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호

춤과 음악은 영혼을 치유하는 음식

  •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입력2014-10-22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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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과 음악은 영혼을 치유하는 음식

    바흐의 삶과 죽음을 다룬 현대 발레 ‘멀티플리시티’ 공연.

    결실의 계절, 가을을 맞아 올 한 해에 벌어진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느낀 점을 떠올려본다.

    4월, 온 나라를 전대미문의 충격과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 발레단은 바흐의 삶과 죽음을 다룬 현대발레 ‘멀티플리시티’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엄청난 상황 앞에서 과연 공연을 강행해야 하는지 굉장히 고민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안무가인 나초 두아토의 메시지에 힘을 얻어 조심스럽게 공연을 올릴 수 있었는데, 그의 메시지는 다름 아닌 “춤과 음악은 영혼을 치유하는 음식과도 같다”는 것이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우리로서는 진심을 다한다고 했지만 과연 공연장을 찾아주신 관객도 같은 마음으로 느끼실지 긴장됐다. 다행히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바흐의 삶을 추모하는 경건한 동작에 많은 관객이 “마치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리뷰한 것을 보면서 안도할 수 있었다. 좋은 공연을 보면 단순히 마음이 기쁘고 좋을 뿐 아니라 힘들고 지친 마음 깊은 곳의 아픔까지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상호 소통이 아닌가 재확인하게 된다.

    지난달, 내가 맡은 사회복지기관에서 ‘꿈씨 음악회’를 열었다. 이 음악회는 몸이 불편하거나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의 재능을 키워줌으로써 세상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2005년부터 시작한 문화예술복지 사업이다. 올해에도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다섯 명의 청소년이 각기 개인 레슨을 받으며 피나는 연습을 했고, 마침내 무대 위에서 자신들의 꿈을 세상에 펼쳤다.

    연주 전, 연습 과정을 담은 짧은 동영상으로 학생들을 각각 소개했다.



    바이올린을 연주한 학생은 “음악은 무언의 소통이며, 마음의 소리를 전하고 듣고 또 거기에 대답해주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내가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음악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표현했다. 평생 공연계에서 일해온 내게 이 학생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큰 감동을 주었다.

    이들이 전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굉장히 큰 울림과 감동을 주는 성숙함 이상의 것이었는데 내가 더욱 놀란 것은 바로 학생들의 실력 때문이었다. 색소폰으로 재탄생한 ‘문 리버(Moon River)’는 가슴 가득 뭉클함을 안겨주었고 또 다른 학생의 바이올린 연주는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깔끔하고 뛰어난 음색으로 감동을 주었다. 300여 석의 작은 공연장에서 열린 음악회였지만 그 어떤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된 것보다 훌륭했고 관객을 감동시켰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문화예술을 자신과 거리가 먼 것, 혹은 가진 사람들이 여유 있게 즐기는 부가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문화예술은 우리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매우 일상적이고 가까이에 있으며 그 영향력은 생각보다 꽤 크다.

    꿈씨 음악회에 참여한 학생들처럼 사회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던 이들이 문화예술을 통해 세상과 쉽게 소통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면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행복을 느끼며 남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며칠 전 영광스럽게도 여성문화네트워크와 여성신문사, 그리고 문화관광부에서 수여하는 여성문화인상을 수상했다. 발레단 창단 30주년을 맞이한 올해 주어진 상이라 의미가 더욱 크다.

    흔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30년 전 한국 발레가 불모지나 다름없던 시절부터 오늘날 눈부신 발전을 이루는 데 견인차 구실을 할 수 있었던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날개 밑에 바람을 불어넣어준 많은 분 덕분임을 잊지 않으며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천상의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라는 비전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예술의 꽃을 피울 수 있게 해주신 설립자 양위분과 한국이 발레의 메카가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꿈을 제시한 이사장님, 수많은 땀과 노력으로 그 비전과 꿈을 함께 일궈온 단원과 직원,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노력을 항상 응원하고 갈채를 보내준 관객이 있었기에 오늘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상을 받으면서 여성과 문화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여성의 역할은 바로 모성애가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남성의 시대에는 지식과 능력이 중요한 화두였다면 여성의 시대에 여성은 거기에 더해 어머니의 심정으로 세상을 보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인종, 종교, 국적과 국경을 넘어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 아름다운 작품을 보고 감동받거나 영감을 받았을 때 우리가 누구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처럼 문화예술은 우리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잊게 하며 서로의 다름보다는 우리 모두가 한 가족임을 알게 해준다. 그러하기에 이 시대에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요즘 많은 사람이 세상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문화와 예술은 이 각박하고 메마른 세상에 적지 않은 활력을 준다. 문화와 예술을 가까이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자주 접해야 한다.

    춤과 음악은 영혼을 치유하는 음식
    문훈숙

    영국 로열발레스쿨,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수료

    동양인 최초 러시아 마린스키극장 객원 주역

    러시아 키로프발레단 ‘지젤’ ‘돈키호테’ ‘백조의 호수’ 주역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유니버설문화재단 이사장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1999), 한국발레협회 대상(2009), 국제공연예술협회 어워드 최고경영자상(2012), 올해의 여성문화인상(2014) 수상


    어린 나이에 시작하는 문화 활동은 창의성뿐 아니라 재능, 끼를 발견할 수 있고 나아가 자기의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 또 성숙한 자세로 사회와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한다. 이렇듯 문화예술을 일찍 접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삶에 지치고 위로가 필요한 이 시대에 우리의 마음을 터치할 수 있는 것들을 가까이하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과도한 경쟁과 주입식 교육, 그리고 입시에 심리적인 부담감을 느끼며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문화예술 교육은 정말 필요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점진적으로 도입되는 자유학기제와 미술 또는 음악교육 거점학교 등의 교육 제도들이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문화예술 교육을 통해 ‘성공’에 앞서 ‘행복’을 꿈꾸는 삶으로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참으로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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