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이대남과 흉기난동…이준석은 뭘 하고 있는가

[노정태의 뷰파인더] ‘보수 청년 정치’ 실패의 후과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입력2023-08-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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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젊은 구의원의 의정 홍보

    • 일종의 ‘집단 광기’가 휩쓴 후

    • ‘이대남’을 언급해야하는 이유

    • 형식적 민주주의의 실질적 파탄

    • 확장 여지없는 ‘안티 페미니즘’

    • ‘폴리스’ 이면에 있는 ‘폴리틱스’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공원 강간 살인 사건이 발생한 관악산 생태공원 인근에 2인 이상 동반 산행을 권고하는 구청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공원 강간 살인 사건이 발생한 관악산 생태공원 인근에 2인 이상 동반 산행을 권고하는 구청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대한민국 최초로 ‘여성안심귀갓길’을 전면 폐기, ‘안심골목길’로 통합하여 남녀노소 구민 모두의 안전을 강화하였습니다.”

    국민의힘 소속 최인호 서울 관악구의원이 지난해 12월 자신의 의정활동을 홍보하면서 썼던 문구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체제에서 열린 ‘토론 배틀’을 통해 주목받았던 그는 20대 초반 나이에 구의원에 당선됐다. 임기를 시작하고는 본인의 활약에 힘입어 여성안심귀갓길을 폐지했다고 자랑스럽게 알리고 있다.

    최인호의 말이 달라진 것은 8월 17일 오전 발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공원 강간 살인 사건 때문이다. 관악산 생태공원 둘레길에서 1993년생 남성 최윤종이 30대 여성을 너클을 낀 양손으로 폭행하고 성폭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는 결국 19일 오후 사망하고 말았다.

    여성안심귀갓길 폐지를 자랑스레 홍보하던 그에게 비난의 화살이 향하자 최인호는 입장을 바꿨다. 8월 2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그는 “여성안심귀갓길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안심골목길 예산으로 전환하여 증액하는 결정은 관악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하여 의결된 사안”이며, “당시에만 해도 관악구의회는 민주당이 다수당이었으며, 민주당의 반대가 있었다면 추진이 불가능했던 사안”이라고, 자신의 최대 치적을 민주당의 공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변명을 조금 더 들어보자. 그는 “여성안심귀갓길이라는 문구를 길바닥에 적어놓는” 것은 무의미한 탁상행정에 불과하며, 본인이 대안으로 제시한 “CCTV, 비상벨, 가로등을 비롯한 골목 인프라를 설치하는 안심골목길 사업”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다. 2022년 4월 현재 전국에 설치된 여성안심귀갓길은 1942개. 사업 내용은 CCTV, 비상벨, 가로등 설치를 확충하는 것이다. 여성안심귀갓길은 바닥에 페인트칠이나 해놓는 것인 반면 안심골목길은 그렇지 않다는 반론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거나, 적어도 여성안심귀갓길 사업의 내용을 부당하게 폄하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관악구의회 홈페이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최인호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8월 24일 현재 당사자인 그는 추가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지 않다.

    7월 21일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이후의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한 청년 정치인이 불러일으킨 논란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설령 ‘흉기난동 정국’이 추가 피해 없이 수습된다 해도 끝날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 구성원, 특히 젊은 남성들을 둘러싼 논의의 지형도가 심각히 망가져 있으며, 그것이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일탈’을 넘어

    8월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및 흉기 난동 사건의 피해자 이모 씨의 사건 현장에 시민들이 추모 꽃다발을 남겼다. 이씨는 8월 6일 오전 끝내 사망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8월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및 흉기 난동 사건의 피해자 이모 씨의 사건 현장에 시민들이 추모 꽃다발을 남겼다. 이씨는 8월 6일 오전 끝내 사망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일단 사실관계를 파악해 보자. 8월 11일 오전 9시 기준 온라인상에 올라온 ‘살인예고’ 글은 315건. 그 중 작성자 119명은 검거됐다. 살인예고 글은 8월 7일 오후 6시만 해도 194건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불과 나흘 사이에 121건이나 폭증한 셈이다. 다소 과격한 표현일 수 있으나 일종의 ‘집단 광기’가 휩쓸고 지나갔다고 해도 큰 무리가 아닐 듯하다.

    8월 7일까지 검거된 피의자는 65명인데 그 중 34명이 미성년자였다. 그날까지 구속된 피의자는 총 12명이다. 그 중에는 20대가 5명, 30대가 4명, 40대가 1명, 만 19세인 10대 피의자도 2명 있었다. 성별은 모두 남성. 약간의 편차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난 대선 당시 정치적으로 호출됐던 소위 ‘이대남’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이대남은 흉기난동범이다’라는 주장이 아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젊은 남성들은 올바른 도덕관념을 지니고 있다. 어떤 이대남들은 흉기난동 범죄가 벌어질 때 피해자를 돕거나 범인을 체포하는데 도움을 주는 등, 사회 구성원으로서 바람직한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흉기난동을 벌였거나 본인이 그런 행동을 할 것이라고 온라인상에 게시물을 써서 수사 대상이 되고 체포되는 사람은 대체로 이대남의 범주에 속했다. 어떤 집단이건 낙인찍히고 매도당하는 일은 막아야 하겠지만, 사회 현상을 논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흉기난동 정국’을 논하면서 이대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직무유기다.

    신림동 공원 강간 살인사건 범인인 최윤종의 경우도 그렇다. 현재 30세 남성인 그는 지난 대선 당시 기준으로는 만으로 스물아홉의 ‘이대남’이었다. 모든 이대남이 그와 같은 흉악범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두어 달 동안 사회를 흉흉하게 만들고 있는 원인을 제공하는 인구 집단이 ‘이대남’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흉기난동을 저지른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칼부림 정국’의 본질은 ‘이대남 문제’가 아니라는 비판이 가능할 수 있다. 8월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 차량과 흉기로 난동을 벌인 최원종의 경우처럼 제대로 치료와 관리를 받지 못한 정신질환자들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사례가 더 확인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 논점은 타당한 면이 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격적 대우와 치료, 관리 등은 따로 깊이 논의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흉기난동을 저지른 사람들 뿐 아니라 범행 예고를 온라인에 올리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즐긴 수백여 명의 사안들 또한 중요하게 다뤄져야 마땅하다. 그들 모두를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자로 치부하고 ‘개인의 일탈’로 취급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익명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이대남들의 정서와 분위기 자체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다뤄져야 마땅하다.

     8월 3일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AK플라자 모습. 이튿날 경찰력이 배치돼 근무하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8월 3일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AK플라자 모습. 이튿날 경찰력이 배치돼 근무하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경찰의 초강수와 광기의 분위기 사이

    8월 21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 블라인드에 어떤 게시물이 올라왔다. 작성자의 직장은 경찰청. 그런데 이번 게시물은 일반적인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오늘 저녁 강남역 1번 출구에서 칼부림한다”는 제목 하에, “다들 몸사려라 ㅋㅋ 다 죽여버릴꺼임.”이라는 한 줄 내용이 담겨 있던 것이다.

    ‘블라인드’는 회원 가입 시 본인의 직장을 인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 익명 커뮤니티다. 어느 직장을 다니고 있는지 정도만 밝힌 후 익명으로 활동하는 공간이다. 물론 사칭 계정이나, 조작된 게시물을 뜻하는 소위 ‘주작’은 있을 수밖에 없다.

    경찰은 놀라울 정도로 발 빠르게 대응했다. 바로 다음날인 8월 22일 오전 8시 32분, 게시물 작성자인 A씨를 서울 소재 주거지 인근에서 긴급체포했다.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A씨는 경찰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본인이 직장인이라고 진술한 상태다. 그의 나이는 30대. 이대남 범주에 속하거나 걸쳐 있는, ‘흉기난동 예고 정국’ 속 가장 문제적인 집단에 속한다.

    블라인드에 올라온 자칭 경찰의 게시물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8월 4일 게시되고 언론에 보도되며 큰 화제를 끌었던 “칼부림 사건? 국민은 각자도생해라”라는 제목의 글을 떠올려 보자. 본인이 경찰청 직원이라고, 즉 경찰이라고 밝힌 작성자는 “범죄자 인권 지키려 경찰들 죽어 나간다” “공무원 중 자살률 1위 경찰은 더 이상 못 버티겠다”며 한탄했다. “선배들 몇 년간 소송에서 살아남으려고 머리털 빠지게 고생하는 거나 판사들 기계같이 완벽한 K캅스 요구하는 어이없는 판례 보면 그냥 기본적인 것만 하자는 생각으로 일하게 된다”는 푸념을 늘어놨다. 작성자는 소송에서 몇 천씩, 몇 억씩 깨지는 ‘선배’들을 거론하고 있었으니 상대적으로 젊은 축에 속하는 청년 경찰로 추측된다.

    상황을 정리해보자. 연이어 흉기난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본인이 여성안심귀갓길을 폐지했다고 자랑스럽게 선전하던 청년 정치인은 본인의 입장을 변명하느라 급급하다. 그가 대변하는 젊은 남성, 소위 ‘이대남’들은 인터넷의 익명성을 믿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흉기난동 예고글을 올리다가 경찰의 수사를 받고 체포당하고 있다.

    경찰은 사상 처음으로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고 서울 시내 요처에 특공대와 장갑차까지 배치하는 초강수를 뒀다. 하지만 광기의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는 서울시민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산책로에서 끔찍한 강간 살해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23년 늦여름의 뒤숭숭한 풍경이다.

    양당이 공히 초래한 정치의 실패

    우리가 이런 분위기 속에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 보자면 ‘치안 공백’과 ‘공권력의 강화’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검수완박이 무리하게 시행되면서 경험과 인력이 부족한 경찰은 기존에 검찰에서 주도하던 수사 업무의 대부분을 떠안게 됐다. 수사는 검찰, 치안은 경찰이 주로 맡던 균형이 깨져버렸다. 검찰이 맡던 업무 중 3분의 2가 경찰로 넘어왔고, 경찰의 업무량이 턱없이 가중됐다.

    하지만 그러한 행정적 난국의 원인을 더 따지고 들어가 본다면, 결국 우리는 정책을 넘어 정치의 실패와 맞닥뜨리게 된다. 일단 검수완박부터 따져보자. 과반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원내 제1당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는 목적의식을 갖고 앞뒤가 맞지 않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들이밀었다.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법안 심사가 가로막힐 상황에 처하자 의원 한 사람이 ‘위장 탈당’을 하여 무소속 의원 행세를 함으로써 소위원회의 법안 심사 기능을 무력화했다. 이렇듯 너무도 노골적인 편법과 꼼수를 동원해 만든 억지 법률을 헌법재판소는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해버렸다. 건국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혹은 적어도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일관성 있게 유지돼온, 형식적 민주주의의 실질적 파탄이다.

    검수완박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민주당의 정치적 셈법은 무엇이었을까. 퇴임을 앞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신변 보호를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고, ‘검찰 리스크’에 붙들려 있는 이재명 당대표를 지키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관점도 있다. 중요한 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겠다는 발상 자체에 어떤 타당성이나 논리적 필연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일부, 아니 큰 부분이 검찰의 수사 기능을 약화하겠다는 일념을 품고 그 어떤 부수적 효과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은 채 달려들었고, 지금 우리는 바로 그 ‘부작용’을 체험하는 중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치의 실패다.

    훨씬 중요한 정치의 실패도 있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언급한 소위 ‘보수 청년 정치’의 실패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대선과 그 뒤를 이은 당대표 경선을 통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형성, 유포되는 이른바 ‘이대남 정서’를 주류 정치 담론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공정’을 강조하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지나친 페미니즘’에 반대한다며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한 팬덤의 기세를 등에 업고 달려들었다.

    대체 이게 무슨 청년 정치인가

    어떤 인구 집단이건 자신만의 정치 의제를 갖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외려 그렇게 다양한 의제가 등장하고 대결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발전을 불러온다. 문제는 그 의제가 어떤 의제냐다. 그 자체만으로 추구할 가치가 있는 의제, 설령 달성하지 못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정치인과 지지자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는 의제를 중심으로 유권자 집단이 형성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이준석과 ‘이준석 키드’들이 추구하는 ‘보수 청년 정치’는 그런 면에서 첫 단추부터 잘못 꿰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역 사회에 보탬이 된다거나, 전 국가적 차원에서 유의미할 수 있는 주제를 탐구하는 대신, ‘안티 페미니즘’이라는 추상적이며 공격적이고 확장 가능성 없는 의제에만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이준석 대표 시절 국민의힘 ‘토론 배틀’에서 주목받은 최인호가 본인의 최대 업적으로 관악구의 여성안심귀갓길 폐지를 내걸고 있던 것을 떠올려 보자. 최인호는 여성안심귀갓길 대신 안심골목길을 도입했다고 주장하지만 두 사업의 본질은 같다. 결국 그는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은 여성들을 위한 정책에서 ‘여성’이라는 말을 떼어낸 것을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다가, 본인의 지역구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강력범죄가 벌어지자 급히 해명을 내야 할 처지에 몰리고 말았다. 대체 이게 무슨 청년 정치인가. 이런 식의 청년 정치를 통해 여성 청년 뿐 아니라 남성 청년들 역시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보수 청년 정치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이준석 본인의 현황 역시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평소 즐겨 사용하던 페이스북을 넘어 신생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쓰레드에 계정을 만들고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수없이 많은 글을 올리는 그가, 2023년 여름의 흉기난동 사건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다.
    한 사람의 정치인이 세상 모든 일에 책임을 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준석은 국회 입성을 넘어 ‘큰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마따나 비가 와도 대통령 탓이고 눈이 와도 대통령 탓이다. 꼭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남다른 권한과 무거운 책임을 질 생각이 없다면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책임이 꼭 실질적 책임일 필요는 없다. 본인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본인을 ‘리더’로 존중하기에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향해, 부정적 행동과 발언을 자제하며 긍정적인 방향의 미래를 꿈꿔야 한다고 역설하고 이끌고 나가야 할 도의적 책임도 엄연한 책임이다. 정치 지도자는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필자는 지금 실제로 흉기난동을 벌인 범인들이 등장한 데 대해 이준석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나친 요구다. 하지만 ‘장난’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흉기난동 예고글을 올린 이대남들에 대해서는 이준석의 책임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가장 이대남과 소통이 되는, 이대남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그래야만 할 단 사람의 오피니언 리더를 꼽자면 그게 바로 이준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준석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8월 19일 유튜브 채널 ‘여의도 재건축 조합’에 출연해, 여성의 출산 후 친자확인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자신의 팬들이 좋아할법한,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의 시시껄렁한 농담거리를 주워섬기고 있던 것이다.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표현을 빌자면, 이준석은 태풍이 밀려오는데 고추나 말리고 있는 중이다.

    선한 마음과 의지

    흉기난동 사태는 일차적으로 치안의 문제, 경찰의 문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오작동하는 정치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경찰을 뜻하는 영어 단어 police와 정치를 뜻하는 politics는 모두 ‘공적인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 polis를 어원으로 한다. 솟구치는 정치적 에너지와 일탈을 다스리는 공권력의 균형 속에서 우리의 공적 생활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흉기난동 정국에서 형성된 담론을 보면 걱정이 크다. ‘폴리스’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폴리틱스’, 특히 청년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재검토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이버 세상의 어두운 곳에 모여 있는 익명 커뮤니티 밈을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것은 바람직한 청년 정치와 너무도 거리가 멀다. 선한 마음과 의지를 지니고 있지만 스스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이대남들을 다독이며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진정한 청년 리더가 절실한 시점이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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