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부자와 미술관

맥주재벌 父子의 예술사랑 결실

칼스버그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맥주재벌 父子의 예술사랑 결실

2/3

칼스버그는 1847년 J. C. 야콥슨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시작한 맥주회사다. 아들 카를도 아버지 회사에서 일했지만 1882년 독립해 맥주회사를 따로 만들었다. 아버지는 창업자, 아들은 승계자지만 둘은 경영을 두고 의견 대립이 잦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Carl)을 따 회사 이름(Carlsberg)을 지었을 정도로 아들을 사랑했지만 사업가적으로 충돌했다. 이들의 갈등은 1997년 덴마크에서 TV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정도다.

아들이 만든 회사는 Ny(New) Carlsberg, 아버지 회사는 Gammel(Old) Carlsberg로 불렀다. 아버지는 죽기 직전 아들과 화해했지만 회사는 아버지가 만든 칼스버그 재단으로 넘겨졌다. 따로 운영되던 두 회사는 나중에 합해졌고 이후 다른 맥주회사들과 인수·합병을 거듭하면서 오늘날의 칼스버그 맥주그룹으로 발전했다. 아버지가 처음 운영한 코펜하겐 공장은 맥주 박물관으로 만들어져 인기 있는 관광코스가 됐다.



‘수집 중독’

아버지는 초등학교도 못 다녔지만 사업 수완이 탁월했다. 그때까지 맥주는 우리의 막걸리처럼 가정에서 소량으로 만들어 먹는 술이었는데, 그는 맥주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산업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1847년 맥주회사를 차려 대성공을 거뒀다. 나중에 정치에도 진출해 국회의원을 지냈다. 1876년 칼스버그 재단을 만들어 과학 연구에도 많은 지원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선사업과 미술품 수집에도 큰돈을 썼다.

아들은 아버지처럼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예술품 수집 열정은 아버지를 능가했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은 ‘수집 중독’으로 불릴 만큼 많이 모았다. 20세기 초 이집트의 고대 유적 발굴을 뉴칼스버그 재단이 후원하면서 많은 발굴품이 칼스버그 미술관으로 오게 됐다. 미술계에서는 카를 야콥슨의 아내도 남편만큼이나 유명했다. 부부가 모두 미술품에 조예가 깊고 미술 시장의 큰손이었다.



야콥슨의 고대 조각 수집은 독일인 고고학자 볼프강 헬비그의 도움을 받아 이뤄졌다. 헬비그는 본 대학에서 고고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이면서 미술품 딜러였다. 1887년부터 로마에 거주하면서 25년 이상 칼스버그 미술관을 위해 미술품 브로커 노릇을 했는데 그의 손을 거쳐 들어온 작품은 950여 점에 달한다고 전해진다.

아버지와 아들의 수집품은 칼스버그 미술관의 중요 소장품으로 남아 있다. 아들은 “접근성이 좋은 장소에 미술관을 만들라”는 조건을 내걸면서 1888년 수집품을 모두 국가와 코펜하겐 시에 기증했다. 시 정부가 현재의 위치를 제안했을 때 카를 야콥슨은 처음에는 반대했다지만 우여곡절 끝에 타협이 이뤄져 1897년 새 미술관이 개관했다.

이후 카를 야콥슨은 자선사업에도 많은 돈을 썼다. 교회 복원과 공공건물의 건립에 돈을 댔는데 1913년에 만들어진 코펜하겐의 인어상에도 야콥슨의 돈이 들어갔다. 바닷가의 조그마한 인어상은 이제 코펜하겐의 상징적인 조형물이 됐다.

칼스버그 미술관은 두 채의 건물로 이뤄졌다. 처음 지어진 입구 건물과 10년 후에 지어진 뒤쪽 건물이 그것이다. 1897년에 완공된 첫 건물은 당대 덴마크 최고의 건축가 달레럽(Vilhelm Dahlerup·1826~1907)이 설계했다. 코페하겐 시의 유명 건물은 거의 모두 달레럽의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뛰어난 건축가였다.



1899년 수집품 모두 기증

카를 야콥슨은 처음에는 프랑스 및 덴마크의 18세기 이후 작품만 내놓았다. 1899년에 와서야 그동안 수집한 그리스, 로마 조각상까지 모두 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러자 전시장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미술관은 서유럽 유학파 건축가인 하크 캄프만(1856~1920)에게 의뢰해 1906년 새 건물을 짓고 이를 앞 건물과 연결했다. 앞 건물과 뒷 건물 사이에는 달레럽의 설계로 실내 정원인 ‘겨울정원’을 만들었다. 작품 감상 중간에 잠시 쉬기에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이곳에서 물소리를 듣노라면 도심의 번잡함도 여행의 긴장감도 잊게 된다.

미술관은 1996년, 2006년에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1996년의 확장 작업은 덴마크의 유명 건축가 헤닝 라센(1925~2013)이 맡았는데 현대식으로 내부를 장식했고, 내부에서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까지 만들었다. 옥상은 그리 높지 않지만 코펜하겐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이다.

미술관의 수많은 프랑스 현대 작품 중 마네(Edouard Manet·1832~1883)의 작품 2점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마네의 대표작에 속할 뿐만 아니라 세계 미술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마네는 19세기 프랑스의 미술혁명을 잉태한 인물이다. 인상파전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인상파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했다. 전통적 아카데미즘 회화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화풍을 제창한 화가로 프랑스 회화를 사실주의에서 인상파로 옮겨놓았다. 그의 회화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관람자나 평론가로부터 혹평을 받았지만 세계 미술사에 우뚝 섰고, 수많은 작품이 미술사의 명품으로 남아 있다.




2/3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목록 닫기

맥주재벌 父子의 예술사랑 결실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