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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의 재발견

아스가르드, 요툰헤임, 헬헤임…

“오딘이 만든 9가지 세상, 판타지는 시작됐다”

  • 김원익 (사)세계신화연구소 소장·문학박사 apollonkim@naver.com

아스가르드, 요툰헤임, 헬헤임…

프레이야, 존 바우어, 1905.

프레이야, 존 바우어, 1905.

서울 공릉역 근처 한 수제 맥주 전문점 ‘바네하임’에서 메뉴판을 펼치면 흥미로운 단어들이 나온다. 맥주 종류 중에 ‘프레아 에일(Frea Ale)’과 ‘노트 에일(Nott Ale)’이 눈에 띈다. 노트 에일은 흑맥주다. 븍유럽 신화에서 오딘 삼형제는 거인 중 하나인 노르비의 딸 노트에게 검은 말이 이끄는 밤 마차를 맡기고 밤의 여신으로 삼았다. 영어 ‘Night’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흑맥주에 밤의 여신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렇다면 프레아는 누구일까. 그녀는 북유럽 신화 중 신들의 왕인 오딘의 아내 프리그(Frigg)로 보인다. 가정과 결혼의 여신 프리그가 프레아로 불렸기 때문이다. 프레아는 또한 사랑의 여신 프레이야(Freyja)의 오기(誤記)일 수도 있다. 술은 아무래도 가정과 결혼의 여신보다는 사랑의 여신과 더 깊은 관계가 있을 테니까. 

가게 이름 ‘바네하임’도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반(Vanr) 신족이 사는 공간이다. 원 명칭은 ‘바나헤임(Vanaheim)’인데, 이처럼 북유럽 신화는 독특한 공간 구조가 특징이다. 북유럽 신화의 무대는 바나헤임을 비롯한 아홉 공간으로 이뤄져 있는데, 크게 세 곳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신들의 전쟁에서 승리한 아스(Ass) 신족이 사는 아스가르드(Asgard), 인간들과 거인들이 사는 미드가르드(Midgard), 지하 세계인 헬(Hel)이 그것이다. 특히 미드가르드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도 나오는 ‘중간계’의 원형이며, 지하 세계인 헬은 ‘지옥’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헬(hell)’의 어원이기도 하다.


사악한 늑대 ‘스콜’과 ‘하티’

솔과 마니를 뒤쫓는 늑대들, 존 찰스 돌만, 1909.

솔과 마니를 뒤쫓는 늑대들, 존 찰스 돌만, 1909.

북유럽 신화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은 충돌과 갈등이다. 그래서 태양의 여신 솔(Sol)과 달의 신 마니(Mani)가 끄는 해 마차와 달 마차도 평화롭게 하늘 길을 달리지 못한다. 스콜(Skoll)과 하티(Hati)라는 사악한 늑대가 해와 달을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아가리를 크게 벌린 채 침을 질질 흘리며 하늘길을 따라 추격하기 때문이다. 해와 달이 대변하는 빛의 세계는 언제나 늑대가 대변하는 어둠의 세계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늑대들은 가끔 해 마차와 달 마차를 따라잡아 그토록 고대하던 사냥감을 덥석 입에 물기도 하는데, 이때가 바로 일식과 월식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겁에 질린 지상의 사람들이 엄청나게 크게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놀란 늑대들은 얼른 사냥감을 뱉어내곤 했다. 그러면 해 마차와 달 마차는 예전보다 더 빨리 하늘길을 달렸고, 더욱 더 허기진 늑대들은 다시 그 뒤를 바싹 쫓았다. 



이처럼 세상의 얼개를 만든 오딘 삼형제(오딘, 빌리, 베)였다. 이들은 서리거인 이미르를 죽여 그의 시신으로 자신들이 사는 계곡을 정비하면서 황량한 계곡에 대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서열도 분명히 해야 했다. 권력의 속성상 삼형제가 영원히 세상을 공동으로 통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딘 삼형제와 비견되는 그리스 신화의 삼형제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는 제비뽑기로 세상을 평화롭게 삼등분한다. 그 결과 제우스는 하늘, 포세이돈은 바다, 하데스는 지하를 차지한다. 북유럽 신화의 오딘 삼형제가 서열을 정한 방법은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갈등과 충돌로 점철된 북유럽 신화의 특성상 제우스 삼형제와는 달리 아마 싸움이나 경합으로 서열을 정리했을 것이다. 

북유럽 신화를 읽다 보면 자세한 설명도 없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오딘이 신들의 왕으로 부각되고, 다른 두 형제의 이름은 더는 언급되지 않는다. 아마 그사이 오딘은,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살해한 것처럼,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다른 두 형제를 죽였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원전에 따르면 한때 오딘이 지상을 시찰하느라 오래 자리를 비우자 빌레와 베가 권좌를 독차지하고 온갖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지르면서 형수인 프리그까지 차지했다. 하지만 7개월 만에 오딘이 귀환해 동생들을 제압하고 잘못을 바로잡자 이 세상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오딘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것은 아마 동생들을 제거하기 위한 고도의 계책이었을 것이다.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도 처음에는 로마를 이등분해 동생 레무스와 공동 통치할 것처럼 보였다. 로물루스는 국경에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처럼 포메리움(Pomerium)이라는 중립 지대를 마련하고, 레무스에게 그곳을 함부로 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 당시 포메리움은 고작 밭고랑 하나에 불과한 상징적인 국경선이었다. 하지만 경솔했던 동생은 형의 말을 가볍게 생각하고 그곳을 넘나들었다. 이에 로물루스는 “네가 그렇게 하면 누구나 따라 할 테니 그냥 둘 수 없다”며 레무스를 때려죽인다.


아스 신족과 반 신족, ‘신들의 전쟁’

굴베이그, 로렌츠 프뢸리히, 1895.

굴베이그, 로렌츠 프뢸리히, 1895.

북유럽 신들은 자신들의 왕 오딘의 통치 아래 한동안 태평성대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자 싸움이 잦아지더니 급기야 아스 신족과 반 신족이라는 두 무리로 나뉘어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반 신족이 거주하는 곳에서 굴베이그(Gullveig)라는 여신이 아스 신족을 찾아왔다. ‘황금 욕망’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그는 이 세상 모든 황금의 소재를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굴베이그는 오딘을 비롯한 아스 신족들에게 반 신족이 자신 덕분에 엄청난 황금을 갖게 돼 풍요를 누리고 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반 신족은 장신구뿐 아니라 식기도 모두 황금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굴베이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스 신족의 마음속에 갑자기 황금에 대한 욕망이 불타올랐다. 그들은 결국 굴베이그에게 황금의 소재를 알려달라고 몇 번을 간청했지만 그녀는 끝내 그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다. 

분노한 아스 신족들이 굴베이그를 잡아 온몸을 꽁꽁 묶은 채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버렸다. 하지만 굴베이그는 불에 덴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게 불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두 번이나 더 불 속에 내던져졌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스 신족은 굴베이그를 반 신족에게로 추방하는 방법 이외에 별도리가 없었다. 황금의 여신이라고 할 수 있는 굴베이그가 죽지 않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황금에 대한 욕망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확인해주는 것은 아닐까. 

귀국한 굴베이그에게서 아스 신족에게 홀대받았다는 말을 들은 반 신족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더구나 굴베이그가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는 사실에 반 신족은 깊은 모욕감을 느꼈다. 반 신족의 마음 깊은 곳에서 아스 신족과 갈라지면서 쌓인 서운한 감정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반 신족은 당장 전체 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다. 회의장은 점점 아스 신족에 대한 성토장이 돼가더니, 마침내 아스 신족과의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아스 신족과 반 신족의 전쟁이다. 

‘켈트·북구의 신들’의 저자인 다케루베 노부아키(健部伸明)는 아스 신족은 북유럽 서부인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에서 숭배하는 신들이었고, 반 신족은 북유럽 동부인 스웨덴이나 덴마크에서 숭배하는 신들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아스 신족과 반 신족의 전쟁도 북유럽의 이 두 지역이 충돌과 갈등을 일으키다가 결국 더 강성했던 아스 신족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신화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노부아키는 북유럽 신화 자료 중 반 신족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상당히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그것은 현재 남아 있는 북유럽 신화 자료 대부분이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등 북유럽 서부에서 쓰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질 ‘미미르’의 죽음, 오딘의 오열

머리가 잘린 미미르를 바라보고 있는 오딘, 게오르그 파울리, 1893.

머리가 잘린 미미르를 바라보고 있는 오딘, 게오르그 파울리, 1893.

반면 그리스 신화의 티탄 신족과 올림포스 신족의 전쟁은 아주 자세하게 전해 내려온다. 그 기간도 구체적으로 10년이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북유럽 신화의 아스 신족과 반 신족의 전쟁은 그 과정은 생략된 채 결과만 간단하게 전해 내려올 뿐이다. 그들은 한참 동안 격렬하게 싸우다가 화해 협정을 체결하고 서로 인질들을 교환했다는 것이다. 

이때 반 신족이 인질로 아스 신족에게 보낸 신들이 바로 바다의 신 뇨르드(Njord)와 그의 자식인 풍요의 신 프레이르(Freyr), 사랑의 여신 프레이야(Freyja)다. 그 대신 아스 신족은 반 신족에게 회니르(Hoenir)와 미미르(Mimir)를 보냈다. 회니르는 훤칠한 키에 아주 잘생긴 미남이었으며, 미미르는 신들 중 최고로 현명한 크바시르(Kvasir)에 버금가는 현자(賢者)였다. 

반 신족은 회니르의 겉모습을 보고 그가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은 자신들에게 큰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심지어 은근히 그가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는 신도 많았다. 하지만 사정은 딴판이었다. 회니르는 미미르가 곁에 있을 때는 자신감이 넘치며 판단도 빠르고 정확했지만, 미미르가 없을 때는 한없이 의기소침하며 판단도 더디고 미숙했다. 회니르는 미미르의 조언 없이는 아무 일을 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속 빈 강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반 신족은 회니르의 정체를 파악하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복수심으로 불타오르던 그들은 어느 날 회니르가 아니라 미미르의 목을 쳐 머리를 아스 신족에게 보냈다. 늘 미미르의 조언을 받으며 소중하게 생각했던 오딘은 그의 잘린 머리를 보고 한참 오열하더니 썩지 않도록 상처 부위에 정성스럽게 허브를 발라주었다. 또한 머리에 생명을 불어넣고 꼭 닫아버린 입이 다시 말할 수 있는 능력도 회복시켜 준 뒤, 그가 관리하고 있던 지혜의 샘에 그 머리를 넣어 원래 업무에 복귀시켰다. 

오딘은 원래 반 신족을 모욕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진심으로 두 신족 간의 평화를 원했다. 반 신족에게 자신이 가장 아끼던 현자 미미르를 인질로 보낸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딘은 자신의 진심을 곡해한 반 신족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 신족을 배려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 그들의 실수를 눈감아주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깊은 열패감에 사로잡힌 반 신족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다. 사실 전쟁 후 두 신족이 체결한 평화협정은 수세에 몰린 반 신족이 간청해 이루어진 것이라서 항복문서나 마찬가지였다. 오딘이 통 큰 마음을 보이자 반 신족도 그것을 화해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아스 신족에게 더는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북유럽 신화 9개의 세상

영화 ‘호빗 뜻밖의 여정’에 등장하는 중간계 미드가르드(위)와 북유럽 신화 9개의 세상. [ⓒThe Official Handbook of the Marvel Universe]

영화 ‘호빗 뜻밖의 여정’에 등장하는 중간계 미드가르드(위)와 북유럽 신화 9개의 세상. [ⓒThe Official Handbook of the Marvel Universe]

오딘이 이렇게 1인 체제로서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있을 무렵 거인뿐 아니라 난쟁이, 그리고 인간도 점점 그 수가 늘어났다. 오딘은 이제 지상과 지하, 하늘 공간을 확실하게 구분할 필요성을 느꼈다. 경계가 확실해지면 그만큼 분쟁 소지가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북유럽 신화의 무대를 누가 거주하느냐에 따라 크게 9곳의 공간(세상)으로 구분했다. 

첫째는 신들이 거주하는 아스가르드다. 이곳에는 오딘을 비롯한 아스 신들의 궁전이 들어서 있으며, 인간과 거인, 난쟁이들이 사는 미드가르드와는 비프로스트(Bifrost)라는 무지개다리로 연결돼 있다. 아스가르드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의 궁전이 들어서 있는 올림포스 산 위처럼 하늘 위 구름에 숨어 있어서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는 성경에서 야곱이 꿈속에서 오른 하늘 사다리를 빼닮았다. 우리나라 신화에는 특히 기다란 줄이 지상과 하늘을 이어준다. 가령 제주도 무속 신화의 ‘삼승할망본풀이’에서 맹진국 따님애기는 노각성자부줄이라는 신비한 줄을 타고 하늘로 불려간다.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에서도 오누이는 호랑이를 피해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비프로스트도 인간이 원하면 언제든 하늘로 올라가 신들과 대면할 수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신들은 점점 타락해가는 인간들을 보고 그 다리를 거두어 가버린 것이 아닐까. 

신들의 공간인 아스가르드에는 2개의 평원이 있다. 하나는 신들의 궁전이 들어서 있는 아스가르드 중앙의 이다볼(Idavoll) 평원이고, 다른 하나는 악의 세력과 최후의 전쟁을 벌이게 될 광활한 비그리드(Vigrid) 평원이다. 이다볼 평원에는 절대로 얼지 않는 이핑(Ifing)강도 흐르고 있다. 

그리고 반 신족이 거주하는 ‘바나헤임(Vanaheim)’과 요정들이 거주하는 ‘알프헤임(Alfheim)’은 아스가르드의 한쪽 구석에 자리한다. 반 신족은 비록 아스가르드에 자신들의 공간을 갖고 있지만, 아스 신족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신들이기 때문에 앞으로 북유럽 신화의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네 번째 공간은 인간들이 거주하는 미드가르드다. 미드가르드는 오딘 삼형제가 서리거인 이미르를 죽이고 그의 살로 만든 대지 한가운데에 있다. 그리고 이미르의 피로 만들어진 광활한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난쟁이들이 거주하며 놀라운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스바르트알프헤임(Svartalfheim)’, 거인들이 거주하는 ‘요툰헤임(Jotunheim)’도 미드가르드의 한쪽에 자리한다. 특히 거인들은 요툰헤임 안에 자신들의 성채인 ‘우트가르드(Utgard)’를 갖고 있다. 

일곱째와 여덟째 공간은 ‘무스펠헤임(Muspellheim)’과 ‘니플헤임(Niflheim)’. 무스펠헤임은 대지 남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불의 공간이고, 니플헤임은 대지 북쪽으로 한없이 이어진 얼음의 공간이다. 두 공간 모두 태초에 어둠에서 생성된 곳이다. 특히 불의 공간 무스펠헤임에는 그곳의 수장인 거인 수르트(Surt)가 수르트알로기(Surtalogi)라는 ‘불칼’을 높이 빼 들고 지키고 있다. 목성의 달 이오(Io)에 있는 활화산 이름도 수르트다. 

마지막으로 니플헤임의 영역에 놓여 있으면서 죽은 자들이 거주하는 ‘헬(Hel)’, 혹은 ‘헬헤임(Helheim)’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헬’이라는 개념은 죽은 자들의 공간일 뿐 아니라 오딘의 양아들 로키(Loki)의 딸로서 그곳을 지배하는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물푸레나무 이그드라실, 프리드리히 빌헬름 하이네, 1886.

물푸레나무 이그드라실, 프리드리히 빌헬름 하이네, 1886.

북유럽 신화에는 헬 이외에도 죽은 자들의 공간이 또 하나 있다. 그곳은 바로 아스가르드에 있는 오딘의 궁전인 ‘발할라(Valhalla)’다. 발할라는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은 영웅들만 갈 수 있는 곳이지만, 헬은 보통 사람들이 죽어 가는 곳이다. 헬헤임 입구에는 그곳을 지키는 개 ‘가름(Garm)’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삼두견 ‘케르베로스(Kerberos)’와 비교된다. 

이그드라실(Yggdrasil)은 북유럽 신화의 9개 공간을 아우르는 거대한 물푸레나무 이름이다. 이그드라실은 ‘세계의 나무’ 혹은 ‘시간의 나무’라고도 불리는데, 아무래도 가장 어울리는 이름은 ‘생명의 나무’일 것이다. 이그드라실은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 인간, 거인, 난쟁이뿐 아니라 모든 동식물에게 생명의 근원인 물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그드라실은 늘 넓고 깊고 푸른 가지로 그들을 품으면서 편안한 안식처가 돼준다. 이그드라실은 크기는 다르지만 그 역할이 우리나라의 당산나무나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신단수(神壇樹)와 유사한 성스러운 나무인 셈이다.


死者의 살을 뜯어 먹는 ‘왕뱀’ 니드호그

영화 ‘캡틴 아메리카-퍼스트 어벤져’(2012)에서 오딘의 보물 테서랙트를 발견하는 슈미트. [ⓒMarvel]

영화 ‘캡틴 아메리카-퍼스트 어벤져’(2012)에서 오딘의 보물 테서랙트를 발견하는 슈미트. [ⓒMarvel]

이 나무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어떤 원전에 따르면 신들의 왕 오딘이 이 나무를 심었다고 주장한다. 일찍이 오딘이 대지를 돌아다니다가 물푸레나무로 인간을 만든 적이 있으니, 대지가 만들어진 다음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중에서 오딘이 대지에 심은 물푸레나무가 엄청난 크기의 나무로 자란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이그드라실은 세상의 아홉 공간 중 세 곳에 거대한 뿌리를 내리고 샘물을 하나씩 만들어냈다. 각각의 샘 근처에는 그곳에 정착해 샘을 보살피며 살고 있는 관리자들이 있었다. 

니플헤임의 흐베르겔미르(Hvergelmir) 샘에는 수많은 뱀이 이그드라실의 뿌리를 갉아먹으며 살고 있었는데, 대장은 왕뱀 ‘니드호그(Nidhogg)’였다.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첫 작품인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에서 악당 슈미트가 신전 벽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진 녀석의 눈을 찔러 보물 테서랙트(tesseract)를 발견하는 바로 그 왕뱀이다. 니드호그는 부하 뱀들과 함께 이그드라실의 뿌리와 헬에 있는 죽은 자들의 살을 뜯어 먹고 피도 빨아 먹었다. 그런데도 이그드라실은 늘 푸르고 잎이나 가지가 시드는 일이 없었다.


아스가르드, 요툰헤임, 헬헤임…

김원익
● 1961년 전북 김제 출생
● 연세대 독문학과 졸업(문학박사), 독일 마부르크대 수학
● 신화연구가, (사)세계신화연구소 소장
● 저서 : ‘신화, 인간을 말하다’ ‘그림이 있는 북유럽 신화’ 외 다수




신동아 2019년 12월호

김원익 (사)세계신화연구소 소장·문학박사 apollon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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