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호

김봉곤 훈장의 ‘새만금 역사이야기’

고조선, 최치원, 최무선, 백강전투…

“동아시아 문명교류 현장 새만금 대한민국 ‘황금 곳간’ 된다”

  • 배수강 기자|bsk@donga.com

    입력2016-09-21 13: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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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자이자 방송인으로 맹활약 중인 김봉곤 청학동예절서당 훈장은 ‘새만금 팬’이다. 진천군, 하동군, 보성녹차·괴산유기농산업엑스포 홍보대사 등으로 활약하며 전국을 누비다가도 새만금 지역을 지날 때는 꼭 새만금 방조제에 들른다. “탁 트인 새만금 방조제를 내려다보면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는 게 이유다. 아들, 딸과 함께 들르면 새만금의 역사와 지리를 설명해주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다음은 일문일답.

    ▼ 새만금을 자주 찾는 이유가 있나요?


    “새만금 지역은 동아시아 문명의 교류 현장이자 전략적 요충지여서 상생과 갈등이 공존하던 곳이었잖아요. 이런 곳이 글로벌 무역 중심지이자 ‘대한민국의 곳간’으로 변하고 있으니 ‘호기심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종종 찾아요. 대한민국을 천석꾼, 만석꾼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면 더 기분이 좋아져요. 이름도 ‘새로운 만금(萬金)’이잖아요. 사실,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이 바로 돈, 즉 황금이고, 사람들이 원하는 최고의 액수는 ‘천만금’ ‘억만금’이잖아요. 이 돈이면 모든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앞으론 ‘천만금’ 대신 ‘새만금을 줘도 안 바꾼다’는 말이 나올 겁니다(웃음).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새만금이 동아시아 경제·관광 허브가 되고 대한민국 ‘황금밭 노다지’가 되기를 기대해요. 훈장이 ‘황금’ 얘기하는 게 좀 그런가요(웃음)?”


    ▼ 가을이면 호남평야는 황금 들판으로 바뀌니 ‘황금밭 노다지’라는 표현도 괜찮은데요.

    “그렇죠? 호남평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고 비옥한 김제평야(金堤平野)와 만경평야(萬頃平野)를 합쳐 ‘금만(金萬)평야’라고도 했어요. 그런데 1980년대 초 냉해로 쌀농사가 흉작이었는데, 정부는 서남해안에 간척사업을 벌여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1987년에 김제·옥구(군산)·부안지구를 통합해 ‘새만금지구’라고 부르고, 그해 5월엔 간척농지 개발계획을 발표했죠. ‘새로운 만금(萬金)의 땅’ ‘옥토를 새로 일군다’는 뜻이니 대한민국의 ‘경제 심장’이 될 만하죠? 새만금 명칭에 대해선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새롭게 만금평야를 조성해 경제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뜻 같아요.”





    천혜의 전략 요충지

    ▼ 듣고 보니 새만금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췄군요.

    “그럼요. 만경강 동진강 유역에 펼쳐진 금만평야는 ‘이 배미 저 배미 할 것 없이 모든 논이 한 배미로 연결돼 있을 정도로 드넓다’는 의미를 지녔어요. 두 강이 흐르는 물줄기는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주고, 바다도 고기잡이철이 되면 각 고을 장삿배가 구름처럼 모여드는 훌륭한 어장이죠. 동아시아에서 봐도 새만금은 한가운데잖아요?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최적지죠. 학창 시절 역사시간에도 등장해요.”

    ▼ 어떤 내용이죠?

    “학창 시절 위만조선에 대해 들어보셨을 거예요. 연(燕)나라 장수 위만에게 쫓긴 고조선 마지막 왕 준왕이 유민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마한에 왕국을 세웠어요. 지금의 익산 금마 땅이죠. 지금도 그 일대 180여 곳에서 청동기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고 있어요. 최치원 선생 알죠?”



    나당연합군 vs 백제·왜군

    ▼ 해운 최치원 선생 말인가요?

    “네. 최치원 선생이 신시도 월영봉에서 글을 읽으면 그 소리가 중국에까지 들렸다는 전설이 있는데요. 그만큼 새만금은 중국과의 접근성, 동아시아 교류에 핵심적인 지역이었어요. 송(宋)나라 사신 서긍이 쓴 ‘선화봉사 고려도경’에는 새만금의 위도와 고군산을 중간 기항지로 활용한 걸 알 수 있어요. 송의 사신단은 위도에 정박하고 고려 사람들이 배에 물을 실어주니 물품으로 답례했다고 기술하고 있어요. 고군산에서 고려의 영접을 받기도 했죠.”

    ▼ 1000년 전부터 새만금은 동아시아 교류 중심지였군요.

    “요충지인 만큼 갈등의 역사도 있답니다. 633년에 지금의 동진강 하구인 백강에서 나당연합군과 백제·일본 연합군이 수륙을 오가는 일대 격전을 벌여요. 일본의 제명여왕은 백제를 되살리려고 군사 2만7000명, 전함 1000척을 보냈지만 날씨는 나당연합군 편이었죠. 불화살을 쏘며 달려드는 나당연합군에 일본 전함은 일순간 궤멸했는데, 이 전투를 백강전투라고 해요. 백강전투 패배로 주류성을 함락당한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요. 고려 우왕 6년(1380년)에는 진포(현재의 군산)에 침입한 왜적을 최무선 장군이 화포를 써서 패퇴시켰는데, 세계 해전사 최초로 배에서 화포를 사용한 곳이기도 해요. 이젠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불꽃을 쏘아대길 기대해야죠(웃음). ‘이름값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새만금이 빠른 시일 내에 더 넓은 새 땅 위에 서해안 시대의 특수를 타고 순풍에 돛 단 듯 ‘새만금’ 이름값 하는 그날이 빨리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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