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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사막에 핀 하얀 장미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사막에 핀 하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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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글리츠를 만나다

사막에 핀 하얀 장미

산타페는 스페인식 황토 흙집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국 속 스페인 도시다.

조지아 오키프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미국의 여성 화가다. 40대에 미국 최고의 화가에 등극했고, 100세까지 살며 부와 명예를 함께 누렸다. 개인적 삶도 드라마틱하고 격정적이었다고 알려진다.

1930~40년대에 오키프의 명성과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작품 의뢰가 쇄도했고, 뉴욕과 그 근방에서 전시회도 수차례 열렸다. 최고 전성기는 50대 때 찾아왔다. 1943년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 1946년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 단독 회고전을 열었다. MoMA의 첫 여성작가 회고전 주인공이 바로 오키프였다.

여러 대학에서 명예학위도 받았다. 1976년에는 자서전을 썼고, 이듬해 그를 주제로 한 영화가 제작됐다. 1977년에는 제럴드 포드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시민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인 대통령 자유메달(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1985년에는 국가 문화메달(National Medal of Arts)을 받았다.

오키프는 위스콘신 주의 시골 마을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아일랜드계 아버지와 헝가리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미술가가 되기를 원했던 그는 18살 때 시카고 예술학교(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그 시절 예술가 대부분이 그랬듯 오키프도 뉴욕으로 옮겨와 미술 공부를 계속했다.



그는 뉴욕에서 운명의 남자 앨프리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1864~1946)를 만난다. 스티글리츠는 당시 세상에 갓 출현한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유명 사진작가이자 뉴욕 예술계의 거물이었다. 그는 ‘291’이라는 갤러리를 운영하며 유럽의 많은 아방가르드 작가를 미국에 소개하고 있었다.

오키프는 스물한 살 때 처음 291 갤러리를 방문했다. 하지만 당시엔 ‘거장’ 스티글리츠에게 말조차 건넬 수 없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8년이 지난 1916년에야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와 가까운 사이가 됐고, 291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는 예술가로서 자신감을 갖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사막에서 얻은 영감

오키프는 한때 순수예술을 포기하고 시카고에서 상업예술가로 일했지만, 1918년 스티글리츠의 요청에 따라 아예 뉴욕으로 이사 와 작품 활동에만 몰두했다. 그해 스티글리츠는 뉴욕 주 북부의 아름다운 호수 지역 레이크조지(Lake George)에 있는 별장에 오키프를 초대한다. 레이크조지는 나도 한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울창한 삼림 속에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펼쳐진 곳이다. 미국인들이 최고로 꼽는 여름 휴양지 중 하나라고 한다.

두 사람은 이때부터 1929년까지 매년 여름을 레이크 조지에서 함께 보냈다. 1923년부터는 스티글리츠가 매년 오키프의 개인전을 열어줬다. 스티글리츠의 후원에 힘입어 그는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화가로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와 관계가 소원해진 1929년 기차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들른 뉴멕시코에 완전히 매료됐다. 당시 교통 사정으로는 뉴욕에서 뉴멕시코까지 여러 날이 걸렸음에도 이후 거의 매년 뉴멕시코를 방문했다. 그는 뉴멕시코 사막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휴식을 취했고, 사막에서 주워 모은 돌과 동물 뼈 조각 등으로부터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사막 풍경과 동물 머리뼈는 오키프 그림의 중요 소재다). 나중에는 유타 주 콜로라도 강까지 여행의 반경을 넓혔다.

오키프는 40대 중반에 이르자 신경쇠약으로 더는 작업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1934년 고스트랜치를 방문하고는 아예 여기 눌러앉기로 맘먹었다. 고스트 랜치는 빨간 절벽이 병풍처럼 주위를 빙 둘러싼 사막의 요새 같은 곳이다. 붉은 암석 사이로 간간이 초록 식물이 머리를 내민다. 황량함 속에서도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내가 방문한 때는 초가을이었는데,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내리쬐는 사막의 햇빛이 하나의 조명처럼 고스트랜치를 감싸고 있었다.

오키프는 1945년에 아비키우에도 집을 마련했다. 1949년에는 뉴멕시코로 아예 이사를 왔다. 1950년대 후반에는 그간 꿈꿔오던 세계 여행에도 나섰다. 여행 중에도 많은 작품을 그렸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력이 급속히 나빠져 85세가 되는 1972년부터는 유화보다는 드로잉에 몰두했다. 1984년에는 아비키우에서 샌타페이로 옮겨왔고, 1986년에 99세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 나이로는 100세였다.

오키프의 작품은 매우 큰 특색이 있어서 쉽게 구분해낼 수 있다. 한국 최고의 여성 화가인 천경자의 작품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오키프와 천경자의 작품엔 이상하게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막에 핀 하얀 장미

Pedernal, 19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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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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