 열람을 요청한 것을 확인했다. 국정원 송모 정보관이 유영환 서울강남교육지원청 교육장에게 채군의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정보를 탐문한 것도 6월 초다. 검찰은 이날 서초구청장실 응접실에서 누군가가 송 정보관과 통화한 기록도 포착했지만, 구청장실 주변 CCTV에 단서가 드러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

    6월 25일에 이뤄진 조회는 민정수석실이 감찰 차원에서 벌였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청와대 특감반 소속 김모 경정이 ‘채 전 총장의 내연녀라는 임씨가 채 전 총장을 남편으로 사칭해 아들 명의 계좌로 금품을 수수했다’는 첩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조회를 했다는 것. 김 경정은 임씨와 아들 채군의 주민등록을 조회했지만 미성년자인 채군의 주민등록번호가 나오지 않아 첩보 내용은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6월 11일 이미 파악한 정보를 25일 김 경정이 다시 파악하려 한 점에서, 청와대 내 서로 다른 두 라인이 동시에 움직인 것으로 본다. 정보를 공유했다면 굳이 조회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최근에는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실과 교육문화수석실도 채군 관련 정보 조회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민정수석실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고 수습했다. 검찰은 국민건강보험공단 한모 과장이 고용복지수석실 관계자 부탁으로 임씨 정보를 조회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교육문화수석실이 유 교육장에게 채군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조회해 달라고 요청한 부분도 확인했다.

    청와대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일단 총무비서관실에서 이뤄진 조 전 행정관-조 국장 라인의 조회를 지시한 ‘비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또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채 전 총장 혼외자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혼외자 관련 보도 이후 사실 확인 차원에서 감찰에 착수했을 뿐 언론 보도 전 민정수석실에서 어떤 확인 작업도 벌인 바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6월 25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임씨와 채군의 주민등록을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다. 변호사법 위반이나 혼외자 의혹이나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사건이므로 민정수석실이 실제로는 혼외자 의혹을 들여다본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사생활 정보 지나치게 유출

    검찰은 개인정보를 조회한 사람에 대해 어떤 처벌을 내릴까. 검찰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리지만, 고위공직자의 감찰 차원에서 이뤄진 만큼 형사처벌이 쉽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기류는 특감반 소속 김 경정을 조사하는 방식을 놓고도 엿보인다. 김 경정은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지 않고 먼저 진술서를 보내왔다. 검찰 관계자는 “소환 조사 여부 등을 검토하는 중 청와대에서 진술서를 보내왔다”고 말했다. 김 경정의 진술서는 검찰 수사 상황과 동떨어진 내용은 아니다. 민정수석실에서 자신들이 해명해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 아는 만큼 김 경정 관련한 부분 외에 다른 의혹에 대한 해명도 담아 보내왔다는 것. 이에 대해 민정수석실이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정해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검찰은 답변서를 검토한 다음 소환조사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조사를 한 사람부터 차례로 수사하고 있지만, 결국 검찰 처분의 대상은 피고발인이다. 이 때문에 곽 전 수석 등 피고발인에 대한 수사나 확인 작업이 꼭 필요하다. 검찰은 이들에 대해 일부 확인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피고발인이 ‘청와대’와 ‘메이저 언론사’ 소속이라는 이유로 봐주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검찰은 불편한 속내를 비쳤다.

    “우리가 원하는 ‘메뉴’는 이건데, 왜 자꾸 ‘다른 메뉴’를 내놓느냐는 말 아닌가? 청와대, 메이저 언론사 소속이기 때문에 수사를 안 한 게 아니다. 설령 통화내역에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다 하더라도 그게 진술이나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객관적 증거를 수집하느라 검찰은 지난한 길을 걸어왔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서봉규)는 임씨를 둘러싼 의혹을 수사한다. 임씨가 지난해 5월경 가사 도우미로 일하던 이모(62) 씨에게 돈을 빌린 후 “빌린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지 않고 ‘아들과 아버지(채 전 총장)의 존재’에 대해서도 발설하지 말라”고 협박한 혐의에 대해서다.

    여기에 6월경 민정수석실에서 확인한 임씨의 ‘사건 청탁에 따른 금품 수수’(변호사법 위반) 혐의 사건이 형사6부로 배당되고, 검찰이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임씨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로 확대됐다.

    당초 검찰 내에선 임씨의 출석이 불확실한 만큼 체포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의외로 임씨가 출석을 잘했다고 한다. 임씨 측은 이씨에게 3000만 원을 갚은 뒤 합의서를 작성해 검찰에 제출했다. 합의했다고 해서 검찰 수사가 중단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상 참작의 사유는 될 수 있다. 수사팀은 임씨의 공갈 및 협박 혐의에 대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은 상태다.

    임씨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 검찰은 채 전 총장과 임씨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정황증거를 많이 수집했다. 이 때문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채 전 총장과 관련한 내밀한 정보가 새어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은 임씨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 채 전 총장과 채군, 임씨가 함께 찍은 사진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한 임씨 분만기록이 보관된 병원을 압수수색해 임씨가 채군을 낳기 전 노산(老産)의 위험성을 알아보기 위해 제출했던 ‘양수검사 보호자 동의서’도 확보하고 채 전 총장의 서명으로 보이는 기록까지 확인했다고 한다. 임씨는 자택을 깔끔히 정리했는데 함께 찍은 사진이 발견됐다는 점을 의아하게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임씨 사건에 대해 “‘심플’한 사건”이라며 “계좌에 꽂힌 돈이 있고,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사람을 불러 조사해보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론 유전자 검사가 가장 ‘깔끔’한 방법이지만 본인 동의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변호사법 위반 수사의 불똥은 삼성으로 튀었다. 채 전 총장의 고교 동기인 이씨가 임원으로 재직했던 삼성그룹 계열 K사에서 17억 원을 횡령했는데, 이 가운데 일부를 임씨에게 건넨 혐의가 계좌추적을 통해 드러나면서다. 검찰은 채 전 총장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면 이씨가 채군 계좌로 입금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다. 이씨는 2010년 1억2000만 원, 지난해 채 군이 유학을 가기 직전 8000만 원을 채군 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 2년이나 지난 시점에?

    K사는 2월 28일, 이씨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K사가 이번 사건의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삼성그룹의 조치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삼성 측은 기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삼성은 이미 올 2월 검찰 인사를 앞두고 해당 사건을 맡을 형사6부장이나 주임검사의 인사이동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는 후문이다.

    삼성은 이씨가 2012년 3월 K사를 떠나게 된 과정에 대해 “이씨가 17억 원을 횡령한 사실이 내부 감사에서 드러났고, 이 때문에 해임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횡령 발생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K사가 뒤늦게 법적 조치를 취한 배경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검찰은 삼성이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씨가 임씨에게 보낸 자금의 성격을 살피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삼성의 진정 내용이 맞는지 제출한 금융거래내역 등 자료를 확인 중”이라며 “향후 이씨에 대해 더 강한 신병확보 조치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씨는 4월 15일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이씨를 상대로 채군에게 보낸 돈의 출처와 채 전 총장과의 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검찰은 이씨의 통신 내역과 금전거래 내역을 살펴보며 체포영장 청구를 검토 중이다.

    임씨는 검찰에서 “이씨와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일 뿐 부정한 돈거래가 아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 전 총장과 관계없이 빌린 돈이라는 것. 하지만 검찰 조사 과정에서 채 전 총장과 이씨 사이의 금전거래 내역이 드러난다면, 전직 검찰총장이 스폰서 의혹으로 조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관련 진술이 나오면 채 전 총장이 검찰 조사를 피할 수가 없다. 지금은 검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뭉갤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씨는 최근 기자에게 “이씨와는 친분이 있어 여러 거래를 했고 자금 거래는 계좌추적으로 뜯어보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또 “살면서 어려우면 돈을 빌릴 수 있고 특히 나는 가게를 운영한 만큼, 돈을 빌릴 수도 갚을 수도 있고, 못 갚으면 천천히 갚을 수도 있다”며 “이 정도가 죄라면 죄일 것”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한번 검찰에 출석하면 10시간 이상 새벽 2~3시가 다 되도록 조사를 받는다고 한다. 심각한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아왔다. 지난해 10월 말 기자들이 가평 친척 집에 진을 치고 있을 때는 일주일 내내 식사 한 끼 못했다고 한다. 임씨는 기자에게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며 심적 고통을 드러냈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채군 역시 마음의 고통을 겪는 것으로 전해진다. 인터넷을 통해 사실을 접한 동료 학생들이 “너희 나라에는 개인적인 일 가지고 그렇게 보도하느냐”는 질문에서부터 심지어는 “국가에서 (너희에게) 아파트도 장만해주느냐”는 식의 조롱까지 한다는 것. 임씨는 이와 관련, “어른들의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 진실은 어떤 식으로든 밝혀질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만약 채군이 채 전 총장의 혼외자로 밝혀진다면, 채 전 총장은 혼외자가 있으면서도 검찰총장이 돼 검찰 조직을 사실상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을 뿐 아니라 사퇴하면서 마치 ‘청와대에 밉보여 찍혀 나간다’는 식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검찰과 청와대는 채군의 혼외자 여부에 대해 확실한 사실관계 정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임씨의 생각은 다르다.

    “검찰이 어떻게 발표를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 사건은 이미 진실이 없어진 사건입니다. 어떻게 발표를 하든 채 총장님이 알아서 대응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저한테 어떤 원망을 하시든, 어떤 법적인 조치를 하시든 저는 달게 받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임씨가 말하는 ‘진실’은, 검찰총장이 청와대에 밉보여 찍혀 나갔다는 의혹의 진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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