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윤석열은 모기형인가 호랑이형인가 [신평의 ‘풀피리’⑬]

조직 믿고 위세 부리는 모기 VS 절대 고독 속에 스스로를 연마하는 호랑이

  • 신평 변호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lawshin@naver.com

    입력2020-10-27 10: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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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떼 지어 다니며 약한 자 피 빠는 모기의 해악

    • 조직에 대한 충성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일부 검사들

    •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승승장구한 검사 윤석열

    •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 낮춰보는 이유

    • “장관 부하 아니다” 선언한 윤석열의 미래

    *19대 대선 당시 신평 변호사(64·사법연수원 13기)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앙선대위에서 ‘공익제보 지원위원회’ 위원장과 ‘민주통합포럼’ 상임위원을 지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여권을 향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지식인의 본보기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경북 경주에서 농사를 짓고 시를 쓰며 산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 22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의 질의에 주먹을 쥔 채 답하고 있다. 윤 총장은 이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 “위법하고 부당하다”고 말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 22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의 질의에 주먹을 쥔 채 답하고 있다. 윤 총장은 이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 “위법하고 부당하다”고 말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가던 지금으로부터 약 3만 년 전,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 이후 인류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천적은 무엇일까. 많은 이가 아는 대로 모기다. 

    시골에 살다보면 모기의 위력을 실감한다. 6월 중순부터 모기는 본격적으로 군집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10월 초순까지 대지를 점령한다. 사람들은 급한 일이 아닌 한 이른 새벽에 일어나 모기가 조금 숨을 늦추는 틈을 이용해 농작물 관리를 한 다음 집에 들어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기에게 뜯겨 얼굴이나 팔뚝, 다리가 울긋불긋해지고 가려워 미친다. 

    한국이나 동북아시아가 원산인 수풀모기는 다른 모기와 달리 낮에도 활동한다. 이것이 건너간 미국에서는 질겁해 ‘타이거 모기’(tiger mosquito)라는 별명을 붙였다. 최근 우리 말벌이 미국에 가서 다시 미국인을 경악시켰는데, 미국인들은 이번에는 그것을 ‘살인 말벌’(murder hornet)이라고 부른다.

    비겁하게 떼로 모여 다니는 모기들

    다행히 요즘 기온이 낮아지며 ‘모기의 전성시대’가 지났다. 내 경험으론 최저기온이 섭씨 10도 이하로 몇 번 떨어지면 모기는 거의 사라진다. 모기 없는 세상은 정말 살만하다. 언제든 좋은 시간을 골라 바깥에 나가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다. 지금부터 겨울을 지나 황금 같은 봄날까지는 모기 놈들에게 시달리지 않는다. 그러다 여름 초입인 6월 중순이 되면 다시 모기 때문에 벌벌 떨며(?) 바깥일에 몸을 사리게 된다. 



    모기를 한 개체로 보면 그렇게 무시무시한 것이 아니다. 이놈들은 비겁하게 꼭 떼로 모여 사람을 공격해 피를 빤다. 여름에 덤불을 뒤지기라도 할 양이면 그 놈들이 ‘웨엥~’하며 새까맣게 쏟아져 나온다. 가슴이 철렁한다. 센 바람이라도 불면 모기는 맥을 못 춘다. 진화론상 그보다 하급인 잠자리에게 꼼짝 못하며 무더기로 잡아먹히는 것이 모기이기도 하다. 

    내가 모기를 언급한 것은 위험성을 경고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다. 사람 중에도 꼭 모기 같이 행동하는 존재가 있다. 혼자 두고 보면 별 것 없다. 지성도 기본적인 양식도 부족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조직이 있다. 그 조직을 마치 자기 노력으로 일군 자산인양 뻐기며 이용한다. 이런 사람일수록 약자에게 군림하고, 상대가 자기보다 힘이 세보이면 굴종한다. 그 변신의 빠르기가 가히 놀라울 정도다. 

    권력기관에 근무하는 사람 상당수가 이 유형에 속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것은 일부 검사다. 검사랍시고 일반인을 안하무인으로 대한다. 그는 조직만 믿으면 된다. 조직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한다. 그러는 사이 출세하고, 하다못해 변호사 개업을 해도 명문 로펌에 들어간다. 한 건에 수임료가 수천만 원씩 하는 사건 외에는 쳐다보지 않아도 된다. 세상의 바다는 항상 그에게 ‘태평양’이다. 이 ‘좋은 세상’에 흠집을 내거나 반항하려는 인간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한 세상 편하게 잘 살아간다. 

    언젠가 어느 부장검사가 이런 건배사를 했다. “저는 조직을 위해 이 한 몸 끝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런 의미로 건배를 제의합니다.” 그 자리에 검사만 있던 게 아니다. 외부인이 상당수 있었다. 그런데도 어이없는 건배사를 한 그는 검사로 승승장구하고, 청와대 수석도 했다. 

    모기형 인간은 조직을 떠나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나는 그가 우리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기 한 몸 안락하게 살면 그뿐인 존재에 불과하다.

    모기형 인간 vs 호랑이형 인간

    ‘모기형 인간’이 사회 지도자가 되면 당연히 안 된다. 그것은 다수의 불행으로 귀결된다. 진정한 지도자는 식견이 풍부하고 양심적이며, 무엇보다 고독을 이해하고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독일 문호 괴테는 “눈물을 흘리며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말에 빗대 말하자면, 처절하게 고통의 눈물을 흘려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지도자가 돼서는 안 된다. 비유컨대 지도자는 홀로 설산을 배회하며 수시로 절대고독에 침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호랑이 같은 사람이 맡아야 할 것이다. 세상이 자신을 모두 배반한 것 같은 철저한 외로움 속에서 스스로를 연마한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 그래야 역경에 처해도 크게 흔들리지 않은 채 뚫고 나갈 수 있고, 세상의 여러 이치를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된다.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승화하며 도움의 손길을 기꺼이 내밀 수도 있다. 

    나는 오랫동안 윤석열 검찰총장이 단순한 ‘모기형 인간’으로 검찰 밖에 나가면 무용한 존재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호랑이형 인간’으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을까 하는 점이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10월 22일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그가 어떤 자세를 취할지 살펴보았다.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법조인 자격을 받은 해, 예를 들어 사법시험 합격자에게는 사법연수원 기수가 무척 중요하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가 되고자 이인제 당시 국회의원과 경합했을 때, 이 의원은 자기가 정치 경력이 길다는 이유로 더러 노 전 대통령을 무시했다. 이때 노 전 대통령은 “내가 그래도 법조선배인데” 하면서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최근 윤석열 총장을 마치 하급자 대하듯 하며 검찰 인사에서 배제하고, 수사지휘권을 수시로 발동해 무력화했다. 추 장관 심중에는 자신의 5선 의원과 당 대표 경력에 대한 우월감도 있을 것이나, 좀 더 기본적으로는 윤 총장이 법조 경력 면에서 새까만 후배라서 얕보는 의식도 작용했다고 본다.

    국가에 봉사하는 공직자의 도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윤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각별한 총애를 입었다. 서울중앙지검장 발탁부터 검찰총장 임명까지, 그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준 사람은 문 대통령이다. 그러나 이를 인간적 은혜와 그 갚음의 차원에서 볼 일은 아니다. 윤 총장이 덕을 입기도 했으나 문 대통령도 그 인사를 통해 정치적 플러스를 얻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직자는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을 하며 소위 ‘사법농단’ 사건을 파헤쳤다.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하고, 두 명의 전직 대법관 외에 다수의 사법행정 참여자를 기소했다. 당연히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당시 윤 총장은 불의한 시대를 청산하는 화려한 ‘도살자’였다. 이때의 활약이 결정적 원인이 돼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그러나 윤 총장의 ‘사법농단’ 수사는 지금까지 전개된 경위를 짚어보면 크게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피고인에게 줄줄이 무죄 판결이 나고 있고, 앞으로도 무죄 행진이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그 부담은 지금 정부가 고스란히 안게 된다. 현 정부의 정통성마저 흔들릴 염려가 있다. 

    윤 총장이 당시 ‘재판 개입’ 사건을 정면으로 수사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법원행정처나 검찰 수뇌부를 통해 일선 판‧검사에게 사건에 관한 지시가 내려가고, 그로 인해 사건 처리가 왜곡된 것은 법치주의 관점에서 보건 민주주의 원칙에 비춰보건 심각한 일이다. 이것을 문제 삼아 기소했더라면 당시 법조 고위층 인사 상당수가 유죄판결을 받게 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 큰 정의의 이정표도 세웠을 것이다. 

    당시 윤 지검장은 그러지 않았다. ‘재판 개입’의 좋은 사례가 있었음에도, 그래서 이에 관한 수사를 할 수 있었음에도 묵살했다. 그가 어떤 의도로 그리 한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법농단’ 사건 쪽으로 모는 것이 외관상 훨씬 번듯했고, 또 자기 수하 검사들을 희생시키지 않아도 됐다는 점이다. 나중에라도 윤 총장의 이 사건에 관한 공과가 정밀하게 평가받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여당 의원 질타에 주눅 들지 않은 윤석열

    그런데 10월 22일 국감장에서 윤 총장은 기개가 훌륭했다. 박범계 의원이 적대적 말투로 똑바로 앉으라고 호통을 치는데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그리고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쩌렁쩌렁하게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성급함과 분노로 그를 공격할수록 오히려 그는 더욱 돋보였다. 이로 보면 윤 총장은 조직에 기대 조직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모기형 인간’이 아님은 분명하다. 분명 남다른 풍모가 있음을 각인시켰다. 어쩌면 고독을 내면화해 고통을 태연하게 삭여온, 그래서 생긴 창조성과 고상한 인격을 가진 ‘호랑이형 인간’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윤 총장이 이 정도 경지의 인간이라면 앞으로 그가 우리 사회를 위해 할 일이 무척 많을 것이다. 

    윤 총장도 국감장에서 여건이 되면 정계로 들어갈 것임을 사실상 선언했다. 하지만 나는 진작 그의 검찰총장 취임사에서 그러한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아무튼 그의 정치적 장래를 빈다.

    *가을이 깊어지며 누런둥이 호박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요즘 시골에 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한국적 정서가 가득 담긴 풍경이다.

    ■ 탈각(脫殼)

    사는 것이 의미 없이 티끌로 흩어질 때
    허무의 밑바닥은 습하고 어두운데
    내 삶을 둘러싼 껍질 억세고 두터웠어라

    내 안에서 나오기가 너무도 힘들더이다
    나오고 둘러보니 세상이 다릅디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이 한 몸 편하더이다

    눈으로 사랑을 그리신 주님이시여
    제 안에 오시어 사랑을 틔우시니
    처처에 눈 간 곳 마다 기쁨이 솟더이다

    가을이 무르익었음을 알리는 탐스러운 호박. [신평 제공]

    가을이 무르익었음을 알리는 탐스러운 호박. [신평 제공]


    ● 1956년 출생
    ● 서울대 법학과 졸업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제13기
    ● 인천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지방법원 판사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 역임
    ● 저서: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 ‘들판에 누워’(시집)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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