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연구원→원장, 37년 우주 외길 人生
꿈 좇아 ‘맨 땅에 헤딩’
항우연 내홍 끝, 5월 누리호 3차 발사 문제없다
韓보다 못사는 나라도 우주 개발하는데…
아직 1%? 99% 열려 있다는 뜻
2월 7일 이상률 원장은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뉴 스페이스 시대는 한국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이상률(63)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원장은 후자다. 2월 7일 대전 유성구 항우연 집무실에서 만난 이 원장은 사진 촬영이 퍽 어렵게 느껴지는 듯했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럴 법도 하다. 이 원장의 37년 우주개발 외길 인생 가운데 이토록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지는 채 1년이 되지 않았으니까. 지난해 6월 한국 독자 개발 우주 발사체 누리호가 발사 성공을 거둔 때부터다.
이상률 원장은 한국 ‘우주개발 1세대’다. 서울대 항공공학과(현 항공우주공학과) 학·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86년 천문우주연구소에서 우주개발 엔지니어를 모집할 때 합류했다. 1989년 항우연이 설립되자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프랑스 폴사바티에대로 유학 가 자동제어(우주응용)학 석·박사 학위를 얻고 귀국한 후엔 다목적실용(아리랑)위성, 정지궤도복합(천리안)위성 등 우리나라 위성 개발을 모두 이끌었다.
1999년 아리랑 1호부터 그의 손을 거친 위성 9개가 모두 성공했다. 2006년 발사한 아리랑 2호를 비롯한 8개가 아직 작동하고 있다. 2008년엔 한국형 달 탐사선 개발 초안을 만들었다. 특히 2019년 달탐사개발사업단을 맡아 좌초 위기에 놓인 달 궤도 탐사선 프로젝트를 새로운 비행경로 제시로 소생시켰다. 이때 살아난 탐사선이 지난해 12월 28일 달 궤도 진입에 성공해 한국을 세계 7번째 달 탐사국 반열에 올린 ‘다누리’다.
2021년 항우연 원장에 취임해 누리호 개발 및 발사를 전폭 지원했다. 같은 해 10월 한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이듬해 6월 21일 끝내 성공을 거뒀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11번째 자력 우주로켓 발사국이자 1t 이상 실용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킬 수 있는 7번째 국가가 됐다.
본격적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자 이 원장은 사진 촬영 때완 전혀 다른 모습이 됐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열변을 토했다. 인터뷰 7일 전 질의서를 보냈다. 상당수 인터뷰이는 답변서를 준비해 읽으며 인터뷰에 임한다. 이 원장은 답변서를 준비하지 않았다. 질의서를 쓱 읽고만 왔단다. 실무진보다 실무를 더 잘 아는, ‘1호 연구원’ 출신 원장의 자신감이라 생각됐다.
지난해 6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가 발사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공우주’라는 말도 없던 시절
사진 촬영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보입니다. 지난해 6월부터는 꽤 하지 않았나요.“사진 찍는 게 제일 어려워요. 연구원으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차라리 어디 가서 토론하거나 기술 발표하는 게 편하죠(웃음).”
한국 우주개발 1세대로 꼽힙니다. 대학 시절부터 쭉 이 분야에 있었는데, 당시로선 낯선 학문이었을 듯합니다.
“‘항공우주’라는 말도 없었죠. 항공공학과도 전국에 서울대, 인하대, 항공대 3개뿐이었고요. 졸업하면 항공업계로 취업하곤 했죠. 심지어 자동차 회사, 전자회사로 가기도 했고요. 1985년에야 조선대에 ‘우주항공공학과’라고 해서 ‘우주’를 붙인 과가 처음으로 생겼습니다. 제가 항공공학과에 진학할 때부터 우주를 연구하겠다고 생각한 건 전혀 아니었어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없었고요.”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던 시절이라 그렇습니까.
“그렇죠. 부모님은 법대나 의대를 가길 원했지만 그쪽은 영 안 맞을 것 같았어요. 어릴 때부터 천문 등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진로로 삼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심취한 것도 아니었고…. 하늘을 다루면서도 순수 학문만을 추구하진 않는, 항공공학과는 일종의 타협과도 같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공학 분야에 있으면서도 꿈을 좇곤 했죠. 혹시 기업에 좋은 자리가 있었다면 취직했을지도요. 이런 이야길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웃음).”
결국 꿈을 따르게 됐네요.
“대학원에서 공부하다 보니 발사체, 인공위성 등 우주 기술을 배우게 됐습니다. 우주가 조금 ‘묻은’ 거죠. 그러다 1986년 천문우주연구소가 열렸고 배운 게 그쪽이라 가게 됐어요. 3년 뒤 항우연이 설립되자 ‘우주는 항공이랑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여론에 이리로 옮겼고요. 당시 천문우주연구소에 연구원이 저 포함 10명도 안 됐는데, 모두 넘어왔습니다.”
이상률 원장은 우주 연구 초창기 상황을 ‘맨 땅에 헤딩’이라고 표현했다.
맨 땅에 헤딩이라면….
“천문우주연구소에 들어갈 때엔 우주 연구를 전담하는 부서도 없었어요. 1년 뒤에야 생겼지만 그래봐야 ‘사운딩 로켓(각종 연구를 위해 발사하는 실험용 로켓. 우주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다시 지상으로 떨어짐)’을 연구하는 수준에 그쳤고요. 그나마 발사체 연구는 빨리 이뤄진 편입니다. 위성 연구부서는 1990년대 초까지도 없었어요. 저 역시 발사체 쪽에 있다가 프랑스로 유학을 다녀온 후부터 위성 연구를 맡게 됐습니다. 그나마 발사체 분야는 정비가 됐는데, 위성 분야는 무주공산이니 개척해 보라는 뜻으로 보낸 거죠.”
지난해 누리호 발사 성공 이후 항우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연구원 처우 문제가 불거졌다. 공공기관 정보공개 사이트 ‘알리오’에 따르면 2021년 기준 25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가운데 항우연은 세 번째로 많은 예산을 쓰지만 신입사원 초봉은 3825만 원으로 21위에 그쳤다. 평균은 4260만 원이다.
국가 지원이 예전부터 박한 편입니까. 연구원 처우 문제가 거론되는데요.
“저 때야 지원이 박하다기보다 제대로 된 연구·개발이 확립조차 되지 않은 시절이니까요. 요즘이야 장학금이나 프로젝트 지원금도 나오곤 하지만 그땐 아니었죠. 2000년대 초반엔 전면 PBS(Performance Budgeting System·성과주의예산제도)가 시행되기도 했는데, 프로젝트를 못 따면 급여도 없었어요. 그래도 ‘처우가 나쁘다’는 생각까진 안 들었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된 건지 참….”
“열심히 하면 되던 때 끝났다”
2월 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간한 ‘2022 우주산업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세계 각국 우주 분야 정부예산 규모는 1073억 달러(약 136조2000억 원)로 전년 대비 19% 증가했다. 미국의 우주 예산은 17.7% 상승한 598억 달러(약 76조9000억 원)다. 중국과 일본은 각각 23.4%, 14.6% 증가한 161억 달러(약 20조4000억 원), 35억 달러(약 4조4000억 원)를 기록했다. 러시아도 9.3% 늘어 31억 달러(약 4조 원)에 달했다. 한국은 4억 달러(약 5000억 원)로 22.8% 줄었다. 또 2019년 12월 기준 우주 분야 전문 인력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 1만7396명, 독일항공우주연구센터(DLR) 8444명, 프랑스 국립우주연구센터(CNES) 2400명, 인도우주연구기구(ISRO)가 1만7222명인 반면 항우연 인력은 1039명에 불과하다.주어진 조건을 감안하면 지난해 누리호·다누리 성공이 큰 성과로 느껴집니다. 원동력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합니까.
“사명감 혹은 자부심에서 비롯된 열정이요. 그리고 주 52시간 근무, 이런 거 없었거든요. 퇴근할 때쯤 되면 또 업무가 와요. 토요일? 당연히 일하죠. 주 70시간은 일한 것 같네요. 뭐, 그때는 저희뿐 아니라 모두 그렇게 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MZ세대는 받아들이지 못할 일이네요(웃음).
“그래서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지난해부터 유연근로제를 도입했습니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자신이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게요. 사회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더는 무작정 희생을 강요하면 안 됩니다. 항우연이 이룬 성과가 있긴 하지만 지금까진 이른바 ‘추격형’이었잖아요. 선진국이 해놓은 걸 따라간 것이기 때문에 목표가 분명했죠. 몇 가지 주제를 선정해서 집중하고, 결과를 냈죠. 이제부턴 아닐 거라고 봐요. 많은 게 바뀌어야 합니다. 박수 칠 때 더 잘해야 해요. 갈 길이 멉니다.”
어떤 방식의 변화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기술은 스포츠와 달라요. 스포츠에선 내가 열심히 하다 보면 선두 주자가 실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역전 기회가 생기지 않습니까. 기술은 열심히 한다고 순위가 바뀌는 게 아니에요. 나는 계속 따라가고, 선두 주자는 더 많이 앞서가거든요. 쫓아갈 게 아니라 먼저 시작해야 해요. 예컨대 미국 기업 스페이스X처럼 새로운 발상을 하는 거죠. 우주 분야 세계 7위 국가가 됐지만 6위와 격차가 큽니다. 생각도, 방식도 바꿔야 한다고 여겨져서 여러 변화를 시도했는데, 내부 저항도 있었고… 뜻대로 잘 안되더라고요.”
내부 저항이란 지난해 12월 조직개편에 대한 반발 사건을 말한다. 항우연은 발사체연구소를 신설하고, 기존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 내 팀 조직 16개는 폐지해 발사체연구소 산하 부 체제로 편성하는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누리호 발사 책임자 고정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과 옥호남 나로우주센터장 및 부장급 5명 전원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고 본부장은 사퇴서를 통해 “기존 본부 아래 있던 부와 팀을 폐지해 머리만 있고 수족은 모두 잘린 상태가 됐다”고 했다. 1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상률 원장은 “개편안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며 강행 의사를 밝혔다. 진통 끝에 고 본부장이 사퇴 의사를 철회하며 사태는 수습 국면에 들어갔다. 2월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오태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은 “고정환 항우연 본부장이 누리호 3차 발사 업무에 복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내홍은 수습된 겁니까.
“새로운 조직 체계하에서 누리호 3차 발사가 더 용이할 수 있도록 인력을 더 내주기로 했습니다. 수습됐다고 보고요. 3차 발사에 대한 대의 아래 복귀해 준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5월 중 3차 발사 문제없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지난해 12월 31일 다누리가 달 상공 119㎞에서 촬영한 지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왜? 아닌 어떻게? 고민할 때
항우연엔 아픈 기억이 있다. 나로호 1, 2차 발사 실패가 그것이다. 나로호엔 2002년 8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총 5025억 원이 투입됐다. 2013년 1월 3차 시도 끝에 발사 성공을 거뒀지만 앞선 두 번의 실패가 뼈아팠다. ‘돈을 하늘에 뿌렸다’ ‘예산 낭비’ 등 거센 비난 여론이 일었다. 당시 1·2차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주진 당시 항우연 원장이 사퇴하기도 했다.우주 기술개발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됩니다. 예산 낭비라는 비난이 일기도 합니다. 꼭 해야 하는 겁니까.
“세계에 우주 기술개발을 하겠다는 국가가 80~90개는 됩니다. 한국이 경제 규모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나라니까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약한 나라도 우주 기술 필요성을 알고 있는 거죠. 우주 기술 영역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과학기술 수준을 넘어 국방·외교·안보·산업 등 국가 생존이 달린 영역이 되고 있죠. 예컨대 GPS 기술, 내비게이션 없이 살 수 있을까요. 우주가 공기·물처럼 하나의 인프라가 됐다고 생각해요. 생활 속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죠. 우주 기술개발은 ‘왜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할지’ 고민해야 하는 문제예요.”
선진국과 격차가 심한 발사체·위성 등 직접우주산업보다는 여기서 파생된 간접우주산업에 집중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죠. 우주산업 시장의 85%가 간접우주산업입니다. 그럼에도 발사체는 계속 만들어야 해요. 위급 상황 시엔 기술 독립성 확보 유무가 판도를 뒤흔들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낡은 차라도 굴러가기만 하면 차가 없는 사람이 가지 못하는 곳을 갈 수 있지 않습니까.”
과거 여러 인터뷰에서 우주 기술개발이 대형 프로젝트 위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나타내기도 했는데.
“추격형일 때는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말씀드렸듯 이젠 방법이 바뀌어야 하니까요. 새로운 것을 먼저 하려면 한 가지만 생각해선 안 돼요. 하던 걸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동시에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부는 우주 분야 진흥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28일 윤석열 대통령은 우주항공청 신설을 골자로 하는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2023년 말까지 우주항공청을 신설하겠다”며 “2045년엔 화성에 태극기를 꽂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 스페이스, 韓엔 기회”
이상률 원장은 “정부가 우주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우리로선 감사한 일”이라며 “우주항공청 설립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다만 정부가 우주산업을 주도함에 따르는 부작용이 문제로 거론된다. 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주산업에 참여한 기업의 우주분야 총 매출액은 2조5697억 원이다. 2017년 3조3931억 원을 기록한 이후 4년 연속 감소했다. 국가가 키를 잡고 우주산업을 이끌다 보니 민간기업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 원인으로 여겨진다. 세계적 추세인 ‘뉴 스페이스(민간기업 주도로 이뤄지는 우주개발사업)’ 시대에 역행하는 양상이라고 지적된다.
항우연이 성과를 내는 동안 우주산업 관련 기업은 역성장했습니다.
“관련 기업 매출은 대부분 정부 투자로 발생한 겁니다. 정부예산이 줄어들어 매출도 감소한 거죠. 예컨대 누리호를 만드는 데 약 300개 기업이 참여했는데, 국가 예산을 받아 납품하는 일이 다였거든요. 독자 기술을 확보해 해외에 진출한다면 매출은 늘어날 겁니다.”
뉴 스페이스 시대 민·관 분업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요.
“민간이 잘할 수 있는 건 모두 민간이 하고, 그렇지 않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은 관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발사체·위성도 기업이 할 수 있고, 혹은 하고 싶다고 하면 가져가야 하고요. 다만 아직 한국 기업들은 준비가 잘돼 있는 편은 아닙니다. 뉴 스페이스 시대라고 해도 국가가 도울 필요가 있죠. 뉴 스페이스 시대가 되면서 우주산업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스타트업에 가까운 한국 기업으로서는 시장 진출이 더 유리해진 것이니까요. 우주산업은 소품종 대량생산, 즉 ‘규모의 경제’라기보다는 다품종 소량생산에 더 가깝습니다. 우주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한 비중은 1% 남짓입니다. 바꿔 말하면 99%가 열려 있다는 거죠. 한국인이 잘하는 영역이잖아요.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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