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어느 정권도 책임지지 않은 새만금 사업”
安 “잼버리 실패로 예산 삭감은 원칙 어긋나”
李 “호남 지역에서 예산 따려면 2~3배 노력해야”
安 “호남 확실히 배려해야 민심 돌아와”
[+영상] 호남 홀대 그 시작은?
“호남이 민주화의 과실을 받아야 할 때가 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지난해 2월 12일 기자회견에서 남긴 말이다. 대통령의 공언에 호남은 표로 응답했다. 윤 대통령은 광주에서 12.7%, 전남에서는 11.4%, 전북에서는 14.4%를 득표했다. 역대 보수정당 대통령 후보 중 최고 기록이다. 지난해 6월에는 광역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27년 만에 당선됐다.
대통령의 발언과는 달리 최근까지 정부의 호남 배려는 눈에 띄지 않았다. 일례로 정부 장관급 인사 중 호남 출신이 거의 없다. 굳이 따지자면 한덕수 국무총리(전북 전주)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전북 익산)뿐이다. 한 총리는 서울에서 중·고교를 마쳤고 이 장관은 대통령의 모교인 서울 충암고를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엄밀하게 따지면 호남 출신으로 보기 어렵다.
이정현 전 국민의힘 의원(왼쪽)과 안도걸 전 기획재정부 차관. [지호영 기자]
새만금 사업 예산은 일관성 있게 투자
호남 지역 최대 정책 중 하나인 새만금 개발사업도 흔들리고 있다. 8월 새만금에서 열린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이하 잼버리)가 사실상 파행으로 끝나자 정부가 관련 예산을 5000억 원가량 삭감했다. 과실 대신 예산 삭감이 돌아온 셈이다.그래서일까. 8월 말경부터 정부가 호남을 홀대한다는 이른바 ‘호남 홀대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호남은 정말 현 정부 들어 홀대를 받고 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이정현 전 국민의힘 의원과 안도걸 전 기획재정부 차관을 만났다.
이 전 의원은 1987년 이후 최초로 호남(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 갑)에서 당선은 물론 재선을 기록한 보수정당 정치인이다. 지난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 18.81%를 득표했다. 2000년대 이후 보수정당의 전남도지사 후보로는 가장 높은 득표율이다.
그가 처음 호남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은 2014년이다. 1995년부터 호남(광주)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니 20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지금은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안 전 차관은 1989년 행정고시 33회 합격으로 공직 입문 후, 약 30년간 기획재정부 예산 담당 업무를 맡아온 예산통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 확산기인 2020년에는 긴급재난지원금 편성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주도했다. 2021년에는 기획재정부 제2차관으로 임명됐다. 문재인 정부의 예산을 도맡았던 만큼 야당 인사로 분류된다.
지난해 5월 공직에서 물러난 안 전 차관은 광주로 내려가 광주광역시 경제자문역을 맡고 있다. 올해 5월에는 광주에 ‘안도걸 경제연구소’를 내고 지역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고 있다. 두 사람에게 호남 홀대론과 호남의 현안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다시 호남 홀대론이 불거진 이유 중 하나는 잼버리 파행으로 인한 예산 감축이다. 198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새만금 개발사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더불어민주당 전라북도 국회의원 7명(김윤덕·김성주·신영대·김수흥·윤준병·이원택·안호영)과 관계자 등이 9월 7일 국회 계단 앞에서 열린 ‘새만금 예산 삭감 규탄 대회’에서 삭발식을 하고 있다. [동아DB]
안도걸 전 차관(이하 안)_ “새만금 개발사업은 바다를 간척해 땅을 만드는 공사다. 그 규모가 큰 만큼 예산이나 재원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보수가 이뤄진 사업이다. 산업적 수요를 감안해 종종 토지용도변경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서 법적 절차와 국민적 합의를 충분히 거쳤다. 다만 사업의 규모가 큰 만큼 국민들이 실감할 만큼의 성과는 내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_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새만금 개발사업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 같다. 새만금 개발사업은 그 규모가 큰 만큼 성과를 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통령 임기 5년 만에는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그렇다 보니 (다른 개발사업에 비해) 소홀히 한 측면이 있었다.”
안_ “새만금 개발사업만 두고 보면 정권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예산이 투입됐다. 물론 예산 집행 속도의 완급 조절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산 감축, 호남 홀대로 오해할 수 있어
새만금 관련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방안이 있다면.이_ “그동안 정부는 새만금 개발사업에 ‘공약’이라는 공수표(空手票)만 내줬다. 지금이라도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이 사업에 접근해야 한다. 특히 현 정부가 사업 완성을 위해 고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안_ “동감이다. 현 정부의 새만금 개발사업 예산 삭감은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 이 사업은 국책사업이다. 법적 절차에 따른 기본 계획이 이미 수립돼 있다. 기본 계획은 5년에 한 번씩 바꾸게 돼 있다. 불가피한 경우 수정은 할 수는 있다. 이 계획을 수정한 뒤 그에 따라 예산을 조정하는 것이 절차다. 이번에는 예산부터 삭감하고 계획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호남 홀대가 실존한다고 생각하나.
안_ “호남 유권자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본다. 정부의 즉흥적 의사결정으로 새만금 개발사업이 중단된 셈이니 말이다.”
이_ “안 전 차관께 묻고 싶은 부분이 있다. 현 정권의 예산 감축도 문제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했을 때에도 새만금 개발은 답보 상태였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는 물론 지난 문재인 정부는 새만금 사업을 끝낼 만한 충분한 정치적 역량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집권하는 15년 동안 새만금 개발은 끝나지 않았다. 새만금 개발이 어떻게 진전됐는지도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정현 전 국민의힘 의원. [지호영 기자]
안 전 차관의 말대로 2016년 808억 원이던 새만금 개발사업 예산은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0년에는 3310억 원으로 늘었다. 정부는 올해 관련 사업 예산으로 1484억 원을 편성했다.
이_ “새만금 개발사업을 제외하고도 예산 측면에서 (민주당 집권기에) 호남 홀대가 없었다고 볼 수 있나?”
안_ “서울과 부산을 축으로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다 보니 호남보다는 다른 지역에 예산이 더 책정된 부분은 있다. 이는 지금부터 호남 지역의 산업을 발전시키면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야 양쪽에 모두 실망한 호남
호남이 다른 지역에 비해 소외된 부분이 있다면.안_ “현 정부 들어 새로운 인프라 도입 측면에서 다른 지역과 차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공항 건설이 대표적 예다. 새만금신공항은 사실상 공사가 중단됐다. 반면 충남 서산공항과 부산 가덕도신공항은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서산공항의 경우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탈락했지만 정부가 이를 재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호남 소외론 등의 오해가 더 커진다.”
이_ “신공항도 결국 정부의 의지 문제다. 그래서 지난 문재인 정부가 호남을 대한 방식이 더 아쉽다. 지난 정부는 초반 국정 지지율이 현 정부에 비해 높았다. 국회에서도 다수당이었다. 현 정부에 비해 정치적 조건이 훨씬 좋았다. 민주당이 호남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새만금 개발사업 정도는 충분히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기대도 컸다. 그런데도 당시 정부는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최선을 다했다. 2021년에는 특별법(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까지 제정하며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에서 여섯 번째)와 부산·울산·경남 지역 의원들이 2021년 2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된 직후 당대표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동아DB]
그렇다고 민심이 민주당으로 가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지만 2019년에 비하면 많이 올랐다. 같은 기간 민주당의 지지율은 소폭 감소했다. 리얼미터의 2019년 10월 2주차 조사(조사 기간 2019년 10월 8~10일,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3.1%p)에서 광주·전남 지역 민주당 지지율은 67%였다.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 지지율은 5%에 불과했다. 4년 만에 민주당 지지율은 5%포인트 떨어졌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4%포인트 올랐다.
그나마도 최근 여당 지지율이 떨어지며 민주당 지지율이 회복된 수치다. 올해 7월 4주차 조사(7월 25~27일,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3.1%p)에서 광주·전남 지역 민주당 지지율은 54%에 불과했다.
호남 민심은 전국 민심에도 영향을 미친다. 호남을 떠난 출향민 때문이다. 이들의 규모도 상당하다. 호남 출향민으로 이뤄진 단체인 전국호남향우회의 가입자 수는 약 1300만 명에 달한다.
호남 민심은 출향민 민심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남 민심 회복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뭐라고 생각하나.
이_ “진부한 이야기지만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정치를 막 시작하던 시점에는 투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역을 개발하면 자연히 지지율이 오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보수정당은 지역 개발만으로는 호남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국민의힘은 호남을 포기해 왔다. 이 당에만 40년 가까이 있었는데, 그동안 호남 정치인을 키우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집권을 목적으로 하는 전국 정당이다. 호남을 포기해서는 미래가 없다.”
안_ “호남이 발전하면 민심은 따라온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배려가 필요하다. 정부 예산 책정의 원칙은 합리성이다.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지역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자한다. 좋은 성과를 낼 수는 있으나 지역균형발전에는 악영향을 미친다. 낙후 지역은 상대적으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 결국 낙후된 지역일수록 정부 예산과는 점차 멀어지며 지역 간 격차가 커진다. 호남이 이 악순환의 대표적 사례라 생각한다.”
안도걸 전 기획재정부 차관. [지호영 기자]
안_ “정치인들의 호소만으로는 호남의 마음을 얻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호남의 민심이 영원히 민주당에 머물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든 야든 호남 주민들은 지역에 더 도움이 되는 정당을 선택할 것이다.”
2016년 4월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호남은 대이변을 보였다. 호남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지지하던 민주당 대신 국민의당에 표를 던졌다. 광주는 8개 지역구에서 국민의당 후보가 당선됐다. 전북은 9곳 중 7곳, 전남은 10곳 중 8곳이 국민의당 차지였다. 호남 전체 27개 지역구 중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곳은 3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2곳은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후보가 당선됐다.
이_ “호남 낙후에는 보수정당의 책임도 크다.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고, 호남 지역 발전에 노력하는 모습만 보였어도 ‘호남이 보수의 불모지’라는 말은 이미 사라졌을지 모른다. 정치인들은 당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으로 경쟁하게 됐을 것이다. 어느 당 후보가 당선되든 호남 지역 발전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호남 소외라는 말 자체가 사라져야
낙후된 호남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이_ “아까 호남을 농도라고 했는데, 농도에 꼭 필요한 농약·퇴비·농기계 공장이 호남에 거의 없다. 그간 농도가 가진 산업적 장점도 살리지 못한 셈이다. 이 부분이 가장 아쉽다. 지역 의원이라면 수십 년 전에 관련 산단 육성에 나섰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스마트팜 등 농업이 6차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는 만큼 관련 호남이 이를 선점해야 한다.”
안_ “굉장히 혜안이 있는 지적이다. 농업 관련 산업단지가 한곳에 모여 있다면 인력,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점이 크다. 성공 확률이 높은 만큼 정부가 예산으로 지원할 가능성도 높다. 이처럼 호남만의 집적 산업단지를 늘려가야 한다. 호남은 문화, 전력,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산업 자원을 키워왔다. 이를 기반으로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
광주 북구에 조성 중인 인공지능 집적단지 조감도.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안_ “사람이 부족하다. 일할 인구 자체가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고급 인력 수급이 어렵다. 특히 호남의 인공지능, 스마트팜 업체들을 찾아가 보면 연구개발 인력 충원에 난항을 겪는 경우가 많다. 좋은 인력은 수도권에 모여 있는데, 이들을 호남에 유치할 방법이 없다. 소득세 5년 감면이나 해외 인력 적극 유치 등 정부 차원의 파격적 대책이 필요하다.”
이_ “자원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5·18이라는 민주화 역사 자원, 수십 년간의 비엔날레 등 예술 행사를 통해 쌓아온 문화 인프라, 정부 투자로 만든 각종 산업단지와 호남 지역 유명 대학 등 호남이 자랑할 만한 자원은 많다. 그 동안은 이 자원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지역 정치인들은 호남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정부 지원과도 멀어졌다. 이 문제만 해결해도 ‘호남 홀대론’이나 ‘소외론’ 같은 표현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대담이 끝난 뒤에도 두 사람은 꽤 오랜 시간 호남의 현안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호남 지역의 정치, 경제 외에도 교육, 의료 등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오갔다. 대담 시간을 포함해 1시간 20분가량 진행된 대화는 이 전 의원의 일정 때문에 겨우 끝을 맺었다. 이마저 모자랐는지 두 사람은 “호남에서 보자”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이 전 의원은 “호남 정치권에 부족했던 인력 중 하나가 안 전 차관 같은 예산 전문가”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만나 호남 발전을 모색해 볼 계획”이라 말했다. 안 전 차관 역시 “지역에서 오래 정치 경력을 쌓은 의원을 만나 배울 점이 많았다”며 이날의 소회를 밝혔다.
[신동아 11월호 표지]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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