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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불구속, ‘범털’만 유리한 ‘원님 재판’

[노정태의 뷰파인더] ‘피의자 방어권’, 강자 위한 허울에 불과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입력2023-10-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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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제적‧정치적 영장기각 결정

    • 일종의 ‘본안판결 프리시즌’ 돼

    • 넷플릭스作 ‘나르코스’의 경우

    • 법이 엉터리로 만들어진 후과

    • 법원의 예규로 작동, 법치 훼손

    • 독일 형사소송법에선 구속 사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27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27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하여 불구속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9월 27일 새벽,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내놓은 영장실질심사 결과 때문이다. 대부분의 법조인, 심지어 야권 성향의 법조인들마저 예상하던 바를 뒤엎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구속영장 기각 사유는 길지 않다. 공백을 포함해 200~300자 가량이다. 이번에는 달랐다. 793자에 달하는 기각 사유문은 판사 유창훈의 논리를 나름 공들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혐의 소명과 증거인멸의 법리를 구분한 후, 가장 먼저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증교사 혐의가 소명됐다는 것은 해당 죄목에서 유죄라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재명은 위증교사죄를 저질렀다는 판단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유창훈은 백현동 개발사업, 대북송금 등에 대해 직접 증거가 부족하거나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그러므로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과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해, 피의자 이재명을 불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유창훈의 논리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⓵위증교사는 이미 유죄다. 따라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 ⓶백현동 개발사업 역시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만으로 충분하니 증거인멸의 우려를 앞세워 이재명을 구속할 일이 아니다. ⓷대북송금의 경우, 이화영의 진술을 뒤엎기 위해 이재명이 주변 인물들에게 압박을 줬다고 의심할 정황은 있지만 그런 개입을 직접 입증할 자료가 없고, 계속 바뀌는 이화영 진술의 신빙성 여부도 확신하기 어려우며, 이재명은 야당 당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을 받고 있으니,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번 이재명 구속영장 기각 결정은 그야말로 문제적이다. 일단 이번 결정은 정치적이다. 정치적 사망 선고 직전에 놓여 있던 이재명에게 역전의 교두보를 마련해줬다. 현직 야당 대표를 구속하는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변명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보자면 현직 대통령과 여당을 궁지로 몰아넣는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비판 역시 피하기 어렵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구속영장실질심사제도(이하 ‘영장실질심사제’)의 문제점을 낱낱이 드러냈다는 점이다. 영장실질심사제는 1995년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처음 도입된 후 늘 논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전문적이고 대다수 국민의 실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던 탓에 논란이 법조계의 울타리 바깥까지 확산되고 있지는 않았다. 유창훈의 결정문을 꼼꼼히 짚어보며, 이번 사안, 이른바 ‘이재명 불구속 사건’이 드러낸 영장실질심사제의 문제를 살펴보자.

    위증교사는 이미 유죄라면서…

    위증교사는 이미 유죄다. 유창훈에 따르면 그렇다. 이재명이 불구속되면서 정치적 수세에 몰린 검찰, 법무부, 여당이 강조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법치주의의 원칙을 엄밀히 따지고 볼 때, 이재명의 위증교사가 이미 유죄라는 여당의 주장뿐 아니라 그 근거가 되는 유창훈의 결정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이재명의 위증교사죄는 아직 본안판결을 통해 확정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안판결이란 우리가 아는 재판 중 실제 소송의 내용과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소송판결이란 소송의 요건이나 형식에 흠결이 있는지 따지는, 말하자면 절차에 대한 판결이다. 형사재판에서 본안판결이란 피의자가 실제로 그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묻고 따지는 것이다. 그러니 무죄추정의 원리에 따라, 적법한 소송요건을 갖춘 본안판결을 거치지 않는 한 ‘이재명은 위증교사 유죄’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런데 방금 우리가 확인한 바와 같이 유창훈은 이재명의 위증교사를 이미 유죄로 보고 있다. 이미 확보된 증거에 따르면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으니 이재명을 위증교사죄 때문에 구속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아직 본안판결이 진행되지도 않았는데 본안판결을 해야 할 내용을 미리 꺼내놓고 다 훑어본 후, 정작 그 본안판결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도 없는 영장전담판사가 결정을 내린다.

    영장실질심사제가 지니는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가 바로 여기 있다. 영장실질심사는 해당 피의자를 구속할지 말지 결정하는 절차일 뿐이어야 하나, 실제로는 해당 사건 전체에 대한 증거를 두고 다툰다. 영장실질심사는 일종의 ‘본안판결 프리시즌’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재명이 위증교사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리라고 유창훈은 어떻게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이미 확보된 증거가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보고 있으나, 이는 본안판결 판사들의 입장이 아니다. 이미 유창훈 스스로가 대다수 법조인들의 전망과 달리 이재명의 구속영장을 기각하지 않았던가.

    필자는 지금 이재명의 위증교사가 무죄일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재명의 변호인단이 마법에 가까운 변론을 통해 무죄를 받아낼 가능성이 0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물며 실제로 저질러진 범죄가 있더라도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받아낼 수도 있으며, 그 증거불충분을 야기할만한 어떤 행위를 이재명이나 그의 주변인 혹은 제3자가 추가적으로 저지를 가능성조차 없지 않다.

    아주 극단적인 사례로 콜롬비아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일생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를 떠올려 보자. 이미 충분한 증거가 수집됐지만 콜롬비아 당국은 당장 에스코바르를 구속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에스코바르의 사주를 받은 공산 게릴라들이 대법원 문서저장고에 불을 질러 모든 증거가 불타버렸다. 그렇게 에스코바르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고 유유히 자유의 몸이 되고 말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의 한 장면.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의 한 장면. [넷플릭스]

    2023년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본안판결이 진행되지도 않았는데 본안사안에 대해 미리 유무죄를 따지는 영장실질심사제가 지닌 구조적 결함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영장실질심사는 최소화돼야 하며, 존속하더라도 형식적, 기계적인 절차로 제한돼야 한다. 영장실질심사제가 엄격해질수록 대형 로펌과 전관예우의 힘을 빌 수 있는 ‘범털’들만 구속을 면하며, 그 결과는 더 큰 증거인멸의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엉터리 혹은 엉성함

    영장실질심사제가 이렇듯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말해, 법이 엉터리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엉터리’라는 말이 너무 심하다면 ‘엉성하다’ 정도로 바꿔도 될 것 같다.

    대한민국의 영장실질심사제는 엉터리다. 법으로 정해야 할 것을 법으로 정하지 않고 내규로 다루고 있는데, 그 내규가 서로 맞지 않으며 기준 또한 불분명하다. 그렇다보니 검찰은 검찰대로 본안소송에 내밀어야 할 자료를 모두 꺼내와 영장판사에게 제시할 수밖에 없고, 영장판사는 늦은 새벽까지 그 자료들을 벼락치기로 검토하며 혼자만의 판단으로 자기만의 본안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9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마련된 포토라인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9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마련된 포토라인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피고인 구속의 요건을 정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제70조 1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70조(구속의 사유) ①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 <개정 1995. 12. 29.>

    1.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2.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3.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이 법 조항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검찰과 법원은 각각 내부 지침 혹은 예규를 통해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대한 검사나 판사의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검찰의 ‘구속 지침’에 비해 법원의 ‘구속 예규’에 구체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대체 얼마나 구체적이지 않은가. 그것은 필자처럼 법조계 바깥에 있는 사람이 알기 어렵다. 엄연히 법 시스템의 일부로 작동하며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지만, 법원의 내부 예규까지 외부에 공개돼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장실질심사가 엄격해짐으로써 피의자의 방어권이 보장될 수 있다는 논리는 이 지점에서 허물어지고 만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 이른바 ‘잡범’들을 떠올려 보자. 그들 중 대부분은 대형 로펌은 고사하고 평범한 변호사를 고용할 여유도 없다. 국선변호인에 의지해야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국선변호인이 영장실질심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란 어렵다. 따라서 잡범들은 영장실질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경찰이나 검찰이 제시한 구속영장에 따라 바로 구치소에 들어간다.

    반면 재벌 회장이나 이재명 같은 거물급 정치인, 소위 ‘범털’들은 어떨까. 대형 로펌과 초호화 변호인단, 검찰이나 법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전관 법조인을 총동원한다. 전관들은 (인맥은 논외로 하더라도) 최신 예규와 적용 사례에 밝다. 범털들은 이렇게 영장실질심사에서 승리를 거두고 잠시나마 구속을 면한다. ‘피의자의 방어권’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이 오직 힘과 돈을 가진 자들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할 수 있는 여지를 폭넓게 열어주고 있는 셈이다.

    영장실질심사제가 사실상 ‘본안판결 프리시즌’으로 작동하는 상황에서, 영장실질심사의 기준이 법이 아닌 법원의 (느슨한) 예규로 작동하는 것은 그 자체가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다. 법치주의란 국민들이 법을 읽고 해석하여, 자신의 행동이 불법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영장실질심사제는 한 사람의 구속 여부라는 중차대한 사안의 결정을 장막 너머의 밀담으로 바꿔버리고 있는 것이다.

    독일 형사소송법의 경우

    인권을 중시하는 진보적 법조인들이 늘 참고 사례로 삼는 독일은 어떨까. 우리와 정반대다. 아주 구체적으로 형사소송법 그 자체에 구속영장 발부 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인용해 보자.

    ‘독일 형사소송법 제112조 구속의 요건: 구속사유

    ①피의자가 범행에 대해 강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구속사유가 존재한다면 구속명령이 피의자에 대해 내려질 수 있다. 구속명령은 구속이 사건의 중요성과 예상되는 형벌이나 보호조치의
    ②다음과 같은 특정한 사실관계에 근거하고, 범죄사실 수사를 방해할 위험이 있는 경우(증거인멸의 위험, Verdunkelungsgefahr)에 구속사유가 인정된다.

    1.피의자가 도망하고 있거나 (형사절차를) 피해가는 것이 확실한 경우
    2.개별 사건의 상황 판단에서 피의자가 형사절차를 피할 위험이 존재하는 경우(도망위험)
    3.피의자의 행위가 강한 범죄혐의의 근거가 되는 경우로서,
    a)피의자가 증거자료를 파기, 변경, 은폐, 위조 및 변조하려는 경우 또는
    b)공범, 목격자 또는 감정인(Sachverständige)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영향을 미치려는 경우 또는
    c)제3자에게 a)와 b)에 해당하는 행위를 사주하려 한 경우’

    여기서 우리는 제112조 1항 3.c)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증거인멸이나 위증 등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제3자를 통해 그러한 결과를 꾀하고자 했을 때, 그런 위험이 있다면 구속사유가 된다고 독일 형사소송법은 직접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검찰과 법원의 입장이 달라지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검찰의 구속 지침에는 독일 형소법 제112조 1항 3.c)에 해당하는 내용이 기술돼 있는 반면, 법원의 구속 예규에는 그러한 지침이 담겨 있지 않다. 법조인이 아닌 필자가 논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2012년 12월 27일 현재 개정돼 적용되고 있는 법원의 구속 예규에 따르면 그러하다.

    그런데 ‘제3자를 통해 증거를 파기하려 하거나 증인을 회유하려 한 사례’라면, 무언가 낯익은 기분이 들지 않는가. 그렇다. 이재명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유창훈 판사조차 인정하고 있다시피, 이재명은 충분한 증거를 통해 위증교사 혐의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형사소송법에서 말하는 “공범, 목격자 또는 감정인(Sachverständige)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영향을 미치려는 경우”에 해당한다. 백현동 개발 사업이나 대북송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3자를 통해 증인을 회유하고 증거를 인멸하려 한 정황은 충분히 확인됐다.

    이쯤에서 이재명 구속영장 기각 사유문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유창훈은 “대북송금의 경우, 이화영의 진술과 관련하여 피의자의 주변 인물에 의한 부적절한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들이 있기는 하나, 피의자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였다고 단정할 만한 자료는 부족한 점”을 들어 이재명의 방어권을 보장했다.

    하지만 우리법연구회를 비롯한 수많은 진보 법조인들이 시금석으로 삼는 독일의 법체계 하에서라면 이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이재명은 이미 이화영의 “진술과 관련하여 피의자의 주변 인물에 의한 부적절한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들이 있”다. 독일에서라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구속 사유가 되고 남는다. 독일이 우리보다 인권 후진국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인권 개념이 오직 강자의 무기로 전락한 것인가.

    전관예우와 ‘원님 재판’

    독일 형사소송법은 제113조를 통해 가벼운 범죄에 대한 구속영장발부를 제한한다. 가벼운 범죄라 함은 내란, 살인, 징역 5년 이상으로 규정된 범죄가 아닌 모든 범죄다. 많은 경우 절도나 낮은 액수의 횡령 같은 생활형 범죄다. 그런 범죄의 증거는 물증으로 확보되는 경우가 많다. ‘나르코스’의 사례처럼 법원 증거보관소 방화 사건으로 증거가 유실되지 않는 한, 확보된 증거가 사라지지 않으니, 피의자의 신변이 뚜렷하고 도주의 염려가 없다면 구속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한국의 영장실질심사제는 정반대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미 확보된 물증만으로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비싼 변호사 비용을 댈 수 없어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다. 반면 물증이 없거나 진술에 의존해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할 소위 ‘범털’들에게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열려 있다. 심지어 법원 예규는 제3자를 통한 증인, 참고인, 공범 회유의 가능성을 미리 걱정하고 있지도 않으니, 그러한 방식으로 유죄 판결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열어두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불구속 사태’는 불행한 일이다. 우리 사법 체계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결함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판사가 볼 때 위증교사 혐의로 유죄가 나올 것이 분명한 피의자가 있다면, 게다가 그 피의자가 본인 스스로 혹은 제3자를 통해 다른 범죄의 재판 과정에 영향을 미칠 여지가 있고 그렇게 의심할 정황마저 갖춰졌다면, 그 피의자는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 대륙법제를 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여러모로 바람직한 모범 사례로 참고하고 있는 독일의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그렇다.

    이것은 한 사람의 판사나 검찰 조직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애초에 우리의 법체계가 너무 허술하고 엉성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게 문제다. 그 위에 양극화된 정치적 광풍이 몰아치고 있으니, 전관예우와 ‘원님 재판’이 횡행할 수밖에 없는 요건이 모두 갖춰져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구속을 피하는 ‘범털’의 사례는 여기서 끝나야 한다. 형사소송법 개정을 향한 국민적 여론이 모아져야 할 때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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