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날 협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는 공식 의제가 아니었지만, 주호영 당 정책위의장이 ‘즉석 안건’으로 제시함에 따라 이러한 결과가 도출됐다. 이로써 연금 개혁의 공은 정부로 떠넘겨졌다. 이제껏 야심 차게 개혁 작업을 주도하다 뜻하지 않게 한발 물러서게 된 특위의 기류는 어떨까.
“굉장히 개혁적이어야 한다”
새누리당 초선인 김현숙(48) 의원(비례대표, 원내대변인)은 4월 1일 특위 발족 때부터 특위 산하 공적연금개혁분과 간사로서 6개월 동안 개혁안 마련의 실무자로 활동해왔다. 그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개혁안 논의를 이끌어간 이는 특위 위원장인 이한구 의원과 김 의원뿐이다. 10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 의원은 “전날 기분 전환을 위해 등산을 다녀왔다”고 했다. 모르긴 해도 정신적 피로가 꽤나 쌓였을 법하다.
▼ 특위 차원에서 연금학회에 공무원연금 개혁안 작성을 의뢰한 경위는. 일종의 ‘외주’를 준 셈 아닌가.
“외주나 용역이 아니라 전문가 의견 수렴을 위해 부탁한 거다. 금전적 지원도 전혀 없었다. 최근 연금학회장직을 사퇴한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당이 특위를 만들 때부터 참여했다. 당사자들한테 부담이 될까봐 다 말할 순 없지만, 학회 소속 연구자도 여럿 개혁안 논의에 참여했다. 특위에 몸담은 의원 중 경제학자도 적지 않다. 위원장인 이한구 의원과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그렇고, 나도 그렇다. 따라서 다른 의원에 비해선 연금에 대해 좀 더 많이 안다고 할 수 있지만, 모두가 연금 전문가인 건 아니다. 그래서 국내 최고 전문가 집단인 연금학회 연구진의 의견이 매우 중요했다. 그들의 견해를 경청했고, 많이 수용했다.
공무원연금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특위가 가졌던 생각은 개혁안은 그야말로 굉장히 개혁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미봉책으로 만들어 몇 년 지나면 다시 개혁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한번 제대로 만들어 수십 년 동안 문제없이 실행했으면 했다. 특위가 특히 강조한 건 재정 안정성과 함께 국민 눈높이에 맞춰 공무원이 연금에서 지나치게 혜택을 보는 문제를 없애자는 거였다. 그런 철학적 목표에 근거해, 이를테면 집단지성으로서 연금학회와 같이 작업해온 것이다.
그래도 연금학회 안이 얼추 만들어졌을 때 우려한 건 이 안이 어느 정도의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지, 국민 여론은 어떨지였다. 이 때문에 정치적 부담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공무원노조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니 연금학회에서도 걱정이 많았을 텐데, 김 교수가 용기를 내 학회 주최의 토론회를 여는 걸로 공식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공무원노조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중에 학회 내에서도 견해차가 드러나자 김 교수가 결국 회장직을 사퇴한 거다. 학회 사무실이 공무원노조에 점거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일부 언론이 마치 학회가 사적연금을 활성화하려는 음모를 가진 것처럼 오도해 김 교수는 개인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내가 송구하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드렸다.”
▼ 연금학회 안이 고강도로 나온 게 문제의 불씨를 제공한 건 아닌가.
“김 교수가 토론회 주제발표를 맡았는데, 그게 학회 전체 의견이라기보다는 본인 생각도 좀 섞여 있고 그랬다. 학회 안이라고 해서 꼭 광범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나. 발제자의 성향도 중요한 거다. 그런데 공무원노조가 그걸 문제 삼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 토론회를 무산시킬 만큼 공무원노조 반발이 거셀 줄 예상했나.
“그 정도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왜냐하면 토론회 전날 경찰이 내게 정보를 귀띔했는데, (경찰이) 공무원노조에 미리 얘기를 한 것 같았다. 토론회가 잘 진행될 수 있게 조합원들을 자제시켜달라고. 그때 노조 집행부가 300~400명의 조합원이 토론회장으로 몰려갈 텐데, 1인 시위를 하거나 약간의 소란은 있겠지만 토론회 자체는 열 수 있을 것이라고 통보한 모양이더라. 어찌 보면 노조 집행부가 의도와 달리 강성 조합원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한다. 공적 논쟁을 해야 하는 장(場)을 그렇게 난장판으로 만든 건 완전히 실력행사다. 결국 토론회를 못해 그날 패널들과 특위 측이 비공개로 1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