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호

오바마의 핵 전략과 북핵 판도 전망

미국의 데드라인은 내년 5월 NPT 8차 평가회의…과연 북한의 선택은?

  • 조불암│안보전문가│

    입력2009-03-10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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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바마 행정부의 핵 전략은 부시 행정부의 그것과 정반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한계에 주목해 독자적인 방법론을 모색했던 부시 대통령과 달리 오바마 대통령은 NPT체제의 복구와 러시아와의 핵감축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북핵 접근법 역시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미국이 당면한 3대 외교·안보 현안으로 이라크전쟁 종식, 아프간전쟁 해결,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꼽은 바 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제조는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당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을 결정한 이유는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해 이를 테러집단에 넘길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지금 오바마 행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사태도 바로 테러집단이 핵무기를 손에 쥐는 일일 것이다.

    지난 2006년 11/12월호 ‘포린폴리시’에는 테러용 핵무기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공정에 관한 가상 시나리오가 실렸다. 이 논문은 테러집단이 핵무기 한 개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19명 안팎의 인력과 550만달러의 비용, 1년 조금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제작비용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무기급 핵물질의 구입비용이라는 점이다. 제조비용은 150만달러에 불과한 데 비해 핵분열물질을 구입하는 데는 300만~500만달러가 소요되는 것으로 논문은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테러집단이 핵무기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규모가 크고 자금력이 풍부하며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논문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조직이 세계적으로 알 카에다 조직과 옴 진리교 두 개밖에 없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옴진리교는 종말론을 신봉하는 일본 신흥종교로 1995년 4월 도쿄 지하철에서 독가스테러를 자행한 바 있다.

    지난 2001년 9월11일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항공기를 이용해 자살테러를 감행한 알 카에다는 실제로 핵무기를 제작하려 한 적이 있다. 1993년 말 수단의 전직 장관에게 150만달러 규모의 무기급 핵물질을 구매한 일이다. 그러나 나중에 이 핵물질이 무기로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 일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또한 9·11테러가 있기 한 달 전,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 전직 관리 두 명에게 핵무기 제작 경험이 있는 파키스탄 과학자를 모아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처럼 테러집단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지를 좌우하는 최대 요소는 핵분열물질을 손에 넣는 것과 과학자·고급기술자를 모으는 일이다. 무기급 핵물질을 입수하는 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테러집단은 구매 대신 훔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구(舊)소련 붕괴 직후 핵무기 개발에 종사하던 과학자, 기술자들이 실직하면서 핵물질 일부를 빼내 외국에 팔았다는 추정도 있다.



    2009년 현재 상황에서 전세계에는 25만개 이상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3000t의 핵물질이 40여 국가에 흩어져 있다. 그 보관상태에 따라 테러집단들이 이를 손에 넣을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실제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05년 도난당한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 18건을 압류한 기록을 공개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테러리스트들의 무기급 핵물질 획득 시도는 계속되고 있으며 공개되지 않은 도난사건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그뿐 아니다. 테러집단이라면 기껏 무기급 핵물질을 구입하거나 훔치는 방법밖에 없지만, 그 주체가 국가라면 차원이 달라진다. 국가 차원에서는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핵물질을 재처리나 농축기술을 통해 직접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 국가가 의도적으로 테러집단에 무기급 핵물질을 제공하거나 핵무기를 넘길 경우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9·11테러가 발생하자 당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이란,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려고 한다면서 ‘악의 축’ 국가라고 불렀다. 2002년 6월에는 ‘악의 축’ 국가에 대해서는 선제공격도 불사한다는 이른바 ‘부시 독트린’을 발표했다. 실제로 2003년 3월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오랫동안 반미투쟁의 선봉에 서왔던 리비아의 카다피 국가 수반은 미국의 엄청난 기세에 놀라 2003년 6월 자진해서 핵개발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2007년 12월에 발표된 미 국가정보위원회(NIC)의 ‘이란의 의도와 핵능력’이라는 보고서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인 2003년 가을 무렵 이란의 하타미 정권이 고폭실험을 포함한 핵탄두 제조노력을 중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비확산에서 대(對)확산으로

    돌이켜보면 21세기의 첫 수년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및 핵보유 선언, 이란의 핵개발 의혹, 리비아의 핵개발 포기, 파키스탄의 칸 박사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 핵 네크워크 적발 등 NPT체제와 관련이 있는 여러 상황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이처럼 NPT를 준수하는 척하면서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하거나 궁극적으로 탈퇴하는 국가들이 생겨나고, 구속력의 미비로 점차 NPT체제가 이완되는 조짐이 나타났다.

    이를 지켜본 부시 대통령은 NPT체제의 한계를 절감하게 됐다. 그 때문에 한편으로는 비확산(non-proliferation)을 목표로 하는 NPT체제의 강화를 통해 핵 비보유국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제한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금지하며 NPT 탈퇴국과 위반국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고자 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NPT체제 밖에서 대확산(counter-proliferation) 방안을 모색했다.

    부시 대통령이 NPT체제 밖에서 추진한 대확산의 일환으로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이나 비정부조직·단체의 WMD 획득규제를 규정한 유엔안보리 결의문 1540호 채택 등이 있다. PSI는 2003년 부시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됐으며, 원심분리기와 미사일 부품, 핵물질 등을 적재한 채 리비아, 이란, 시리아로 향하던 선박들이 공해상에서 성공적으로 차단됐다.

    또한 미국은 러시아와 체결했던 탄도미사일제한(ABM)조약을 파기하고 미사일방어(MD)체제를 추진했으며, 지하핵실험 금지를 포함하는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의 비준을 거부했다. 당초 추진했던 미니핵폭탄 계획이 미 의회의 반대로 무산되자 그 대신 ‘신뢰할 만한 대체 핵탄두(RRW) 프로그램’에 따라 신형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

    나아가 부시 대통령은 NPT 비회원국인 인도에 핵 거래의 예외를 인정하는 양국 간 핵 협정을 추진했다. 2005년 7월에 두 나라가 핵 협력 선언을 발표한 이래, 미국은 NPT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고 향후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제3국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국제적인 비판 여론 속에서도 이 협정을 추진해왔다. 마침내 IAEA의 승인과 핵공급국가그룹(NSG)의 지지를 얻은 뒤 미 하원과 상원 비준을 거쳐 2008년 10월11일 양국 외무장관이 이 협정에 정식으로 서명했다.

    이와 같이 NPT체제 밖에서 핵 확산을 방지하고 미국의 핵 태세를 강화하려는 부시 대통령의 구상은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주목표였던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킬 수는 없었다. 2003년 1월 북한은 NPT의 탈퇴를 선언했고 마침내 2006년 10월9일 핵실험에 성공했다. 이란은 미국의 경고에도 ‘평화적 핵 이용권’을 주장하며 핵연료주기의 완성을 위한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핵군축 없이 비확산 없다

    최근 들어서는 전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핵연료의 안전한 공급 문제가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특히 이집트,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 알제리, 요르단, 모로코, 리비아 등 중동국가들이 원전 건설계획을 추진함에 따라 미국은 민감 핵 기술과 핵 과학자들이 테러집단으로 흘러들어갈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를 저지할 방안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국제적인 원전 개발 붐에 따라 핵 비보유국으로 각종 핵 부품과 기술이 이전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원전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핵보유국들이 비보유국에 앞 다투어 민감 핵 기술의 이전을 약속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일부 국가들은 NPT 제4조가 ‘양도할 수 없는 권리(inalienable right)’로 규정한 평화적 핵 이용권을 악용해 비밀리에 핵무기 프로그램을 운용했다.

    이처럼 합법을 가장해 이루어지는 핵개발을 막기 위해 미국은 2005년 5월 개최된 제7차 NPT평가회의를 통해 새로운 NPT체제 강화안을 마련하고자 추진했다. NPT 규정에 따라 5년마다 개최되는 NPT평가회의는 새로운 국제합의를 이뤄낼 수 있는 중요한 장이다. 당초 25년을 대상기간으로 삼았던 NPT가 회원국들 합의에 따라 무기한 연장된 것도 1995년 제5차 NPT평가회의에서였다.

    NPT에 관한 제7차 평가회의는 2005년 5월 25일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188개 회원국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개막연설을 통해 “NPT는 인류사에서 가장 거대한 군축 및 군비통제 체제이며 평화 및 안전보장을 위한 다자적 합의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회원국 가운데 일부가 NPT를 준수하는 척하면서 비밀리에 핵개발을 준비하고 궁극적으로 탈퇴하는가 하면 NPT체제의 구속력 미비로 체제가 점진적으로 붕괴하는 현실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제7차 NPT평가회의에서는 핵보유국과 비보유국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이 자리에서 미국 대표는 “일부 국가들이 NPT 제4조에서 보장된 ‘평화적 핵이용권’을 악용해 이중용도 물질 및 기술이라는 우회로로 비밀리에 핵무기를 얻고자 한다”고 지적하며 이란의 핵 의도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이란 대표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확보가 원자력 발전 연료와 핵무기 재료를 생산하기 위한 것으로 결코 NPT를 위배하지 않은 평화적 목적의 핵 활동”이라고 맞받아쳤다.

    또한 미국 대표는 북한의 NPT 탈퇴 문제를 거론하면서, NPT 탈퇴국이 비핵국가로서의 이점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차원에서 핵 관련 물자 반환, 관련 기기 폐기 등을 주장했다. 북한의 NPT 탈퇴는 NPT 역사상 회원국이 탈퇴를 선언한 유일한 사례인 만큼 NPT의 존립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다만 구체적인 제재방안이나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NPT에 가입조차 하지 않은 3개국과의 형평성 문제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비보유국들도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국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NPT 제6조는 모든 회원국이 핵무기 경쟁의 종식과 궁극적인 핵무기 소멸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비보유국들은 그럼에도 핵보유국들이 지난번 평가회의(2000년)에서 약속한 13개 사항을 충분히 이행치 않거나 오히려 그 반대로 처신한다며 비판했다.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국 대표들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이행 등 그간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비보유국들은 2002년 ABM 조약의 소멸, CTBT 비준 부재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나아가 비보유국들은 평화적 목적의 핵 협력을 활성화할 것도 촉구하는 한편 소극적 안전보장(NSA)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결국 제7차 평가회의는 최종합의문을 채택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당초 미국은 NPT 평가회의를 통해 북한과 이란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핵보유국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는 비보유국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그 주장을 제대로 펴지도 못했다. 제7차 평가회의를 통해 미국, 러시아 등 핵보유국들은 의무를 저버린 채 비보유국들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시도는 정당성을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관철될 수도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

    오바마의 ‘핵무기 없는 세계’

    핵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한 오바마 행정부의 처방은 부시 행정부와 정반대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미 민주당 인사들은 NPT체제가 안고 있는 적지 않은 문제점에도 그마저 없었다면 전세계적인 핵 긴장의 강도가 현재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라 평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는 NPT체제 밖에서 해법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이를 강화해 비확산 방법을 모색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과 러시아 등 핵보유국들이 솔선해서 NPT 합의를 준수하지 않는 한 비보유국들을 설득해 NPT체제 강화라는 당면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제7차 NPT평가회의의 교훈을 통해 절감했다.

    이런 맥락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핵 전략이 궁극적으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지향하는 것임을 재천명하고 있다. ‘핵무기 없는 세계’는 NPT의 목표지만 지난 8년 동안 부시 대통령은 한 번도 이를 지지한 적이 없다. 미-러 간 ABM 조약의 파기, CTBT의 비준 거부, RRW 프로그램을 통한 신형 핵무기 개발 등 오히려 핵무기 능력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해왔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의 핵 전략은 핵보유국으로서 미국의 의무를 다하고, 그에 상응해 비보유국에 비확산을 요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먼저 미국은 전 세계 2만5000개 이상의 핵무기 가운데 95%를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 양국이 핵감축협상을 재개하고, 포괄적 CTBT를 비준하며, 신형 핵무기 개발을 중단한다고 약속했다. 다음으로 미국은 각국에 IAEA 추가의정서 비준, 국제핵연료은행 설치, NPT 탈퇴국 및 비회원국에 대한 제재조항 삽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먼저 러시아와의 핵군축협상 추진을 살펴보자. 전략핵무기감축조약(START-1)과 전략공격무기감축조약(SORT)이 각각 2009년 12월과 2012년 12월에 종료됨에 따라, 그전에 핵무기 감시와 검증기한이 연장될 수 있도록 러시아 측과 협의에 착수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최소한의 핵 보복력을 제외하고 현재 보유한 7000개 이상의 핵무기를 1000개로 감축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둘째로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 RRW프로그램에 따라 지속해온 신형 핵무기 개발을 중단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낡은 핵탄두 4000개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미국의 RRW프로그램이 핵보유국 간의 핵무기 개발경쟁을 부추겼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미 국방부 측이 핵무기의 현대화 없이 핵 억제력을 유지하고 핵군축 협상을 할 방법이 없다면서 RRW 프로그램의 폐기에 반대하고 있어 미국의 최종 방침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로, 미국이 염두에 둔 핵감축 재개와 군축 조치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CTBT를 조기에 비준해 전세계 핵감축 실현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공중, 수중뿐 아니라 지하핵실험까지 금지하자는 CTBT에는 2008년 말 현재 180개국이 서명하고 145개국이 비준했으나, 미국과 러시아 등 9개국이 아직 비준하지 않아 발효가 늦어지고 있다.

    넷째로 미국은 각국에 IAEA 추가의정서(Additional Protocol) 비준을 완료하도록 촉구한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IAEA에 의해 수행된 안전조치의 사찰조항 강화를 추가의정서에 담아 각국의 서명과 비준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 강화된 사찰조항에는 핵물질 보호를 위한 ‘핵물질 방호협약’, 핵물질의 불법거래를 사전 차단하는 ‘핵물질 불법거래 대응그룹(NTFG)’, 핵물질의 탐지를 위한 ‘화물안보구상(SFI)’, ‘핵물질밀수방지협력구상(NSOI)’ 등을 포함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또한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무기급 핵물질의 생산을 금지하기 위해 1993년 제48차 유엔총회 결의로 채택된 ‘핵분열물질 생산 금지조약(FMCT)’에 각국이 조기 비준하도록 독려할 계획이다.

    다섯째, 민감 핵 기술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국제핵연료은행을 설치한다는 구상이다. 미국이 5000만달러를 투입해 IAEA의 관리 아래 국제핵연료은행을 설립하고, 합당한 가격에 안정된 핵연료 공급을 보장하는 국제핵연료공급센터 등의 수단을 강구한다. 이와 더불어 핵보유국이 비보유국에 핵연료 공급을 보장해 주는 조건으로 NPT 제4조에 규정된 농축, 재처리 권한의 일부를 제한한다.

    여섯째, NPT 탈퇴국 및 비회원국에 대한 제재 조항을 추가한다. NPT 회원국이 탈퇴하려 할 경우 IAEA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자동적으로 유엔안보리 이사회에 회부해 강력한 국제제재를 받게 하는 내용으로 NPT를 강화하는 것이다. 현재 이란과 북한에는 각각 유엔안보리 결의안 1737호와 1718호가 적용되고 있다. 그밖의 NPT 비회원국에 대해서도 유엔안보리 차원의 제재조치를 강구한다는 게 오바마 행정부의 계획이다.

    북한은 핵무기국가?

    이처럼 오바마 행정부의 미국 핵 전략 검토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최근 들어 미국의 정보 및 국방 관련기관에서 북한을 핵보유국가로 부르는 일이 잦아져 그 의도가 무엇인지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11월25일 발간된 미 합동군사령부(JFCOM)의 연례보고서는 북한을 ‘핵국가(nuclear power)’로 불렀고, ‘포린어페어즈’ 2009년 1/2월호에서 게이츠 국방장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여러 개 만들었다(North Korea has built several bombs)”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의 국방 관련 국가기관에서 나온 평가는 북한의 핵위협을 군사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미 국방부 측에서 이런 표현을 종종 사용했기 때문에 이것만 갖고 북한을 공식 핵무기 보유국가로 인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주목되는 것은 미 정보기관의 용어 사용이다. 지난해 11월20일 공개된 국가정보위원회(NIC)의 보고서 ‘2025 글로벌 트렌드’는 북한을 핵무기국가(nuclear weapon state)로 호칭했고, 최근 발간된 보고서 ‘세계 보건실태의 전략적 함의’도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올해 2월5일과 2월12일 리언 파네타 CIA 국장과 데니스 블레어 국가정보국장도 역시 핵무기(nuclear weapon)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북한이 핵장치(nuclear device)를 폭발시켰다고 표현했고, 북한을 핵무기국가로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하지만 최근 미 정보당국자들은 ‘핵무기’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북한을 ‘핵무기국가’로 불렀다. ‘핵무기국가’라는 표현은 NPT가 핵무기 보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 국가(P-5)에만 사용해온 용어다.

    이 때문에 미국이 혹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자체를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북한을 공식적인 핵무기국가로 인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문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이 밝혔듯 “NPT체제상 북한은 핵보유국이 될 수 없”으며 “북한이 NPT 체제상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없음은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에도 명시돼 있다.” 실제로 미국의 의도도 북한을 공식적인 핵무기국가로 인정하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미 행정부의 공식 견해는 미 국무부를 통해서 나오지만 아직 국무부는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기존 정책의 관점이 아니라 미국 핵전략의 변화 가능성이다. 북한은 2006년 10월9일 이미 핵실험을 실시했으므로 기술적으로는 핵보유국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일지라도 외교적으로는 1967년 이전에 핵실험을 단행한 5개국을 제외하고는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NPT체제가 안고 있는 딜레마다. 이 딜레마 때문에 핵무기를 보유한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이 NPT에 가입하지 않았고, 북한도 2003년 1월10일 정부 성명으로 NPT 탈퇴를 발표한 뒤에 핵실험을 단행한 것이다.

    반면 부시 행정부는 미국이 핵연료 공급과 원자력 기술을 제공하기로 하는 핵 협정을 NPT 비회원국인 인도와 체결했다. 2006년 4월 있었던 미 의회의 상하 양원 합동청문회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협정의 배경에 관해 △인도와의 관계를 새로운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인도를 비확산체제 안에 끌어들여 NPT체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미국과 인도의 핵 협정을 조건으로 인도가 NPT체제에 들어온다는 의미인가.

    미국은 인도가 보유한 22기의 원자로를 민수용 14기와 군수용 8기로 구분하고, 군수용에 대해서는 예외로 하되 민수용 핵시설에 대해서는 IAEA 안전조치 협정 및 추가의정서 체결, 핵실험 유예, 핵분열물질생산금지조약(FMCT) 체결, 농축 및 재처리 기술의 이전금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핵공급자그룹(NSG) 지침의 자발적 준수를 약속받았다. 다시 말해 인도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현실적으로 인정해주되 NPT의 비확산체제 틀 안에서 관리해 제3국으로의 기술이전을 철저히 차단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도에 적용한 ‘군수용은 NPT체제 밖에서 묵인, 민수용은 철저한 비확산 관리’라는 구도가 파키스탄이나 북한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다. 미국은 인도의 핵무기 보유를 묵인하는 대신 핵 확산을 철저히 막는다는 현실주의적인 접근방법을 채택했다. 미국의 세계전략으로 볼 때 인도는 인구 11억의 대국이고 중국을 견제해 세력균형을 취할 수 있는 좋은 ‘전략적 동반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파키스탄과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그러한 전략적 가치를 갖고 있지 못하다.

    오바마의 핵 전략과 북핵 판도 전망

    오바마 행정부의 첫 대북특사로 유력시되고 있는 스티븐 보즈워스 전 주한 미 대사.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미국의 당면과제는 파키스탄과 북한의 핵물질이나 핵 기술이 테러집단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새로운 핵전략은 북한과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무기의 폐기를 중장기 해결과제로 돌리고 다만 확산을 차단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는 것으로 귀결될 듯하다. 아직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한 이란의 경우는 NPT체제 속에서 핵개발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도의 핵무기 보유를 묵인하고 민수용 핵기술만 통제하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미국의 새로운 핵 전략은 핵 보유 강대국 스스로 핵군축을 단행하고 각종 국제조약을 준수해 솔선수범함으로써 비보유국가들이 미국이 추진하는 강화된 NPT체제에 자발적으로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제7차 NPT평가회의에서 핵보유국의 약속 불이행을 구실로 NPT체제의 강화에 반대했던 비보유국들의 반발도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2010년 5월에 개최될 제8차 NPT평가회의는 미국 핵 전략의 성패를 가를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제8차 NPT평가회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오바마 대통령이 구상하는 강화된 NPT체제가 출범할 가능성이 높다.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일차적으로 미국은 내년 5월 제8차 NPT평가회의 이전까지 북한을 NPT체제에 복귀시키고 이란의 IAEA 추가의정서 비준을 유도하기 위해 직접대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북미 직접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와 미사일 문제, 에너지·경제 지원, 북미수교, 한반도평화체제, 동북아다자안보 등 당면 문제들에 대한 포괄적인 해결을 시도할 것이다. 이것이 성공을 거둔다면 미국은 강화된 NPT체제 아래에서 북한 핵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대북 핵 전략이 NPT체제의 강화를 통한 비확산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경우, 부시 행정부 때 북핵 문제의 기본틀이었던 6자회담의 기능은 다소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핵 문제를 ‘핵시설 동결→신고 및 불능화→핵폐기’의 3단계로 추진해왔다. 지난해 12월 6자회담에서 검증의정서 채택이 결렬됨으로써 북핵 문제는 2단계의 80% 정도에 이른 상태에서 멈춰 있다. 하지만 미국의 북핵 전략이 NPT체제 강화를 통한 비확산에 초점을 맞출 경우 북한의 핵무기 능력을 노출시킬 민감한 검증 문제에 매달리기보다는 대북 경수로 제공과 북한의 NPT 복귀 같은 비확산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발언에 비춰볼 때 6자회담의 틀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이지만 북미 직접대화가 같은 비중으로 병행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 임명될 북한 특사는 북미 직접대화를 통해 북미관계의 개선, 대북 제재의 해제와 국제금융기구 진출 문제 등 쌍무적인 현안뿐 아니라 비핵화, 경수로 제공 및 NPT 복귀 등 9·19공동성명의 합의사항을 추진하는 임무도 겸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특사는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뿐만 아니라 군축·비확산 차관보와도 협력해 북한 문제에 포괄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현재 미국의 북한 특사로는 주한대사를 역임한 스티븐 보즈워스 터프츠대학 플레처스쿨 학장이 유력하다.

    북한 특사를 통한 직접대화말고도 북핵 문제의 진전에 따라 국무장관급의 직접대화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행정부 때는 조명록 북한군 차수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상호 방문해 북미수교와 한반도평화보장체제 등의 합의를 담은 북미공동커뮤니케를 발표한 바 있다. 힐러리 국무장관도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평양을 방문해 북한 외상 등을 만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서 만날 의향이 있다”며 고위급 직접대화를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새로운 북핵 전략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쉽게 단언할 수는 없다. 내년 5월 NPT 평가회의 때까지 북한을 NPT에 복귀시키기 위해 미국이 외교대표부와 같은 낮은 단계의 관계 정상화나 경수로 제공 약속 등 온갖 당근을 제공한다 해도 북한이 자신에게 족쇄가 될 새로운 NPT체제에 쉽게 들어갈지는 불투명하다. 이 대목에서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은 러시아의 역할이다. 1985년 북한이 NPT에 가입한 것은 러시아가 북한에 경수로와 핵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미러 핵군축협상의 한 축인 러시아가 적극 나선다면 북한의 NPT 복귀도 점쳐볼 수 있을 것이다.

    당근과 채찍

    만약 북한의 거부로 북한의 NPT체제 복귀가 시한 내에 실현되지 않을 경우, 이와 관계없이 미국은 NPT 탈퇴국 및 비회원국에 대한 제재를 골자로 하는 NPT체제 강화를 예정대로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북한에 대해서는 미국의 각종 제재조치와 유엔안보리 결의안 1718호가 적용되고 있다. 만약 미국의 구상대로 NPT 탈퇴국 및 비회원국에 대한 제재조항이 들어간다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가 추가될 수밖에 없다.

    이미 힐러리 국무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이 의무를 분명히 이행하지 않으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이 약속을 어길 경우 대북지원을 중단할 것임을 밝혔다. 북한의 약속이행에 따라 대북제재를 해제하되, 의무를 충족지 않는다면 해제했던 제재도 다시 가하고 새로운 제재도 고려한다는 것이다.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 지명자는 2006년 펴낸 공저 ‘하드파워’에서 북한이 만약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핵물질이나 핵기술을 유출할 경우 군사적 조치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부시 행정부를 대신한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이 북한에 모든 면에서 축복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사를 임명해 북미 직접대화에 나서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으로 적어도 북한은 체제를 보전하면서 경제를 회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다. 이제 미국이 먼저 변하기 시작했으니 북한도 기존의 타성을 버리고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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