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호

저성장 시대 살아가기

내부자들, 부당거래? 영화가 아니다!

  • 김용기 |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seriykim@ajou.ac.kr

    입력2016-09-22 15: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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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은 지대 추구(rent-seeking) 사회
    • 노력한 것보다 훨씬 큰 초과이익 추구
    • 기업 부당 내부거래 오히려 강화
    • 가계소득 재분배 기능 떨어져
    한국은 지대 추구(rent-seeking) 사회다. ‘지대(地代, rent)’란 특권적 지위나 권리를 활용해 사회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벌어들이는 부당한 이득을 말한다. 지대 추구가 만연한 사회에서 경제주체들은 제대로 된 경쟁보다는 불공정 경쟁을 벌이는 데 자원을 낭비한다. 결국 혁신은 지체되고 성장은 정체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대 추구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벌어진다. 지난 수십 년간 교육과 부동산 부문에서 다수의 국민이 지대 추구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들 분야에서 언제까지 지대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이제 불확실하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경우 지대는 고사하고 투자금조차 찾기 어려울 수 있다.



    부패와 불공정의 진화

    그러나 기업의 내부거래를 통한 지대 추구는 여전히 가능할 뿐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기업의 이익이 커져가는 데다 기업 경영권에 대한 강고한 진입장벽이 둘러쳐져 있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재벌의 지대 추구 행위가 계속되지만 이에 따른 처벌 사례는 찾기 어렵다. 지난해의 경우 20대 그룹 중 내부거래 비율이 50% 이상인 관계사 수는 28.2%인 261개사에 달했지만, 이들 중 공정거래위원회 고발 대상인 기업은 현대로지스틱스 등 3개사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지대 추구 사회에서 공정 경쟁 추구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분야야말로 시급한 개혁이 필요하다. 정부는 ‘시장경쟁에서 모두가 승리자가 될 수 없을지라도 게임의 룰은 공정하다’고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상속세와 공정거래법의 강화, 기업지배구조 관련 법률 등의 개정, 정부 재정의 재분배 역할 강화 등을 통해 지대(독점적 이윤)의 창출과 소수에 의한 점유를 막음으로써 국민 다수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지난 8월 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일부 장관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은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국회의원 시절 자신이 속한 상임위 소관 부처(공정거래위)를 대상으로 한 기업의 공정거래 관련 소송을 장관 후보자의 남편이 대거 수임한 사례가 있었는가 하면, 자신이 속한 정부 부처(농식품부) 소관 농협은행과 해당 은행 거래 기업으로부터 저리의 대출을 받거나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주택을 매입한 후 이를 되팔아 재산을 증식한 사실이 확인됐다. 사회 곳곳에 부패의 사슬과 불공정거래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기업 지대 추구는 강화

    지대는 말 그대로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얻는 이득을 뜻한다. 지대는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에 대한 독점권을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얻는 이득이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경쟁이 제한된 곳에서 기회비용을 넘어선 소득이 생긴다. 노력한 것에 비해 훨씬 높은 초과 이득을 기대할 수 있기에 이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지대 추구)이 경주된다. 공공선택론의 창시자 고든 털록이 1967년 연구에서 정립한 개념인데, 이후 미국 경제학자 앤 크루거가 자신의 1974년 연구에서 털록의 개념을 지대 추구 행위라 규정하면서 널리 통용됐다.



    정부는 경쟁을 촉진하는 기존 법률을 느슨하게 집행했다. 때로는 스스로 나서서 특정 집단을 위해 나머지 사회 구성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의 정부 예산은 가계의 수익을 빼앗아 기업에 지대를 넘기는 데 일조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지출 비율은 31.98%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 핀란드가 58.06%로 가장 높고 프랑스 57.32%, 덴마크 55.97% 순이다. OECD 평균은 44.99%.

    한국은 재정 규모 자체가 GDP 대비 매우 작은 편이라 GDP 대비 각 부문의 비중이 다른 비교 대상국보다 높기 어렵다. 하지만 오직 두 부문이 높다. 국방(2.47%, OECD 평균은 1.39%)과 산업 부문이다. 산업 부문 예산은 GDP 대비 5.32%로 OECD 평균 4.73%를 웃돈다. 최근 들어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거나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려는 미국(3.44%)이나 일본(4.11%), 독일(3.29%)보다 월등히 높다. 파이 자체가 작은데 국방과 산업 부문에서 오히려 OECD 평균보다 많이 썼다면 나머지 부문에서는 지출 여력이 적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복지 부문이 그러하다. GDP 대비 5.86%로 OECD 평균 16.64%에 비해 무려 11%포인트나 낮다. 그 결과 한국 재정의 가계소득 재분배 기능은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꼴찌에서 두 번째다. 정부는 소득세와 재산세 등 직접세의 비중을 높이고 최고세율을 높여 시장소득의 불평등을 교정한다. 또한 조세수입 중 상당 부분은 소득 이전을 통해 저소득계층의 가처분소득을 끌어올리는 데 사용된다. 그러한 교정의 크기가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낮다는 얘기다.



    막다른 골목

    반면, 기업의 법인세 부담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법인세 실효세율은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 인하 이후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2008~2010년 동안 21.6%에서 17.7%로 하락했다. 2012년 법인세 신고기준으로 삼성전자는 16.3%, 현대자동차는 15.8%의 실효세율을 기록했다. 세법상 법인세 최고세율(명목)은 22%이지만, 실제로는 최고세율보다 각각 5.7%포인트, 6.2%포인트 적게 법인세를 납부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지대 추구 경향은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장관 후보자들의 삶은 그들이 생애에 걸쳐 불공정 경쟁을 통한 지대 추구에 열중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지대 추구 사회에서 공정 경쟁 추구 사회로 전환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성장을 위해 무엇보다 긴급히 수행해야 할 과제다.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의가 최근 다시 활발히 제기되는 것도 우리 사회의 지대 추구 상황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대기업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도 그곳에서 지대 추구가 가장 대규모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패 사슬과 담합 구조도 걷어내야 한다. 영화 ‘내부자들’은 유력 대선후보인 국회의원과 청와대 민정수석 등 정치권력, 재벌 총수의 기업권력, 사정기관 검찰, 언론 고위 경영진 간의 유착 비리를 그렸다.

    글로벌 대기업 총수라면 지대 추구를 억제하는 규제를 강요받기보다는 스스로 사회 혁신을 위해 계몽군주적인 기업가로 나서야 한다. 미국 포드자동차 설립자 헨리 포드는 1914년 직원들의 노동시간을 하루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이고 하루 최저 임금을 2.35달러에서 5달러로 인상했다. 이에 따른 자동차 산업의 폭발적 발전은 제2차 산업혁명을 가능케 했다. 혁신적 기업가는 사회가 요구하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자신의 수익을 창출한다.

    총수를 포함한 최고경영진에 대한 보상 기준도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사실 보상의 규모가 연 5억 원을 넘어갈 때 그에 따른 한계효용이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 과도한 보상은 일을 위한 인센티브가 되기보다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과 사회에 해가 되는 꿍꿍이를 꾀하는 동기가 된다는 것을 최근 대우조선해양 최고경영진의 사례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가져온 조선사들의 해양플랜트 수주 경쟁 또한 과도한 보상을 한 해라도 더 누리려는 최고경영진의 욕망에서 비롯됐다. 

    미국 보스턴 법대 소속 경제학자 제임스 벤슨의 최근 논문 ‘기업이익 상승의 배후에 로비스트가 있다’(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게재)에 따르면 1970, 80년대 대비 1990년대 이후 미국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상승했고, 그 상승 폭은 2000년대 들어 더욱 커졌다. 벤슨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그 이유는 설비투자도 아니고, 홍보나 마케팅의 효과도 아니다. 기업에 유리한 정부정책(양적완화 등)과 기업에 유리한 규제 및 이를 얻기 위한 기업의 로비 탓이라 지적했다. R&D의 중요성은 이보다 낮았다. 이익 확대의 주요인이 지대 추구였다는 것이다.



    ‘국가의 실패’ 피하려면

    지대가 최소화한 건강한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인도 중앙은행 총재인 라구람 라잔 전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2004년 저서 ‘자본가들로부터 자본주의 구하기(Saving Capitalism from the Capitalists)’를 통해 기득권 세력은 자신의 특별한 지위를 독점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이들에 의해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은 후퇴해왔다고 지적했다.

    공정한 경쟁구조를 만들려면 포용적 경제제도를 가져야 한다. 시장소득의 격차에 따른 불평등을 어느 정도 해소해야만 서로 간에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 경제학자 대런 에이스모글루와 하버드대 정치학자 제임스 로빈슨은 그들의 2012년 저작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에서 포용적 경제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제적 부를 석권한 지배계층이 정치제도를 좌지우지하고 그것이 경제적인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될 때 그 국가는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용 기
    ● 1960년 강원 거진 출생
    ● 영국 런던정경대(LSE)석사(경제학), 동 대학원 박사(국제정치경제학·금융)
    ●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 現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 저서 : ‘한국경제가 사라진다’, ‘한국경제 20년의 재조명’, ‘금융위기 이후를 논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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