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예능 국가’ 돼버린 大韓民國

[이근의 텔레스코프] 이성보다 감성, 윤리보다 인기, 깊이보다 자극!

  •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입력2023-11-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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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된 정치

    • 국민 온종일 모니터 속에 사는 세상

    • 소비자 중독·자극 콘텐츠 생산 = 수익

    • 정치인·모니터 사회 결합 산물, ‘팬덤 정치’

    • 어느 때보다 지식인 역할 중요한 시기

    지난해 6월 6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들머리에 이른바 ‘개딸’이 보내온 화환들이 놓여 있다. [동아DB]

    지난해 6월 6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들머리에 이른바 ‘개딸’이 보내온 화환들이 놓여 있다. [동아DB]

    한국이 강대국이 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있다면 수준 이하의 국내 정치를 가장 먼저 꼽게 된다. 정치인들은 추석 연휴 동안 민심을 살피더니 하나같이 국민의 정치에 대한 반감·무관심을 언급하고 있다. 여야 간 막말 정쟁, 명분 없는 야당 대표의 단식, 살벌한 보복 공천 협박, 도를 넘는 문자 폭탄, 폭력과 혼탁이 난무하는 선거운동, 과학을 무시한 자극적 감성 동원, 실력보다 인기와 충성도 위주의 인물 발굴까지. 민생과 국가 미래와는 어떤 접점도 찾기 어려운 국내 정치의 장면들을 보면 당연히 국민은 정치를 멀리하게 되고, 무당층은 넓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는 권력을 놓고 경쟁하고 싸우는 것이지만 정쟁이 ‘무한 정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쟁이 되면, 공공영역이 무너져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사적 영역에까지 심대한 악영향을 미친다. 국민의 주머니 사정은 날로 나빠지는데, 정쟁을 일삼는 이른바 ‘나으리’들은 국민 세금이 아까운 줄 모르고 깃털같이 가벼운 정치로 국가의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한 정쟁, 법·윤리 기준이 아닌 인기와 팬심만 바라보는 예능 정치, 국가의 미래 어젠다를 생각하기보다는 근시안적 선거 전략을 논하는 가벼운 정치를 낳은 한국의 ‘예능 국가화’에 대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미래지향적이어야 하고, 끊임없는 학습이 필요한 정치 영역이 어떻게 옛 영화 제목과 같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변화했는지 시대 배경과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이 예능 국가화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타국보다 더 빠른 IT 테크놀로지의 도입과 대중문화산업 급속 성장으로 말미암아 한국엔 다른 나라에 비해 예능 국가화의 부작용이 더 빨리, 심하게 나타났다. 이에 더해 예능 국가의 부작용을 견제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해야 할 지식 세계가 오히려 같이 예능화하면서 진리·진실보다는 자극과 인기, 감성과 재미를 앞세워 가볍고 왜곡된 정보의 사회적 범람을 허용하고 있다. 검증과 비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식 세계는 그 존재 의의를 상실한 것이다.

    모니터 지배자가 세상 지배하는 ‘모니터 사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넓게 IT 테크놀로지를 도입하고 일상화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이른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벤처 붐이 생겨났고, 그 벤처 붐이 위기의 한국을 IT 강국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일조했다. ‘재벌 가문’이라는 사회·경제적 배경 없이 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인재들이 모험심과 실력, 그리고 피땀만으로 굴지의 IT 회사를 만들어나갔고, 정부는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했다.



    그 덕에 우리나라는 21세기 초 ‘세계에서 가장 인터넷 접속이 잘되는 국가’라는 명성을 얻었고, 네이버·다음 같은 공룡 플랫폼 재벌이 탄생했다. 올해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e스포츠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도 다른 나라보다 일찍 시작된 정보화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 시작된 정보화로 인해 한국인은 21세기에 들어서 어느 나라보다 훨씬 먼저 컴퓨터 안 가상공간에 익숙한 국민이 됐다. 국민 대부분이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컴퓨터 스크린이나 스마트폰 화면, 거리의 선전용 스크린까지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 속에서 생활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뉴스와 문자를 확인하고, 출근길에서도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고, 회사에서도 컴퓨터로 하루 종일 작업하고, 틈틈이 주식투자도 하고, 게임도 한다. 퇴근하면서도, 집에 와서도 잠들기 전까지 컴퓨터 세상 속에 들어가 있다.

    직장에 나가지 않는 주부와 노인, 학생의 생활 패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셜미디어라는 서비스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유튜브·페이스북·인스타그램 때문에 컴퓨터·스마트폰 화면에서 더 눈을 떼기가 어렵게 됐다. 신세대 젊은이들은 인스타그램과 같은 가상공간이 주 공간이고, 실제 공간은 가상공간에서 스스로를 보여주기 위해 활용하는 부수적 공간일 뿐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렇듯 몸은 실제 공간에 존재하지만 의식과 두뇌는 하루 대부분을 크고 작은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 보낸다. 이러한 사회를 ‘모니터 사회’라고 개념화할 수 있다. 모니터 사회에선 모니터라는 작은 공간을 지배하는 자가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지배해 세상을 지배하고, 궁극적으로 돈과 영향력을 얻게 된다. 욕심·야심을 가진 사람이 온종일 모니터에서 사는 한국 국민의 관심과 인기, 사랑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萬民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 時代

    9월 7일 서울중앙지법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경찰이 보수 성향 시민단체의 투척 시위에 대비해 그물망을 설치하고 있다. [뉴스1]

    9월 7일 서울중앙지법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경찰이 보수 성향 시민단체의 투척 시위에 대비해 그물망을 설치하고 있다. [뉴스1]

    모니터 사회의 등장과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줬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생산수단, 컴퓨터의 보급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거대한 공장 등 생산수단을 보유한 사람을 부르주아라고 불렀고, 이들은 생산수단에 인간의 노동력을 접속함으로써 노동력 착취를 통해 이윤을 남기는 계급이라고 했다. 노동자계급은 생산수단을 보유할 정도의 자본이 없기 때문에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노동력이 착취당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다.

    그런데 전자산업·기술 발달이 컴퓨터라는 생산수단을 소형화·고도화했다. 이제는 거의 누구나 이를 소유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손안의 작은 컴퓨터, 책상 위의 작은 컴퓨터를 통해 이제 누구나 노력만 하면 모니터 안에 유통할 수 있는 콘텐츠·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고, 스스로의 노동력만으로 상품을 만들어 이윤을 창출할 수 있게 됐다. 이 시대의 개인은 자기 안에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두 개의 계급을 동시에 다 갖게 된 셈이다.

    현재 모니터 사회에서 콘텐츠 시장을 장악한 곳은 기존의 대형 미디어 산업과 소셜미디어, 특히 유튜브 시장이다. 개인의 이윤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신세대 젊은이들이 큰돈 들이지 않으며 이 시장에 뛰어들었고, 이제는 기성세대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물론 이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진입 초기에 자기 스스로 노동력을 착취해야 하는 부작용이 있지만 어느 정도 성공하게 되면 기업화 과정을 겪는다. 이 콘텐츠 시장이 바로 모니터를 장악하는 공간이고, 모니터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니터 공간에 접속하는 콘텐츠 소비자를 많이 끌어들여야 한다. 즉 소비자들이 좋아하고, 집중하고, 중독되는 콘텐츠를 생산해야 지속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자극적·非이성 ‘예능 포퓰리즘’ 탄생

    한국인 대다수가 컴퓨터, 스마트폰, TV 등 전자기기를 통해 온종일 콘텐츠를 접한다. [동아DB]

    한국인 대다수가 컴퓨터, 스마트폰, TV 등 전자기기를 통해 온종일 콘텐츠를 접한다. [동아DB]

    어떤 콘텐츠를 생산해야 소비자들이 좋아하고, 집중하고, 중독돼 계속 찾아올까. 대개 이런 콘텐츠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콘텐츠가 직관적이고 길이가 짧다. 수많은 콘텐츠가 경쟁하는 모니터 사회에선 콘텐츠 내용이 복잡하고 지루하면 소비자가 바로 다른 콘텐츠로 갈아탄다. 신세대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킨 소셜미디어 틱톡은 짧고 재미있는 동영상으로 성공한 플랫폼이다. 인기 있는 유튜브 콘텐츠도 대부분 직관적이고 짧다. 즉 시장에선 소비자를 잡기 위해 짧고, 단순하고, 과감하며, 자극적인 콘텐츠를 주로 만들게 된다.

    둘째, 콘텐츠의 깊이보다는 재미, 정확도보다는 솔깃함과 그럴듯함, 점잖음보다는 통쾌함, 균형감보다는 극단성을 추구한다. 즉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을 공략한다. 이러한 콘텐츠는 콘텐츠 생산자가 예능인이 아니더라도 그를 예능인과 같은 스타로 만들고, 적극적 팬층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비예능인이 예능의 세계로 들어서는 길이다. 작은 컴퓨터 화면 속에서 스타가 탄생하고, 그 스타는 팬들을 향해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에 관해 매우 위험하고 과감한 메시지들을 던지면서 모니터 사회를 예능 사회로 만들어간다.

    셋째, 예능 공간은 감성의 공간이기 때문에 인기가 도덕·윤리보다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 스타에게 매우 관대한 팬심이 존재하고 보호본능도 작동한다. 열성 팬들에게는 도덕·준법정신·윤리보다 공감·재미·위로가 더 중요하며 스타와 영웅은 지켜야 하는 존재다. 스타로선 굳이 국민적 스타가 되지 않더라도 열성적으로 나를 지지해 주는, 크지는 않아도 강력한 팬덤이 중요하다.

    모니터 사회에서 이러한 콘텐츠가 주로 유통되면 사회적 문제를 공론화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합리적·이성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서, 인내심을 갖고 민주적으로 타협하는 근대사회 민주주의 정치 과정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야심·욕심이 있는 사람은 각기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스타,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고소득과 영향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진영 내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어야 힘이 생기는 정치인들이 열성 팬을 절대 놓칠 리 없다. 이들은 인플루언서와 협업하거나 스스로 인플루언서가 돼 위험하고, 자극적이고, 감성적인 콘텐츠를 마구 생산하게 된다. 팬덤 정치의 탄생이다. 자극적 정치의 양극단에 있는 팬들을 향한 정치다.

    누구나 콘텐츠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고, 언제 어디서나 모니터에 접근할 수 있는 모니터 사회는 이제 예능으로 물들고, 국가 전체가 예능 국가로 변해가고 있다. 사회문제가 복잡하고 어려워지는데, 문제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오히려 단순하고 감성적이며 예능적이다. ‘예능 포퓰리즘’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지식인 약해지면 국가도 약해진다

    정치인들이 막말을 해도, 법을 어겨도, 전문성이 없어도, 자기 진영에서 강력하고 열성적인 팬을 확보한 예능인이 되면 선거에도 이기고, 위기에 처했을 때 팬들이 구해준다. 예능 정치인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유혹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정치인뿐 아니라 지식인 세계도 마찬가지다.

    근대국가는 시장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기업·국민이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공영역을 담당한다. 인기가 생명인 예능국가에선 포퓰리즘이 횡행하게 돼 법치·치안, 미래지향적·전문적 정책, 효율적 인프라 관리 등 공공영역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국가 예산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공공영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불확실성이 커져 시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고, 이러한 기간이 길어지면 국가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한국이 강대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예능국가화를 잘 관리해야 한다. 테크놀로지·대중문화산업 발전으로 인해 어느 정도 예능화는 불가피하지만 공공영역에 침식해 들어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계·언론계를 포함한 지식인 사회가 철저한 직업 정신을 발휘해 예능 정치인, 예능 전문가에 대해 확실한 견제·검증을 하고 세계적 경쟁력을 갖는, 존경받는 지식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지식인들이 양극단의 팬덤 정치에 질려서 늘어나고 있는 무당층을 끌어들여야 한다. 지식인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가 됐다. 한국이 강대국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지식인이 약해지면 나라도 약해진다.

    이근
    ● 1963년 출생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박사
    ● 외교안보연구원(국립외교원) 교수
    ●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한국 위원회 의장
    ●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
    ● 現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저서: ‘도발하라’ ‘대한민국 넥스트 레벨’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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